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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곤충

영산 가득 메운 희귀종 북방실잠자리·함경어리표범나비·백두산방아벌레


꽃등에의 일종Baccha sp^파리목 꽃등에과 몸길이 10-12mm, 날개길이 8-10mm털개불알꽃의 주머니에 갇혀 있다. 꽃가루에 유인된 이 꽃등에는 주머니에 갇힌 후 만 하루가 지나서야 겨우 빠져나왔다. 어리가 크고 허리가 가늘고 길며 몸 전체에 광택이 난다.


내 마음이 왜 이리도 설레이는가. 국토 최북단에 위치한 영산, 백두산! 지난 15년간 남한 곤충의 분포상을 조사하고 확인하는 일에 매달리면서 항상 머릿속을 맴돈 생각은 ‘북한에는 언제 가보나’ 였다. 특히 백두산은 북방계 곤충상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중국쪽으로라도 한 번 다녀와야지” 하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우연히 기회가 찾아 왔다. ‘과학동아’에서 백두산의 곤충을 촬영해달라는 청탁을 받은 것이다.

지천에 떠다니는 나비떼

1996년 6월 17일부터 24일까지 식물전문가 4명과 함께 탐사가 진행됐다. 서울에서 백두산을 가려면 보통 심양과 대련을 거쳐 연길행 비행기를 탄다. 연길에서 백두산까지 거리는 90km. 차를 타고 가면서 멈추고 싶은 곳에 멈춰 식물과 곤충을 충분히 둘러볼만한 거리였다.

연길을 떠나 비포장 국도를 따라 미니버스가 털털거리며 달려갔다. 조용하고 한적한 산길을 달리니 타임머신을 타고 1960년대 우리의 자연으로 되돌아온 느낌이었다. 눈앞에는 넓은 들판과 숲이 있을 따름이다.

들 저편으로 완만한 산등성이들이 이어져 있었다. 들판은 넓고 편평한데 숲은 울창했다. 그런데 숲속에서 나비가 날아다녔다.

“멈추세요!” 눈나비, 백두산표범나비, 북방알락팔랑나비, 함경어리표범나비, 붉은점모시나비 등 희귀한 나비들이 떼를 지어 지천에 날고 있었다. 붉은점모시나비는 남한에서 5월 중순에 발견되는데, 여기서는 6월 중순에 볼 수 있다니 신기하기만 했다. 이어서 나타나는 늪지에서 북방실잠자리, 진주잠자리, 넉점박이잠자리들이 한창 텃세를 부리며 영역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소동이 일어났다. 숲에 들어갔다 나온 우리 몸에는 진드기가 달라 붙어 살을 파먹고 있었다. 모두 기절초풍을 하며 진드기를 잡느라 법석을 떨었다.

큰 고개에 도달했을 때 희귀한 딱정벌레가 나타났다. 산알락꽃하늘소, 백두산방아벌레(신칭) 등이었다.

낯선 만주땅이지만 식물, 곤충, 또 자연 풍경을 보면 하나도 낯설지 않았다. 이런 의미에서 한반도는 만주땅까지 이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느새 버스는 백두산 입구에 있는 마을 이도백하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숲은 울창하고 한적한 산길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번갈아 나타나는 전형적인 시골동네와 사람들. 일행 모두는 창밖의 풍경을 놓치지 않으려고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숲 속의 전사들
 

알락꽃하늘소 Jundolia sexmaculata^딱정벌레목 꽃하늘소과 몸길이 8-14mm. 양지 바른 곳에 피는 야생화에 잘 모여들며 주로 오전에 활동한다. 한반도 중북부와 만주, 우수리, 시베리아 동부, 북아메리카 지역에 분포한다.


