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기억은 분류하는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된다. 매일 보는 책의 단어뿐 아니라 테니스와 같은 운동 감각도 기억의 대상이다.

기억은 인간이 가진 가장 중요한 정신 기능의 하나다. 만일 자신이 경험하고 배운 것을 기억하지 못했다면 인간은 오늘날의 문명을 이룩하지 못하고 하등 동물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것을 기억해 다음 기회에 이용하고, 반복 경험으로 기술을 익히고 이를 글로 남겨 후대에 전수해 왔다.

사람 개개인을 평가할 때도 기억력이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어떤 사람을 매우 똑똑하다고 칭찬할 때 우리는 그가 듣고, 보고, 배운 것을 잘 기억해서 아는 것이 많고 일도 잘 처리한다고 얘기한다. 학생의 경우 공부를 잘하는가 못하는가도 얼마나 배운 것을 잘 이해하고 기억하고 응용하는가에 달려 있다. 이처럼 기억은 우리의 일상생활 거의 모두를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가지 단계

우리는 어떤 것을 기억하고 후에 다시 회상해 내기까지 세가지 단계를 거친다. 처음에는 머리 속에 방금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저장한다. 두번째 단계에는 머리 속에 경험한 것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계속 유지한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필요할 때 기억해 둔 것을 회상해낸다.

보통 뇌를 다치거나 뇌 기능에 이상이 생긴 경우 첫번째와 두번째 단계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권투 선수가 KO패를 당했을 때 잠시 의식을 잃고 난 후 한동안 기억을 잊어버리는 수가 있다. 이 경우 두부 충격으로 인해 외부의 자극을 머리 속에 저장하지 못한다. 가끔 술을 많이 마시고 크게 취한 다음 날, 전날의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아 당황한 경험을 해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때도 알코올의 영향으로 그날 있었던 일을 기억에 담지 못하거나 기억을 다음 날까지 보존하지 못한 것이다.

소위 ‘머리가 나쁜 사람’ 은 기억을 저장하거나 계속 유지시키는데 다른 사람보다 어려움을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반복해 외워서 기억해 두는 수밖에 없다. 마음이 불안·초조하거나 우울할 경우에도 기억을 저장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세번째 단계, 즉 기억을 재생하는 과정이 어려운 것은 대부분 심인성인 경우다. 심리적인 이유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기억해내는 것이 방해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어떤 커다란 정신적 충격을 받은 다음 그 사건 당시를 중심으로 기억 상실증에 걸리게 된다. 심한 경우 자신의 이름도 잊어버리고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게 되기도 한다. 한 예로 남편이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것을 발견한 부인이 갑자기 자기는 결혼하지 않은 처녀이며, 자녀들도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고 부정하는 경우가 있다.

일반적으로 뇌에 이상이 생겨 기억이 손상되면 최근 기억부터 시작해 점차 과거의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기억이 상실된다. 그러나 심인성 기억 상실의 경우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던 때를 중심으로 특정 기간만 선택적으로 기억하지 못한다.

화학 변화 있어야 장기기억 가능

그러나 학자들은 아직 기억을 어떻게 분류할 것인가에 대해 일치된 의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또 한가지 검사만으로 사람의 전체 기억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여기서는 현재까지 알려진 기억의 종류와 그에 따른 기억력의 측정방법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자. (그림 1)은 이들 다양한 기억을 개략적이나마 체계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그림을 보면서 기억의 종류를 하나씩 탐색해보자.
 

(그림 1) 기억의 종류


기억은 보는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가장 흔히 사용되는 분류로는 최근 기억(recent memory)과 원격 기억(remote memory)이 있다. 최근 기억이란 몇시간 내지 몇일 전에 있었던 사건에 대한 기억으로, 대개 그 시간대에 있었던 일에 대한 질문을 통해 이를 평가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오늘 아침 식사에 나왔던 반찬이 무엇이었는가, 어제 누구를 만났는가, 어디를 다녀왔는가를 물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에 비해 원격 기억이란 몇개월 내지 몇년 전에 있었던 사건에 대한 기억을 말한다. 이것은 과거에 일어났던 개인적인 사건, 즉 언제 어느 학교를 졸업했는가, 군대는 언제 제대했는가, 결혼은 언제 했는가를 물어 보면 쉽게 평가할 수 있다.

