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2. '오즈마'에서 '페닉스'까지 본격탐사 발자취

1960년 오즈마계획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지구밖문명체 탐사가 시작됐다. 오즈마에서 페닉스계획까지 우주인찾기 35년의 역사를 살펴본다.

1960년 미국 동부 웨스트버지니아주 그린뱅크시에 있는 국립전파천문대에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의미있는 일이 시작됐다. 이름하여 '오즈마계획'. 그것은 바로 우주인을 찾는 일이다. 1900년 독일인 바움이 지은 '오즈의 마법사'라는 동화 속에 등장하는 여왕의 이름을 따 붙인 이름이다.

이 천문대에는 렌즈나 거울로 된 광학망원경은 없고 지름이 26m나 되는 커다란 원형 접시안테나가 자리잡고 있다. 이를 보통 전파망원경이라 한다. 광학망원경이 우주에서 오는 약한 빛(가시광선)을 포착한다면 전파망원경은 우주공간에서 오는 전파(radio wave)를 잡아내는 망원경이다.

오즈마계획의 책임자는 프랑크 드레이크 박사. 하버드에서 천문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코벌대학과 국립전파천문대에서 전파천문학의 대부로서 활약하다가 외계문명이 존재한다면 반드시 전파를 사용하여 외부 세계와 교신하려 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오즈마 계획을 출범시켰다.

드레이크 박사는 관측 목표를 고래자리 타우별(τCeti)과 에리다누스자리 엡실론별(εEridani)에 맞추었다. 타우 세티는 태양에서 11.8광년 떨어진 거리에 있는 별로서 태양질량의 0.87배이며, 엡실론 에리다니는 10.8광년 거리에 질량은 태양의 0.81배이다. 이 두별이 지구밖문명의 후보로 떠오른 것은 궤도가 진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행성계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오즈마팀은 먼저 타우 세티에 초점을 맞추고 3개월에 걸쳐 관측을 계속했으나 안타깝게도 특징있는 전파를 잡을 수 없었다. 두번째로 엡실론 에리다니의 관측을 시작하고 얼마 있지 않아 강한 전파를 포착하고 천문학자들이 며칠간 소동을 벌이기도 했으나 전파망원경 주위를 날던 비행기가 원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오즈마계획은 일단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관측시간이 4백시간에 불과하고 단 두개의 별에서만 진행됐던 탐사라는 것을 고려할 때 이 계획의 실패가 바로 지구밖문명의 가능성을 부정한다고 할 수는 없다.

외계인찾기 4단계

본격적인 SETI(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계획은 오즈마로부터 시작했지만, 그 이전에도 외계인찾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드레이크 박사는 지구밖문명체탐사의 역사를 4단계로 나눈다. 먼저 고대의 철학자들은 지구상의 생명이 유일한가를 놓고 사색했지만 과학적 탐구를 했던 것은 아니다.

다음 단계는 19세기 영국의 천문학자인 F.W.허셸의 관측에 의해 다른 별도 우리 태양과 똑같은 천체임이 밝혀짐에 따라 지구 이외의 천체에도 문명체가 존재할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한 시기.

1820년 독일의 유명한 수학자인 칼 가우스는 시베리아와 같은 넓은 대지에 보리를 심어 기하학적 도형을 묘사한다면 지구밖문명체가 이 도형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그는 덧붙여 기하학적 도형이 직각삼각형이라면 외계인에게 인류가 피타고라스정리를 알고 있다는 사실도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밖에도 사하라 사막에 큰 웅덩이를 파고 불을 지르는 방법, 커다란 반사거울로 북두칠성의 배열을 해 신호를 전달하는 방법들이 활발하게 제안됐다(그림1).

