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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선도하는 SF 상상력

통신위성도 SF의 산물

SF가 꿈꾸는 미래를 과학기술은 실현해 낼 수 있을까. 영화 '스타워즈'의 한 장면.


우디알렌이 1973년에 만든 영화 '잠자는 사람'(Sleeper)에는 대통령의 코를 뜯어내서 또 한 사람의 대통령을 복제한다는 풍부한 상상력이 담겨있다. 우디알렌이 농담처럼 삽입한 이 장면을 보고 사람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그런데 그후 분자생물학과 유전공학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고, 1990년에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 에 착수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세태를 반영이라도 하듯 영화 '쥬라기 공원'은 매우 구체적이고 그럴싸한 공룡 복제 과정을 실감나게 보여줌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렇게 과학의 발전은 영화와 매우 긴밀한 연관을 가진다. 그것은 영화 자체가 첨단의 과학기술이 만들어낸 산물이며, 특히 SF영화의 발전과 과학기술의 발전은 더 없이 각별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관계는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SF영화가 특수효과라는 과학기술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둘째는 SF영화가 과학기술을 소재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장르라는 점이다. SF영화는 과학기술에 바탕을 둔 특수효과를 통해 우리들의 상상력을 구체화시키며, 그 이야기 구조 안에서 과학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다룬다. SF영화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조르쥬 멜리에스의 '달세계 여행'(1902)은 인간을 대포로 쏘아 올려 달세계로 보내지만, 달의 눈을 맞추게 돼 달이 찡그리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비록 문학적인 은유로 표현돼 있긴 하지만, 달로 우주선을 띄우기 훨씬 전(60년이 넘는다)에 만들어진 영화라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특수효과가 최초로 사용된 이 영화를 만든 멜리에스는 원래 마술사였다고 한다. 아마도 그때까지는 영화의 특수효과가 과학기술보다는 마술적인 눈속임ㅇ[ 의존할 수밖에 없었나 보다.

그후 특수효과는 과학기술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고, 1977년에 나온 '스타워즈'는 특수효과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스타워즈' 를 만든 조지루카스는 이 영화를 계기로 특수효과 전문회사인 ILM(Industrial Light & Magic)이라는 회사를 세워 SF영화의 지속적인 발전에 공헌했다. 그가 만든 회사의 이름에 Magic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다는 것은 자못 흥미롭다. 이것은 그 옛날 멜리에스시대에 마술이 했던 특수효과를 과학기술로 대체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이어서 만들어진 '토탈리콜'(Total Recall)이나 '터미네어터2'(Terminator2), '쥬라기 공원'은 특수효과의 수준을 한 단계씩 높이는 계기가 됐다. 그 결과 항상 흥행 10위 안에는 SF영화들로 가득차게 됐다.

더욱 중요한것은 이러한 영화들로 말미암아 '컴퓨터 그래픽스' 라는 학문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영화의 발전이 과학의 발전을 유도한 것이다.

ET의 다리가 짧은 이유

특수효과로 인해 SF영화가 많은 인기를 누리게 됐지만, SF영화에서 과학기술이 중요한 더 큰 이유는 과학을 소재로 이야기를 전개한다는데 있다. SF영화는 과학적 지식이나 이론을 구체화해 미래나 먼 우주를 배경으로 인간들의 삶을 그린다. 공상과학소설가인 휴고건즈백은 SF를 '과학적인 이론과 미래의 전망이 허구적인 이야기로 결합된 것' 이라고 정의했다. 이 고전적인 정의가 진부한 것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유효한 것 또한 사실이다.

