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관광객 호기심 자극할 김치 남대문시장 자갈치시장 그리고 인사동거리
'세계를 둘러싼 또 다른 대기(大氣)', 인터넷은 이번 엑스포로 또다른 국면을 맞을 게 분명하다. 물건과 사람이 직접 오고 가던 산업사회가 '정보'라는 개념이 왕래하는 가상 사회로 대치되듯이, '사이버 세계' 에 담겨 있는 구경거리가 '현실 세계' 에 못지 않은 즐거움을 안겨주는 세상이 된 것이다.
IMS라는 인터넷 관련 사업체를 운영하던 칼 말라무드 현 인터넷 엑스포 사무총장과 미국의 전화회사인 MCI에서 인터넷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빈트 서프(인터넷 통신 규약인 TCP/IP의 TCP 부분을 만든 장본인)가 발의하고 우리나라 전길남 운영위원장(KAIST 전산과 교수)의 '맞장구' 로 시작된 인터넷 엑스포는 미국과 아시아 유럽에서 각각 두명씩, 전체 6명이 실행위원회를 구성하면서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정보사회로의 본격적인 진입을 알리는 신호탄인 이 행사에 대해 전 박사는 "이제 이런 시도를 해볼 만한 때가 됐다" 고 말한다. 인터넷에 관한 한 이론의 여지없는 국내 최고 전문가이자, 세계를 둘러봐도 대략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전박사의 이같은 의미 부여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인터넷 이용자의 폭발적 증가를 염두에 둔 것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인터넷은 지난 69년 미국 국방부 산하 연구기관들이 서로의 컴퓨터와 소프트웨어를 공유할 목적으로 구성된 아파넷(ARPANET)을 모태로 탄생했다. 아파넷 개통 당시 그 현장에 있던 전박사 조차 인터넷이 이렇게 빠르게 전세계로 보급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 록웰사에 근무하면서 모빌 커뮤니케이션 연구에 몰두하고 있던 그의 눈에 아파넷은 기술적으로 낮은 수준에 불과했던 것.
그러나 기술의 난이도를 떠나 폭넓은 대중적 관심을 끌어 모은 인터넷은 이제 만국 박람회를 열 만큼 성숙해 있다. 그리고 이 행사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그는 인류 초유의 축제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온 힘을 쏟고 있다.
'크게' 보다는 '재미있게'
"전례가 없는 일이니 쉬운 일이 없네요. 게다가 애초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규모가 커지는 바람에 여간 일이 많은 게 아닙니다. 원래 생각했던 이 행사의 모습은 '크게' 보다는 '재미있게' 였습니다. 그런데 워낙 박람회란 것이 아시아권에서 인기가 있는 행사이다 보니 국가적 사업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회의 수준 탓인지 미국이나 유럽같은 데서는 대개 개인적 차원에서 이런 일이 이루어지거든요. 사실 이번 엑스포 역시 핵심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쥐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겁니다."
오는 6월 1일 본격 개막되는 인터넷 엑스포가 매끄럽게 진행될 수 있는 제반 여건을 책임지고 있는 그는 하드웨어(통신망)와 소프트웨어(데이터베이스) 어느 쪽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 통신망 문제는 국내 통신업체들의 기민한 움직임으로 꽤 진척된 상태다.
이번 행사는 비디오 오디오를 포함한 대용량의 멀티미디어 데이터가 전세계로 송수신되는 실험장 역할을 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사용해온 회선보다 훨씬 더 큰 용량을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 한국통신이 작년 말에 10개 광역시와 도청소재지를 중심으로 45Mbps급의 백본망(back-bone)을 구축했고, 데이콤에서도 올 6월까지 5개 광역시를 묶을 예정이다. 또한 7월까지 우리나라와 미국 일본을 연결하는 현재의 T1급(초당 1.5Mbps 전송) 전용선이 45Mbps급으로 교체된다. 이들이 완성된다면 지금보다 30배나 속도가 단숨에 늘어난다.
그러나 고작해야 최고 28.8kbps 전송률을 가진 모뎀으로 접속하는 일반인들로서는 고속의 진가를 맛볼 수 없다(물론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이 가진 문제는 아니다). 따라서 전국적인 고속 네트워크가 갖춰지지 않은 현실에서 일반인들도 쉽게 고속을 만끽할 수 있는 장소가 절실히 필요하다.
이를 위해 PC 10대 이상, T1급회선 화상회의시스템 등으로 중무장한 '인터넷 카페' 를 사이버플레닛코리아라는 회사에서 1백곳 정도 설치할 것이고, 운영위원회 차원에서도 같은 성격의 접속창구를 전화국 대학교 우체국 등 비교적 설치가 용이한 곳을 중심으로 열 예정. 이 시설들은 행사가 끝나도 계속 사용할 수 있어 우리의 정보 인프라를 한 단계 높이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한다.