‘최근 기억/원격 기억’과 비슷하게 기억을 단기 기억(short term memory)과 장기 기억(long term memory)으로 나누기도 한다. 단기 기억은 적어도 5-30분 내의 어떤 자료를 기억해내는 것을 말하며, 장기 기억은 나중에 재생할 수 있도록 비교적 영구히 저장되는 강화된 기억을 말한다.

이런 구분은 기억에 대한 생리학적인 연구 결과를 통해 이뤄졌다. 단기 기억의 경우 뇌 신경세포의 전기적인 활동만이 일어나 일시적인 현상으로 그치지만, 장기 기억은 그 기억과 관련된 어떤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 뇌에 영구적으로 남는다고 할 수 있다. 단기 기억을 측정할 때 물건 이름을 3-4개(나무, 자동차, 모자 등)나 1에서 9 사이의 숫자를 임의로 불러준 다음 약 5분 후에 기억해내도록 한다. 고등학생 정도의 수준이라면 물건 이름은 모두, 숫자의 경우 9개 중 6개 이상의 숫자를 맞춰야 정상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가 '똑똑한지' 알 수 있는 기준은 금방 배운 것을 잊지 않고 기억해내는 능력이다.


뇌 부위별로 역할 달라

단기 기억은 기억 대상에 따라 언어성 기억(verbal memory)과 공간성 기억(spatial memory)으로 구분된다. 예를 들어 앞에서 말한 것처럼 물건 이름을 기억하게 하거나 쉬운 잡지의 문장을 기억하는 것은 언어성 기억이다. 이에 비해 어떤 기하학적 도형을 기억해 내는 것은 공간성 기억이다. 언어성 기억은 뇌의 좌측 반구가 관계되고 공간성 기억은 우측 두정엽이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림 2) 공간성 기억테스트^원본을 보고 바로 그린 그림(위)과 5분 후 다시 그린 그림(아래). 기억력 장애가 있는 경우다.


공간성 기억을 검사하기 위해 어떤 그림을 보여 주고 난 뒤 잠시 후 기억나는 대로 그 그림을 그리게 한다. 예를 들어 몇가지 도형으로 이뤄진 그림을 보여주고 곧바로 그리게 한 뒤 (그림 2, 위) 5분 후에 다시 그리게 할 때 비정상인의 경우 그림의 내용이 바뀌어 나타난다 (그림 2, 아래).

병원에서 자주 이용되는 검사로 레이-오스터리스(Rey-Osterrieth) 도형 검사가 있다(그림 3). 만일 이 도형을 보고난 뒤 전체 윤곽만을 기억하고 세밀한 선들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하면 기억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로 세밀하게 그려야 정상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전문가의 몫이다. 일반인들이 판단하기에는 무척 복잡하고 까다로운 방법이다.
 

(그림 3) 레이-오스터리스 도형^이 도형을 보고난 뒤 그려내는 능력을 보고 기억력을 평가한다. 전문가의 분석이 필요한 까다로운 방법이다.


한편 장기 기억은 삽화적 기억(episod-ic memory)과 어의론적 기억(semantic memory)으로 분류된다. 삽화적 기억은 개인적으로 직접 경험했던 사건을 떠올리는 것을 말하며, 어의론적 기억은 영구히 저장된 상식적인 사실이나 개념에 대한 기억이다. 삽화적 기억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경험했던 일들을 질문하면 된다.