1899년에는 미국의 전기공학자인 니콜라테스라는 우주로 의도적인 전파를 보내기 위해 콜로라도주의 스프링스에 거대한 무선 송수신기를 건설하기도 했다. 또한 1922년 무선통신의 발명자인 이탈리아의 다이엘모 마르코니는 지구에서 발생하는 전파의 간섭이 일어나지 않는 대서양한가운데 배를 띄워서 우주로부터 오는 전파신호를 받으려고 노력했다. 물론 이들은 나름대로의 전파신호를 수신했지만 이것은 분명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자연전파였을 것이다.

드레이크 박사는 1900-1925년 사이를 우주인찾기의 퇴보기로 보고 있다. 이 시기는 바로 미국인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이 화성에 생명체가 존재하는 증거로 제시한 운하 모양의 지형이 화제가 돼, 인류와는 머리 모양부터 다른 화성인이 매스컴에 자주 등장했다. 특히 H.G.웰즈의 소설 '우주전쟁'에도 화성인이 추워지는 화성을 탈출해 지구를 침략하는 내용이 소개돼 우주인이 초미의 관심사였던 시기이다. 그러나 60년대 미국의 화성탐사선 마리너호 등이 화성 표면의 사진을 보내오면서 화성이 고등생물이 살았을 만한 환경은 아니라는 것이 명확해졌다. 드레이크 박사가 이 시기를 우주인 찾기의 퇴보기로 본 것은 일부에서 과학적 근거도 없이 화성인의 존재를 떠들어 대중들에게 잘못된 기대감만 부풀렸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1950년대 말 우주시대가 개막되면서 기술 진보에 따른 체계적인 지구밖문명체 탐사가 진행됐다. 그것의 출발이 바로 오즈마계획. 이때 부터 SETI란 용어가 자연스럽게 사용됐으며 본격적인 3세대 우주인탐사가 시작된 것이다.
 

(그림1)19세기에 제안된 외계인과의 교신방법


SETI 전용 안테나

1970년대에는 다양하게 SETI계획이 추진됐다. 1971년 NASA와 미국공학교육협회가 돈을 대, 지구밖문명체 탐사에는 어떤 기술이 필요한가를 검토하는 특별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이 프로그램의 결론은 인류는 이미 필요한 기술을 확보했다는 것. 마이크로파(1-10㎓)를 사용하는 지름 1백m의 거대한 지상형 위상차안테나(phased antenna, 기계식으로 움직이지 않고 목표를 자동 추적하는 안테나로 동시에 여러 개의 천체를 관측할 수 있음)를 1천5백대 가량 연결해 건설한다면(어레이형) 충분히 외계에서 오는 전파신호를 수신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이는 예산상의 문제로 탁상 계획에 머무르고 말았다.

1971년에는 지름42m짜리와 90m짜리를 연결해 9개의 별을 13시간에 걸쳐 탐사한 계획이 있었고, 1972년에는 '오즈마2'라 불리는 4개년 계획이 시작됐다. 오즈마2 계획에서는 5백시간에 걸친 탐사를 통해 6백74개의 별을 조사했다.

1973년에는 처음으로 SETI 전용의 안테나가 오하이오주립대학에서 가동되기 시작했다. 이 망원경은 하늘의 두방항을 추적하여(2빔 방식) 중심선이 약간 어긋나는 시야를 자동적으로 비교하는 시스템을 갖추었으며, 우주공간에서 가장 보편적인 전파로 알려진 수소신 전파(파장이 21㎝이기 때문에 일명 21㎝ 전파라고도 함)를 수신했다. 이 안테나는 흥미있는 신호를 몇번 포착했지만 재차 신호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현재 이 안테나는 탐사대상을 '물의 구멍'이라 불리는 수소(H)선과 수산기(OH)선 사이의 1천4백-1천7백㎒ 전체 영역으로 확대해 관측을 계속하고 있다.
 

과거 화성에 물이 흘렀던 자국이 선명하게 보인다.


