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방 속, 수백만 개의 물방울 입자가 쏟아진다. 당신이 들어서면 물방울이 튀며 물줄기가 휜다. 당신이 어디로,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물줄기는 달라진다. 단 한 순간도 물줄기는 같은 모습을 띠지 않는다.
당신은 물줄기의 일부다. 2001년 결성된 일본의 디지털 예술단체 ‘팀랩(teamLab)’은 프로젝터와 컴퓨터 수백 대를 이용해 영상을 벽에 투영하는 방식으로 이 같은 가상공간을 창조했다. 가상공간은 관람객과 역동적으로 상호작용한다. 이렇게 ‘영사(projection)’를 이용해 제작한 비디오 예술을 ‘프로젝션 맵핑(projection mapping)’이라고 부른다. 팀랩은 예술가뿐만 아니라 프로그래머, 컴퓨터그래픽(CG) 전문가, 수학자, 건축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스스로를 ‘울트라 테크놀로지스트’라 부르며 프로젝션 맵핑으로 예술과 과학의 균형 잡힌 조합을 꿈꾼다. 현실 속에서 환상을 만들어낸, 팀랩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Universe of Water Particles
물 입자의 우주
절벽 아래로 폭포가 떨어진다. 관람객이 발을 디디는 곳마다 꽃이 핀다. 물줄기에 손을 내밀거나 바위 아래에 걸터앉아보자. 관람객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센서가 이를 감지해 컴퓨터로 전송하고, 컴퓨터는 곧 물 입자가 떨어지는 속력과 방향을 다시 계산해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낸다.
관람객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 따라, 관람객이 몇 명인지에 따라 작품은 시시각각 달라진다. 작품이 설치된 일본 도쿄의 디지털아트뮤지엄에는 총 520대의 컴퓨터와 470개의 프로젝터가 사용됐다. 이 작품처럼 공간 전체를 프로젝션 맵핑하는 형태를 ‘박스 맵핑’이라고 부른다.
Memory of Topography
지형의 기억
시골 풍경을 묘사한 작품. 높고 낮은 산을 가진 시골의 풍경은 계절마다 다르다. 봄에는 벚꽃이 핀다(1). 여름이 되면 밭에 푸르고 싱싱한 풀들이 자란다(2). 가을에는 논에 작물이 무르익으며 금빛으로 여문다(3). 붉은 단풍이 떨어지기도 한다(4).
계절의 흐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실시간으로 꽃과 곤충의 외양과 움직임도 달라진다. 관람객이 ‘지형의 기억’을 거닐면 센서가 이를 감지해 바람의 방향을 바꾸고 볍씨와 꽃잎을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흩뿌린다. 볍씨와 꽃잎이 울퉁불퉁한 구조물 위를 움직이면서도 모양을 계속 유지하도록, 컴퓨터를 이용해 구조물의 형태에 꼭 맞게 변형된 영상을 투사한다.
The Infinite Crystal Universe
무한 크리스탈 우주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무한 크리스탈 우주’. 벽면, 천장, 바닥을 가득 채운 빛들은 점묘화처럼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낸다. 관람객이 공간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 빛은 사방으로 무한히 뻗어나간다.
관람객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이용해 ‘무한 크리스탈 우주’에 맵핑되는 별 또는 별자리를 선택할 수 있다. 화면에서 마음에 드는 별이나 별자리를 고르면, 그 모양으로 ‘무한 크리스탈 우주’가 구성된다. 심도 감지 카메라가 공간을 3차원(3D)으로 스캔한 뒤 메인 컴퓨터로 전송하면, 그 공간에 딱 맞게 별 모양을 맵핑시키는 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