이 정도면 아쉬운 대로 필요한 구색은 대략 갖추어진 셈인데, 무엇을 보여주느냐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리고 이것을 결정하는 것은 온전히 전 박사의 몫이다.
"93년에 열린 대전 엑스포와 이 행사를 비교해보면 어떨까요. 대전 엑스포에는 국내에서 1천만명, 외국에서 50만명이 관람을 했습니다. 반면 인터넷 엑스포에는 우리나라에서 2백만명, 세계에서 적어도 4천만명이 참여할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면 우리가 세계적으로 흥미를 끌 만한 무엇을 찾아내야만 합니다."
우리의 주제전시관(파빌리온)에 참여하겠다고 뜻을 밝힌 곳은 1월 말 현재 대략 30곳. 이들은 전박사의 뜻마냥 우리나라와 우리 문화의 다양한 모습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여러 주제전시관 가운데 정보전문기획 인포메카가 준비하고 있는 '한국의 김치' 사이트는 전 박사가 "적어도 2년 내에 일본에서 김치 홈페이지가 나올 것" 이라며 그 필요성을 강요하다시피 주장해 결정된 것이다.
이와 함께 흥겨운 잔치로 이 행사를 이끌기 위한 우리의 간판으로 그는 남대문시장을 집중 부각시킬 작정이다. 남대문시장에 관한 정보를 멀티미디어화해 인터넷에 담아놓고 세계 각국의 사이버 관광객들이 구경과 쇼핑을 동시에 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여력이 있다면 경주나 인사동거리 자갈치시장 등 한국인의 정서가 물씬 묻어 있는 여러 곳도 모두 소개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모험심 많은 '세계적 대부'
"반드시 있어야 할 정보라면 제공자가 누구인가는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것도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해 외국에 내맡긴다는 건 자존심이 허락지 않습니다. 더구나 우리 것을 우리만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테니 경쟁력도 있고요."
한편 이 행사의 핵심을 차지하는 아시아인들의 연대를 위해서 그는 한가지 아이디어를 제창, 이미 구체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오는 5월의 부처님 오신 날을 인터넷 상에서 동시에 중계한다는 계획이 바로 그것이다. TV와 같은 전파미디어에서도 미처 기획하지 못했던 이 일은 인터넷이 새로운 미디어로서 가진 가능성을 십분 발휘하는 현장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전 산업사회의 박람회는 각 대회마다 뚜렷히 기억될 만한 무엇인가를 남겨놓았다. 그렇다면 정보사회 진입을 알리는 첫 사이버 엑스포는 과연 무엇이 남길 것인가. 우리 경우를 한정해서 말하자면 정부 입장에서는 당연히 이 행사를 준비하면서 구축된 '초고속 통신망'이라고 답할 테지만, 그는 오히려 소프트웨어적인 접근방법으로 답을 구한다.
물론 망 확충이 매우 중요한 일임에는 틀림 없지만, 그보다는 이 행사가 한심할 정도로 후진적인 상태에 놓여 있는 우리의 각종 데이터베이스가 이전보다 질과 양에서 풍부해지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
그는 일본에서 태어나 23년을 살고, 다시 미국에 건너가 13년을 공부하고 일한 뒤 36살이 돼서야 고국에 돌아왔다. 귀국 이후에도 그는 지금까지 넓게는 네트워크, 좁게는 인터넷 한 길에 매달려 왔다. 국내 인터넷의 근간이 된 망중 하나로, 민간기업 연구소 등이 연결된 SDN이 그의 손에 의해 이루어졌다. 또한 밖으로는 일본이 인터넷 망을 구축하면서 그의 도움을 받았다.
국내에서 인터넷과 관련한 사업을 벌이고 있는 대부분의 인물, 이를테면 아이네트기술의 허진호박사나 정철박사 등이 그의 가르침과 도움을 받은 일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인터넷을 만든 핵심인물과 함께 일한 사람이 국내에는 그 밖에 없기 때문이다(그는 빈트 서프와 대학원 동기다).
학자로서 요즘 그가 몰두하고 있는 문제 역시 여전히 '네트워크' 다. "수천 수억만대의 컴퓨터를 연결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그의 연구과제는 그의 이전 인생과 마찬가지로 또다른 모험이다.
모험심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그의 도전의식은 평범치 않다.
네트워크와 함께 그의 또 다른 인생인 산(山)에 대한 끝없는 의지를 봐도 잘 나타난다. 그는 지난 80년 유럽 3대 북벽 등반대의 등반대장이기도 했고, 이보다 앞서 76년에는 우리나라 사람으로 처음으로 맥킨리를 등반한 바 있다.
골치 아픈 일에 몰두해 있다가도 2년에 한번은 어김없이 히말라야를 찾는 것이 커다란 즐거움이었지만 "올해만큼은 룰을 깰 수 밖에 없을 것같다" 고 '엄살'이다. '인류 최초의 행사' 라는 새로운 모험이 그를 산으로 보내주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