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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테이블위에 울려퍼진 '월드컵 코리아'

제1회 마이크로로봇 월드컵 축구대회

우리가 주도적으로 창설한 로봇들의 월드컵 축구대회 96 MIROSOT에는 세계의 내로라하는 '축구명문팀'이 대거 참여, 진기 명기를 선보였다.
 

KAIST대강당에서 열린 이번 대회에는 적지않은 관중이 몰려 로봇 축구대회의 대중적 성공을 예고했다.
 

탁구대 반쪽 운동장에서는 주먹만한 축구 선수들이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이들의 미끄러지는 듯한 슛동작과 함께 공이 네트를 가르면 관중석은 이내 흥분의 도가니. 실제 선수들이 뛰어다니는 잔디구장에서 보다 더 크게 ‘월드컵 코리아’ 함성이 터진다.

지난 11월 9일부터 나흘간 KAIST 대강당에서 열린 ‘제1회 마이크로로봇 월드컵 축구대회’(MIROSOT: MIcro-RObot World Cup SOccer Tournament)는 미국 ‘뉴턴’팀이 KAIST의 ‘소티’팀을 20대 0이라는 큰 점수차로 이기고 우승을 차지, 한민족컵을 수상한 가운데 막을 내렸다.
이번 행사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일본, 싱가포르 등 아홉개 나라에서 24개의 쟁쟁한 팀이 참가해 국제대회의 면모를 과시했고, 내용면에서도 상당한 실질적 성과를 이루어냈다. ‘우리가 해낸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조금도 아깝지 않은 성공적인 행사였다.

스포츠와 과학기술의 절묘한 만남

이 대회가 처음 기획된 것은 작년 10월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제 4회 마이크로로봇 경연 대회를 다녀온 KAIST 김종환 교수(전기 전자공학과·MIROSOT 조직위원장)에 의해서였다. 김교수가 이끈 팀의 로봇 ‘키티’가 우승을 차지하자 그는 우리 젊은이들에게도 세계의 젊은이들과 함께 과학기술력을 겨룰 도전의 장을 마련해줄 일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과학기술에 대한 일반의 관심을 유도해내기 위해 김교수가 떠올린 것은 2002년 월드컵 대회 유치전으로 한껏 인기를 끌고 있는 축구와 풍부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로봇의 결합. 이는 매우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이전까지 세계 어디에도 1대 이상의 로봇이 상대방에 맞서 함께 목표를 달성해내는 대회는 열린 적이 없었다.

학생들과 머리를 맞대면서 축구단 ‘창단’에 몰두하는 한편, 이 대회를 국제적인 행사로 키우기 위한 국제 조직위원회도 결성했다. 김교수팀이 제정한 경기 규칙은 그 독창성을 인정받아 국제 전기전자공학회(IEEE)의 공식적인 후원을 이끌어냈다.

이 경기는 얼핏 마이크로 마우스 대회와 유사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마우스대회는 단 한 대의 로봇이 미로(迷路)라는 고정상황을 해결하는 반면, 마이크로 축구로봇은 여럿의 로봇이 협력을 통해 다양한 상황변수에 맞추어 목표를 달성해야 하기 때문에 마우스보다 몇단계 복잡하고, 그만큼 진보된 지능을 갖추어야 한다.

또한 한 대의 축구로봇을 만들기 위해서 동원되는 분야만 해도 인공지능, 통신, 영상 처리, 반도체, 센서 등 기계공학과 컴퓨터, 전자공학의 제반 영역을 모두 아우르고 있어 여러명의 협동 작업을 필요로 한다. 이들 차세대 정보통신기술은 모두 향후 산업용 로봇의 개발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스포츠와 과학기술의 절묘한 만남
 

월드컵 개최지에서 함께 열릴 계획

마이크로로봇 월드컵 축구대회의 경기 방식은 가로, 세로, 높이 모두 7.5cm로 제한된 크기를 가진 완전 자립형로봇 3대가 90×1백30cm의 운동장에서 전후반 각 5분동안 오렌지색 골프공을 상대편 골에 넣음으로써 승패를 가른다. 애초에는 5대의 로봇으로 계획했으나, 경기의 활기와 흥미를 돋우기 위해 올해는 일단 3대로 치렀다.

한팀의 로봇 시스템은 운동장을 뛰어 다니는 로봇 선수, 선수들이 뛰고 있는 운동장 상황을 일일이 읽어서 호스트컴퓨터에 전달하는 비전시스템, 이 정보를 가지고 다시 선수들에게 작전을 지시하는 호스트컴퓨터의 세부분으로 구성된다.

이같은 구성은 실제의 축구경기에서 감독(호스트컴퓨터)과 그의 지시를 정교하게 수행하는 선수(로봇)가 서로 무전기를 통해 경기의 흐름에 대한 의견을 주고 받으면서 감독의 작전대로 경기를 이끌어가는 모습에 비유할 수 있다. 결국 감독의 작전능력과 선수 개인의 자질이 조화를 이룰 때 좋은 결과를 내놓는 것은 마이크로 축구 로봇이나 실제 축구경기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다만 한가지, 로봇 축구는 경기의 변화된 상황을 얼마나 자주 체크해서 감독에게 전달하느냐는 비전시스템의 중요성이 부각된다는 점이 특이하다.