지구인의 메시지

외계인이 보내는 신호를 받는 일 이외에 지구인의 메시지를 외부 세계로 보내는 일도 진행됐다. 1972년과 73년에 쏘아올린 무인탐사선 파이어니어 10, 11호에는 우주인에게 보내는 그림엽서가 도금된 알루미늄판에 새겨졌다. 미국 행성천문학자이며 '코스모스'의 저자인 칼 세이건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이 그림엽서(18×22㎝)에는 남녀 나체상과 태양계 속에서의 파이어니어 궤도, 수소의 원자구조 등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세이건의 아내인 린다가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1977년의 보이저호에는 LP레코드판이 실렸는데, 여기에는 다양한 지구의 소리가 녹음돼 있다. 파도 소리, 개구리 울음 소리, 아기우는 소리, 암스트롱의 트럼펫 소리, 각국의 국가, 베토벤의 운명교향곡, 바하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등이 녹음돼 있어 만약에 외계인이이 레코드판을 입수한다면 지구인이 살아가는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림엽서와 레코드판을 외계인이 받아볼 확률은 거의 없는 것으로 예측된다. 파이어니어호와 보이저가 태양계 밖에 나가서 항진을 계속한다고 해도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별인 켄타우리에 도착하는데 10만년 이상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구인의 메시지를 우주선에 실어보내는 방법은 상징적인 이벤트 이상은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다.

1974년 11월에는 지상 최대(지름 3백m) 전파망원경이 푸에르토리코 아레시보에서 정상 가동됐다. 이날을 기념하여 드레이크 박사는 의미있는 지구인의 메시지를 외계로 날려보냈다. 목표는 헤르쿨레스자리 구상성단M13로 여기에는 태어난지 1백억년 된 나이든 별들이 밀집돼 있다. 0과 1로 이주어진 이 디지털신호(23×73=1679개)를 해독하면 지구에 관한 다양한 정보가 만들어진다. 즉 DNA 이중나선구조와 인간의 신장, 지구인구(당시40억), 태양계의 구조, 아레시보안테나의 지름 등이 바로 그것이다. 송신시간은 약 3분.

1976년에는 SERENDIP라는 특수 탐사장치가 만들어져 전파안테나에 부착돼 탐사의 정밀성을 높이는데 기여했다. 80년대 중반에는 하버드 대학의 호로비치 교수 등이 중심이 돼 META라는 아주 좁은 영역의 전파를 탐사하는 장치들이 잇따라 개발됐는데, 90년대 초반에는 의미있는 강력한 신호가 포착됐을 때 자동적으로 그것을 재탐사하는 시스템도 선보였다.

SETI 역사의 4단계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 한지 5백주년 되는 1992년10월12일에 시작됐다. 이날 시작된 '고분해능마이크로파 탐사' 계획은 30년 동안 진행된 SETI 계획의 교훈을 기초로 NASA와 전파천문학계의 힘을 결집해 전세계적인 협동탐사를 수행하는 것이다. 기간은 10년으로 2001년까지를 목표로 삼았다.
 

(그림2)통신 가능한 주파수 영역


용두사미가 된 NASA 프로젝트

이 프로젝트는 전천탐사(sky survey)와 표적탐사(targeted search)로 나뉜다. 전천탐사는 전체 하늘을 샅샅히 탐색하는 것으로 1-10㎓ 영역을 20억채널로 나누어 진행될 계획이었다. 즉 아주 좁은 영역의 신호를 탐지하고, 지구에서 유래된 신호에 의한 간섭을 배제하는 것을 최대의 목표로 내세웠다. 이를 위해서 전세계에 퍼져 있는 전파망원경을 네트워프로 연결, 우주에서 오는 신호를 보다 체계적으로 획득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표적탐사 또한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구에서 80광년 내에 있는 1천개의 별을 선정해 1-3㎓ 영역을 20억개의 채널로 분류하여 탐사를 진행할 계획이었다. 이 계획이 정상적으로 진행됐다면 단 한시간만에 이때까지의 SETI계획에서 얻은 모든 정보보다 많은 것을 얻었을 것이다.

