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거리를 질주하는 택시 기사,

응급실의 간호사와 의사, 환하게 불 밝힌 공장과

건설현장의 노동자, 편의점의 아르바이트생,

그리고 ‘잠을 잊은’ 독서실의 수험생.

우리 주위엔 의외로 낮밤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몸에 무리는 없을까.

밤샘과 교대근무의 문제점을 들여다봤다.


기자는 몇 년 전 직업군인으로 공군 관제사를 3년 동안 했다. 처음 관제 모니터(레이더 콘솔)를 봤을 때의 충격이 떠오른다. 좁은 한반도 상공을 시속 1000km로 나는 비행기들이 가득 덮고 있었다. 이 비행기들을 사고 없이 정확히 통제해야 한다니 말 그대로 눈앞이 캄캄했다. 목까지 콱 막혀서 생애 첫 관제 임무를 실패하고 말았다. 눈물이 쏙 빠지게 혼난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보다 힘든 일은 따로 있었다. 바로 괴상한 근무 일정. 하루는 24시간이 아니라 18시간이고 3일마다 밤을 지새워야 했다. 출퇴근시간도 매일 바뀌어서 하루는 자정에 출근한 뒤 그날 저녁 6시에 또 출근하고, 다음 날은 오후 12시에, 다음 날은 다시 아침 7시에 출근했다. 그리곤 그날 자정에 다시 출근했다. 매일 매일이 쳇바퀴였다. 늘 피곤하고 머리는 몽롱했다.

“4조 3교대네요. 그 정도면 아주 양호한 거예요.”

취재차 찾은 인천 근로자건강센터 김인아 실장(연세대 보건대학원 연구교수)이 잘라 말했다. 김 교수는 교대근무를 연구한 국내 몇 안 되는 전문가다. 자동차 공장을 비롯해 국내 생산직 노동자들의 교대근무와 건강을 조사했다.

김 교수는 “그 정도면 우리나라에서는 무척 인간적인 교대근무”라며 “더 사정이 나쁜 곳이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4조 3교대를 하는 곳은 공공기관 정도예요. 대부분은 더 힘든 3조 3교대(하루를 3부분으로 나눠서 3조가 근무) 근무를 하거나 주야 맞교대(주간조-야간조로 나눠서 1주일씩 바꿔가며 근무하는 2조 2교대)를 하죠. 쉴 틈조차 없어요. 최근 사회 이슈가 됐던 유성기업이 맞 교대였죠.”

도시는 24시간 굴러간다

기자가 교대근무를 하면서 느낀 것도 세상에 교대근무와 밤샘근무가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다. 밤에도 불이 환한 공장, 순찰 중인 경찰, 거리를 메운 택시와 버스 기사, 청소부, 경비원, 간호사,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정비사 등등. 현대 사회는 24시간 근무를 하지 않으면 굴러가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학생도 예외는 아니다. 시험 때만 되면 불 밝힌 독서실이 많다. 정확히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교대근무나 밤샘 근무를 하고 있을까.

“우리나라에는 정확한 통계조차 없어요. 경제협력개발 기구(OECD)에 보고하기 위해 실시하는 고용노동부의 근로시간실태조사에도 구체적인 교대근무 정보를 묻는 항목이 없습니다(지난 5월 27일, 정부는 처음으로 교대제 상세조사 항목을 추가하기로 발표했다). 취업자근로환경조사나 국민건강영향조사 등의 통계를 종합해 보면 임금노동자의 10~20% 사이로 나와요.”

