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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파리의 짝짓기에서 인간의 뇌를 보다 - 분자신경행동학 연구실

"한번 교미를 한 암컷 초파리는 알을 다 낳을 때까지 아무리 멋진 수컷이 옆에서 유혹해도 반응하지 않아요. 이유가 뭔지 아세요? 수컷 초파리의 정액 속에 있는 ‘섹스 펩타이드’ 즉 작은 성단백질 조각때문이에요."



광주과학기술원(GIST) 생명과학부 분자행동신경학 연구실의 김영준 교수는 짝짓기 행동을 통해 초파리의 뇌를 연구하고 있다. 암컷에게서 짝짓기 때 나타나는 독특한 행동을 통해 뇌의 신경세포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는지 밝혀내는 것이다.



“1000억 개의 신경세포를 가진 사람에 비해 초파리는 신경세포가 10만 개 밖에 없어요. 또 유전자가 다 밝혀져 있어 뇌 회로를 조작하기가 훨씬 쉬워요. 초파리의 뇌 회로를 이해하면 다른 곤충이나 동물, 사람의 뇌도 쉽게 알 수 있죠.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읽기 전에 ‘이솝우화’부터 시작해 책 읽는 요령을 배우는 거죠.”



그렇다면 왜 하필 짝짓기 행동을 연구하는 걸까. 김 교수는 “뇌 회로를 정확히 그리려면 자극에 대해 일정한 반응을 보여주는 행동이 필요한데 암컷 초파리의 짝짓기 행동이 딱 들어맞는다”며 “초상화를 그릴 때 움직이지 않는 모델을 보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수컷은 종종 다른 수컷을 따라다니거나 암컷에게 관심이 없는 행동을 보이기도 해 적당하지 않다고 한다. “그거 알아요? 암컷은 수컷을 선택할 때 두 가지를 봐요. 하나는 자기를 얼마나 오래 따라다니느냐, 그리고 얼마나 노래를 잘 부르느냐죠. 성대가 없는 초파리는 날개를 떨어 소리를 냅니다.”



이중 교미 막는 열쇠와 자물쇠



암컷 초파리의 ‘이중 교미’를 막는 성단백질은 일종의 ‘열쇠’다. 암컷의 몸속에 있는 특정한 수용체 즉 ‘자물쇠’와 맞물려야 암컷이 더 이상 교미를 하지 않도록 뇌에 신호를 보내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2008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있는 분자병리학연구소에서 초파리에 대해 연구하다 이 자물쇠를 찾아냈다.



“초파리는 1만 3000개의 유전자가 있는데 이들을 하나하나 고장낸 유전자조작 초파리를 만들었어요. 이들 중 교미를 한 뒤에도 계속 교미하려고 하는 암컷 초파리를 발견했어요. 바로 자물쇠가 고장난 초파리였던 거죠.”



그는 그 순간을 ‘초파리를 연구하면서 가장 기뻤던 시간’으로 꼽았다. 김 교수의 연구는 과학학술지 ‘네이처’에 발표됐다.



실제로 뇌 회로를 그리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초파리의 짝짓기 행동을 바탕으로 수많은 신경세포의 연결망을 찾아보고, 세포들의 연결이 얼마나 강한지 신경전달물질은 무엇인지 알아내야 한다. 교미후 먹이 가리기, 알 낳기 등 다른 짝짓기 행동과 관련된 신경세포까지 파악하면 ‘짝짓기 뇌 회로’가 완성된다.



“전체 뇌 회로를 완성하는 것은 아직 먼 일이지만 조각조각 나온 결과도 중요해요. 특히 짝짓기 행동은 쓸모가 많죠.











예를 들어 모기의 교미를 막는 약을 만드는 데 이용할 수도 있어요. 모기는 교미를 해야 사람의 피를 빨아먹잖아요.”



매일같이 실험실에서 만나서 그런지 김 교수는 인터뷰 내내 초파리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초파리를 “자식 같다”고 하더니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사람의 손보다 초파리가 훨씬 더 깨끗하고 이쁘다며 자랑이다.



김 교수는 농대를 다니며 곤충을 관찰하다 과학자의 길에 들어섰다. 대학시절에는 곤충을 잡느라 온갖 산에 올라갔다. “정상까지 올라갔냐”는 짖꿎은 질문에 “정상에는 곤충이 없어 중턱까지만 갔다”고 빙그레 웃었다. 지금도 국내외 학회에 가면 맘에 맞는 친구와 남는 시간에 가까운 들판이나 산에 들러 그곳의 곤충을 관찰한다고 한다.







“곤충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학원에서 와서 이 연구를 했으면 좋겠어요. 초파리가 교미하는 데 한 시간쯤 걸리는데 자리에 앉아 꼬박 지켜보는 학생을 본 적이 거의 없어요. 곤충을 관심 있게 보다보면 지식도 늘고 아이디어도 생기고 무엇보다 즐겁잖아요?”



김 교수는 최근 곤충에게서 새로운 단백질을 찾아냈다. ‘밉(MIP)’이라는 단백질이다. 이 단백질은 초파리의 성단백질과 같은 자물쇠를 이용한다. 그런데 밉 단백질은 엉뚱하게도 곤충의 수면 행동을 조절한다. 곤충에게서 이 단백질을 없애면 잠이 줄어든다. 불면증에 빠졌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김 교수는 “원래 밉 단백질은 수면 행동을 조절하는 열쇠였고 여기에 맞춰 자물쇠가 있었는데 초파리는 이 자물쇠에 맞는 새로운 열쇠를 만들어 짝짓기에 이용했을 수도 있다”며 “반대로 밉 단백질이 성행동과 관련이 있는데 우리가 아직 모를 수 있다”고 말했다. 밉 단백질에 대한 연구는 ‘미국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비엔나에 있는 연구소가 훌륭하다고 해서 연구원으로 가봤더니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똑똑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그들은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서로서로 의견을 말해주고 실험도 도와주고, 그 과정에서 상상도 못했던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거죠. 우리 실험실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요. 이제 과학도 그게 기본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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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김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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