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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동아는 청소년들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기회를 더욱 늘리기 위해 과학기술 관련 작문 대회에서 입상한 글들을 선정해 게재한다.
이번 호에는 원자력문화재단에서 주최한 '제5회 전국 중고교생 원자력작문모집'에서 고등학교 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글을 요약해 소개한다.
글의 관점이 과학동아의 입장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월성 원자력발전소 2호기를 건설하는 장면(94.4)


내가 남들보다 일찍 컴퓨터를 알게 되고 최첨단 통신매체라는 PC통신에 취미를 갖게 된 것은 직업상 집에 잘 들어올 수 없는 아버지 때문이었다. 이제껏 아버지께서는 결혼기념일은 물론 형제들 생일에 제대로 참석해주신 적이 거의 없었다. 재작년 일이었던가? 아버지께선 일이 바쁘긴 하지만 짬을 내서 형 생일을 축하해주시겠다며 부랴부랴 차를 몰고 경남에서 청주까지 밤새워 달려오셨다. 그러나 현장에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급한 전화연락을 받자마자 아버지께서는 생일 케이크에 초를 꽂고 불을 막 켜기도 전인 이른 새벽에 또다시 현장으로 달려가셨다.

이번 형 생일에도 참석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말씀을 어머니로부터 전해 듣고 우울한 기분을 풀 겸 삼촌 ID를 이용해 천리안에 들어갔다. 그런데 잘 알려진 여론광장인 '나도 한마디' (MY WORD)란에 우연히 들렀다 갑자기 온몸에 짜릿한 전기가 와닿는 충격을 받았다. 수많은 환경보호 단체나 지방자치 단체에서 줄기차게 부르짖는 '원자력 발전소 건립 폐지 주장'을 과감하게 나서 반대하는 사람의 글이 눈에 번쩍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ID는 초원스(CHOWONS)! 초원스님은 언제나 남과 다른 독특한 주장을 펼치면서도 나름대로 논리가 질서정연해 컴퓨터통신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스타 대접을 받고 있단다.

초원스님의 글 이외에는 대부분 '건립 폐지' 만을 부르짖는 주장뿐이었다. 그들은 대개 이런 이유로 반대하고 있었다.

"원자력발전소에서 유출되는 냉각수는 분명히 인근 바다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옛소련의 체르노빌 폭발사고를 잊었는가."

"원자력발전소를 아무리 안전하게 지어도 발전소의 수명은 있는 것 아닌가. 수명이 다했을 때 그 시설은 어떻게 하겠는가."

"대부분의 소비자는 발전소 근처에서 나오는 수산물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본다. 그렇다면 현지 주민들의 생계는 어찌 할 것인가."

이 반대 주장에 맞서 초원스님의 '건립 옹호론' 은 의외로 강경했다. 여기서 핵심되는 부분을 골라 소개한다.

"왜 발전소 세우는 것을 무조건 반대만 하고 두려워 하는가. 왜 폐기장 설치를 무슨 인화물질이나 탄약창고, 가스저장고 따위를 설치하는 것처럼 겁내는가. 전기가 무섭다면 전기에 대한 지식을 습득해 각별히 주의하면 될 터이고, 자동차 교통사고가 무섭다면 역시 그것을 주의하면 될 뿐인데, 전기와 자동차가 무섭다고 현대인들이 안쓰고 안탈 수 있겠는가.

원자핵분열에서 얻는 에너지는 청정에너지다. 석유나 석탄같은 화석원료를 태워 얻은 에너지는 지구를 자꾸 오염시키고 있다. 이 오염물질을 거르기 위해 또다시 석유나 석탄으로 얻어지는 에너지를 사용할 터인가. 이것 저것 따져본다면 차라리 과학적으로 증명된 안전수칙을 준수해 값싸고 효율 높은 원자력에너지를 이용하는것이 훨씬 현명한 일이 아니겠는가.

원자력발전소가 생기면 주위 생태계에 영향을 준다는 점을 크게 우려하는 분이 있는데, 그렇다면 약간의 희생마저 감수하지 않은 채 엄청난 이득만을 취할 수 있는 것이 지구에 존재한다고 보는가."

그러나 초원스님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이 실린 글들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나는 아군이 하나도 없이 고군분투하는 초원스님을 도와드리고 싶었지만 원자력에 대해 정확하고 폭넓은 지식을 갖추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무슨 의견을 게재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생각다못해 초원스님께 전자우편으로 격려해드리기로 했다.

"저는 원자력발전소 건립을 강력하게 주장하시는 초원스님의 글을 읽을 적마다 코끝이 찡하면서 얼마나 통쾌하고 흐뭇한지 모릅니다. 실은 제 아버지께서는 제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원자력발전소만을 짓고 계시거든요. 저는 아버지께서 대기업 건설회사 간부라는걸 은근히 자랑하면서도 친구들한테는 자세한 내용을 항상 숨기고 있었습니다.

발전소 건립을 반대하는 데모가 뉴스에 나올 적마다 우리 가족들은 은근히 마음이 조마조마해지고 마치 누구한테 죄를 지은 것 같은 씁쓸한 기분이 느껴지곤 했어요.

그런데 아저씨의 글을 읽고 보니 오히려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들이 자랑스럽고 떳떳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저는 아버지를 환경파괴자가 아니라 환경을 오염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사람으로 친구들에게 자신있게 자랑하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한달 내내 집에 들리지 않더라도 전 절대로 언짢거나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아저씨 덕에 저는 아버지를 찾았어요. 감사합니다."

전자우편을 보낸 지 3일만에 뜻밖에도 아저씨로부터 간단한 격려의 답장이 왔다. 나는 아저씨가 보내준 답장을 지금도 소중하게 컴퓨터에 간직하고 있다.

초원스 아저씨 덕택에 나는 아버지를 찾았다. 누구 못지 않게 용감하고 자랑스럽고 보람된 일을 남몰래 꾸준하게 하고 계시는 우리 아버지를…. 만일 내가 초원스 아저씨의 글을 보지 못했다면 나는 아직도 친구들 앞에서 아버지 얘기를 떳떳하게 하지 못하는 불효막심한 못난이로 남아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기술자들이 원자력발전소 내부에서 가압기를 점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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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송제영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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