하지만 이 수치에는 아르바이트나 단기 파견 등이 포함되지 않았다. 따라서 실제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교대근무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북유럽과 함께 교대 근무 연구에 가장 적극적인 캐나다의 ‘노동수입동향조사(SLID)’ 자료에 따르면 1996년부터 2006년까지 캐나다 노동자의 66%만이 정상적인 주간 근무를 했다. 전체의 3분의 1은 어떤 형태로든 야간 또는 교대근무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약 20%의 사람들이 교대근무를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대부분의 교대근무는 24시간 운영을 위해 있기 때문에 밤샘근무가 포함돼 있다. 따라서 교대근무가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불규칙적인 시간대가 불러일으키는 ‘하루주기리듬’의 파괴와, 밤샘근무가 일으키는 작업 부담이다. 김인아 교수는 “의학적으로 보면 오전 7시, 오후 7시 이후의 작업이 포함된 근무는 모두 교대근무에 해당한다”며 “꼭 조를 짜고 시간을 바꿔야만 교대근무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일상적인 낮근무 외의 근무는 모두 건강에 무리가 간다는 뜻이다. 늦은 밤 야근이나 새벽까지 이어지는 학생들의 공부 모두 몸에는 무리다.

밤샘근무가 암 일으킬지도

기자가 교대근무를 할 때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새벽시간의 졸음이었다. 새벽 5시 정도가 되면 흔히 하는 농담처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시계가 멈춘 것 같은데 일은 해야 했다. 이 시간에 깜빡 졸다 사고가 날 것 같아 두려웠다.

실제로 공장에서는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지난해 4월 캐나다 산업보건연구소가 주최한 ‘교대근무와 건강영향’ 심포지움에 참석한 스웨덴 스톡홀름대 스트레스연구소 토뵈른 애커슈테트 교수는 작업 중 졸음에 빠지는 두 번째로 많은 요인으로 교대근무를 꼽았다. 수면부족도 문제다. 김인아 교수가 2004년 현대자동차, 두원정공, 만도 등의 교대근무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서도 교대근무자가 주간근무자에 비해 불면증 비율이 최고 2.4배 높았다. 애커슈테트 교수도 “교대근무의 가장 큰 폐해는 수면부족과 피로”라고 밝히고 있다.

암과의 관련성도 주목 받고 있다. 국제암연구소(IARC)는 이미 2007년 밤샘근무를 발암물질 등급 가운데 두 번째로 높은 2A에 올렸다. 최근 화제가 된 휴대전화보다 높은 등급이다. 하루주기리듬을 깨트려서 수면 패턴을 파괴하고 만성적인 수면 장애를 일으키며 멜라토닌 생성을 억제한다는 것이 주 이유였다. 멜라토닌이 줄어들면 에스트로겐 농도가 높아지는 등 호르몬 교란을 일으켜 암 발생률을 높인다. 대표적인 예가 유방암이다.

하지만 IARC의 결정조차 전문가 집단의 의심을 해소하지는 못했다. 2009년 3월 의학저널 ‘란셋’은 사설에서 유방암을 세계 최초로 ‘직업성 암’으로 인정한 덴마크의 사례를 소개하며 “아직 과학적 근거가 불충분한데도 직업성 암으로 규정해서 놀랍다”고 말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2008년 펴낸 연구서 ‘교대제, 무한이윤을 위한 프로젝트’도 “야간근무가 암 발생을 증가시킨다고 결론을 내릴만큼 증거가 충분하지는 않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올해 6월 이런 흐름을 뒤집을 수 있는 연구 결과가 ‘미국 역학회지’에 실렸다. 노르웨이 국립직업보건연구소 제니-안 리 박사 연구팀은 노르웨이 간호사 4만 9402명을 1990년부터 2007년까지 17년 동안 추적해 밤샘 교대근무와 유방암 사이의 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밤근무를 연달아 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발병률이 높아졌다. 5년 이상 근무자 중 4일 이상 연속으로 일한 사람들 사이에서 발병률이 1.4배 높아졌는데, 같은 기간 근무자 중에 5일 이상 연속 근무한 사람에게서는 1.6배, 6일 이상 연속으로 근무한 사람에게서는 무려 1.8배나 더 높았다. 논문은 1.6배까지는 ‘의미 없는 증가’로 분류했지만 1.8배는 ‘의미 있는 증가’라고 평했다. 황승식 인하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예방의학)도 “교대근무가 암을 일으키는 데 문턱값(역치)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뜻”이라며 “이번 연구는 대상 인구집단이 커서 더 구체적인 연구 결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심혈관계 질환 역시 논란 속에서도 대체로 관련이 있다는 쪽으로 정리가 되는 분위기다. 2009년 5월, 덴마크 아루스대 의대 폴 프로스트 박사가 심혈관 질환과 교대근무의 관계를 다룬 기존의 14개 문헌을 분석한 뒤 “뚜렷한 역학적 상관관계를 발견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논문을 ‘스칸디나비아 산업환경보건학회지’에 실었다. 이에 대해 2010년 3월 핀란드 산업보건연구소 미코 하마 박사 연구팀이 같은 저널에 교대근무가 심혈관계 질환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해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교대근무는 심리(작업 스트레스 등), 행태(수면의 양과 질, 흡연, 영양, 체중 증가 등), 육체(감염, 혈압 등) 모두에 영향을 주며 이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심혈관계 질환을 일으키는 것으로 돼 있다.

