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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 이용, 죽은 땅 되살린다

항암제·화장품·탈취제 원료로도 각광

비 올 때면 땅위에서 꿈틀거려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는 지렁이. 그러나 지렁이가 사람과 생태계에 기여하는 역할은 무궁무진하다. 비옥한 땅을 만들고, 항암제 등 의약품 개발에 이용되는 것이다.

흙은 인간의 생명을 낳아 기르는 조물주의 젖가슴이다. 그 젖가슴에서 샘처럼 솟아나는 젖은 사람과 모든 동식물을 무성하게 자라게 한다. 만일 인간이 흙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어린 아기가 어머니의 젖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흙은 점점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다. 우리 농토의 거의 전부가 산성화된 것이다. 유기질 퇴비를 외면하고 화학비료와 농약을 과다하게 사용한 탓이다.

이제 죽어가는 땅을 다시 살리고 질 높은 농산물을 만들기 위해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 대책 중 하나가 바로 토양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렁이를 이용하는 것이다.

땅 속에 조용히 지내다 밤에만 출현

사람들은 보통 지렁이를 밟으면 꿈틀거리는 징그러운 환형동물 또는 낚시미끼 정도의 별 볼일 없는 하등동물로 이해한다. 그러나 지렁이의 생태와 유용성을 알면 깜짝 놀랄 것이다.

지구에는 약 3천종류의 지렁이가 살고 있다. 작은 것은 2㎝ 정도이며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서식하는 종(Megasocolices austalia)은 무려 길이 3m60㎝ 직경 2.5㎝나 된다고 한다.

지렁이는 분류학적으로 환형동물문 빈모류강 후생식문목에 속한다. 후생식문목에는 뚱뚱보지렁이과 낚시지렁이과 끈지렁이과 긴지렁이과 등이 있다.

외형상 잘 관찰되는 지렁이 몸의 특징은 몸이 체절(體節)로 되어 있다는 점. 맨앞과 맨끝 체절을 제외하고 각 체절마다 달린 강모는 다른 동물의 발 역할을 한다. 전진과 후진은 물론이고 미끄러지지 않도록 브레이크 구실을 하는 것이다. 지렁이가 미끄러운 비닐 위를 기어 다닐 수 있는 것도 이 강모 덕택이다.

지렁이는 암수 한몸인 동물이다. 즉 한마리에 수컷생식 기관과 암컷생식기관이 모두 있는 것이다. 수컷생식기관 내부에는 정낭 정소 수정관 등이 있고 암컷생식기관에는 난소 난낭 수란관 등이 있다.

지렁이 머리 부위에서 약 1/4쯤 되는 장소에 환대(環帶)가 있는데, 생식기관은 환대 가까운 내부에 있다. 교미할 때는 서로 상대방 정액을 받아 수정낭에 저장한다. 따라서 모든 개체가 알을 낳을 수 있는 것이다.

교미시간은 8-10시간 정도로 비교적 길다. 시간이 길수록 상대방 정자를 많이 받아 수정낭에 저장한다. 이 때 미성숙한 정자는 자신의 수정낭에서 성숙시킨 후 수정한다.

교미부터 산란 부화 성장 성충형성까지의 기간이 약 4개월. 성충이 7-10일마다 알을 낳을 수 있으며 통계적으로 연간 약 1천배 정도 증식할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지렁이를 우리가 쉽게 볼 수 없는 이유는 지렁이가 밤에만 지상에 나타나기 때문. 원래 지렁이는 수생동물이었으나 이후 육생동물로 진화했다. 따라서 지상생활에 충분히 적응하지 못한 탓에 지렁이는 주로 습한 땅에 구멍을 파서 생활하고 밤에만 지상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렁이는 인간이 살수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서식할 정도로 생명력이 강하다. 따라서 지렁이를 양식하려면 먹이만 쉽게 구할 수 있으면 된다. 버려진 땅이나 하루종일 햇빛이 들지 않는 그늘로서 농작물 재배가 불가능한 곳, 토질이 나쁜 논밭이나 숲속 등에서 필요한 면적만 확보되면 어디서나 양식장을 설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몇가지 주의할 사항이 있다. 한가지는 지렁이가 소음이나 진동에 약하다는 점. 지렁이는 땅 속 조용한 곳에 사는 동물이다. 또한 지렁이는 야행성이므로 특히 밤에 조용한 장소를 찾아야 한다.

