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
현재 지구에 다양한 생물이 존재하는 것은 오랜 기간에 걸친 진화의 결과이며 사람 또한 예외가 아니라고 현대과학은 말한다. 모든 생물의 진화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며, 적응요인은 유전적 변이와 자연선택이다.
어떤 생물이라도 변화 환경에 적응하려면 미지의 환경 변화에 대비할 수 있는 여러 종류의 유전적 변이를 미리 갖고 있어야 한다. 이 유전적 변이는 돌연변이에 의해 축적된다. 시간이 흘러 주위 환경이 변하면 이들 유전자 중 달라진 환경에 알맞는 유전자가 선택되고 그렇지 못한 유전자는 도태되는 자연선택이 작용하며, 그 결과 생물은 진화하는 것이다. 결국 생물 진화란 곧 유전자 진화를 뜻한다.
사람의 기원은 수상(樹上)생활을 하던 유인원 조상의 일부가 지상생활로 생활양식을 바꾸면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약 1천5백만년 전 아프리카에는 장기간에 걸친 건조기가 계속됐고, 이 때 산림이 초원(사바나)으로 바뀌자 수상생활을 하던 유인원의 일부가 지상생활을 하게 됐다.
처음으로 두발로 걷게 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란 원인이 약 4백만년 전에 생겼고, 그 일부에서 약 2백만년전 호모 하빌리스란 원인이 나타났다. 이 원인은 연장을 사용해 사냥을 했고 그 결과 뇌의 발달이 촉진됐다. 연장을 만드는 기술의 축적은 뇌의 발달을 가져왔고 뇌 발달은 다시 기술의 발달을 촉진시킴으로써 원인의 뇌가 급속도로 발달한 것이다.
한편 여럿이 함께 사냥을 하고 연장 만드는 법을 전수하는 과정에서 언어가 발생했고, 언어 사용은 정보교환과 학습의 효과를 높였다. 또한 지적 활동에 따라 새로운 뇌의 능력이 요구돼 뇌의 빠른 발달이 나타났으며, 이후 약 20만년전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했다.
처음 아프리카에서 출현한 인류는 세계 각지로 이동하면서 각기 다른 환경에 적응한 결과 흑인 백인 동양인 등 여러 인종으로 분화됐고 앞으로도 계속 진화할 것이다.
예측할 수 없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사람의 언어 사용 능력은 두뇌 발달의 결과이며 다른 생물과는 차이를 나타내는 특성이란 것이다. 동물의 본능적 행동양식은 생물학적 유전법칙에 따르지만 인간 사회에서 모든 문화 유산은 생물학적 유전이 아닌 교육에 의해 다음 대에 전해진다. 교육은 이성에 의해 시작되고 모든 사회 생활은 교육에 의한 것이며 그 매체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미래 진화 양상은 과거 수천년 동안 그랬듯이 유전인자에 의한 형태적 진화와 정신 문화적 진화가 섞여 나타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진화할 것인지 전혀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인간 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의 미래 진화양상은 예측이 불가능하다. 현재의 자연환경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 것인지 생물들이 예측할 수 없으며, 단지 여러 유전인자를 보유하다가 미지의 환경에 접했을 때 그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유전인자를 갖고 있으면 생존이 가능하고 그렇지 못하면 멸종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유전적 변이를 많이 보유하는 종일수록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진화가 가능하지만, 변이가 적은 종들은 위험 부담이 큰 것이다.
한편 인간은 다른 생물과 달리 유전적 변이에 의한 피동적 적응보다는 과학 지식을 통해 자연 환경을 인위적으로 개조하고 생태계를 조절하려 한다.
특히 생물학적 지식을 이용,인간체질의 개선(유전자 조직에 의한 질병치료, 수명연장, 냉동인간, 장기이식, 뇌와 컴퓨터의 연결 등)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인위적으로 인간의 진화방향을 조절할 수 있을지 매우 의심스럽다. 아니 불가능하다고 본다.
창조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을 구원하려는 하느님의 계획에 대해 초점이 맞춰진 책이다. 따라서 성경에는 앞으로 인간의 외형적 모습이 어떻게 변형될 것인가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을 따라 지은 바 된 사실을 명시하고 인간을 지으신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묘사함으로써 인간의 형태가 그 자체로 완전함을 함축적으로 표시하고 있다. 즉 하느님의 형상을 따라 가장 온전하게 지은 바 된 인류는 지으신 자의 의도가 없는 한 다른 모습의 인간형태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굳이 어떤 증명방법을 이용해서 설명해야 한다면 우리가 아는 역사적 사실을 통해 생각해보자. 기원전 2천년 이집트 문명에 관한 기록과 예술품을 보면 당시의 인간 모습은 현시대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 이 때는 수학 측량술의 발달로 피라미드 스핑크스 등이 건축됐으며, 인간 모습을 미라로 만들어 남겼으므로 현대인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4천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한세대를 40년으로 잡고 자녀를 생산한다면 이미 1백여번의 세대교체가 생긴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인간형태의 변화가 전혀 없었다면 앞으로 4천년 후에도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변화될 수 없다
성경에는 기원전 2천년경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만났던 키 크고 체격 좋은 아낙자 자손이 등장한다. 기원전 1천5백년경 어린 다윗이 맞대결했던 거인 골리앗에 대한 기록도 있다. 이들이 우생학적으로 성공해 많은 거인 자손을 낳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는 심심치 않게 거인들을 볼 수 있다.
또한 공상영화 스타트렉에 나오는 머리 큰 사람, 혹은 귀가 이상하게 생긴 사람도 주변에서 가끔 눈에 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형태적으로 우리와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조금 못생기고 괴상하게 생겼다고 느낄 뿐이다.
눈은 우리에게 가장 귀한 것 중 하나다. 그러나 귀중하다고 해서 사람이 3개의 눈을 갖는 방향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발과 다리가 중요하다고 문어 다리처럼 다리 수가 많아지는 방향으로 변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자연 만물을 만드실 때 완전한 작품으로 만드신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