경기의 전과정을 통해 구단주(개발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시작과 끝을 알리는 신호를 전달하는 것이 전부. 자체 내에 CPU를 달고 있는 로봇 선수는 호스트 컴퓨터의 작전 내용을 무선통신으로 전달받아 자신의 움직임을 제어한다. 이들은 또한 전원이나 구동장치를 갖추고 있다. 물론 사람처럼 다리로 뛰어다니는 것이 아니라 바퀴로 움직이기 때문에 드리블과 패스가 그리 정교하진 못한 편. 슛동작도 모터 속도를 높여서 슛을 쏜다기 보다는 밀어낸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어울릴 것이다.

한편 비전시스템은 경기장으로부터 2m 이상 떨어진 자기 진영 위에 설치돼 눈 역할을 한다. 대개는 CCD 카메라나 캠코더를 이용하는데, 이들은 노랑색과 파랑색으로 구별된 유니폼을 입고 움직이는 로봇과 공의 위치를 빛의 삼원색(빨강 파랑 녹색), 즉 RGB값이나 모양에 따라 인식해 로봇에게 전달한다.

이번에 뉴턴팀이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도 바로 우수한 비전 시스템 덕분. MIT 출신으로 현재 비전소프트웨어 개발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전문가들이 만든 이 팀의 비전은 1초에 60번을 탐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 보통 1초에 10번 정도밖에 탐색하지 못하는 경쟁팀들을 압도적으로 눌렀다(물론 20점이라는 큰 점수차가 난 것은 결승전 경기 진행이 늦어져 소티팀의 카메라 설치가 제대로 되지 않은 탓도 일조했다. 개막식에서 뉴턴팀은 ‘소티’팀의 자매구단인 ‘미로’팀과의 경기에서 12 대 3으로 승리).

로봇의 움직임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경기 알고리즘의 개발은 호스트컴퓨터의 최대 과제. 1대의 로봇을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3개월 정도이지만, 프로그래밍을 짜고, 원하는 동작을 수행하도록 이를 수정하는데는 제작 기일보다 더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앞으로 매년 학술 세미나와 함께 개최될 예정인 이 행사는 특히 국제축구연맹(FIFA)의 월드컵이 벌어지는 해에는 해당 국가에서 함께 열릴 예정. 이에 따라 내년에 한 번 더 우리나라에서 대회를 가진 뒤, 1998년 3회 대회는 월드컵이 열리는 프랑스에서 같은 기간에 ‘과학기술 월드컵’으로 개최키로 했다.
 

1백30×90cm의 녹색 운동장에는 로봇의 위치인식과 보정을 위해 0.5cm폭의 백색선이 10cm간격으로 표시된다.사진은 비전 시스템이 전달한 운동장 상황을 표시한 모니터화면.
 

'로봇월드컵'도 한일간 신경전
우리 규칙 본따다른 대회 개최 계획


2002년 월드컵 개최를 놓고 미묘한 신경전을 벌여온 우리나라와 일본의 알력은 로봇 축구 월드컵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지난 11월 4일, 이번 대회를 준비하느라 정신 없이 바쁜 김종환 교수는 한통의 E메일을 받았다. 보낸 이는 일본 소니사 연구소의 히로아키 기타노와 오사카대학의 미노루 아사다씨. 내년 8월 일본에서 우리의 MIROSOT와 같은 대회를 '로보컵대회'란 이름으로 실시한다는 내용이었다. '로봇왕국'임을 자랑하던 일본이 우리에게 선수를 빼앗기자 부랴부랴 만든 대회인 것이다.

김교수를 더욱 황당하게 만든 것은 자신이 심사숙고해서 만든 마이크로로봇 축구대회의 경기규칙이 몇가지 숫자만 바뀌어 도용된 점. 이를 테면 로봇의 규격이 15cm로 커졌고, 선수 로봇의 숫자를 5명으로 늘려 탁구대 전체를 사용한다는 것 외에는 작년 10월부터 작업에 착수한 김교수가 만든 그대로였다.

"예를들어 탁구대를 경기장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언뜻 매우 단순해 보이지만, 비전처리를 위해 빛을 덜 반사시키는 운동장을 오랫동안 생각한 끝에 찾은 것입니다. 연구활동에 종사하면서 남의 아이디어를 그대로 베껴 마치 자신의 것은 양 행세하면서 똑같은 대회를 개최한다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닙니다."

현재 김교수는 이에 대해 아직 구체적인 행동 계획을 마련하고 있지 않은 상태. 향후 마이크로로봇 연구센터를 설립해 이곳을 마이크로로봇에 필요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기술의 메카로 만들고, 이를 토대로 국제 마이크로로봇 축구연맹(FIMA : Federation of Int'l MIROSOT Association)을 우리 주도로 설립할 계획인데, 이를 추진하는데 일본의 로보컵이 방해가 된다면 아예 FIMA 밑으로 끌어들인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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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박해윤 기자
  • 이강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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