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요즘 즐거운(?) 고민에 싸여 있다. 당초 한자리로만 경제성장을 유지하려고 하는 의도와는 반대로 외국 투자가들이 물밀듯 밀려들면서 본의 아니게 두자리 경제발전을 이룩하고 있기 때문이다(연평균 9%, 최근 2년간 연 13%).
1992년 정식 수교 후 중국을 방문하는 우리나라 사람들 누구나가 하는 말은 “우리의 60-70년대를 보는 듯하다” 는 것이다. 그리고 덧붙이는 한마디. “10년만 지나면 우리보다 잘살겠어.” 왜 이런 자조섞인 부러움의 예측들이 나오는 것일까.
중국의 개인당 GNP는 4백달러 정도. ‘중국’ 하면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 생산기술이나 과학기술의 수준이 낙후돼 있는 나라라는 인상이 강하다. 그러나 실제로 중국땅에 살고 있는 중국인들은 본인들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 ‘과학기술의 대국’ 이라는 자부심은 중국 지도층이 갖는 공통적인 생각이다.
사람이 많아 힘이 센 나라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영어라고 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정답은 중국어다. 12억이 넘는 인구는 ‘먹여 살려야 한다’ 는 경제적 부담감과 누구도 제공해 줄 수 없는 맨파워라는 상반된 두가지 의미를 갖는다. 사람이 많아 힘이 센 나라, 중국이다.
중국의 과학기술 수준이 우리나라에 비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중국을 잘 모르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맨파워를 무기로 ‘돈이 없어도 가능한’ 수학 등 기초과학은 물론이고, 우주, 생명, 신소재에서 중국의 수준은 이미 세계적이다.
매년 개최되는 국제과학올림피아의 단골우승팀이라는 것에서도 그들의 기초과학실력이 얼마나 탄탄한지를 잘 보여준다. 또한 중국은 핵무기 보유국일 뿐아니라 자체 위성 제작과 발사기술을 가진 5개나라 중 하나이며, 위성 회수 기술을 보유한 3개국에 속한다. 이런 능력이 모두 ‘사람이 많기’ 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 예로 60년대 중소분쟁으로 중국이 경제적으로 고립됐을 때 중국은 자력갱생을 통해 핵관련 기술자를 무려 10만명이나 동원해 원자탄을 자체기술로 5년만에 개발하기도 했다.
이런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과학기술은 제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창 과학기술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30대 후반부터 40대 과학기술 중견인재를 찾기 힘들다. 50여년 지속된 폐쇄적 사회분위기와 1966년부터 10년간 중국대륙을 강타한 문화혁명의 후유증 때문인 듯하다.
중국의 어느 대학에서나 30대나 20대에 정교수가 된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이 이런 추측을 뒷받침한다. 물론 능력 위주로 철저하게 평가하는 제도 때문에 젊은 교수들이 늘어나기도 하지만, 40대 중견 기술인력이 공동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약점이 아닐 수 없다.
이밖에도 중국 대학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점은 여러 가지가 있다. 국가의 재정적 지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무역회사나 합작회사 등의 기업을 세워 직간접으로 연구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는 형편이다(국가보조 30-40%, 자체 조달 60-70%).
또한 해외로 공부를 하러 떠난 인재들이 귀국하지 않고 현지에 눌러앉는 성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어, 마땅히 연구인력이 보충되지 않는다는 고민도 안고 있다. 그러나 중국당국은 느긋하게 그들을 기다린다고 한다.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므로 굳이 불러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중국 과학 기술의 앞날은 밝아보인다. 지난 해는 중국과학기술 발전사에 하나의 커다란 획을 긋는 해였다. 95년 5월 전국과학기술 대회 직전 ‘과학기술발전 가속화에 관한 결정’이 발표됐을 뿐 아니라, 대회에서는 강택민, 이붕 등의 국가지도자들이 “과학기술은 제1생산력이다”라며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기 때문. 즉 과학기술을 원동력으로 경제발전을 이루겠다는 의지와 함께 과학기술 자체의 발전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 양적으로 볼 때 중국은 두려울 것이 없어 보인다. 6천여개의 연구소에서 1백70만명의 과학기술인력이 일하고 있다. 거기에다 국무원 211공정(21세기까지 1백개 대학을 선택, 집중지원한다는 계획) 등의 인재양성 시책까지 제도적으로 과학기술발전을 밀어주고 있다. 이제 중국의 과학은 비상의 채비를 완료한 셈이다. 그들이 얼마만큼 도약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중국과학의 메카, 중국과학원
중국에 있는 어느 대학을 방문하더라도 자기 학교에 중국과학원 원사(academician)가 몇 명 있다는 것을 꼭 말한다. 학교의 자랑이자, 그 학교의 과학교육 수준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원사란 각 연구분야에서 최고의 연구성과를 이룩한 과학자에게 부여하는 칭호로 본인은 물론 소속기관에도 커다란 명예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중국과학원은 바로 이런 원사들을 임명하는 곳이다.
중국에는 공공기관이 거느리고 있는 연구소만 8천개가 넘고, 기업연구소까지 합하면 2만1천개가 넘는다. 그 중에서도 오랜 전통과 막강한 기반기술을 바탕으로 타 연구소의 추종을 불허하는 곳이 바로 중국과학원(Chinese Academy of Sciences)이다.
1949년에 설립된 중국과학원은 중국의 과학을 대표하고 있으며, 국무원 직속기관으로 국가과학기술위원회와 대등한 권한을 갖고 있다. 중국과학원 산하에는 5개의 학부(수학물리, 화학, 생물, 지학, 기술과학), 1백23개의 전문연구소, 중국과학기술대학이 있으며, 정보문헌센터 등 부속기관이 20여개가 넘는다. 현재 중국과학원에서 일하는 사람은 8만5천여명, 이중 고급과학자는 1만5천여명 정도이고, 원사는 5백명에 이른다.
또 중국과학원과 비슷한 중국공정원(Chinese Academy of Engineering)도 설립돼 공업분야의 대가들에게도 원사라는 칭호를 부여하고 있다.
중국과학기술위원회
1958년에 설립된 명실상부한 과학기술정책의 최고담당기관. 우리나라의 과기처와 비슷한 성격이지만 권한에 있어서는 더 막강하다. 중국의 주요 과학기술개발계획, 연구비 배분, 평가, 보급 등을 수행하며 대외 과학기술 교류를 추진하는 부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