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과 동물의 공생을 애기할때면 우리는 흔히 꽃과 꽃 사이를 날아 다니며 꽃가루를 옮겨주는 대가로 식물로부터꿀(nectar)을 선사받는 벌과 나비를 생각한다. 식물은 동물처럼 스스로 돌아다니며 배우자를 만나 짝짓기를 할수없기 때문에 벌이나 나비 등의 곤충은 물론 새나 박쥐같은 동물의 힘을 빌어 '간접적으로' 성관계를 갖는다. 맞선 한번 보지도 못한 채 자식을 낳아줄 배우자 선택을 전적으로 이 중매쟁이들의 손에 맡겨야 한다. 그래서 식물은 중매쟁이들을 유혹하기 위해 자신의 성기를 꽃이라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내보이는 한편, 그 깊숙한 곳에 꿀샘(nectary)을 마련해 그들의 노고에 보답한다.
개미는 진화학적으로 벌과 가장 가까운 곤충이지만 벌과 달리 식물의 정받이를 돕는 일에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 실제로 꽃의 구조나 기능은 공진화(coevolution)의 산물이다. 즉 벌을 비롯해 정받이를 돕는 여러 동물들과 오랜 세월을 두고 함께 진화해온 결과라는 뜻이다. 현재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개미에게 정받이를 맡기는 식물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여왕개미와 수캐미들을 제외하곤 날개가 퇴화돼 날지 못하는 개미는(벌처럼 큰 보답 행동을 하지 않아도 되므로 어쩌면 경제적일지 모르나)꽃가루를 멀리 퍼뜨려야 하는 식물의 입장에서 볼때 그다지 훌륭한 매체가 아닌 듯 싶다.
수지타산 맞는 장사
그런데 상당수의 식물들은 꽃 속 외에도 잎이나 가지에 꿀샘을 지니고 있다. 이를 꽃밖 꿀샘(extrafloral nectary)이라 부르는데, 꽃안 꿀샘(floral nectary)이 정받이를 돕는 동물들을 위한 것인데 반해 꽃밖 꿀샘은 거의 예외없이 개미를 위해 준비해 놓은 것이다. 개미는 이 꽃밖 꿀샘으로부터 고도로 농축돼 있으며 바로 영양소로 쓰일수 있는 단물을 얻는다. 대신 개미는 그 식물을 온갖 초식동물들로부터 보호한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꽃안 꿀샘에 있는 단물에는 당분은 물론 단백질도 풍부하게 있는 반면 꽃밖 꿀샘에서 생산되는 단물에는 단백질 성분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개미는 필요한 양의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해 다른 초식동물들을 잡아먹어야 한다.
박쥐의 도움으로 정받이를 하는 벌사나무(balsa tree)의 예를 보자. 박쥐를 위해 꽃안 꿀샘에 준비해 놓은 단물에는 농도 11%의 설탕과 아미노산이 듬뿍 들어있다. 이에 비해 개미를 위한 꽃밖 꿀샘의 단물에는 당분만 잔뜩 들어 있고 아미노산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식물의 입장에서 비교적 적은 비용이 드는 셈이다.
이 비용으로 식물은 개미와 수지타산이 맞는 장사를 한다. 식물이 한 꽃밖 꿀샘을 유지하는 데 드는 에너지는 약13cm2 넓이의 잎을 만드는 데 드는 에너지와 맞먹는다. 이 넓이는 전체 잎 면적의 1%정도 밖에 안된다. 이에 비해 초식동물에게 먹히는 잎의 면적은 훨씬 크다. 따라서 식물이 개미에게 꽃밖 꿀샘을 제공하는 것은 초식동물에게 잎을 먹히는 것보다 더 이익이다.
꽃밖 꿀샘의 단물은 언제나 흥건히 고여 있지 않다. 식물에 따라 이를 분비하는 시기가 다른 점이 흥미롭다. 어떤 식물은 초식동물이 일반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새순이 나오는 시기에만 단물을 분비해 개미를 부르는가 하면, 씨를 갉아 먹는 곤충들을 쫓기 위해 씨가 여무는 시기에만 단물을 생산하는 식물도 있다.
식물의 입장에서 보면 초식동물을 잡아 먹는 개미가 잎이나 줄기 위를 돌아다니는 시간이 길수록 유리할 것이다. 그래서 몇몇 열대 식물들은 아예 개미에게 음식은 물론 방까지 내주어 상주하도록 한다. 중미에 서식하는 쇠뿔 아카시나무(bull's horn acacia)가 그 대표적인 예다. 우리나라 아카시나무들도 가시를 가지고 있지만 쇠뿔아카시나무의 가시들은 실제로 소의 뿔처럼 생겼고 크기도 엄청나다. 더욱 신기한 것은 가시 속이 텅 비어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그 안에 수도머멕스(Pseudomyrmex)라는 개미들이 산다.
