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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발정기가 사라진 이유

자식 보호하기 위한 어미의 기막힌 처방

누구나 관심을 갖지만 누구도 과감하게 밝히기를 꺼리는 성(性). 그래서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잘못된 인식이나 편견에 사로잡히기 쉽다. 과학동아는 이번 호부터 성의 본질에 대해 폭넓게 탐구한 과학평론가의 글을 연재한다. 오르가슴, 정자 전쟁과 같은 생명 현상을 비롯, 동성연애, 간통, 근친상간 등의 사회현상을 생물학적·인류학적 시각에서 다양하게 접근해 보자.

아득한 먼 옛날 인류의 암컷은 여느 영장류의 암컷들과는 달리 유별난 신체기관을 진화시켰다. 처녀막과 젖가슴이다. 처녀막은 원숭이나 유인원 등 인류와 친척이 되는 동물의 비뇨생식기 계통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유의 기관이다. 한편 불룩 솟아오른 젖가슴은 인류의 조상이 얼굴을 마주보는 체위로 성교를 하면서부터 여자가 남자의 관심을 몸의 앞부분으로 돌릴 필요가 생겼기 때문에 엉덩이를 흉내내서 진화된 지방질 덩어리로 유추된다(그림1).

젖가슴과 처녀막에 이어 여자를 다른 동물의 암컷과 구별지우는 생리적 특징은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사라진 발정기다. 하등동물의 경우 암컷 생식기의 외음부 주변이 마치 물집처럼 팽창하면서 매혹적인 냄새와 색깔로 수컷에게 성적 신호를 보내는 상태를 발정이라 한다. 발정을 의미하는 영어 'estrus'는 쇠파리를 뜻하는 희랍어에서 비롯됐다. 이는 발정기 동안 암컷의 내분비계에서 일어나는 일시적인 변화가 마치 쇠파리가 날아가듯이 갑작스럽고 격렬하게 일어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사람과 유인원의 젖가슴 크기비교^여자(사람)의 젖가슴은 유인원(침팬지, 오랑우탄, 고릴라)의 젖가슴보다 크다. 아래의 큰 원들은 암컷의 몸크기를 나타낸다. 위의 원과 비교하면 각 종의 암컷과 수컷의 몸크기를 비교할 수 있다. 예를들면 침팬지의 암컷과 수컷은 크기가 비슷하고, 사람인 경우 여자가 조금 작으며, 고릴라는 절반 정도다.


배란기와 발정

영장류 암컷의 발정기는 대개 한달에 일주일 정도밖에 지속되지 않는다. 따라서 발정기에 돌입하면 암컷은 수컷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해서 장난을 걸거나 자신의 음부를 벌려 보여주면서 광적으로 성행위에 빠져든다. 예컨대 비비 원숭이는 1백회까지 교미를 한다. 또 색광인 바바리 마카크 암컷은 같은 무리의 모든 수컷에게 적어도 한번씩 기회를 주면서 평균 17분마다 교미를 한다. 그러나 발정기가 지나면 성행위에 거의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영장류 암컷은 대개 배란기에 발정의 절정에 이른다.

인간에게도 배란기가 있다. 여자는 난소 안에 이미 만들어져 있는 대략 2백만개의 어린 난세포를 갖고 태어나지만 사춘기까지 약 40만개가 남는다. 어린 난세포는 액체로 가득찬 주머니인 난포 속에 싸여 있게 된다.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뇌하수체와 난소 사이에 상호작용이 4주 단위로 되풀이 일어난다. 매 주기, 즉 월경주기 동안 뇌하수체는 난포와 그 속의 난자를 성숙시키는 호르몬을 분비한다.