다른 한가지는 지렁이를 천적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것. 두더지를 비롯, 뱀 개구리 새 쥐 지네 등 지렁이를 잘 먹는 동물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땅에 생명력 불어 넣는다

지렁이가 죽은 땅을 살릴 수 있는 것은 독특한 식성 때문. 지렁이는 썩는 물질 즉 유기성 폐기물(음식찌꺼기, 하수찌꺼기, 가공식품 폐기물, 종이류 등)과 각종 가축의 분뇨를 잘 먹는다. 게다가 식욕도 왕성해서 1년간 섭취량은 1백6-1백67g(수분 70%)에 이른다. 하루에 자기 체중의 77-1백21%를 먹는 셈이다.

먹은 양의 절반에 해당하는 지렁이의 배설물도 땅에 생명력을 넣어준다. 지렁이 소화관의 석회선(石灰腺)에서 분비된 다량의 탄산칼슘이 배설물에 섞여 방출되거나 혹은 지렁이가 배설한 암모니아에 의해 산성화된 식물과 토양을 중화시키는 것이다.

작고 둥근 모양의 지렁이 배설물은 틈이 많은 구조로 이루어져 배수가 잘 되고 공기가 잘 통한다. 따라서 배설물은 보통 토양보다 식물 뿌리가 더욱 잘 자라게 돕는 것이다.

지렁이가 죽어 흙에서 분해되면 그 토양은 질소가 많이 포함된 비옥한 땅이 된다. 한마리의 지렁이 시체에 10㎎의 질산염이 포함되어 있는 것. 이 양은 보통의 토양에 필요한 질소량과 맞먹는 양이다.

외국에서는 이미 지렁이를 이용, 땅의 생산력을 높이는 데 힘쓰고 있다. 일본 북해도에서는 목초지의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지렁이 등 토양 동물의 활용을 추진하고 있다. 각 목초지에서 지렁이 종류개체수 현존량 등을 조사, 지렁이와 목초량 증가와의 관계를 탐구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캐나다 등에서는 지렁이 개체수를 따져서 토양 비옥도 자료로 삼고 땅값을 결정한다고 한다. 뉴질랜드에서는 유럽산 지렁이를 수입, 목초를 증산한 예가 보고되고 있다.

이렇듯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지렁이의 유용성은 이미 오래전부터 과학자들에게 알려져 있던 사실이다. 가령 아리스토텔레스는 "지렁이는 대지의 장(腸)"이라고 표현했다. 또 다윈은 1881년 저서 '지렁이의 작용에 의한 옥토의 형성'에서 "지렁이는 지구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생물"이라고 격찬하면서 간단한 산술 계산으로 "지구상의 약 20인치의 표토는 20년 동안 지렁이 체내를 통과했고, 그 결과 놀랄 만큼 흙이 비옥해졌다"고 설명한 것이다.

이외에도 지렁이가 인간에게 제공하는 장점은 수없이 많다. 사실 인류가 처음으로 지렁이를 이용한 때는 이미 기원전 부터였다. 이집트의 파라오 국왕은 국가를 풍요롭게 하는 하느님의 사신이라고 해서 지렁이를 보호할 것을 명했고, 클레오파트라는 나일의 계곡에서 미용을 위해 지렁이를 양식했다고 한다. 현재 사람들은 지렁이를 어떻게 이용하고 있을까?
 

지렁이 배설물의 탈취과정


물고기 품평 대회에서도 한 몫

낚시미끼로 지렁이가 사용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낚시미끼의 시장 규모와 연간매출액은 보통사람이 잘 모를 것이다.

국내에서 낚시미끼용 지렁이 소비량은 연간 약1백68t이다. 이를 매출액으로 환산하면 42억원 정도의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낚시 인구가 계속 늘어날 것이고 수질 오염으로 인한 떡밥 사용규제 등 낚시 면허제도가 도입되면 지렁이 시장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과 캐나다의 낚시미끼용 지렁이 시장은 연간 20억 달러에 이른다. 1993년까지는 자연산 지렁이를 판매했으나 유엔환경회의에서 자연산 야생 지렁이의 무단 채취와 국가간 수출입금지 법률이 선포되어 1994년 1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러한 여건을 감안, 1994년 필자가 지렁이를 건조 가공해 인공 지렁이를 낚시미끼용으로 개발해 특허를 출원하고 견본으로 미국에 선보인 결과, 유통업자들에게 상당한 호응과 수입상담이 있었다. 따라서 앞으로 미국에 상당량을 수출, 많은 외화 획득의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지렁이를 낚시 미끼로 사용하는 것은 물고기들이 지렁이를 선호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까지 그 이유가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경험적으로는 지렁이의 외체액과 색깔 움직임 특유한 냄새 등이 아닐까 추정하고 있다.