살 곳까지 마련해준다
아카시나무는 이처럼 개미들에게 살 집을 마련해주고 꽃밖 꿀샘을 통해 단물을 제공함은 물론, 이파리 끝에 벨트체(Beltian body)라는 물질을 분비하기도 한다. 이 벨트체에는 예외적으로 단백질과 지방질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 개미들이 영양섭취를 위해 반드시 초식동물을 잡아먹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수도머멕스 개미는 워낙 사나워서 초식곤충은 말할 것도 없고 사슴이나 소와 말같은 큰 초식동물조차 나무에 얼씬하지 못하도록한다.
수도머멕스 개미는 아카시나무를 초식동물로부터 보호함은 물론 주변에서 자라는 다른 식물까지 제거함으로써 아카시나무가 더 빨리 자랄수 있게 한다. 열대 삼림속에서 자라는 어린 나무들은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을 만들어내는 과정인 광합성을 보다 활발하게 수행하기 위해 제가끔 자리 다툼에 여념이 없는 법인데, 수도머멕스 개미가 세들어 사는 아카시나무의 주변에는 풀 한 포기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일개미들이 자기가 살고 있는 아카시나무 근처에 솟아나는 새순들을 늘 부지런히 제거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카시나무는 거의 경쟁하지 않고 성장할 수 있다.
열대 생물학의 대부와도 같은 펜실베니아 대학의 잰슨(Dan Janzen) 박사는 다음과 같은 야외 실험을 통해 이 개미들이 아카시나무에게 없어서는 안될 동반자임을 입증했다. 잰슨 박사는 개미의 보호를 받던 아카시나무들을 골라 살충제로 개미들을 제거한 후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관찰했다. 더 이상 개미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카시나무 주변에는 얼마 되지 않아 온갖 식물들이 다투어 자라기 시작했다.
또한 쇠뿔 아카시나무에는 종종 새나 말벌이 안전하게 둥지를 틀고 있다. 나무에 대한 수도머멕스 개미의 보호가 얼마나 훌륭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이렇듯 수도머멕스 개미와 쇠뿔 아카시나무는 오랜 역사를 통해 상호 협조 관계를 유지하며 공진화해 왔다.
필자가 10여년 전부터 하버드 대학의 동료 펄만(Dan Perlman)박사와 함께 코스타리카의 열대림에서 연구해온 애즈텍 개미도 트럼핏 나무(Cecropia)와 상호 협조 관계를 유지하며 산다. 트럼핏나무는 대나무처럼 속이 비어있는데, 이는 바로 애즈텍 개미들에게 살집을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쇠뿔 아카시나무와 마찬가지로 트럼핏 나무 역시 개미에서 방은 물론 먹이까지 제공한다. 잎맥의 맨 아래 부분에 특수한 조직이 마련돼 있는데, 이 곳에서 당단백질을 풍부하게 함유한 물러체(Müllerian body)라는 물질을 분비한다. 숙식을 제공받는 애즈텍개미는 그 보답으로 수도머멕스 개미가 아카시나무에게 하듯 트럼핏 나무를 온갖 초식동물과 주변의 다른 식물들로부터 보호한다.
쓰레기장에 피는 새순
한자리에 붙박이로 고정돼 있는 식물들에겐 그들의 씨를 경쟁이 적은 다른 먼 곳으로 어떻게 이동시키는가하는 문제가 꽃가루를 옮기는 문제만큼 심각하다. 그래서 민들레처럼 바람에 씨를 실어 보내는 식물이 있는가 하면, 맛있는 열매 속에 씨를 감추어 동물들이 열매를 먹은 후 다른 곳에서 용변을 볼 때 그 속에 섞임으로써 먼 곳으로 씨를 이동시키는 식물도 있다.
어떤 식물은 순전히 개미의 도움으로 씨를 먼곳으로 퍼뜨린다. 이런 식물의 씨에는 특징적으로 기름기가 풍부한 일레이오좀(elaiosome)이라는 부분이 별도로 붙어 있다. 개미는 이 씨들을 집으로 수확해 온 다음 일레이오좀 부분만을 섭취한 후 나머지 진짜 씨 부분은 집 바깥의 쓰레기장에 내다 버린다.
개미의 쓰레기장에는 흔히 다른 음식 찌꺼기들도 있는 법이라, 일단 이 씨들은 발아 후 음식 찌꺼기에서 썩어나오는 영양분을 이용해 빠른 속도로 성장한다. 따라서 이 식물들도 개미와 상호 협조 관계를 유지하며 공진화해온 셈이다. 이 식물 중에는 개미와의 관계가 어찌나 밀접한지 아무리 발아에 적합한 환경이 주어진다 해도 개미의 쓰레기장이나 굴 속이 아니면 절대로 발아하지 못하는 것들도 있다. 개미집 정원에서만 자라는 화초가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