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과 필리핀에서 숨쉴 사이 없이 터져 나오는 화산분출. 기후학자들은 화산이 기후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이번 기회에 확실히 알아내려고 벼르고 있다.
1980년대 초의 어떤 저녁 해질 무렵. 수평선을 바라보다 평상시의 붉은 빛 대신 보랏빛 놀을 본 많은 멕시코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기도 하고, 한편 무슨 큰 변화라도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 섞인 호기심을 갖기도 했다. 이같은 일은 1982년 3월과 4월에 멕시코의 엘 치촌(El Chichon)화산이 분출을 일으킨 후 1982년과 1983년에 걸쳐 자주 일어났는데 여러 학자들은 보라빛 놀이 엘 치촌 분출의 영향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보았다.
6월에 눈이 내리고
지구의 기후는 지구궤도 요소의 변동이나 태양에너지 변동과 같은 외적 요인에 의해 변할 뿐만 아니라, 대기중의 탄산가스 메탄 에어로졸 등 구성성분들의 양적 변화와 같은 내부적 요인에 의해서도 변화한다. 내부적 요인은 또 인위적 요인과 자연적 요인이 있는데 전자에 해당하는 것이 온실 기체량 증기에 따른 지구 온난화와 핵겨울 등이고 후자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것이 화산분화로 인한 기후변동이다.
화산분출의 기후에 대한 영향은 국제적 기상관측망이 생기기 전부터 기록돼 오고 있다. 1815년 4월 5일 인도네시아 숨바와(Sumbawa)섬에서 발생한 탐보라(Tambora) 화산의 폭발은 그 주변은 물론 5백㎞ 거리의 지역까지 3일간 어둠에 잠기게 한 보기드문 대폭발로 역사에 기록되고 있다. 이 폭발이 있은 다음 해인 1816년은 '여름이 없었던 해'(the year without summer)로 일컬어질 정도로 전세계 여러 지역에서 추운 여름이 나타났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예로 이 해의 6월 상순에 미국 동부지역은 한파의 내습으로 인해 차가운 폭풍이 몰아닥치고 농지가 얼어붙고 눈이 내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화산폭발 후 1,2년 동안의 기온저하는 이미 1784년 프랭클린(B. Franklin)이 지적했던 것이다. 그는 1783~1784년 사이의 겨울이 특히 혹독했던 이유가 1783년 아이슬랜드의 래키(Laki)화산이 폭발한 후 장기간 하늘을 덮고 있던 '건조한 안개'때문일 것으로 생각했다.
전지구적 기상관측망의 설치가 시작되던 1850년대부터 현대적 관측장비로 대기관측을 하는 현재까지, 많은 연구들이 기후에 대한 화산분출의 영향을 정량적으로 평가해 오고 있다. 그중 상당수 연구들은 화산분출의 영향을 성층권 기온상승 그리고 지표에 도달하는 일사량의 감소와 그에 따른 기후변화로 보고 이들에 대해 연구를 집중해 왔다.
화산분출에는 유출성 분출(effusive eruption)과 폭발적 분출(explosive eruption), 두가지 유형이 있다. 그중 유출성 분출은 '용암이 넘쳐 흐른다'는 표현으로 분출유형이 특징지워질 수 있다. 반면 폭발적 분출은 분출물이 연직방향으로 강하게 내뿜어지면서 액체 또는 화산재의 고체형태로 대기중 높은 곳까지 도달하는 것이 특징이다. 전자에 해당하는 것으로는 하와이의 킬라우에아(Kilauea)화산 분출을 들 수 있다.
후자에 해당하는 것들로는 세인트 헬렌(Saint Helen)화산과 엘 치촌화산 등을 들 수 있다. 기후학적으로 중요한 경우는 그 영향이 전세계적으로 비교적 장기간에 걸쳐 나타날 수 있는 폭발적 분출이다. 그에 비해 유출성 분출의 기후에 대한 영향은 국지적이다.
폭발적 분출은 막대한 양의 분출물을 폭발 후 1,2시간 내에 대기 높은 곳까지 유입시켜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1970년 5월 아이슬랜드의 헤클라(Hekla)화산은 한시간 내에 분출물을 16㎞ 고도까지, 그리고 1982년 3월과 4월에 분출한 엘 치촌화산은 분출물을 20~25㎞ 고도까지 올려 놓았다.
