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에 개발된 휴대전화와 최근 출시된 휴대전화, 일명 블링블링폰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예전에는 문자메시지와 통화만 되던 휴대전화가 이제는 걸어 다니는 인터넷 TV의 역할도 한다. 하지만 휴대전화는 크기가 점점 작아지고 얇아지며 가벼워진다.
산업계에서는 더 작고 더 가벼운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제품 전체 크기가 작아지려면 제품에 들어가는 부품의 크기도 작고 가벼워져야 하기 때문. 반도체도 마찬가지다. 연구원들은 실리콘 기판 위에 나노미터(nm, 1nm=10-9m) 두께의 미세한 표면을 코팅하는 방식으로 작고 가벼운 반도체를 개발한다. 반도체에서 중요한 부분은 전기가 통하는 가장 바깥에 있는 껍질이며 이것을 연구하면 다른 물질과의 반응성, 흡착력, 부도체였던 반도체가 전기를 통하는 도체가 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에너지를 알 수 있다.
같은 탄소라도 배열 구조에 따라 흑연이나 다이아몬드가 될 수 있듯이 반도체도 구성 성분의 종류와 배열, 결합 상태에 따라 그 가치와 특성이 다르다. 따라서 반도체 표면의 특성을 자세히 밝혀낼수록 지금 개발된 것보다 더 우수한 반도체를 만들 수 있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부산센터에서 표면물성분석 전문화를 이끌고 있는 원미숙 박사는 “표면분석이 필요한 재료는 반도체 외에도 하이브리드 신소재, 산화물 박막, 나노 분말 등이 있다”며 표면분석을 이용하면 지금보다 우수한 신소재를 개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표면에 어떤 성분이 신소재의 특성을 방해하는지 알면 그것을 제거해 개선할 수 있고, 불순물의 농도가 높아 저항이 높아졌다면 불순물을 없애 저항이 낮은 물질을 개발할 수 있다.
원자 30층 분석한다
표면분석은 물질의 가장 겉에 있는 원자 30층 정도를 분석하는 일이며 이는 머리카락 두께의 1만 분의 1인 10nm 정도를 말한다.
표면분석장비는 시료 표면에 전자빔이나 X선, 또는 이온빔(일차이온)을 쏴 원자들과 상호 작용시킨다. 일차이온은 원자와 충돌하면서 수천 V의 에너지를 시료 표면에 전달한다. 이때 튀어나오는 전자와 광전자, 이온(이차이온)을 분석해 에너지와 질량, 세기를 측정하면 표면에 존재하는 원자의 양과 종류를 알 수 있다. 원자에 따라 만들어지는 이차이온이 다르기 때문이다.
원 박사는 표면분석장비 중에서 대표적인 장비로 세슘(Cs+)이나 산소(O-, O2+)이온을 이용하는 이차이온질량분석기(SIMS)를 들었다. SIMS는 이온빔(일차이온)이 지름 5㎛(마이크로미터, 1㎛=10-6m) 이하가 되게 한 점으로 모아 시료에 쏜다. 한 번에 볼 수 있는 영역이 최대 5㎛라는 말이다.
SIMS를 이용하면 고체 표면에 불순물이 섞였을 경우, 불순물이 어디에 있나 찾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불순물이 시료에 미치는 영향까지도 알아낼 수 있다. 원 박사는 그 사례로 LED의 표면분석을 소개했다. 푸른색을 띠는 LED는 갈륨 질화물(GaN) 반도체 안에 마그네슘 불순물을 주입해 빛을 내게 만든다. 그런데 갑자기 다량의 불량품이 생산돼 그 원인을 SIMS로 분석해보니 마그네슘 불순물을 넣을 때 불필요한 수소 불순물까지 들어가 제품의 질이 떨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국내 최고의 표면분석장비 나노SIMS
하지만 SIMS는 분석할 물질이 마이크로 단위보다 작으면 분석 능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부산센터에서는 지난 5월, 기존 SIMS의 분석 정확도와 이미지 기능을 크게 개선한 나노SIMS(nanoSIMS, 초미세 이차이온질량분석기)를 국내 최초로 도입해 이번 달부터 본격적인 가동을 시작한다. 나노SIMS는 이온빔을 지름 50nm 이하의 한 초점으로 집중시킨다.
카메라 화면에 픽셀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이미지 해상도가 높아 어떤 물체를 찍었는지 정확히 알 수 있듯이, 기존 SIMS에 비해 나노SIMS는 50nm 정도의 미세한 불순물도 정확히 분석할 수 있다. 게다가 나노SIMS는 표면을 구성하는 원자의 성분 분석은 물론 분포까지 알아내 이미지맵을 그린다.
원 박사는 “나노SIMS는 100분의 1amu(원자질량의 단위, 1amu는 탄소 질량의 로 정의) 정도의 작은 질량차도 정확히 구분해낸다”고 밝혔다. SIMS는 이차이온의 질량을 측정해 성분을 분석하기 때문에 질량을 정밀하게 측정하는 일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원자 질량이 28amu인 규소 2개가 결합한 분자의 질량은 이론상 철의 원자 질량(56amu)과 같다. 하지만 규소 분자와 철의 정확한 질량은 각각 55.9538과 55.9349다. 그래서 정확한 질량을 구하지 못하면 측정한 물질이 규소인지 철인지 알 수 없다. 만약 입자의 양이 아주 미세하다면 기존 SIMS로는 이것이 철인지 규소인지 알 수 없다. 나노SIMS는 철과 규소가 가지는 0.0189amu의 질량 차도 정확하게 구분한다.
원 박사는 “기존에 사용하던 SIMS와 이번에 도입한 나노SIMS는 모두 국내 최고 수준의 표면분석장비”라며 “부산센터에서는 신소재의 특성을 향상시키려고 노력하는 과학자들을 위해 표면분석 장비들을 이용한 표면분석 지원을 더욱 활성화시킬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