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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로봇의사가 몸속 누비며 진찰

마이크로머신은 현실세계

머리카락 굵기의 모터가 힘차게 회전한다. 이들은 어떻게 움직이며 어디에 응용될까. 이미 현실 세계에 모습을 나타낸 마이크로머신의 세계를 탐구해보자.

아주 작은 크기로 축소된 잠수정이 몸속에 들어가 병원균과 사투를 벌이는 '마이크로 결사대'(원제 A Fantastic Voyage)라는 공상과학영화를 본적이 있다. 뇌의 장애로 생사를 헤매는 환자를 세균 크기의 초미니 잠수정으로 치료하는 이야기다. 이 잠수정은 혈관을 타고 뇌속으로 들어가서 레이저로 환부를 치료하고 환자의 눈물을 통해 밖으로 나온다. 혈관 속을 항해하면서 병원균과 싸우는 작은 잠수정이 정말 있을까 신기해하면서 자란 사람들이 지금 이를 실현하기 위해 마이크로머신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작년에 일본의 한 어린 소녀가 배가 아파서 내시경 검사를 받은 후 부모님과 함께 마이크로머신 연구센터를 방문, 연구원들에게 "너무 아프니 통증을 느낄 수 없는 마이크로 로봇 내시경을 만들어주세요"라고 호소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러한 바람을 실현하기 위해 많은 과학자들이 반도체 전자공학 기계공학 기술을 통합해 마이크로머신 일부를 상용화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마이크로머신은 현미경에 의하지 않고서는 볼 수 없을 정도의 수십㎛(${10}^{-6}$m) 크기이며 , 기계 및 전자기능을 갖는 복합시스템이다. 정보화 사회의 초석은 반도체소자들이다. 지구 상에서 두번째로 풍부한 원소인 규소(첫번째는 산소)의 전자 수송에 관한 특징을 이용해 얻은 인류의 쾌거이다.

머리 카락 모터

반도체 공정기술을 활용하고 강철과 같이 기계적 특성이 우수한 규소의 성질을 이용해 제작되는 마이크로머신은 최근 5년간 급격히 발전된 분야이다. 기존의 기계와는 달리 센서(감각기관) 처리회로(지능기관) 엑튜에이터(운동기관)를 일체화시킨 시스템이다. 특히 이는 조립과정이 생략된 일체형이므로 성능에 비해 가격이 싸다는 장점이 있다.

최근 이 분야의 전형적인 예는 머리카락 굵기인 1백㎛ 크기의 정전력 구동형 마이크로모터이다. 기존의 초소형 모터(크기 ㎜ 수준)도 여기에 비하면 대형모터인 셈이다. 그러나 마이크로모터는 기술적 가능성만 보여주었을 뿐 마이크로 세계에서 마찰력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실용화되지 않은 상태다.

기존의 마이크로머신으로 대표적인 것은 잉크젯 프린터의 헤드. 잉크젯 프린터가 높은 해상도를 가질 수 있었던것은 바로 마이크로머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마이크로머신은 우리 생활에 더욱 가까워졌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텍사스인스투르먼트사의 DMD(digital micromirror devices)와 아날로그 디바이스사의 자동차 에어백용 가속도센서다.

멀티미디어 시대가 되어 가고 있는 요즘, 일반 가정에서도 대형화면으로 TV를 시청하거나 비디오 영화를 감상하려고 한다. 현재의 기술수준으로 가정에서 영화관 기분을 내려면 프로젝트 구입에 수백만원 투자해야 한다. 이러한 가격은 멀티미디어 세계로 진입하는데 커다란 장벽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장벽을 텍사스 인스투루먼트사는 간단히 깨버렸다.

마이크로머신 공정기술을 이용해 기존의 SRAM과 16㎛ 크기의 알루미늄 박판 거울로 제작된 DMD를 표시장치에 적용시킨 것이다. DMD의 해상도는 768×576 또는 2048×1152까지 적용할 수 있다. HDTV(고선명 TV, 해상도는 1024×1024) 시대에 충분히 대응하고도 남는 수준이다.

DMD를 사용한 프로젝터는 저가격으로 조만간에 출시될 예정이다.

현대사회에서 자동차는 생활필수품으로 인식되면서 그에 따른 안정성이 큰 관심 사항이다. 그러나 자동차 에어백은 고가(1백만원)로 중형승용차 이외는 널리 실용화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아날로그디바이스사는 마이크로머신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냈다. 자동차 에어백 용 가속도센서는 충격에 따른 기계적 변화를 실시간으로 감지하는 센서와 자기검사 기능, 그리고 신호처리회로를 모두 갖추고 있다. 신호를 감지하여 출력까지 완벽하게 처리하는 이 시스템의 크기는 3㎜×3㎜에 불과하다. 이는 마이크로머신이 아니면 이룰 수 없는 개가이다. 마이크로머신이 갖고 있는 대량생산의 특징을 이용해 가격이 대폭 절감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마이크로머신 응용품 1회용 혈압측정기(위) 와 지능형 압력센서(아래).


코끼리가 개미로 축소될 때

미소화하면 물리적 성질이 어떻게 변하는가, 또 그것이 시스템의 성능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보자. 미소세계에서의 역학은 상식적인 판단과는 다르다.