이도백하에서 뻗은 넓은 비포장길은 곧장 백두산으로 오르는 길이다. 길 옆에는 잎깔나무, 만주자작나무가 빽빽히 들어차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30분 동안 오르니 드디어 장백산 자연공원 입구가 나타났다. 입장료는 비싼편이었다. 외국인 한사람에 중국돈으로 1백20원(한국돈 1만2천원)이었다. 내국인 15원과는 큰 차이 가 있었다. 입구를 지나면 곧게 뻗은 신작로가 끝없이 이어지고 양옆에는 울창한 키 큰 나무들이 터널을 만들고 있었다. 그저 끝없이 뻗은 외줄기 길과 평탄한 숲이 보인다. 일행은 길가의 울창한 숲에 피어 있는 꽃에 현혹돼 잠시 차를 멈췄다. 아름다운 쐐기풀나비가 일행을 반겼다. 사진을 찍으려고 있는데 숲에서 등에 무리가 나타나 무차별 공격을 해왔다. 쏘인 자리가 시뻘겋게 부어 올랐다. 몸은 괴로웠지만 그래도 이런 ‘독창적인 행동’ 을 하는 등에가 많이 나타나기를 은근히 기대했다. 이들도 곤충이니까.

일행에게 농담으로 “저 등에가 백두산 숲을 지키는 전사” 라고 했더니 한 사람이 “진드기, 등에, 모기 모두가 숲의 주인” 이라며 맞장구쳤다. 등에가 아마존족처럼 숲으로 들어오는 사람을 공격하니 더욱 매력적이다.

버스로 가파른 포장길을 오르자 이내 산 꼭대기에 이르렀다. 화산이 터져 만들어진 천지는 하늘빛보다 더 푸르렀다. 너른 연못이 감탄을 절로 쏟게 만든다. 멀리 끝간데 없이 이어진 숲. 이 시원한 눈맛은 가보지 않은 자에겐 설명할 길이 없다. 시원스레 트인 숲의 바다를 바라보면서 “아! 백두산!” 이란 감탄사를 가슴으로 동의하게 된다.

정상에서 만난 별종들
 

긴꼬리산누에방 Actias artemis^나비목 산누에방과. 날개길이 50-55mm. 한반도 산지에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만주, 우수리, 일본 등지에도 발견된다. 남한에서 성충은 6월과 8월에 2회 발생한다.


천지 주변에는 눈보라처럼 휘날리는 거대한 진딧물 무리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이 진딧물들은 어디서 날아온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진딧물을 먹이로 삼는 또하나의 곤충인 무당벌레도 주변에서 관찰됐다. 확실치 않지만 평지에 살던 무당벌레가 진딧물을 따라 이곳까지 온 것이리라 추측된다.

백두산의 계절은 특이하다. 일년 중 6월 봄, 7월 여름, 8월 가을을 제외하고 거의 9개월 동안 흰눈으로 산 정상이 덮히는 겨울이다. 그러니 우리가 탐사한 시기는 봄에 해당됐다.

골짜기에 아직 군데군데 하얀 눈이 덮여 있었지만 봄꽃은 모두 피어 있었다. 노란만병초, 담자리꽃나무, 담자리참꽃, 애기괭이눈, 가솔송 등 키 작은 관목의 밭은 융단을 깔아 놓은 듯이 땅바닥에 엉켜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리고 두메양귀비꽃, 구름국화, 장백제비꽃 모두 천지 주변의 봄빛이었다.

여기서 백두산이 낳은 고산 나비를 말하지 않고서는 이곳을 다녀온 의미가 없다. 놀랍게도 평지에 사는 귤빛부전나비가 날아다녔다. 어떻게 이 나비가 산 정상에 살고 있단 말인가. 이는 틀림 없이 별종일 것이다.

천지에서 산등성이를 따라 내려와 다시 해발 2천m 부근에 나타나는 수목한계선에 다다르면 거제수나무 군락이 보인다. 성충으로 겨울을 난 공작나비와 쐐기풀나비가 보였다. 수목한계선 밑으론 넓은 숲의 거대한 바다가 끝간데 없이 펼쳐져 있다.

이제 백두산 일정은 끝났다. 돌아가는 길에 새로운 국도를 따라 다시 답사를 다녔다. 정말 멋지고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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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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