일반적으로 한달에 한개의 난포가 성숙한다(그림2). 약 2주가 지나 이 난포가 난소의 표면으로 올라가서 마침내 터지면 성숙한 난자 한개가 난소 표면에서 떨어져 나온다. 이와 같이 성숙한 난자가 난포로부터 배출되는 현상을 배란이라 한다. 난소에서 나온 난자의 행선지는 자궁으로 이어지는 나팔관이다. 나팔관 안에 정자가 들어와 있다면 난자는 수정될 수 있다. 그러나 수정이 일어나지 않으면 월경이 시작되고 이 모든 과정이 다시 반복된다. 여성은 사춘기부터 배란이 멈추는 폐경기까지 30여년간 수태가 가능하다. 이 동안 대략 4백번의 월경주기가 있는 것으로 볼 때, 40만개의 어린 난세포 중에서 1천개에 한개꼴인 약 4백개가 난자로 성숙한다.

여자의 조상들에게는 물론 발정기가 있었다. 월경이 끝나고 며칠 지나면 발정기가 시작됐다. 배란을 하는 12일째부터 14일째에 이르는 시기에 발정의 절정에 이르렀다. 그런데 진화과정에서 발정기를 잃어버림에 따라 남자들은 배란기를 알 수 없게 됐다. 더욱 놀라운 것은 대다수 여자들 역시 공을 들이지 않으면 자신의 배란기를 거의 감지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배란기가 되면 신체에 변화가 발생한다. 이를테면 배란기에는 체온이 급상승하고 월경시에 하강한다. 배란 직전에는 질에서 미끈미끈하고 무색투명한 점액이 나오는데, 배란 직후 갑자기 탁해지면서 며칠 동안 점착성이 있는 액체가 나온다. 난자가 난소에서 튀어나와 자궁으로 갈 때 복통을 느끼거나 약간의 출혈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매일 아침 체온을 재보거나, 매일 질에서 나오는 점액의 상태를 살펴보거나, 배란에 따른 복통을 느끼거나 하지 않으면 배란기가 언제인지를 알아낼 방도가 없다. 이를 일러 '은폐된 배란'(concealed ovulation)이라 한다.

인류학자의 남성주의적 해석
 

난자의 성숙과 수정 과정^여자의 경우 난소 안에서 일반적으로 한달에 한 개의 난포와 난자가 성숙하는데, 성숙한 난자는 난소 표면에서 떨어져 나온다. 이를 배란이라 한다. 난소에서 나온 난자는 나팔관에서 정자와 만나 수정한다.


인류의 수컷들은 배란 은폐로 말미암아 암컷을 확실히 수태시킬 수 있는 시기를 알 수 없게 됐다. 따라서 수컷들은 끊임없이 성교를 하지 않으면 새끼를 얻기 어려운 곤경에 빠지게 됐고, 동시에 암컷들은 수컷의 요구에 따라 일년 내내 밤낮으로 성행위를 하지 않으면 안됐다. 월경중에나 임신중은 물론이고 폐경 이후까지도 성관계를 가질 정도였다. 인류의 암컷들이 이처럼 놀라운 성적 수용능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게 된 것은 다른 동물의 암컷들에 견주어볼 때 생물학적으로 어처구니 없는 낭비가 아닐 수 없다.

대부분의 포유류가 오로지 발정기에만 교미를 하게 된 이유는 자명하다. 교미가 비용이 많이 들고 매우 위험스럽기 때문이다. 우선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고, 먹이 구하는데 사용될 시간을 쪼개 써야 되며, 자칫 잘못하면 교미중에 포식자에게 공격을 당할 염려까지 있다. 요컨대 대부분의 포유류는 교미의 본래 목적인 수정을 위해 소요되는 최소한의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는 지혜를 갖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수태 가능성을 도외시하고 막무가내로 성행위에 탐닉하는 인류는 확실히 어리석은 측면이 없지 않다. 그렇다면 진화과정에서 발정기가 사라지고 배란이 은폐돼 인류의 암컷이 지속적인 성적 수용능력을 갖게 된 것은 잘못된 일이란 말인가. 그럴 리가 없다. 이런 여자 고유의 생리적 특성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진화됐음에 틀림없을 테니까.