화산 분화시의 분출물은 주로 화산재 수증기 탄산가스 아황산가스 황화수소 등이다. 그중 앙황산가스나 황화수소는 곧 대기중에서 반응, 작은 황산염 에어로졸이 된다. 대기중에 유입되는 화산재 등 분출물의 부피는 1㎦ 정도지만 그 이상도 될 수 있다. 1883년 인도네시아의 크라카토아(Krakatoa)화산이 폭발한 수시간 후 화산으로부터 2백50㎞ 떨어진 자바의 반둥(Bandung)시 하늘은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화산재 때문에 매우 캄캄해졌다고 한다.
화산에서 분출돼 상승하던 분출물들은 상향 운동량을 다 쓰고 나면 상승을 멈추고 하늘에서 떠다니거나 지면으로 낙하하게 된다. 먼지입자들의 대기중 체류기간은 입자크기와 고도에 따라 달라진다. 대체로 큰 입자들은 수주 내에 지표로 떨어지고 결과적으로 미세한 입자들만이 남게 된다. 미세한 입자들도 대류권 내에 있으면 비 또는 눈에 의해 며칠 안돼 지면에 도달한다.
반면 미세입자들이 구름과 비 등이 없는 성층권에 있게 되면 그 입자들은 낙하속도가 매우 늦어 수년간 체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정지하고 있는 대기층에서 직경 2㎛의 입자가 30㎞ 고도로부터 12㎞ 고도(대류권계면 고도 부근)까지 낙하하는 데도 36주 정도 소요되나, 성층권 에어로졸의 보편적 크기인 직경 0.5㎛의 입자는 같은 거리를 낙하하는 데 11.3년이나 걸린다.
성층권에 유입된 미세한 화산재나 황산염 등과 같은 화산성 에어로졸은 성층권 바람을 타고 수평으로 퍼져 나가는데 중위도와 저위도에서는 2~6주 정도면 지구를 한바퀴 돌고, 1~4개월이면 그 위도대를 고르게 덮는다. 흔히 이같은 것을 먼지막(dust veil)이라 부른다. 그런데 각 반구의 위도 30°이상의 지역에서 유입된 화산재는 저위도로 퍼져 나가기가 어려운 편이나 저위도 성층권에 유입된 화산재는 남북방향으로 퍼진다. 이 화산재가 상대적으로 빨리 퍼져 나가 1년 정도 체류하게 되면 반구 전체에, 2년 정도 체류하게 되면 전지구에 먼지막이 덮일 것으로 생각된다. 실례로 1963년 인도네시아 발리섬의 아궁(Agung) 화산(남위 8.5°, 동경 115.5°)의 폭발이 있은 후 2년 이상에 걸쳐 남극이나 북반구 고위도 지점에서 화산성 에어로졸이 관측됐다.
태양복사에너지가 감소되고
화산분출에 의해 성층권 대기에 유입된 화산성 에어로졸은 대기중에 광범위하게 장기간 떠다님으로써 기후에 영향을 주게 된다.
대기중에서 에어로졸은 태양광선의 산란체 역할을 한다. 흔히 지표면에 도달하는 일사량은 직달일사량(대기중에서 산란 또는 흡수되지 않고 지면에 바로 도달하는 일사량)과 산란일사량의 합(전천일사량이라 함)으로 계산된다. 따라서 대기중에 산란체가 많으면 직달일사량은 줄어들고 산란일사량은 대체로 늘어나게 된다.
한편 화산성 에어로졸중 일부(예로 황산염)는 태양에너지의 흡수능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성층권에서 광범위하게 장기간 체류하는 화산성 에어로졸은 산란을 통해 외계로 반사돼 돌아가는 일사량을 증가시킴으로써 지표에 도달하는 일사량을 줄일 수 있다. 태양에너지를 흡수함으로써 통해 성층권 대기를 가열시킬 수도 있다.
1963년 3월 아궁화산이 분출한 후 20㎞ 고도의 기온이 몇 주만에 6℃ 정도 상승했다고 한다.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의 뉴엘(R. E. Newell)은 이런 현상을 보인 이유는 화산성 에어로졸이 태양에너지를 흡수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후 이스라엘 헤브류대학의 노이만(J. Neumann)은 황산염(sulfuric acid droplet)이 근적외선 부분 약 2㎛ 파장의 태양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음을 밝혔다. 그는 또 아궁화산 폭발 후의 성층권 기온상승을 황산염에 의한 태양복사 흡수와 연결시켰다.
