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확보와 환경오염 방지는 21세기를 맞이하는 인류에게 가장 큰 난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방면에서 많은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계면공학 측면에서는 어떤 노력들이 행해지고 있는 것일까.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는 인간이 창조되기 전에 지상에 거주하고 있던 신들이었으며 형제였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준 것으로 유명하다.
신의 우두머리인 제우스는 불을 훔친 외람된 짓을 한 이 형제와 그 선물을 받은 인간들을 벌하기로 작정했다. 제우스는 판도라라는 여자를 만들어 에피메테우스에게 주었는데 그는 판도라를 아내로 맞았다.
에피메테우스의 집에는 한개의 상자가 있었다. 그 속에는 인간들에게 해로운 물건들이 들어있었다. 판도라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상자 뚜껑을 열어버렸다. 그러자 인간을 괴롭히는 무수한 재액이 빠져 나와 사방팔방으로 날아가 버렸다. 판도라는 놀라 뚜껑을 덮었으나 상자 속에 들어 있던 것은 이미 다 날아가고 오직 하나 만이 맨 밑에 남아 있었는데 그것은 '희망' 이었다.
순리를 역행한 결과
인간은 오랫동안 나무나 동물의 분뇨 등 자연에서 에너지(불)를 얻었다. 인간은 불로 정교한 도구를 만들 수 있었고 일상적인 일 뿐만 아니라 토지를 경작하는 어렵고 힘든 일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됐다.
불은 인간의 삶의 질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활동영역도 확장시켰다. 추운 곳에서도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듯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서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었다.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인간의 활동 범위는 땅 뿐만 아니라 하늘과 바다로 확장됐다. 넓은 활동 영역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에너지가 필요하게 됐으며 석탄과 석유와 같은 고발열량 화석연료를 사용하게 됐다.
에너지원으로 주로 사용되고 있는 화석연료(석탄과 석유)는 유한하고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환경오염은 인간이 자연의 순리에 따라 행동한 지난 날에는 발생하지 않았다.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의 활동으로 인한 오염 물질은 자연의 활동으로 순화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명 사회와 관련된 후천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이기들(자동차 기계 화학제품약품 등)은 자연이 가진 자정능력 이상의 오염 물질을 배출했고 따라서 자연과 인간의 균형이 깨어지고 환경은 파괴되기 시작했다.
환경 오염의 무서운 폐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문명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에너지가 없는 생활은 상상하기 조차 힘들다. 에너지가 없으면 우리의 삶도 없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막중하고 긴급한 책무가 주어졌다. 화석 연료가 고갈되기 전에 자연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에너지원을 개발해야 하는 것이다. 판도라가 놀라서 상자를 재빨리 닫은 덕택에 남은 '희망'이 바로 오늘날의 '과학 기술'이 아니겠는가.
석탄을 분말로 만드는 이유
에너지 연구는 크게 두 방향으로 진행된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현재 사용하고 있는 화석 연료를 환경 친화적으로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깨끗한 에너지를 개발하는 것이다.
환경 친화적 화석연료의 예로는 석탄을 미세한 분말로 만드는 것이다. 무기질에 함유돼 있는 유황을 제거하고 석탄을 연소시키면 대기오염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이런 목적으로 석탄을 미세한 분말로 만들어 연소시킨다. 이 때 석탄 분말 입자는 콜로이드 크기가 되며, 이것이 함유된 계는 콜로이드 분산계이다.
석탄 입자가 엉겨 붙지 않고 연소가 효율적으로 되게 하려면 이 분산계의 안정도와 동특성이 규명돼야 하는데, 계면공학은 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깨끗한 에너지를 개발하는 연구에 있어서는 계면공학은 태양에너지 수소연료 고용량건전지 등의 연구에도 관여한다. 태양에너지는 햇빛을 전류로 바꾸는 것인데, 조사된 햇빛이 가능하면 많은 전류로 바뀌고 또 얻은 전기를 높은 밀도로 저장할 수 있어야 한다.