황승식 교수는 “밤에 깨어 있기만 하는 게 아니라 반복적으로 노동을 하기 때문에 몸에 무리가 생기고, 결국 자율신경에 이상이 생겨 심혈관증세가 일어난다”고 말했다.

김인아 교수는 “심혈관계 질환은 협심증 등 심혈관계 질환이나 심근경색, 그리고 뇌출혈이나 뇌경색과 같은 뇌혈관 질환”이라며 “흔히 ‘과로사’라고 부를 정도로 근무 시간이나 형태와 관련이 깊다고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나이에 따라 발병률이 꾸준히 증가한다”며 “40~45세를 넘기면 이전보다 두 배 이상 높아진다”고 말했다.

인간적인 교대근무

24시간 멈추지 않는 불야성의 사회가 된 오늘날,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교대근무를 아예 없애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렇다면 ‘좀더 인간적인’ 교대근무는 없을까. 우리보다 노동자들의 건강에 대해 연구도 더 많이 돼 있고 보장도 잘 된 북유럽의 사례를 참고해 보자. 우선 쉬는 날을 충분히 확보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보다 노동자 수를 늘려 조를 더 많이 확보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공공부문에서나 겨우 4조 3교대를 하고 있지만, 북유럽은 5조 3교대가 기본이다.

연속으로 교대근무를 하는 횟수를 줄이는 것도 도움이 된다. 황 교수는 “간호사들도 3일 이상 근무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큰 병원에서도 일주일씩 밤근무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교대근무의 순서를 조절해 몸이 충격을 덜 느끼게 하는 방법도 있다. 기자가 체험했던 교대근무는 ‘밤샘-저녁-오후-오전-밤샘’ 순으로 시간을 거슬러가며 교대근무를 하는 식이었다. 이런 방식은 몸이 적응하지 못해 무리가 더 많다.

시험공부 때문에 일시적으로 밤잠을 마다한 경우는 어떨까. 다행히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며칠 밤을 지새운 정도는 몸이 금세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사 마감과 편집을 위해 종종 밤샘을 하는 기자도 일단 잘 쉬기만 하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 어떤 대비책도 교대근무나 시간외 근무를 하지 않는 것보다는 건강에 나쁘다. 김인아 교수는 ‘좋은 교대근무란 없다’는 캐나다 국립산업안전보건센터의 지침을 소개했다. 국제노동기구(ILO)도 “아무리 노동시간을 줄인다고 해도 생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는 만족스럽지 못하다”며 “야간노동을 하면서도 건강을 해치지 않을 대안은 없다”고 밝히고 있다. 교대근무를 줄여 주간 교대로 돌리고, 부득이하게 야간작업을 할 때는 시간을 최소화 해 쉬는 시간을 많이 확보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2011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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