그같은 화산성 에어로졸의 태양 복사에너지 흡수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는 동안 1980년 5월에 세인트 헬렌화산이 폭발했다. 그러나 이 화산의 폭발 후에는 아궁화산 폭발 후에 나타났던 성층권 기온의 급상승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후 일부 학자들은 화산성 에어로졸의 태양복사 흡수가 성층권 기온상승을 유발한다는 주장에 다소 회의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다. 반면 다른 일부 학자들은 세인트 헬렌화산에서 방출된 분출물의 양이 작았기 때문에 성층권 기온상승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와 같은 논란중에 1982년 3월과 4월에 멕시코의 엘 치촌화산이 폭발했고, 관찰의 호기를 맞은 학자들은 그후의 성층권 온도변화를 면밀히 살피게 되었다. 그 결과 1983년 8월 세계의 여러 학자들은 열대 성층권 24㎞ 고도의 기온이 4,5℃ 정도 상승했음을 발견했고 그것이 화산분출의 영향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성층권의 기온상승보다 더 장기적이고 광범위한 영향은 지표면에 도달하는 태양복사 에너지의 감소로 나타난다.
화산성 에어로졸로 인한 일사량 감소가 지상기온을 어떻게 변화시키겠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간단해 보이지만 그렇지가 않다. 일사량 감소가 저온화효과를 갖는다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으나 그같은 효과를 실제 지상 기온에서 명료하게 도출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 이유는 지상기온을 지배하는 다른 여러 요인들의 변동에 따른 효과들이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실례로 엘 치촌 분화가 있은 후 1982, 1983년 겨울은 추운 겨울이 될 것으로 학자들은 예상했으나 그같은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추운 겨울이 나타나지 않은 이유로 여러 학자들은 1982, 1983년에 있었던 매우 현저한 엘 니뇨를 들고 있다.
일사량 감소에 따른 기후변동의 좀더 구체적인 면을 보자. 지표에 도달하는 일사량의 감소는 지표온도를 낮추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지면부근의 기온은 하강하게 된다. 특히 해양의 경우 해수면 온도의 하강은 증발량의 감소를 가져오고 결과적으로 대기에 방출되는 잠열의 감소를 초래, 추가적인 기온저하를 일으킬 수 있다. MIT의 뉴엘은 열대해양이 두꺼운 성층권 에어로졸층에 덮여 엘 치촌 이후에 관측된 정도의 일사량 감소가 있다면, 해수면 온도가 1℃ 정도까지 하강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이제 화산분출과 엘 니뇨와의 관계를 언급하도록 하자. 1982년에 엘 치촌 분화가 있은지 몇 달후에 엘 니뇨가 발생했다. 엘 니뇨란 적도를 따라 나타나는 편동풍이 평상시보다 약해지거나 서풍으로 바뀌었을 때 남미 앞바다가 평상시보다 따뜻한 해수로 덮이게 되는 현상인데 1982년 말에 나타난 엘 니뇨는 사상 최대의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학자들은 엘 치촌 분화로 성층권에 유입된 화산성 에어로졸이 적도 태평양 지역의 바람을 서풍계열로 바꾸는데 기여함으로써 엘니뇨의 강화에 일조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화산분출 후의 지상기온 변화에 대해서는 이밖에도 많은 연구들이 행해졌고 이들 중 상당수는 화산분화 후의 지상기온 감소를 보여 주었다. 예를 들어 킴볼(Herbert Kimball)은 1912년 6월 알래스카의 카트마이(Katmai)화산 분화가 있은지 몇 개월 후, 북반구의 월평균 온도가 0.8℃ 감소했다가 그해 12월경 다시 평년수준 이상으로 되돌아오는 이상기상현상을 목격했다. 또 테일러(B. L. Taylor)와 슈나이더(S. H. Schneider) 등은 비교적 큰 화산분화가 있었던 여덟 경우에 대해 조사한 결과, 평균 0.5℃ 정도의 기온감소가 분화 2년 후에 나타남을 보였다.
