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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잠재의식과의 대화

전생기억 되살려 질병 치료한다

개인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과거의 경험이 현재 겪는 '병'의 원인일 수 있다. 최면을 통해 이를 치료하는 정신 분야를 살펴보자.

사람의 기억이란 과연 무엇인가. 과학자들은 기억이 어떻게 입력되고, 저장되며, 필요할 때 끄집어 내 쓸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오랜 세월 동안 연구해 왔다. 하지만 아직 그다지 신통한 설명을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이론이 너무 여러 가지라 혼란스럽기만 하다.
기억을 관리하는 인간 두뇌의 복잡한 작용에 대해 현대 과학은 아직 제대로 밝혀낸 것이 별로 없다. 막연하게 부위별 기능을 짐작하는 선에서만 맴돌고 있을 뿐이다. 따지고 보면 인체의 모든 부위는 그 오묘하고 신비로운 작용으로 과학자들의 애를 태운다.

일상 생활에서 기억력은 무척 중요하다. 뭔가를 잘 잊어버리는 사람은 갖가지 실수를 하기 쉽고, 기억력이 좋은 사람은 여러 가지로 유리하다. 반대로 잘 잊어버려야 좋은 기억들도 있다. 이를테면 슬픈 일이나 모욕감, 상처입은 기억들은 빨리 잊어버릴수록 정신건강에 이롭다. 그러나 누구도 자기 마음대로 기억을 조작할 수는 없다. 그래서 기억은 정신 건강에 무척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슬픔이나 상처가 잠재의식 깊숙히 저장되면 불안이나 우울, 초조감이 들 수 있다.


갈등의 싹을 찾는다

과거에 있었던 어떤 사건에 대해 당사자가 어떻게 느끼고 기억하느냐에 따라 그 사건은 기쁜 일도 되고 슬픈 일도 된다. 무슨 일이나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슬펐거나 상처입은 기억들이 억제된 채 마음 깊숙한 곳의 잠재의식 속에 저장되면 그 기억에 담겨 있는 불편한 정서로 인해 불안이나 우울, 초조감 같은 증상을 일으킬 수 있다.

정신과 환자들을 치료하는 기법인 면담과 정신분석도 기본적으로 환자의 기억을 찾아들어가는데서 부터 시작된다. 어린 시절과 성장과정, 영향을 많이 받은 사건과 사람들에 대한 회상은 정신과 치료나 일반 카운셀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과정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모든 사람은 자신이 받아들이고 기억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열 사람이 한가지 사건을 바라보면 서로 다른 열가지의 해석과 기억이 생긴다. 개개인에게 기억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런 주관적인 성격 때문이다. 그래서 옆에서 보기에는 아무 것도 아닌 일이 어떤 사람의 기억 속에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경험이었을 수도 있고, 남의 눈에는 큰 일도 그사람에게는 별 것 아닐 수 있다.

고전적인 정신분석 기법은 자유연상을 통해 기억들을 찾아낸다. 이때 환자는 가만히 편안하게 누워서 하고 싶은 얘기를 마음대로 한다. 의사는 이 얘기를 듣고 코멘트하면서 환자가 느끼는 갈등의 원인을 찾아낸다.

이에 비해 최면 기법을 사용하면 훨씬 더 빠르고 효과적인 기억 탐색이 가능하다. 최면 상태는 잠재의식과 표면의식간의 교통을 증가시켜, 잠재의식 속에 숨어있는 기억들을 표면화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일반적인 정신치료에서도 최면을 이용하면 환자의 저항이나 비협조적인 자세를 훨씬 수월하게 극복할 수 있다. 빠른 시간 안에 긴장을 풀고 표면의식의 간섭이나 저항을 줄여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내용들을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최면은 고대로부터 모든 문화권에서 이용돼 왔고, 마법사나 주술사, 성직자들이 병을 고치고 추방하는 의식에도 쓰였다. 그러나 최면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1800년대 중반에 시작됐다. 당시 영국에서는 마취를 하지 않는 대신 최면술을 이용해 큰 수술을 한 예들이 발견된다. 최면술을 뜻하는 ‘hypnosis’란 용어는 1800년대 말 영국 의사인 제임스 브레이드가 처음 사용했다.