한편 양식 어민들에 따르면 몸길이 2㎝의 송어새끼가 죽을 확률은 약 80% 정도인데, 지렁이를 먹이로 주면 그 비율이 약 20%로 줄어든다고 한다. 지렁이 체액 속에 면역물질이 존재하는 것일까?

관상용 물고기 품평대회 1개월 전에는 먹이로 지렁이를 공급, 물고기 몸색깔을 선명하게 만드는 것은 관상용 물고기 양식업자들 사이에 알려진 비밀이기도 하다.

물고기 외에 지렁이는 가축의 사료로도 이용될 수 있다. 일본농림성은 일주일된 병아리에 몇가지 공정을 거친 지렁이 사료를 먹이고 생물정량법도로 유효에너지 단백가 인 등의 이용률을 측정했다. 결과는 지렁이 사료가 단백가도 높고 유효에너지도 많아 이용가치가 높다고 나왔다.

한편 의약계에서 지렁이를 중요한 실험대상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국내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지렁이를 이용, 현재 가장 많이 사용되는 약은 혈전치료제다.

혈전은 혈액의 정상적 흐름을 막아 각종 혈관 질환을 유발하는데, 이 혈전을 용해시키는 물질이 지렁이 생체에서 발견되어 성인병 치료제로 개발되고 있는 것이다.

이 약은 일본 미야자끼 의대 생화학과 미하라 히사시 박사팀이 최초로 개발했다. 지렁이 체액에 포함된 효소(룸부리카이네즈)가 혈전의 주성분(피브린)을 용해시키는 사실을 발견, 먹는약으로 개발한 것이다. 기존의 혈전용해제는 사람의 오줌에서 추출한 효소(유로카이네즈)를 주사로 투입했기 때문에 환자들이 불편을 겪었다.
 

토양과 지렁이 배설물의 화학적 성질 비교


지렁이 체액서 항암물질 발견

국내연구팀은 지렁이 체액에서 항암 물질(룸브리신)을 발견하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아직 상품화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주목할 만한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외에도 지렁이는 해열진통제나 간 치료제, 건강식품 원료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편 사람들은 지렁이가 화장품의 좋은 원료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캐나다에서는 오래전부터 지렁이 체표면의 끈적끈적한 물질을 자연보습제의 고급 원료로 사용하고 있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지렁이를 손으로 문질러 그 체액을 온몸에 발라 탈수증을 예방하고 피부를 보호하는 전통적인 관습이 있다. 유럽에서는 입술에 바르는 고급 루즈에 지렁이의 혈액색소와 체표액을 가공, 원료로 사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지렁이 몸 속 효소를 이용한 화장품 개발이 연구되고 있다. 지렁이에는 여성 얼굴에 잘 나타나는 기미(멜라닌 색소)를 억제하는 효소와 노후화된 피부 각질을 용해하는 효소, 피부표면의 말초혈관을 확장하는 효소 등이 있기 때문이다.

우연하게 지렁이의 유용성이 발견된 것도 있다. 지렁이 배설물이 탈취제로도 이용될 수 있다는 것.

지렁이의 사육장에 가면 악취가 전혀 나지 않는다. 원래 지렁이 사료는 악취가 강한 것이 많은데 지렁이가 먹기 시작하면 악취가 나지 않는 것이다. 이는 지렁이 배설물이 악취를 제거하는 작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탈취 효과는 앞으로 하수찌꺼기 처리장 분뇨처리장 쓰레기 소각장 축산시설 등에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지렁이 배설물의 가격이 싸고, 기존의 탈취제(활성탄, 실리카겔 등)로 제거되기 어려운 암모니아 황화수소 등을 제거할 수 있으며, 처리효과가 없어진 배설물이 그대로 농지로 환원될 수 있는 등의 장점 때문에, 지렁이 배설물을 이용한 탈취 방식은 앞으로 많이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산성화된 토양을 중화시키는 지렁이 배설물
 

1995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고재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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