SF중에서 특히 과학적인 지식이나 이론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는 작품들을 '하드SF'(Hard SF)라고 하는데, 미래나 먼 우주를 배경으로 과학적인 논리를 전개해 나간다. 하드SF의 밑바탕에는 '외삽법' 이라는 논리가 깔려 있다. SF가 미래나 지구 밖의 현상을 다룰 때 현재 지상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뉴턴이 달이 지구 주위를 운동하는 것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과 같은 원리라는 것(만유인력 법칙)을 증명해 보임으로써, 보편적인 원리가 자연에 내게 돼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상기시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SF작가들은 현재의 만유인력이 1백년 후에도 존재할 것이라고 믿고 있으며, 1백광년 떨어진 다른은하에도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이런 가정에서 출발한 SF영화에는 예외없이 과학적인 사실이나 이론이 담겨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주 정거장의 구조를 원통형으로 가정한다거나, 외계인의 모습을 유추하는 것, 작게는 소품하나에도 과학적인 사고가 배여있다.

만약 인간이 우주 정거장을 띄우게 된다면 그 안에서 인간들이 안정된 생활을 하기 위해선 인공적으로 중력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중력은 어떤 원리로 만들 수 있을까? SF작가들을 커다란 원통형의 우주 정거장을 제안했다. 원통을 회전시키면 그 때 생기는 원심력으로 인간들이 원통의 안쪽 둥근 면에서 지구의 중력같은 힘을 느끼면서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실현 가능한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꽤 그럴싸한 논리인 것만은 사실이다.

또 영화 'E.T' 에서 ET의 모습은 외계인을 목격했다는 목격자들의 진술을 참고하기는 했지만, 다윈의 진화론을 바탕으로 고도의 문명을 가진 생명체를 가상해 본 것이다. 그래서 머리나 손가락이 비정상적으로 발달해 몸에 비해 비대해지고, 첨단 교통장비 때문에 다리가 기형적으로 짧아졌으며, 필요없는 털이나 머리카락이 퇴화된 ET가 탄생한 것이다.

과학적인 이론이 좀 더 깊이 관여된 영화도 있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2001 Space Odyssey)나 '메탈 재킷' (Full Metal Jacket)으로 너무나도 유명한 스탠리 큐브릭의 SF걸작 '시계태엽 위의 오렌지'(A Clockwork Orange)에는 '파블로프의 조건반사'가 인간에게 적용된 충격적인 장면이 등장한다. 정부는 강간과 폭행을 일삼는 비행소년 알렉스를 개조하기 위해 억지로 강간과 폭행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무력해지는 약을 투여해 구토하게 만드는데, 이로 인해 그는 자유의지를 잃어버린 나약한 인간으로 전락한다. 비인간적인 과학의 적용으로 개인의 자유의지가 말살돼가는 미래사회를 가상한 이 영화는 과학적인 이론이 중심으로 자리잡은 영화의 대표적인 예이다.

이렇게 SF를 만드는 데는 많은 과학적인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실제로 과학자가 SF를 만드는 경우도 생기게 됐다. '로보캅'(Robocop)이나 '토탈리콜'를 감독해 많은 SF영화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폴 베호벤 감독은 실제로 물리학박사이자 수학박사이다. 우리에겐 '원초적 본능'(Basic Instinct)과 '쇼걸'(Show Girl)을 만든 감독으로 더 유명하다. '쇼걸' 의 흥행 실패 후 다시 새로운 SF영화에 착수 했다니 기대가 된다.

이외에도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아시모프, 1960년대 '빅뱅 이론' 과 함께 우주의 진화를 설명하는 '정상우주론' 을 주장한 영국의 천문학자 프레드릭 호일, '과학사' 저술로 유명한 영국의 물리학자 J.D. 버날, 모두 다수의 SF를 남긴 과학자들이다.

아서클라크의 뛰어난 상상력
 

과학발전의 예견은 SF의 몫? '쥬라기공원'에서 유전공학으로 공룡이 태어나고 있다.