정신분석 이론의 시조이며 잠재의식의 존재를 처음 설명한 지그문트 프로이트도 최면 유도 방법을 배워 사용하다가 인간의 잠재의식의 존재를 알게 됐다고 한다. 일설에 따르면 프로이트는 최면 유도 솜씨가 서툴러 최면술을 포기하고 자유연상과 정신분석 이론을 주창하게 됐다고 한다.하지만 그의 정신분석 이론이 인기를 얻자 최면술은 잊혀져 갔다. 게다가 흥행사나 마술사가 흥미 위주의 왜곡된 이미지를 보여줌으로써 일반인들은 최면 현상에 대해 많은 오해를 하고 있다.

최면으로 찾은 기억

현재 최면술에 대한 연구는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최면술은 이미 1958년 미국의학협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의료 기술로 자리를 잡았다. 앞으로 최면이 의료 전반에 걸쳐 커다란 공헌을 하리라는 것은, 최근 의학 학술잡지들의 논문과 기사에서 최면을 이용한 치료와 연구 결과들이 급증하고 있음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1995년 영국 ‘피부과 학회지’ 5월호에 따르면, 잘 낫지 않는 피부염에 걸린 환자들에게 ‘완쾌된다’는 자기 최면을 가르친 결과 18명의 중증 성인 환자들의 증상이 호전됐으며 그 상태가 2년 이상 악화되지 않았다. 또 중증 어린이환자 20명에서 단 한명만 제외하고 증상이 상당히 호전됐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가정의학 학술지 5월호에는 “최면술은 가정의들에게도 무척 유용하며, 치료자들은 환자 내부의 잠재력을 치료에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보고했다. 또다른 학술지에는 최면이 성기능 장애와 요실금, 만성 골반통, 심한 입덧, 분만 통증 등을 제거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는 논문이 발표됐다.

국내에서는 최근 필자가 최면을 이용한 치료 기법인 ‘전생 퇴행요법’ 을 소개하면서 의료인들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최면치료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최면을 이용한 기억의 재생은 과연 믿을만 한가. 그 기억들이 과연 실재했던 과거의 것인가. 환상이나 공상의 산물은 아닌가. 이런 점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문과 관심을 가지고 있다.

사람의 잠재의식은 흔히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는 빙산의 부분과 비교된다. 표면에 올라온 부분은 얼마 안되지만 수면 밑에는 거대한 덩어리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의식도 이와 같아서 표면의식은 현실적인 판단과 계산을 바탕으로 움직이고, 잠재의식은 표면적으로는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기억과 경험을 토대로 그 사람의 성격과 성향, 기호와 감정을 조절한다.

사실 우리 생활은 잠재의식의 지배를 받는 부분이 훨씬 많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잠재의식 속에 병적인 부분이 있으면 웬지 모를 불편한 마음이나 증상으로 표면화되는 것이다. 최면 기법을 이용하면 잠재의식과의 직접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따라서 환자가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이 어디에 숨어있는지 알아내기 쉽다. 이 과정은 대개 그 사람의 어린 시절이나 성장과정의 기억들을 살펴봄으로써 현재의 갈등 원인이 될만한 사건과 기억들을 찾아보는 것이다.

그러나 최면상태에 들어가면 기억이 더 정확해지는 것인지에 대해 아직 학자들 간의 의견차이가 심하다. 최면을 이용한 연령 퇴행기법으로 찾아낸 어린 시절의 기억에 대해서도 신뢰를 보이는 학자와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논쟁을 벌이고 있다.

반대론자들은 기억을 회상하는 과정에서 그 기억이 원형을 잃고 왜곡되거나 변조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세계 최대의 최면학술단체인 미국임상최면학회에서 발간한 ‘최면과 기억의 관계에 대한 지침서’를 보면 흥미로운 결론 하나가 발견된다. 감정적으로 그 사람에게 무척 중요했던 기억은 시간이 많이 흘러도 왜곡되지 않고 원형이 보존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이라도 그것이 중요한 사건이었다면 그 기억의 회상은 믿을만하다는 의미가 된다.

충격적인 사건은 잠재의식에 담겨

사람들은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할수록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이 뚜렷하지 못하다. 충격 때문에 제대로 뭔가를 살피고 기억할 여유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을 최면으로 유도해보면 잠재의식 속에 기록된 놀랍도록 정확한 기억을 찾아내는 경우가 많다.

