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자동차는 여객과 화물을 수송하는 가장 보편적인 수단으로서,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일은 물론 일상생활을 편리하게 만드는데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1990년대에 들어 자동차가 생활필수품으로 인식되면서, 해외 시장보다 국내 시장이 더욱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됐고 주택보다 차에 우선 순위를 부여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러나 20세기 초만 해도 자동차 기술은 걸음마 단계였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올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게다가 당시에는 엔진 종류에 따라 전기, 증기, 그리고 가솔린 자동차가 팽팽하게 경쟁하고 있어서 어느 것이 승자가 될지 가늠하기 힘든 상태였다.
이 가운데 주도권을 장악한 것은 가솔린 엔진이었다. 그러나 가솔린 자동차가 다른 자동차보다 기술적으로 가장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 가솔린 자동차 업계는 판매 초기부터 독특한 전략을 사용했고, 어느 정도 시장에서 지위를 확보하자 기발한 선전 활동을 벌였다. 또 대량생산 방식을 일찌감치 도입해 대중용 자동차를 만들었고 그 결과 자동차 업계를 평정해 나갔다.
전기 자동차가 패배한 이유
자동차는 19세기 후반 소규모 동력기관이 사회적으로 필요해짐에 따라 개발되기 시작됐다. 흔히 산업혁명의 상징으로 비유되는 증기기관은 대규모 자본가들만 접근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 당시의 중소기업가들은 증기기관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작은 공간을 차지하며 다른 곳으로 이동이 쉬운 엔진이 출현하기를 기대했다. 또한 19세기 중엽 교통혁명을 주도했던 철도가 거미줄처럼 확산되자 철도를 보완할 수 있는 근거리 운송수단에 대한 요구도 점차 증가했다. 이에 따라 수많은 발명가들과 기업가들은 새로운 엔진을 개발하는데 전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19세기 말에 이르러 증기 엔진, 가스 엔진, 전기 모터, 가솔린 엔진, 디젤 엔진 등 다양한 엔진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등장했다.
19세기가 끝날 무렵까지 가솔린 엔진이 나머지 경쟁 상대를 능가할 것이라고 장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미국의 경우 1900년에 4천1백92대의 자동차가 생산됐는데, 이 중 1천6백81대는 증기 자동차였고, 1천5백75대가 전기 자동차였으며, 나머지 9백36대만이 가솔린 자동차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이 변했다. 1901년 자동차 전시회에 출품된 수는 각각 58대, 23대, 58대. 1905년에 전시된 가솔린 자동차는 2백19대로, 다른 자동차들을 합한 수보다 무려 7배에 이르렀다.
이처럼 가솔린 자동차가 승리를 거둔 원인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1905년만 해도 모든 엔진은 제각기 장단점을 가지고 있었고, 어느 것도 확실하게 기술적인 우위를 차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기 자동차는 소음과 냄새가 없어 매우 깨끗했다. 또한 매우 단순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서 만들기 쉬웠고, 운전하기 편리했으며, 정비하는 일이 간단했다. 구성 부품이라곤 전기 모터, 바테리, 속도를 조절하는 저항기 등이 전부였다. 변속장치가 없었기 때문에 기어를 바꿀 필요도 없었다.
전기 자동차는 처음 선보였을 때 마치 전기의 시대를 대변하는 것처럼 보였다. 에디슨 조명회사의 사장이 당시 직원이었던 자동차 왕 헨리 포드에게 “미래는 전기의 시대가 될 것이므로 가솔린 엔진에 공연한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고 충고했다는 일화도 있다.
그러나 전기 자동차는 몇가지 심각한 결점을 가졌다. 힘이 약한 탓에 속도가 느렸고 경사가 가파른 언덕을 오를 수 없었다. 구입비와 운행비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납과 산으로 이루어진 무거운 배터리를 50km마다 재충전해야 했기 때문에 운전거리에 한계가 있었다. 주요 도시에 배터리 충전소를 설치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이는 미봉책에 불과했다. 그 결과 전기 자동차는 주로 도시의 이삿짐센터, 백화점, 세탁소 등에서 배달 서비스용으로 사용됐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보다 가볍고 강력한 배터리를 제조하는 일이었는데, 이는 오늘날까지 전기 자동차 지지자들이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다.
시동 거는데 30분 소요
20세기 초에 대중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던 것은 증기 자동차였다. 1890년대 프랑스 자동차 경주에서 증기 자동차는 다른 자동차들을 제치고 승리하고 있었다. 자동차로서는 최초로 워싱턴 산의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의 증기기관은 19세기에 비해 달리 규모가 작아졌고, 출력이 향상됐으며, 강철 부품으로 정밀하게 제작됐다. 구입비와 유지비가 매우 적게 들었으며, 엔진이 강력해 어떤 조건에서도 달릴 수 있었다. 또한 증기 자동차에는 기어나 클러치가 없었기 때문에 엔진이 별로 마모되지 않았다. 더욱이 증기기관에서는 어떤 연료로든지 물을 데우기만 하면 되므로 값이 싼 저질 석유제품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증기 자동차에도 중요한 약점이 있었다. 전기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운행거리가 제한됐다. 증기가 대기로 증발하면 다시 사용될 수 없기 때문에 50km마다 증기 자동차에 물을 다시 공급해야 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시동을 걸기 위해 증기를 발생시키는데 30분 정도나 소요된다는 점이었다.