코끼리와 개미의 다리를 비교해보자. 코끼리의 다리는 개미의 다리보다 몸체에 비해 더욱 두껍다. 왜 그럴까. 다리의 역할이 몸체의 중량을 지탱하는 것이라는데 생각이 미치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체중 이상의 힘이 다리에 가해지면 다리가 파괴된다고 가정하자. 다리의 허용압축하중은 다리의 단면적에 비례한다. 따라서 개미와 동일한 재료를 사용해서 기하학적으로 1백배 크기의 거대한 개미를 만들면 체중은 1백만배, 허용압축하중은 1만배가 되어 다리는 체중을 견디지 못하고 파괴된다. 체중을 견디기 위해서 거대 개미의 다리를 1천배의 크기로 만들어주어야 한다. 거꾸로 미소 코끼리를 만들때는 다리가 더 가늘어져도 상관없다.

미소기계인 마이크로머신을 설계할 때는 보통 크기의 기계를 단순히 기하학적으로 축소한다는 사고방식을 버려야 한다. 크기가 1㎜ 이하인 마이크로머신을 설계할 때, 크기효과 때문에 관성력에 비해 마찰력이나 점성력과 같은 면적에 관련된 표면력이 지배하게 된다. 예를 들면 1/N의 축소비를 갖는 기계의 경우 체적은 1/N의 세제곱, 면적은 1/N의 제곱에 비례하여 축소되므로 상대적으로 면적에 관계되는 힘이 커지게 되는 것이다.

보통 크기의 기계에서 마찰력은 중력에 비해 아주 작으므로 무시해도 된다. 그러나 미소기계에서는 중력보다 마찰력이 지배하게 된다. 물컵에다 물을 가득 채우고 물컵을 뒤집으면 물이 쏟아져버리지만 마이크로미터 크기를 갖는 미소물컵의 경우는 물을 채우고 물컵을 뒤집어도 물이 쏟아지지 않는다. 이는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구조체에서 물에 대한 표면장력이 중력 보다 크기 때문이다. 미소기기의 물체운동에서는 마찰이 문제가 돼 유체의 점성저항을 많이 받는다.
 

머리카락과 비교한 마이크로 톱니바퀴


어떻게 움직이나

마이크로머신의 크기는 10㎛-1㎜이기 때문에 종래의 구동체를 단순히 소형화해서는 원하는 성능을 얻지 못한다. 따라서 새로운 원리를 기초로한 구동체가 개발되어야 한다. 대표적인 구동력은 정전형 압전형 열팽창형 형상기억합금형 전자기형이 있다.

정전형 구동체는 전계(電界)에 의해서 발생하는 정전력을 이용해서 구조체를 움직인다.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정전기는 마찰에 의해 먼지가 모여드는 현상이다. 정전력은 우리가 사용하는 보통 기계에서는 눈에 띄게 나타나지 않으나 마이크로미터 크기에서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따라서 정전력을 이용한 회전 및 선형 마이크로 모터가 개발되고 있다. 현재까지 회전 속도가 1만5천rpm(분당회전수)을 가진 모터가 개발된 바 있다.

압전형 구동체는 전압을 가하면 압전소자가 움직이는(신축) 성질을 이용한 것이다. 압전소자란 압력을 가하면 전기가 발생하는 소자로 가스렌지를 켤 때 사용한다. 결국 압전형 구동체는 이 원리를 역으로 이용한 것이다. 발생력은 크지만 동작범위가 작은 것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응용품으로는 원자 수준의 분해능을 가진 주사형터널링현미경(STM)의 탐침구동 장치 (part4에서 자세히 다룸)와 초음파모터가 있다.

열팽창형 구동체는 마이크로히터에서 발생하는 열에 의해서 유체의 부피변화와 재료의 선팽창률 차이에서 나타나는 변형을 활용하는 것이다. 에너지의 효율이 떨어지고 방열 문제로 인한 제약은 크지만, 큰 힘을 얻는데는 유용하다. 대표적인 예가 잉크 분출속도가 수십 마이크로 초인 잉크젯 프린터의 헤드이다.

온도 변화에 따라 형상이 변하는 형상기억합금의 변형력을 활용하는 구동체도 연구되고 있다. 현재까지 1㎜ 크기의 마이크로 자기(磁氣)모터가 제작된 바 있다.
 

자동차 에어백에 사용된 가속도센서.


차세대 키 테크놀러지

지금까지 세계는 30년 동안 단일 품목으로는 최장 최대의 투자를 통해 규소반도체 기술을 발전시켜 인류의 생활에 큰 영향을 주었다. 다음 세대의 인류생활을 윤택하게 해줄 제1후보는 단연 마이크로머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생활용품으로서 산업소재로서 다양하게 사용돼 2020년경에는 산업구조에 일대 혁신을 가져올 전망이다.

그러나 마이크로머신의 앞날이 장미빛만은 아니다. 기존의 반도체 반도체 가공기술을 사용하여 제작되는 특성상 2.5차원의 구조물 밖에는 못만들고 있고, 크기가 비약적으로 작아지면서 작용하는 힘의 우선순위가 뒤바뀌어 설계 및 제작의 장벽이 되고 있다.

완벽한 3차원 구조물을 만들기 위해 LIGA공정(part4에 자세히 소개) 개선과 새로운 공정 및 재료를 사용하는 방법들을 연구하고 있다(예: HAR-MEMMS, High Aspect Ratio-MEMMS)

마이크로머신은 광변조 등의 미소 광학기계 분야, 현미경에 사용되는 극한 탐침 분야, 세포조작 및 미세수술 등의 의료분야, 자기헤드 등의 정보기기 분야, VLSI(초고집적반도체) 제조에 사용되는 초정밀기구 등에 적용되고 있다.

앞으로 당분간은 외계와의 힘 교환이 적은 분야, 특히 정보통신분야에 적용이 활발할 것이다. 이러한 기술발전추세를 볼때 한 소녀의 소원인 마이크로로봇이 가까운 시일 내에 등장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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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박경호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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