칼 세이건은 기념식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번 일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진행될 것이다. 만약 이 탐사에서 지구밖문명체가 존재한다는 어떠한 징후도 찾을 수 없다면 우리 인류는 광활한 우주 가운데 아주 희귀한 지적생물체임을 증명하는 것이 될 터이고, 만약 어떠한 교신이라도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발견을 하게 될 것이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이 계획은 큰 의미를 가진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93년 10월 1년만에 NASA의 예산 삭감으로 중지되고 말았다. 1993년 8월 화성에 도착할 예정이었던 마르스옵서버가 실종되는 바람에 이를 대신할 화성탐사기 개발에 예산을 뺏겨버린 것이다.

이제 외계인 찾기는 당분간 민간 차원에서 진행될 수밖에 없다. 기존의 META나 SERENDIP 시스템이 성능을 향상시키면서 작동되고 있으며, 드레이크 박사가 소장을 맡고 있는 SETI연구소에서 새로운 페닉스 계획을 진행시키고 있다. SETI연구소에서는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출신의 여성과학자 질 타터가 가세해 10년 계획의 페닉스 프로젝트를 구체화시키고 있다.

페닉스 계획은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주의 팍스 전파망원경과 같은 주에 있는 모퓰러 전파망원경 두대를 이용해 탐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두 망원경을 쓰는 이유는 한쪽에서 수신된 신호가 과연 의미있는 신호인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두 전파망원경은 16주일 동안 약2백개를 탐사할 예정이다. 이곳에서는 남반구 하늘의 별만을 관측하게 되므로 남반구 관측이 끝나는 대로 1996년부터는 적도지방의 아레시보망원경, 1998년부터는 북부지방의 프랑스 낭세이망원경과 그린뱅크망원경을 가동할 계획이다. 아레시보망원경에서는 적도지방의 2백개 별, 낭세이와 그린뱅크망원경에서는 북만구 별 6백개를 탐사한다.

현재 SETI 계획에 대해서 두가지의 비판이 가해지고 있다. 그 하나는 생명체의 진화란 지극히 특수한 우연적인 사건에 의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우리은하내에 지적문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는 견해이며, 다른 하나는 매우 현실적인 문제로 SETI의 의미는 인정하지만 과연 그것이 거액의 돈을 들여 진행할 만큼 우리 인류에게 유익할 것이냐는 점이다. 설혹 지구밖문명이 존재하더라도 우리가 그들의 신호를 수신할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에 헛돈을 쓰는 결과 이상이 아니라는 비판.

이러한 비판에도 많은 과학자들은 SETI 계획이 어떠한 형태든 지속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 탐사한 지역이 전체 하늘에 비해 아직 너무 좁은 공간에 불과하며, 탐사시간도 한정돼 있었다는 점. 의미있는 신호를 포착하기에는 투자한 노력이 너무 적었다는 뜻이다. 이는 몇시간 외국어 공부를 하고 외국인과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투정을 부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보다 더욱 본질적인 이유는 외계인과의 교신이 가져다줄 새로운 지식체계가 지금까지 인류가 쌓아온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일 것이라는 가능성 때문이다. 그것이 어떤 비약을 가져다 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인간에 대한 기본적 이해에서부터 우리가 수십년 후에나 가능하다고 본 여러가지 과학기술의 난제가 하루아침에 풀릴 수도 있다.

또하나 비록 외계인찾기가 실패하더라도, 대부분의 과학기술연구가 그러했듯이 생각지도 못했던 소득이 생길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전자파와는 또다른 중력파와 같은 통신수단이 생겨 인간의 인식능력이 대폭 향상될 수도 있고, 인류가 지금까지 찾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는 암흑물질의 존재를 확인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호기심은 결코 낭비가 될 수 없다. 호기심이 없었으면 우리는 지금도 나무열매나 풀뿌리를 뜯으면서 동굴에서 생활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1995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동아일보사 편집부

🎓️ 진로 추천

  • 천문학
  • 전자공학
  • 컴퓨터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