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선을 이용, 분자구조를 해명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무한하다. 생체분자의 구조를 밝혀 생명의 신비를 풀기도 하며 신약, 효소 등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사람의 육안으로는 0.1mm 이상의 크기를 갖는 물체를 식별할 수 있다. 그러나 현미경의 도움을 얻으면 수십 마이크로미터(${10}^{-6}$m) 이상의 크기를 갖는 물체, 예로 미생물 등을 관찰할 수 있다.
생명체를 구성하고 있는 유기분자들은 이보다 1천배 이상이 작다. 전자현미경의 도움을 얻으면 커다란 생체 분자들의 대략적인 모양을 관찰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분자를 이루고 있는 원자들의 분자 내 배열은 볼 수 없다. 마치 산은 멀리서 보이나 나무들이 자세히 보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렇듯 미시적 세계를 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분자 그 자체는 생명체가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생명체의 공통적인 특징인 자기복제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체 분자들은 각기 고유의 기능을 갖고 있고 여러 종류의 분자들이 함께 모였을 때 생명 현상을 나타내게 된다.
각 분자들의 고유기능은 전적으로 분자의 3차원적 구조에 의해 결정된다. 이는 마치 자동차의 각부품의 역할이 그 모양새, 즉 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생물분자의 구조를 알면 그 기능의 정확한 이해가 가능하게 되고, 생체 분자의 3차구조를 아는 것은 생명과학에 중요한 기여를 한다.
다행히 생체분자의 3차원적 원자 배열까지 알아낼 수 있는 실험적 방법이 있는데 이는 X선결정학 방법과 핵자기분광법(NMR Spectroscopy)이다. 이 두 방법 모두 분자구조를 현미경과 같이 직접 볼 수 있게 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 통해 알아낸 분자 내의 원자 배열 정보를 근거로 분자 모형을 제작하거나 또는 컴퓨터 그래픽 기법으로 3차원적 형상을 만들어 육안으로 분수 있다(그림1).
이 글에서는 X선을 사용하여 생체 고분자의 3차 구조를 밝히는 방법과 분자구조의 정보가 생명과학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를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X선 결정학
X선을 이용해서 분자구조를 밝히려면 분자의 단결정(單結晶)을 만드는 것이 거의 필수적이다. 결정이란 구성 물질이 규칙적인 3차원적 배열을 하고 있는 고체이다. 구성물질은 소금의 결정에서처럼 ${Na}^{+}$과 ${CI}^{-}$과 같은 이온일 수 있고 단백질 결정에서처럼 거대한 단백질분자일 수도 있다. 결정 내의 규칙적 3차배열 패턴의 최소 단위를 단위세포(unit cell)라 한다. 3차원적 결정에서 이는 6면체이다.
단위세포들을 축 방향으로 무한히 인접시켜 놓은 것이 결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를(그림2)에 나타냈다. 현미경 하에서 볼 수 있는 단백질 결정(이는 인간의 인지질 분해 효소 단백질의 결정임)의 실제 사진 모습이(그림3)이다. 다른 모든 결정과 마찬가지로 매끄러운 면들을 갖는 것을 볼 수 있다.
생체분자의 단결정 제조 방법의 원리는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다. 원하는 생체분자를 생화학적인 방법으로 순수 분리하며 과포화 상태로 농축하면 자신들끼리 서로 합쳐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 여기에 이온 강도를 높이는 화합물들(예로 소금과 같은 염)이나 생체 분자를 둘러싸고 있는 물 분자들을 빼앗는 화합물들(예로 polyethyleneglycol)을 첨가하면 생체 분자들 간의 상호 인력이 증가한다. 이 때 분자들이 일정한 배열 양상을 갖고 합쳐지면 결정이 되고 불규칙적으로 합쳐지면 침전물 또는 비정질이 된다.
X선은 전자기파로서 전기장과 자기장이 서로 직각 방향으로 파동 운동을 하면서 나아간다. ${10}^{-9}$m의 파장을 갖는 X선의 경우 초당 약 3 X ${10}^{17}$ 번의 파동을 보인다. 그러므로 X선이 어떤 물체를 지나가면 구성 입자들은 파동치는 전기장에 놓이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전하를 띤 입자(예를들면 전자)들은 전하량과 전장의 세기를 곱한 크기의 힘을 받게 된다. 그런데 전장이 파동을 치면서 바뀌기 때문에 전자가 받는 힘의 방향이 계속 바뀌어 전자 역시 파동을 친다.
파동을 치는 입자는 전자기파의 광원이 되며 모든 방향으로 X선을 발생시키는데 이를 산란파(scattered wave)라고 한다. 핵은 상대적으로 무거워 파동치는 정도가 극히 미미하기 때문에 X선 산란 강도는 상대적으로 매우 작다. 결국 X선은 전자에 의해 산란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X선을 조사하면 결정 내 전자들이 모든 방향으로 X선을 발생시키는 산란 현상이 일어난다(Thomson scattering).
빛의 간섭효과와 결정 내의 규칙적인 원자배열 때문에 조사되는 X선의 방향에 대해 특정 방향으로 산란되는 파들만이 건설적으로 간섭하여 파의 강도가 증폭되는데 이를 X선 회절선이라고 한다. 그 외의 방향으로는 파괴적으로 간섭하여 회절선이 나타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단결정의 X선 회절 양상은 연속적인 것이 아니라 비연속적으로 감광되는 점들로서 X선 감지판에 나타난다. 그 전형적인 양상을 (그림5)가 보여주고 있다.