여러 연구들이 얻어낸 화산분출 후의 지상 기온 저하중 화산분출의 영향이 차지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명료한 설명이 없는 상황이지만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 일치된 견해를 보이는 부분이 있다. 즉 고위도일수록 성층권 에어로졸층의 일사 감쇄효과가 증폭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위도가 커질수록 태양의 고도각이 낮아지고 그만큼 일사가 통과하는 산란체 또는 흡수체의 깊이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운젠산과 필리핀의 피나투보(Pinatubo)산 분출은 이들이 잇따라 진행중이며 우리와 가까운 곳들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관심을 더 끌게 된다. 과연 이들은 전지구적 기후와 동아시아 지역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화산 분출의 특성과 규모 그리고 기상조건 등을 알아야 한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피나투보화산은 폭발적 분출을 통해 지상 20㎞ 상공까지 분출물 일부를 올려 보냈다고 한다.
따라서 그 강도는 고도 25㎞까지 분출시켰던 1982년의 엘 치촌과 비교할 만하다. 또 주위 지역에도 상당량의 화산재를 뿌려 화산으로부터 80㎞정도 떨어진 마닐라의 하늘이 화산재에 덮여 대낮에도 어두울 정도였다고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규모 또한 작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에 비해 일본 운젠화산 분출은 비폭발적이어서 그 연직분출이 성층권으로 분출물을 침투시킬 정도는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분출량과 성층권 진입량에 대한 정량적 정보는 아직 알 수 없다).
이같은 정보에 근거한다면 운젠화산 분출의 기후에 대한 영향은 국지적일 것으로 보이나 피나투보화산 분출은 성층권으로의 화산성 에어로졸 유입을 통해 전지구적 기후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화산폭발이 시작된 6월의 북반구 상층대기는 평균적으로 편서풍 제트가 대략 북위 30℃이북에 위치하고 있으며 피나투보 산위의 성층권에서는 상대적으로 약한 동풍계열의 바람이 분다. 따라서 성층권에 유입된 화산성 에어로졸은 이 흐름을 타고 서진하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프리카 북동지역에서 북상, 편서풍대를 만난 후 편서풍대를 따라 동진하면서 지구를 돌게 될 가능성이 크다. 성층권에서 피나투보 화산성 에어로졸의 확산은 비교적 복잡한 모양을 그릴 것으로 생각된다. 성층권에 유입된 에어로졸량이 엄청나게 많아 먼지막 형성이 진행된다면 지표에 도달하는 일사량의 감소와 성층권의 기온상승을 통해 저온화 등과 같은 기후변동에 따른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물론 이 예상은 성층권에 진입한 화산성 에어로졸량이 무지 많아 지구의 상당부분을 먼지막으로 덮을 때를 전제로 한다.
운젠화산과 피나투보화산 분출의 단기적 영향은 주로 대류권내 분출물의 이동에 따른 낙진과 비에 의한 침적(산성비) 등 환경문제라고 볼 수 있다. 대류권내의 화산분출물은 기류를 따라 이동하면서 낙하, 구름과 비에 의한 세척 등을 통해 그 양이 이동거리에 따라 급격히 줄어들게 된다. 우리나라로부터 약 2천㎞ 떨어진 피나투보 화산분출이 한국의 대기환경에 미칠 영향은 이동중인 구름 비 등에 의한 대기중 에어로졸의 제거율과 분출량 정보의 미흡 때문에 쉽게 평가하기 어렵다.
한편 운젠화산의 경우 용암 분출 외에 상당량의 화산재도 분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거리는 우리나라 남해안으로부터 불과 3백~4백㎞정도로 가까워 대규모 분출과 남서기류가 동시에 있을 때에는 우리나라의 남동부 지역에 그 영향이 미칠 가능성도 있다.
아직은 확실한 이론이 없어
지금까지의 연구들을 정리해 보면 기후에 대한 화산분출의 영향들중 비교적 확실한 결론 두가지를 도출할 수 있다. 즉 지표에 도달하는 전천일사량이 감소하고(비교적 큰 규모의 폭발적 분출시 5~7%까지 감소) 열대 성층권의 기온을 4~6℃ 상승시킨다.
이같은 화산성 에어로졸의 영향이 대류권과 지면 부근의 기후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 주겠는가에 대한 답은 아직 불완전하다. 일사량 감소에 따른 지상기온 저하는 관측에서 자주 나타났으나 화산분출의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는 분명치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