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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Issue] 우주로 쏘아 올린 ‘피사의 사탑’ ‘등가원리’를 검증하다

우주로 쏘아 올린 ‘피사의 사탑’


손에 쥐고 있던 돌멩이를 놓쳤을 때 땅으로 곤두박질치며 떨어지는 모습을 보던 누군가는 어렴풋이 ‘중력’이란 걸 느꼈을 테다. 그리고 그게 돌멩이에 있는 어떤 양 때문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한편 돌멩이를 같은 힘으로 던질 때 무거운 돌이 느리게 날아가는 걸 보며, 이번에도 돌에 어떤 양이 들어있을 거라 느꼈을 것이다. 두 ‘양’을 구분해서 생각한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매우 긴밀한 관계를 품고 있으리라는 생각을 한 사람도 있었으리라.

이 두 개의 양은 갈릴레이의 시대에 와서야 비로소 각각 ‘중력질량’과 ‘관성질량’으로 정의됐다. 이들은 구분해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질량은 ‘물질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양’을 일컫는 말이다. 중력질량은물질이 중력장을 지날 때 상호작용하는 강도를 측정하면 정의할 수 있다. 관성질량은 물질에 힘을 가할 때 속도가 변하는 정도를 측정해 정의한다.


중력을 계산하는 실마리, 등가원리의 탄생

관성질량은 비교적 측정하기 쉽다. 물체에 주어지는 힘과 가속도를 측정하면 된다. 하지만 중력질량은 측정하기 어렵다. 중력질량을 알아야 중력을 계산할 수 있는데, 중력은 고전역학에서는 직접 측정할 방법이 없고, 중력질량을 통해 계산할 수 있을 뿐이다. 순환오류인 셈이다.

실마리는 17세기 이탈리아의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잡았다. 피사의 사탑에서 자유낙하 실험을 해 갈릴레이는 중력질량과 관성질량이 같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검증했다(탑에서 자유낙하 실험을 하지 않았다는 반론이 있긴 하다). 떨어지는 물체에 작용하는 중력과, 물체가 일정한 가속도로 떨어질 때의 관성력이 같다고 놓고 식을 전개하면, 물체의 종류에 상관없이 중력질량과 관성질량의 비가 항상 일정함을 알 수 있다. 이것이 갈릴레이의 등가원리다. 중력상수 등을 조절하면 두 질량의 수치를 완전히 일치시킬 수 있다. 이제 중력질량을 관성질량으로 대체해 계산할 수 있게 됐다.

아이작 뉴턴은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가 발견한 행성의 운동법칙과 갈릴레이의 등가원리를 토대로 만유인력 법칙을 세웠다. 태양과 행성 사이에, 또는 지구와 나 사이에 작용하는 ‘중력’을 물질의 운동과 관련된 ‘관성력’을 바탕으로 계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갈릴레이의 등가원리는 실험으로 확인됐을 뿐이다. 이 때문에 등가원리를 더욱 높은 정밀도에서 검증하려는 시도가 이후 수백 년간 이어졌다.


새롭게 등장한 아인슈타인의 등가원리

등가원리를 높은 정밀도에서 검증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물체를 높은 데서 떨어뜨리는 것이다. 하지만 항공우주기술이 발달하기 전엔 높이 올라가는 데 한계가 있었고, 실험을 정밀하게 설계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자유낙하 실험 대신 지상에서 좀 더 정밀하게 힘을 측정하는 실험이 고안됐다.

1908년 헝가리 물리학자 외트뵈시는 비틀림저울로 등가원리를 검증하는 실험을 설계했다. 지표면에 가만히 정지해 있는 물체는 중력과 함께 지구 자전에 의한 원심력을 받는다. 이때 중력은 지구 중심방향, 관성력(원심력)은 지구 자전축에 수직방향으로 작용한다. 만약 중력질량과 관성질량의 비가 일정하지 않고 물체에 따라 다르다면, 중력과 관성력의 합력도 일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두 물체는 평형을 이루지 않고 비틀릴 것이라는 게 외트뵈시의 생각이었다.

외트뵈시는 등가원리의 정밀도를 나타내기 위해 ‘외트뵈시 매개변수’를 정의했다. 단위는 없으며 수치가 작을수록 정밀하다. 외트뵈시는 당시 비틀림저울로 약 10-9 수준까지 등가원리에 위반이 없음을 확인했다. 이후 100년 넘게 실험이 이어졌고, 정밀도는 계속 높아졌다. 최기영 서울대 IBS 강상관계물질연구단 책임연구원은 미국 워싱턴대 박사과정 학생이던 2008년 지도교수와 함께 비틀림저울 실험을 해 10-13까지 등가원리 위반이 없음을 보였다. 현재까지 확인된 세계 최고 수준의 정밀도다. 최 박사는 “중력파 검출기처럼 등가원리 검증기도 내외부에서 생기는 온갖 잡음의 영향을 없애는 게 핵심 기술”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1908년 외트뵈시가 검증한 등가원리와 2008년 최 박사가 검증한 등가원리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갈릴레이의 등가원리가 아인슈타인의 등가원리로 대체 됐다는 점이다.