한 예를 들어보자. 어떤 젊은 여성이 납치돼 겁에 질린 채 자동차에 실려 끌려 갔다. 나중에 그녀는 그때의 상황을 거의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최면 상태에서 그녀는 자기가 탔던 자동차의 엔진소리와 문고리에 있던 흠집, 실내장식 등을 기억해 냄으로써 용의자를 검거하는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했다. 이같은 경우는 최면이 아니었다면 범인을 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최면 상태이건 아니건 사람의 기억은 사진을 찍듯이 모든 것을 빠짐없이 기록한 것은 아니다.

기억이 저장되는 방법에 대해서는 일치된 설명이 없지만 대략의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다. 우선 기억할 사건이 두뇌의 어느 부분에 등록돼 저장되고, 필요할 때 그것을 재구성해 끄집어 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억을 회상하는 과정에서 원래와는 변형된 형태로 재구성돼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억이 변형될 수 있다고 해서 모든 기억이 믿을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최면 시술자는 그 가능성을 충분히 염두에 두고 있으면 된다. 최면에 걸린 사람이 얘기하는 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문제지만, 그들이 얘기하는 내용을 무조건 의심하려 하는 것도 올바른 과학자의 태도가 아니다.

최면 의학의 역사는 다른 분야에 비해 짧고 학문의 성격상 통일된 의견을 도출해내기가 쉽지 않다. 다양한 시도와 접근 방법을 개발해 잠재의식 속에 들어있는 기억의 창고를 어떻게 실생활에 유용하게 사용하고, 나아가 환자의 숨어있는 갈등의 원인을 찾아내느냐 하는 것이 현재의 숙제다.

모든 심리학적 연구분야와 마찬가지로 최면 연구도 실제 환자를 다루는 임상보다 실험실 위주의 연구가 주를 이뤄왔다. 그러나 실험실에서 얻은 결과들은 직접 환자와 만나는 임상 의사들에게 큰 도움이 안된다. 그래서 학자들은 임상 연구에 보다 많은 관심이 기울어져야 한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결국 아직 우리는 기억이 무엇이고 최면 현상이 무엇인지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어릴 때의 기억이나 중요한 사건의 기억에 약간의 왜곡이나 환상이 곁들여지는 경우도 있는 반면에,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신비롭게 정확한 기억을 되살리는 경우가 보고되고 있다.

현재 가장 논란의 대상이 되는 대표적인 기억이 바로 전생(前生)의 삶에 대한 기억이다. 이 기억이 참인지 거짓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부분적으로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아도 그 시대에만 쓰던 어휘를 구사하는 현상이 보고됐다. 자신의 전생에 언제 어디서 태어나고 죽었다는 말을 듣고 서류로 확인해본 결과 그런 인물이 실재했다는 점이 밝혀지기도 했다. 얼마 전 TV에서 방영됐던 프로그램에서 대전의 한 청년은 자신이 기억하는 전생 이름을 한 족보에서 확인한 결과 사실로 판명되기도 했다. 이처럼 기존의 과학 논리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되는 부분이 너무나 많은 것이 이 분야다.
 

같은 경험이라도 사람마다 받는 '충격' 이 다르다. 학생 시절에 겪은 체벌이 금새 잊혀질 수도, 늙을 때까지 기억 될 수도 있다.


전생 퇴행

한 예를 들어보자. 35세의 박모 여인은 신경을 많이 쓰거나 피로해지면 원인을 알 수 없는 설사를 자주 한다. 그러나 내과 검사에서는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에게 전생을 기억하도록 유도하자 그녀는 자신이 1900년대 초 서울 가회동에 시집와서 살았고, 1920년대 초반에 장티푸스에 걸려 아들을 남겨두고 34살에 죽었다고 말했다. 더욱이 그녀는 당시 자신을 부르던 이름과 가족들의 이름을 명확하게 표현했다.