배란 은폐의 기원을 설명하는 이론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초기에 남성 인류학자들 사이에서는 세가지 이론이 인기를 끌었다. 첫번째는 남자들이 수렵할 때 협동심을 고양시키고 적대감을 완화시키기 위해 배란 은폐가 진화됐다는 이론이다. 만일 발정기가 있었다면 암내나는 여자를 서로 독점하기 위해 남자들끼리 싸웠을 뿐 아니라 남자와 여자, 여자와 여자 사이에도 갈등이 증폭돼 집단 전체가 붕괴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배란이 은폐됐다는 주장이다.

두번째는 남자와 여자 사이의 결속을 강화시켜 한 가정의 기초가 굳건히 되도록 하기 위해 배란이 은폐됐다는 이론이다. 여자 혼자서 어린애를 키우는 일은 쉽지 않다. 아비가 곁에 있다면 먹이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를 붙잡아두려면 항상 성적으로 그를 만족시켜야 한다. 만일 그가 원할 때마다 성교에 응할 수 있다면 배란기에 있는 다른 여자를 찾아나서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여자가 지속적으로 성적 수용능력을 갖기 위해 배란이 은폐된 것이다. 한마디로 여자는 남자에게 쾌락을 제공하는 존재일 따름이라는 발상이다.

세번째는 도널드 시몬스가 제안한 것으로, 두번째 이론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여자가 남자로부터 지속적으로 먹거리를 공급받기 위해 그 답례로 성을 제공했기 때문에 지속적인 성적 수용능력이 진화됐다는 이론이다. 세가지 이론 중에서 첫째와 둘째 이론은 그럴 법한 설명이지만 세번째의 것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아내와 남편 모두 만족
 

사냥에 협동심은 필수. 만일 여자에게 발정기가 있다면 이를 알고 달려드는 남자들끼리 서로 싸우게 돼 협동심이 깨질 것이다.


1979년에는 생물학자들이 세 종류의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첫번째는 남녀학자가 함깨 내놓은 아비 재택이론(father-at-home theory)이다. 리처드 알렉산더와 캐더린 누난은 아비가 되고 싶어하는 남자의 본성에 주목했다. 만일 남자가 아내의 배란기를 알 수 있다면 그녀가 배란할 때에만 집에 머물면서 수태시키고 나머지 시간에는 또다른 발정기의 여자들을 찾아나설 것이다. 게다가 집에 남겨둔 아내가 다른 사내의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안심하고 엽색행각을 펼칠 것이다.

그러나 배란기를 모른다면 상황은 반전된다. 아내를 반드시 수정시키는 행운을 붙잡으려고 가급적이면 오랫동안 집에 머물면서 아내와 매일 성교를 하게 될 것이다. 더욱이 그가 집을 비운 사이에 아내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질 수 있으므로 남편은 집에 머물게 된다. 또한 다른 여자들의 배란기를 알 수 없으므로 집밖에 나가서 서성댈 필요가 없다. 결과적으로 사내들은 집안에서 아이들을 돌보게 된다.

이처럼 배란 은폐는 남녀 양쪽에게 모두 이득이 되는 것이다. 남자는 아비로서 그가 돌보는 아이가 진실로 자신의 유전자를 가졌다는 확신을 얻게 되고, 여자는 자신이 원하는 사내를 계속해서 배우자로 묶어 둘 수 있기 때문이다. 아비 재택이론은 남녀 모두를 성적으로 대등한 주체로 간주한 점이 돋보인다.

한편 여류 동물학자인 낸시 벌리는 배란 은폐를 출산과 결부시켰다. 배란기를 알고 있던 대부분의 여성들은 출산의 고통과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가급적이면 배란기에 성관계를 갖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물론 이들은 후손을 남기지 못했다. 그러나 배란기를 눈치채지 못한 극소수의 여성들은 많은 자식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인류의 조상이 된 셈이다. 요컨대 자녀를 적게 낳으려는 여성들로 하여금 산아제한을 하지 못하도록 배란이 은폐된 생리주기가 선택됐다는 이론이다.