X선 회절 양상과 각 회절선의 강도는 결정을 이루고 있는 분자 배열과 분자 내부의 원자 배열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분자구조의 정보를 가지고 있다. 분자를 구성하는 원자들은 화합결합으로 서로 연결돼 있다. 화학결합이란 핵들이 서로 상대방의 전자들을 공유하고 있는 상태이므로 분자를 화학결합을 따라서 형성된 연속적인 전자구름 띠로 생각해 볼 수 있다.
X선은 전자에 의해 산란되기 때문에 X선 회절 양상과 그 강도를 분석하면 결정 내부의 전자 밀도 지도(electron density map)를 얻을 수 있다.
수학적으로 X선 회절 양상과 전자 밀도는 푸리에 변환(Fourier transform)관계에 있다. 전자 밀도 지도를 따라가면서 그 모양을 보고 분자 구성 원자들을 컴퓨터 그래픽 상에서 맞추어 넣으면 결국 분자구조가 결정된다. 이를 (그림4)가 보여주고 있다.
생명과학의 필수도구
인체 또는 다른 생명체들에 존재하는 단백질과 같은 여러 생체 분자들의 구조는 결국 생명현상의 고차원적 이해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규명된 분자구조로부터 생체 분자의 각 특성을 해석하고 나아가 그 이용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을 구조생물학이라고 한다.
분자구조가 제공하는 약 4가지 정보 유형을 이해하면 구조생물학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첫 번째가 생물 분자구조와 기능의 관계에 대한 해답이다. 예로 왓슨과 크릭이 밝힌 DNA의 2중나선 구조로 인해 비로소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DNA분자가 갖는 유전 기능의 정확한 이해가 가능하게 됐다. 그들은 DNA 분자가 두 가닥의 DNA 사슬이 서로 상보적으로 수소결합을 하고 있는 구조라는 것을 밝혔다. 수소결합은 원자간의 약한 결합으로서 쉽게 끊어져 두 가닥의 DNA 사슬이 서로 풀릴 수 있다. 이런 상태에서 각 사슬을 주형(鑄形)으로 하여 상보적인 사슬 하나가 각각 만들지면 두개의 동일한 2중나선이 생성된다. 이중의 하나가 자손에게 전달되므로 DNA의 유전 기능이 명백하게 이해될 수 있다.
두번째가 생체분자 중 화학반응을 촉매시키는 기능을 갖는 효소 단백질의 작용기전에 대한 해답이다. 효소촉매작용이란 효소의 일부분에 해당하는 활성 부위에서 몇개의 아미노산들이(경우에 따라서는 조효소 및 금속 이온도 포함) 협력적으로 기질 분자에 작용하여 화학반응이 쉽게 일어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효소의 분자구조를 밝히면 활성 부위에 있는 아미노산들의 정확한 공간 배열을 알 수 있으므로 기질에 대해 어떻게 화학반응이 시작이 되며 중간 생성물이 안정화되고, 또 화학반응의 종료가 되는지를 원자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세번째는 신약개발을 가속화시킬 수 있는 구조적 정보이다. 치료약이란 일반적으로 질병과 관련된 생물고분자의 활성 부위에 접착함으로써 생체 내에서 기능을 못하게 하는 화합물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생체 고분자의 3차 구조를 밝히면 그 활성 부위의 정확한 모양을 알 수 있으므로 활성 부위에 열쇠와 자물쇠처럼 들어맞고 정전기적으로도 상호 보합되는 화합물을 고안한 후에 합성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종전에 수천종의 화합물에 대하여 무작위 탐색 방법으로 저해제를 찾는 신약개발 방식에 비해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대표적인 예가 에이즈(AIDS)바이러스가 생성하는 단백질 절단효소의 저해제를 이의 분자구조를 이용하여 개발하려는 노력이다. 이 효소는 에이즈바이러스 증식에 필수적이어서 에이즈 치료의 표적이 되어 왔다.
네 번째가 공업적으로 이용되는 여러 효소 단백질들(industrial enzymes)의 기능성 향상이다. 효소의 화학반응 촉매 기능 때문에 공업적으로 사용되는 것들도 있다. 효소 단백질의 공업적 이용은 대개 생물적 환경과는 크게 동떨어진 환경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내열 내압 또는 내화학성 성질 등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세탁 효율을 높이기 위해 세탁제에 첨가되는 단백질 절단효소가 갖추어야 할 특성이 내열성과 내화학성이다.
현재는 단백질의 아미노산을 마음대로 바꾸어 새로운 변종 단백질을 쉽게 만들 수 있는 생물학적 기술이 널리 쓰이고 있다. 단백질 효소의 구조를 알면 아미노산 치환으로 효소 활성부위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내열성 또는 내화학성 등이 향상된 변종 단백질을 고안할 수 있다. 이렇게 극한 상황에 견디는 효소 단백질들은 앞으로 유지공업 전분공업 석유공업 등에 더욱 널리 사용될 것이다.
이와같이 X선을 이용하여 분자구조를 규명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많다. 생명과학에 응용하는 분야외에도 X선을 이용하면 생체 분자들이 그 기능상 커다란 구조 변화를 일으키는지를 알 수 있고, 생물 분자에 함유된 금속이온들의 산화상태, 이와 상호 작용하는 원자들의 정보(숫자거리 등)도 알아낼 수 있다.
또한 약한 X선을 사용하는 X선 현미경학분야에서는 면역학적 기법으로 생물 시료를 처리한 후 X선을 조사하여 생물시료의 상(像)을 합성하기도 한다. 이렇듯 X선은 병원에서 흔히 쓰이는 X선 촬영 외에도 생명과학에 커다란 공헌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