흥미로운 점은 실제로 1920년대 초기의 우리나라 전염병 발생 기록을 뒤져보면 장티푸스와 콜레라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는 사실이다. 1922년 (서울 기록은 아직 확인하지 못했지만) 평양에서는 40일 동안 1천명 이상의 장티푸스 환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이 환자가 죽은 해는 1922년이나 1923년으로 추정된다. 환자가 뚜렷한 이유 없이 설사를 하는 것은 전생의 이런 경험과 관련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또다른 예를 살펴보자. 좁은 곳에 들어가면 금방 숨이 막힐 것처럼 불안해하는 폐소공포증에 걸린 20대의 아가씨가 있었다. 그녀는 여러 해 동안 신경정신과적인 분석치료도 받았고, 약물 복용도 꾸준히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약을 하루만 중단해도 불안한 증세가 견디기 어려웠다.
그녀에게 전생 퇴행을 유도했다. 그러자 그녀는 약 3백년 전 중국에서 도적떼에게 쫓겨 동굴 속 깊숙이 피신했다가 어둠 속에서 발을 헛디뎌 떨어져 발이 부러졌고, 추위와 어둠 속에서 서서히 굶어 죽은 생애를 기억해냈다. 놀랍게도 이 단 한 번의 경험 이후, 고질적이던 폐소공포증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비참한 죽음의 기억은 불쾌하고 충격적으로 다가왔지만, 시간이 가면서 오히려 자신이 불멸하는 영혼을 가진 존재라는 자각이 생겼고 폭넓은 시각으로 매사를 바라보는 여유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난치 증상들을 가진 환자들이 전생의 기억들을 찾아 도움을 얻고 있다. 그 중에는 편집증과 조울증, 강박증과 같이 정신과 영역에서 골치 아픈 것으로 소문난 병들이 포함돼 있다.

전생 퇴행에서 회상한 내용이 과연 그 사람만이 가진 개인적인 기억일까, 그리고 환상이나 환각이 아닐까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혹을 제기한다. 필자 역시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에 익숙한 사람이라 그런 의문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정신질환자들이 보이는 환각 증상들은 환자의 회복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환자들의 환각은 두렵거나 무섭고 지극히 주관적인 내용이 많다. 그래서 전생 퇴행에서처럼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일관된 스토리를 볼 수 없다.

전생 퇴행을 통해 현재 닥친 문제들의 근원을 알게 된 사람들은 그 증상이나 문제의 극적인 호전을 경험한다. 이는 정신분석적인 면담치료 중 잊고 있던 어떤 기억을 떠올리게 되면 그 기억과 현재의 증상 사이의 연관을 이해하게 되고, 그 결과 증상의 호전을 보이는 경우와 같다. 다시 말해 전생 퇴행은 현재에도 쓰이고 있는 최면분석의 연령 퇴행 방법을 연장해, 태어나기 이전의 더 먼 과거로 돌아간다는 점만이 다를 뿐이다.

칼 융이 주장하는 ‘집단무의식 이론’은 각각의 집단마다 공통된 경험과 문화배경으로 형서된 공동의 기억창고가 있고, 그 집단의 구성원은 누구나 그 창고에서 기억을 꺼낼 수 있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전생 퇴행을 통한 기억 재생은 너무나 개인적이고 생생하다. 그리고 기억들을 따라 조사했을 때 실제로 그런 인물이 그 시간, 그 장소에서 살았고, 사소한 일들도 일치함을 확인한 예가 많다.
 

시간을 거꾸로 돌려 계속 가다 보면 뇌 속에 잠재된 당사자만의 독특한 세계와 만나게 된다.


환자 중심으로 사고해야

미국에서 전생퇴행요법이 처음 실시된 것은 1970년대였다. 이제 20년 정도의 역사가 된 셈이다. 그동안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지금은 최면과 기억에 관한 가장 권위있는 교과서로 미국에서 발간된 ‘최면과 기억’(1988)이라는 책에서도 그 임상적 효과를 인정하고, 앞으로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분야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부분을 다루는 과학은 언제나 결과를 보고 그 원인을 규명해 나가는 것이 억지 이론에 현실을 맞추는 것보다 훨씬 논리적이다. 환자의 치료에 최면을 이용해 기억을 되살릴 때는 그 내용의 사실성보다 환자에게 그 기억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역사적 사실이건 아니건 환자가 그렇게 믿고 있으면 그 사람에게는 그것이 사실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임상의사들이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개개인의 주관적 경험과 기억이 객관적인 사실보다 훨씬 중요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사실이라고 믿고 주장하는 기억을 무조건 부정하려 하거나, 뚜렷이 증명할 수 없다고 해서 의심하는 것은 환자의 이해와 치료에 도움이 안된다. 일단은 중립적인 태도로 그 기억들을 다루고 그 내용 중에 환자의 현재 상태나 증상과 관계가 있다고 믿어지는 부분을 찾아내며 더 깊이 파고들어가야 한다. 우리의 잠재의식은 표면의식이 잊어버린 기억들의 창고라고 할 수 있다. 잠재의식을 연구하고 이용하는 분야가 미래의 정신의학에서 차지하게 될 비중은 점점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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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김영우 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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