고용량건전지도 마찬가지다. 전기에너지의 저장밀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전해질의 개발이나 저장 매체의 용량을 늘릴 수 있어야 하는데, 저장 매체의 용량은 계면의 넓이와 특성에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으므로 계면공학적 고찰이 이뤄져야 한다. 전기 자동차의 실용화가 늦어지는 것은 저장 밀도를 높이는 기술이 아직 미비하기 때문이다.
수소는 대개 물을 전기분해해 얻으며, 이를 연소하면 다시 물이 되기 때문에 공해를 전연 유발하지 않는 에너지원이다. 이것 또한 태양에너지와 마찬가지로 무한한 에너지원이어서 고갈될 염려가 없다.
그러나 수소는 산소와 결합하면 폭발하므로 수송과 사용할 때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고, 발열량이 기존의 연료보다 매우 떨어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많은 양이 필요하다. 수소연료도 고밀도 저장이 요구되는데 해결방법의 하나로 금속수소화물(metal hydride)로 저장하는 방법이 있다. 이것도 역시 계면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 이 방면의 연구는 아직도 여지가 많이 남아 있다.
수소는 현재 1차에너지(전기에너지 원자력 등)를 사용해 얻으므로 가격이 비싸다는 단점이 있으나 아주 깨끗한 에너지다. 저렴하게 얻을 수 있는 방법과 고밀도 저장법만 개발되면 실용화가 훨씬 빨라질 것이다.
오염물질 제거에 필수
계면공학은 환경 연구에서도 가장 필요한 분야 중 하나이다. 오염된 대기 수질 토양은 모두 전형적인 콜로이드 분산계이다. 따라서 오염 물질을 제거하고 환경을 개선하는데 있어서 계면공학의 여러 지식이 이용될 수 있다.
오염 물질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콜로이드 분산계를 불안정하게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오염된 수질에서 오염 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응집제를 사용한다. 응집제는 전해질이므로 오염 물질의 표면 전하를 감소시켜 이들 사이의 배척력을 떨어뜨린다. 그렇게 되면 오염물질은 잘 뭉쳐져 덩어리가 돼 분리가 용이하게 된다.
계면공학은 오염물질의 제거와 공정 개선에 관여할 뿐만 아니라 오염을 유발하지 않는 물질의 개발 등 보다 본질적인 문제에도 관여한다.
계면활성제는 계면을 제어하는 중요한 물질이므로 공업의 전반에 두루 쓰이지만 화학적으로 합성된 계면활성제는 수질 오염의 원인 제공자이기도 해 사용이 점차 제한을 받고 있다.
따라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계면활성제의 등장을 요구하게 됐으며, 그 결과로서 생체 계면활성제(bio surfactant)가 연구됐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과학자들이 생체계면활성제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수행하고 있다.
생체 계면활성제는 주로 탄소화합물을 사용해 미생물과 발효시키거나 효소와 반응시켜서 얻는다. 사용되는 탄소화합물 미생물 효소에 따라서 많은 종류의 생체 계면활성제가 얻어지지만, 생합성의 경로 계면특성 수율 가격 등의 문제가 남아있다. 실용화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생체 계면활성제는 천연 화합물이어서 환경 친화적이므로, 계면활성제가 산업에 두루 쓰이는 것을 고려하면 생체 계면활성제의 개발은 산업 전반에 걸쳐서 큰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일본에서는 이미 생체 계면활성제가 화장품에 사용되는 사례도 발표되고 있으므로, 우리 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보다 더 진지한 노력과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파괴된 환경을 복원하고,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는 깨끗한 에너지를 개발해야 한다. 계면공학은 이 책무를 수행하는데 유용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프로메테우스의 선물(에너지)을 간직하려면 판도라의 상자의 재액(환경 오염)을 대가로 치뤄야 할 운명이지만, 다행히 상자 속에 남아 있는 '희망'(과학 기술)이 있어서 우리는 밝은 미래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