가솔린 자동차는 어땠을까. 초기의 가솔린 자동차는 한마디로 ‘불편한’ 기계였다. 가솔린 자동차는 속도조절장치, 냉각장치, 밸브장치, 기화장치 등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고장을 자주 일으키는 말썽꾼이었고 유지와 정비가 쉽지 않았다. 특히 엔진을 가동시키기 위해서는 정교한 손동작과 근력이 필요했다. 주로 기계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 가솔린 자동차를 선호했다는 당시의 기록은, 가솔린 자동차의 조작과 유지가 매우 어려웠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장점도 있었다. 가솔린 자동차는 증기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가파른 언덕을 오를 수 있었고, 매우 빠른 속도로 도로를 달릴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조작에 익숙해지기만 하면 연료를 추가로 공급받지 않고 한 번에 1백10km를 달릴 수 있었다는 점이 매력이었다.
이처럼 가솔린 자동차가 전기 자동차나 증기 자동차에 비해 기술적으로 월등하게 우수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일단 가솔린 자동차가 우세해지자 전기 자동차와 증기 자동차는 잘못된 시도로 간주되거나 사람들의 뇌리에서 점차 잊혀져 갔고, 모든 관심은 가솔린 자동차의 기능을 개선하는데 모아졌다.
판매의 차별화 전략
가솔린 자동차는 어떻게 다른 경쟁자들을 물리칠 수 있었을까. 가솔린 자동차 업계는 초창기 판매 사업에서 과감하게 ‘차별화 전략’을 구사했다. 전기 자동차나 증기 자동차가 미국 동부 지역을 이미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솔린 자동차는 주로 중서부의 농촌 지역을 공략했다. 천연자원을 운반하고 농장에 동력이 필요한 일이 점차 많아질 것으로 예견했던 것이다. 이 전략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농민들은 전기 자동차의 깨끗함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또한 가솔린 자동차 업계는 증기기관이 검은 매연으로 가득한 공장 지역에 적합한 것이어서 평온한 농촌의 이미지와 상반된다는 점을 자주 강조했다. 자동차 조작법을 1대1로 가르치는 열성도 한몫 했다. 과학기술에 소외돼 있던 농부들은 열심히 배우고 기계를 직접 조작함으로써 문화적인 열등감을 극복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기도 했다.
전기 자동차가 점차 경쟁력을 잃고 특수한 용도에만 국한되자 가솔린 자동차는 증기 자동차와 1대1로 결전을 벌여야 했다. 이때 가솔린 자동차 업계는 증기기관의 구시대적 이미지를 적절히 활용했다. 증기 자동차의 외양과 구조가 많이 개선됐지만, 일반인들은 여전히 ‘증기 자동차’ 하면 몇t의 석탄을 태우면서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푹푹거리는 모습을 연상했다. 증기 보일러가 열을 받아 파열될 위험성도 가솔린 자동차 업계의 표적이었다. 그들은 ‘증기는 구시대, 가솔린은 신세계’라는 이분법을 적절히 활용해 시대의 흐름이 가솔린 자동차에 있다고 선전했다.
가솔린 자동차가 승리할 수 있었던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헨리 포드가 1908년부터 추진했던 ‘모델 T’의 대량생산이었다. T형 포드는 설계 수준이 뛰어났고 새로운 합금강을 사용해 매우 견고했다. 특히 작업을 세분화시킨 대량생산 방식을 채택함에 따라 가격이 더욱 저렴해져 생산 직후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전성기에는 다른 자동차에 비해 10배 정도로 가격이 저렴했고 전세계 자동차의 68%를 생산했다. 결국 1920년대 미국사회는 풍요한 경제와 포드 자동차를 배경으로 자동차 대중화 시대에 돌입했다.
판매 실패했지만 연구는 계속
가솔린 자동차가 승리를 거두었다고 해서 다른 자동차들이 역사의 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석유 파동이 있을 때마다 가솔린 자동차의 경제성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증기 자동차가 대체 기술의 후보로 떠올랐다. 최근에는 환경 오염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전기 자동차의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실제로 소음이 적어야 하는 주택 지역이나 배출가스가 많은 대규모 공장의 내부에서 전기 자동차가 일부 사용되고 있다. 이에 따라 증기 보일러나 소형 배터리에 관한 연구가 새로운 힘을 얻으면서 꾸준히 연구되고 있다. 만일 증기 자동차나 전기 자동차가 경쟁에서 승리했다면 현재 지구의 환경이나 자원 상태는 무척 달라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