1915년, 아인슈타인은 중력과 관성력이 수치적으로 동일하다는 갈릴레이의 등가원리를 끝까지 탐구했다. 그 결과 가속되는 좌표계에서의 자연법칙은 중력장 안에서의 법칙과 동일하다는 일반상대성이론이 탄생했다. 쉽게 말해 힘을 받는 입장에선 중력과 관성력을 아예 구분할 수 없다는 뜻이다(중력질량과 관성질량을 구분할 수 없다는 뜻도 된다). 아인슈타인은 이 새롭고 강력한 등가원리를 바탕으로 중력을 시공간의 기하학으로 새롭게 정의했다.
 

중력의 근본에 대한 물음

등가원리에 대한 물음은 궁극적으로 중력과 다른 힘들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진다. 현재 우주를 기술하는 힘 사이에는 모순이 있다. 중력은 다른 힘들(전자기력, 약력, 강력)과 스케일 차이가 커 통합되지 않는다. 중력을 지금과 다르게 설명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있고, 그 중 가장 근본적인 수준에서 단서를 찾으려는 노력이 등가원리 검증이다.

양자중력 이론으로 등가원리 위반이 나타날 구체적인 영역을 예측한 과학자들도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한슨실험물리연구소의 로날드 아들러 교수는 2006년 전자기력, 약력, 강력을 통일하는 대통일이론(GUT)의 질량 스케일(약 1016GeV)과, 중력과 관계있는 플랑크 질량 스케일(약 1019GeV) 사이에서 무언가 특이한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대통일이론 스케일과 플랑크 스케일에 더불어 핵자의 질량(약 1GeV) 및 힉스입자의 질량(약 100GeV)을 고려해 계산하면 외트뵈시 매개변수로 10-13에서 10-18 사이에서 뭔가 특별한 현상이 나타나야 한다.

이 현상을 찾기 위해 프랑스국립우주연구센터(CNES) 는 4월 25일 마이크로스코프(MICROSCOPE)라는 인공위성을 우주로 발사했다. 인공위성에는 10-15 영역에서 등가원리를 검증할 수 있는 원통형의 두 질량시험체 쌍이 들어있다. 시험체 한 쌍은 구성 물질이 백금(Pt)으로 같고, 질량이 다르다. 다른 쌍은 구성 물질이 각각 티타늄(Ti)과 백금(Pt)-로듐(Rh) 합금으로 다르고, 질량도 다르다. 각 시험체 쌍은 같은 중력장을 지나도록 무게중심을 맞춰 놓았다. 지상과 달리 땅의 진동 등 온갖 잡음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정밀도가 높다.

마이크로스코프는 693km 높이에서 2년 동안 지구를 돌며 시험체 쌍의 위치신호를 지구로 보낸다. 상대성이론 위반을 연구하는 권오경 KAIST 자연과학연구소 박사후연구원은 “위성실험은 자유낙하 실험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고 설명했다. 높이만 훨씬 높아졌을 뿐, 중력장에 의한 가속도를 측정하는 건 똑같기 때문이다. 위성은 지표면에 계속 떨어지고 있지만, 지표면의 수평방향으로 그만큼 빠르게 이동하기 때문에 땅에 닿지 않을 뿐이다. 갈릴레이의 실험에서 ‘두 물체가 땅에 동시에 닿느냐’는 질문은 위성실험에서 ‘두 물체 사이에 위치 차이가 얼마나 생기느냐’로 바뀐다. 이번 실험을 통해 질량의 크기와 구성물질에 따라 중력질량과 관성질량의 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확인할 수 있다.





등가원리 위반이 발견된다면?

만약 마이크로스코프에서 등가원리 위반이 발견되면 어떻게 될까. 최기영 박사는 “일반상대성이론이 보정돼야 할 것”이라며 “그때가 되면 일반상대성이론도 만유인력 법칙처럼 특정 범위에서만 들어맞는 ‘근사이론’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등가원리 위반이 발견된다 하더라도 당장 새로운 이론이 떠오르진 않을 것이다. 권오경 박사는 “등가원리가 위반될 수 있는 이유야 무한히 많다”면서 “위반 사실만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고, 어떻게 위반됐는지 구체적인 수치가 신호로 잡혀야 새로운 중력이론을 구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 박사는 “위성실험은 여러 등가원리 실험 중 하나일 뿐”이라며 “끈이론, 고리양자중력 이론 등 중력을 설명하는 이론이 다양한 만큼 등가원리 실험 자체도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위 박스 참조).

2016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변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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