이에 비해 어의론적 기억의 경우, 우리 나라 초대 대통령은 누구인가, 6.25는 언제 일어났는가와 같은 일반적 상식이나 ‘사과와 배’ ‘자동차와 비행기’ ‘책상과 걸상’의 비슷한 점은 무엇인가, 그리고 잘 알고 있을만한 속담의 뜻을 물어봄으로써 평가한다. 또한 여러 가지 물체의 그림을 보여준 뒤 그 이름을 대게 하는 검사를 한다.

삽화적 기억은 주로 뇌의 앞부분에 있으면서 인간의 기억과 정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변연계(limbic system)가 주로 담당하며, 어의론적 기억은 측두엽이 맡고 있다. 최근 사회적인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는 노인성 치매(알츠하이머병) 환자의 경우 어의론적 기억에 크게 장애를 보인다. 그래서 알츠하이머병 환자들은 평소에 잘 알던 물건을 보여주며 이름을 말하라고 하면 거의 생각해내지 못한다.
 

테니스를 치는 방법은 암시적 기억. 상황에 맞게 반사적으로 되살리는 기억 형태다.


훈련된 운동감각도 기억의 일종

기억을 명백한 기억(explicit memory)과 암시적 기억(implicit memory)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명백한 기억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떠오르게 할 수 있는 기억을 말하는데, 보통 기억이라고 부르는 것의 대부분이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암시적 기억은 의식적으로 기억해서 회상하는 것이 아니고 반사적으로 되살리는 기억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 운전을 하거나 테니스를 칠 때 우리는 그 동작의 순서를 차례로 기억해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반사적으로 하게 마련이다. 자동차 운전과 테니스는 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한동안 열심히 배우고 난 다음 자동적으로 터득한 습관 같은 것이다.

기억에 대한 연구는 치매를 비롯한 기억장애를 가져오는 질환의 진단과 평가, 재활에 가장 필요한 분야다. 현재 기억에 대한 여러 신경생리학적, 분자생물학적 메커니즘이 점차 밝혀지고 있고 기억력을 회복시켜주는 약물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 이 분야의 전망은 매우 밝다.

웩슬러 검사
나의 기억지수는 얼마?


기억력을 종합적으로 측정하는데 세계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검사법으로 웩슬러 기억 검사(Wechsler Memory Scale)가 있는데, 우리나라 말로도 번역돼 있다. 자기 나이, 생년월일, 네 명의 유명인사 이름을 대는 개인 및 시사 정보 검사, 지남력 검사(년, 월, 일, 장소에 대한 질문), 정신조절력 검사(시간 내에 답하기, 숫자 거꾸로 세기, 알파벳 반복하기, 셋씩 세기), 논리적 기억력 검사(두줄의 싯구를 즉시 반복하기), 숫자 따라 말하기(digit span), 시각 재생 능력(기하학적 도형을 즉시 기억하여 그리기), 짝짓기 연상 학습 검사(10개의 단어 쌍을 외우되, 첫 단어를 들려주면 다음 단어를 댐) 등의 소검사로 구성되어 있다. 이 검사는 보통 지능검사에서 측정되는 지능지수(IQ)와 마찬가지로 기억지수를 산출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정상인 기억지수는 1백. 95%가 80-1백20에 포함되는 정규분포를 그린다. 다음 문항들은 웩슬러 검사표의 일부다.

1. 인적사항 및 상식
1) 나이
2) 생년월일
3) 지금 대통령 이름
4) 전직 대통령 이름
5) 국무총리 이름

3-3. 3씩 떼어 숫자 외우기(45초)
(1-4-7-10-13-16-19-22-25-28-31-34-37-40)

4-1. 구절 기억하기
어느 무역회사에/청소부로/취직하고있는/동/인천/에 사는 김말순 여인은/망우리/경찰서에/와서/그녀는 전날 밤/수색/노상에서/돈5백원을/강탈당했다고/진술했다…

5-2. 거꾸로 따라 외우기
283 145
3270 4923
37849 27384
237483 384736
2736436 3847925

6. 그림 따라 그리기

그림 따라 그리기
 

1996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연병길 교수

🎓️ 진로 추천

  • 심리학
  • 의학
  • 교육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