때로는 SF작가의 상상력이 과학을 앞지른 경우도 있다. 스탠리 큐브릭과 함께 SF영화의 최고 걸작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를 만든 아서 클라크는 통신위성의 개발과정을 예고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1942년 영국 공군에 입대해 레이더 관제사로 근무하면서 첫 SF작품을 썼고, 1945년 '외계-지구상의 통신 중계'라는 글을 실었다. 당시 전문가들 조차 위성통신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20년뒤 '얼리버드' 라는 정지위성이 실제로 우주에 발사됐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클라크는 1969년 사상 최초의 유인 달 착륙선 아폴로 11호 계획의 공식기록 집필자로 지명되기도 했다.

옛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하기 1년 전, 영국의 왕립 천문대장 울리 박사는 '우주여행이란 허튼 소리' 라고 코웃음쳤다고 한다. 아서 클라크는 이러한 에피소드만을 모아 '미래의 프로필' 이란 논픽션을 발표했다고 하니, 유명한 과학자들 중에는 SF작가들보다 못한 '꽉 막힌 상상력의 소유자'도 많았던 모양이다.

영화 '로보캅'을 보면 아시모프의 로봇공학 3법칙에서 착안한 몇 가지 법칙들이 등장한다. 영화는 로보캅의 뇌에 위와 유사한 법칙들을 입력해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과 인간의 관계를 가상으로 설정했다. 이 영화의 내용이 아직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지능을 가진 로봇의 등장을 예견하고 이로 인해 야기될 문제들을 인간의 정체성의 문제와 함께 다루고 있다. 이 영화는 인공지능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예견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외에도 공간의 순간이동(Teleportation)이나 시간 여행처럼 아직은 가능하지 않지만, 나름의 논리로 구성된 첨단 기기들을 SF영화속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아마도 이러한 것들이 언제나 실현된다면, 우리는 영화가 선도한 과학의 예를 또 한번 볼 수 있을 것이다.

가끔은 엉터리이론도 등장
 

특수효과의 발전은 가상과 현실을 혼돈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로봇과 인간사이의 전쟁으로 시작되는 '터미네이터2'


한편 과학적인 이론을 영화에 접목시키다 보니 가끔은 잘못된 것을 판명난 이론들이 영화에 등장해 영화 자체를 우스꽝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스웨덴의 물리학자 스반데 아르레니우스는 판스페르미아(Panspermia)라는 개념을 도입해 생명의 근원을 설명했다. 이 이론은 생명은 물질과 마찬가지로 영원히 존재하며, 생명의 포자인 판스페르미아는 태양광선의 압력에 의해 행성에서 행성으로 날아다니다가 생명이 서식하기에 적당한 조건이면, 그 행성에서 진화과정을 거쳐 풍부한 증식을 이룬다는 주장이다. 이 이론은 아무런 근거도 없을 뿐더러 곧 엉터리 이론으로 판명났지만, 많은 SF영화에서 외계인이 지구로 오는 방법으로 사용되곤 했다. 필립카우프만의 유명한 SF명작 '외계인의 침입'(The Invasion of Body Snatchers)도 이러한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과연 SF영화의 발전이 과학의 발전만으로 가능할까? SF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는 우주선 내부묘사가 엄밀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실수도 있었다. 무중력 상태의 우주선 안에서 비행사가 빨대로 액체를 빨아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빨대에서 입을 뗐더니 빨대 안의 액체가 아래로 내려가는 장면이 있다. 중력이 없는 우주선 내부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세월이 지난 27년 후에 만들어진 '아폴로 13'(Apollo 13)에는 특수효과의 발전으로 더할 나위 없이 실감나게 우주선 내부 생활이 그려져 있다. 과학의 발전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그렇다고해서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보다 '아폴로 13' 이 더 훌륭한 작품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가 가지고 있는 풍부한 상상력과 철학적인 주제, 근원적인 질문들은 그 어떤 영화보다 이 영화를 훌륭하게 만든다. SF영화는 특수효과를 통한 사실적인 묘사도 중요하지만, 과학과 공존해야 하는 인간들의 고민이 담겨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1996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정재승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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