마지막으로 랜디 손힐은 배란 은폐의 기원을 여성의 간통전략에서 찾는 이론을 발표했다. 배란이 은폐되면 남편은 아내가 수태 가능한 시기를 전혀 알 수 없지만 아내는 배란기를 조금은 눈치챌 수 있다. 따라서 유전학적으로 열등한 사내와 함께 사는 여자는 배란기에 남편 몰래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사내를 정부로 선택해서 수태를 하고 그 밖의 시간에는 남편과 성관계를 맺을 수 있다. 말하자면 배란 은폐가 간통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무기로 사용됐다는 주장이다.

이어서 1981년에는 인류학자 사라 홀디가 그녀의 저서인 '진화하지 않은 여성'(The Woman That Never Evolved)에서 아비 다수이론(many-fathers theory)을 소개해 주목을 받았다. 먼 옛날에 인류의 수컷들이 일삼은 유아살해(infanticide)를 배란 은폐의 동기로 설정한 이론이다. 남자들은 자신과 성관계를 가진 적이 없는 여자들의 어린애를 보면 곧잘 죽였다. 여자가 젖을 먹이는 동안에는 자신의 아이를 갖게 될 기회가 적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자식을 빼앗긴 어머니는 다시 발정기에 들어갔으며 그 살인자와 성교를 해서 그의 새끼를 낳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자식 역시 유아살해의 과녁이 될 개연성이 높았다.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여자들이 궁리해낸 묘안은 가능한 한 많은 사내들이 그녀의 아이를 자신들의 새끼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방법이었다. 따라서 여자들은 되도록이면 많은 남자들과 성관계를 맺어둠으로써 자녀의 생명을 보존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눈에 잘 띄는 성기의 팽창으로 배란을 선전하면 배우자의 감시가 강화돼 다른 사내와 놀아날 수 있는 기회를 찾기 어렵다. 배란 은폐를 궁리해낼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아비 다수이론은 성의 주도권이 여자에게 있는 것으로 전제했기 때문에 여권 신장론자들로부터 열렬한 박수를 받았을 뿐 아니라 아비 재택이론과 함께 가장 그럴 법하게 배란 은폐를 설명한 이론으로 살아 남았다. 그러나 이 두 이론은 사실상 정반대의 논리를 펴고 있다. 아비 재택이론은 은폐된 배란이 아비와 자식의 혈연관계를 분명하게 해 일부일처제를 강화시킨 것으로 본 반면, 아비 다수이론은 배란 은폐가 아비와 자식의 관계를 헛갈리게 함으로써 일부일처제를 결단냈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느 이론이 정확한 것일까.

배란 은폐와 짝짓기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스웨덴의 생물학자 버지타 실렌-툴버그는 영장류를 대상으로 배란의 은폐 여부가 짝짓기 방식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이를 토대로 해서 실렌-툴버그는 우리의 조상이 난교(亂交)를 하거나 일부다처의 하렘(harem)에서 살 때 배란이 은폐됐으며, 일단 은폐된 배란이 진화되면서부터 일부일처제가 자리를 잡은 것으로 유추했다. 다시 말해서 여자들이 배란 은폐를 진화시킨 목적은, 처음에는 남자들의 유아살해로부터 자식을 보호하는데 있었으나 나중에는 원하는 사내를 골라서 그를 집에 붙잡아두는 쪽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실렌-툴버그에 따르면, 아비 재택이론과 아비 다수이론은 둘 다 배란 은폐의 기원을 밝힌 이론으로서 유효하다. 단지 인류 진화의 역사에서 부분적으로 서로 다른 시기를 설명하고 있을 따름이다. 아무튼 오늘날의 여성들은 아득한 먼 옛날에 인류의 암컷들이 배란 은폐를 통해서 이루어낸 위대한 성혁명의 유산을 만끽하면서 사내들과 힘겨루기에 여념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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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이인식 과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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