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의 게놈 DNA 안에 있는 30여억개의 염기서열을 밝히는 것이 휴먼게놈프로젝트의 목표다. 이 연구과정에서 게놈분석을 좀더 쉽고 값싸게 하기 위한 각종 신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인체 게놈을 분석하는 기본적인 기법과 기술들이 개발된 것은 1970년대였다. 당시에는 소규모 게놈분석만이 가능하였으나, 1980년대 들어와서 일부 기술들이 자동화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면서 대규모 게놈분석이 가능하다는 논의가 생명과학자들 사이에 오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1985년 인체 게놈을 완벽하게 분석하자고 미국 에너지부가 제안했을 때는 그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었다. 이는 15년에 걸쳐 연구비 30억 달러를 투자하는 초대형 사업구상이었다.
이어 학자들은 인체게놈뿐 아니라 여러가지 면에서 연구가치가 높은 쥐 벼 효모 대장균과 같은 생물체들의 게놈도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체게놈연구사업이 여러가지 게놈 연구사업으로 확대되면서 유사 이래 최대 규모의 연구인력이 참여하는 국제적 협동연구사업이 추진되기에 이르렸다.
1990년 10월 1일을 기점으로 공식출범한 국제적 게놈연구사업의 성패는 연구인력과 연구비 투자규모뿐 아니라 게놈분석기술과 기법의 혁신에 달려 있다. 현존하는 기술들은 너무 느리고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게놈분석 기술이 비용면에서 1백배, 속도면에서 1백배씩 개선되어 전체적으로 1만배 이상 개선돼야 한다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런 점에서 오는 9월 말로 끝나는 1차 5개년 사업계획의 주안점이 게놈분석기술과 기법의 혁신이었다. 지난 5년 동안의 연구성과로 이제 1백배 정도 개선효과를 보고 있다.
한사람의 게놈 분석을 몇시간 만에
이 시점에서 일부 학자들은 인체 게놈 염기서열 결정에 3-4억 달러를 투자하면 현존 기술로도 5년 내에 전부를 밝힐 수 있다고 주장하고 나서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러나 게놈분석 기법과 기술 혁신은 계속될 것이다. 현재도 인체게놈뿐 아니라 수십가지의 생물체 게놈이 분석되고 있으며, 앞으로는 한사람 한사람의 게놈을 분석할 시기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한 사람의 게놈을 완전히 분석하는데 10-15년이 걸리고 있지만 21세기에는 이를 10일 또는 10시간 정도로 단축해 병원에서 특정 환자의 유전적 특징에 대한 완벽한 진단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피검사 소변 검사 등을 통해 여러 질환 등을 진단하고 있지만, 21세기 중반 또는 후반에는 피검사만으로 환자의 모든 유전적 요인들, 암유전자와 바이러스유전자의 존재 유무 등을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현재까지 개선되고 있는 게놈분석기법들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신기술 신기법들은 크게 두 종류로 구분 할 수 있다. 우선 기존 기법을 그대로 사용하되 모든 동작을 로봇이 수행하게 함으로써 인건비를 줄이고 정확도를 높이면서 속도를 향상시키는 것이다. 이는 반복적인 작업으로부터 과학자를 해방시켜 보다 창의적인 연구활동에 몰두할 수 있게 하는 효과도 있다. 다음은 현존하는 염기서열 결정기법과 근본적으로 다른 개념의 기법을 창조하는 것이다.
게놈분석의 최종 목표 또는 최종 결과는 게놈을 구성하고 있는 DNA염기들의 순서를 밝히는 것이다. 염기서열이 모든 유전적 생명현상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즉 염기서열만 알면 궁극적으로 모든 생명현상을 이해하고 예측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게놈분석의 핵심인 DNA염기서열 결정기법과 기술에 중점을 두어 알아보자. 이를 위해서는 먼저 게놈 DNA를 다루는 기술을 알아보아야 한다.
게놈프로젝트에서 다루는 DNA는 보통 생물학자들이 다루는 DNA 크기와는 다르다. 따라서 이에 맞는 새로운 방법이 있어야 한다. 우선 펄스장 겔 전기영동법이 있다. 이 방법은 주기적으로 전기장의 방향을 바꾸어, 큰 분자 일수록 방향을 바꾸는데 시간이 더 걸리게 되어 작은 분자에 비해 천천히 이동하는 성질을 이용한 것이다.
보통의 아가로스 겔은 DNA 크기가 2-3만 염기쌍 이상이 되면 서로 분리하기 어렵지만 펄스장 겔 전기영동법을 사용하면 1천만 염기쌍까지의 큰 DNA 분자를 서로 분리할 수 있다. 따라서 수백만 염기쌍 단위로 물리적 지도를 작성할 수 있고 이를 유전 지도와 연계 시킬 수 있는 게놈분석연구의 필수적 도구다.
또한 인조효모염색체법도 있다. 보통의 분자생물학 연구에 사용하는 운반체들 중 가장 큰 DNA를 넣을 수 있는 것은 평균 4만 염기쌍 정도의 크기까지 클로닝이 가능하다. 그러나 인조효모염색체(YAC vector)가 개발됨으로써 평균 30만 염기쌍 크기의 DNA까지도 클로닝이 가능하게 되었다. 효모 염색체에서 복제와 유지에 필요한 부분만을 남겨놓은 채 나머지는 제거한 것으로 수십만 염기쌍의 거대한 DNA를 넣어 안정하게 유지 할 수 있다.
DNA염기서열 결정법
이제 DNA 염기서열 결정법을 알아보기로 하자. 현재의 염기서열 결정법은 어떤 것들일까. DNA는 4가지 종류의 염기로 구성돼 있으므로 순차적으로 이 4가지 종류의 염기가 어떻게 나열되어 있는지만 밝히면 된다. 방법은 크게 화학적인 방법과 효소적인 방법 두가지가 있다.
먼저 화학적인 방법은 염기서열이 알려지지 않은 DNA분자를 4개의 시험관에 나눈 후 각각의 시험관에 4가지 염기에 특이적으로 반응하여 그 부위를 절단하는 4가지 종류의 시약을 각기 넣고 반응시켜 각 염기에 해당하는 부위가 끊어진 DNA조각을 얻는다.
효소적인 방법은 염기서열을 결정하고자 하는 DNA를 염기서열을 알고 있는 DNA와 먼저 붙인 후에 이와 상보적인 DNA조각을 결합시키고 DNA복제효소로 하여금 이후로 오는 염기열을 상보적으로 합성해나가게 한다. 이때 4가지 다른 반응시에 복제효소에 의해 DNA 상에 들어가면 다음번에 오는 염기가 붙을 수 없도록 화학적으로 변형된 뉴클레오티드(DNA의 구성성분)를 첨가해준다.
그러면 화학적인 방법과 마찬가지로 각각의 염기에 해당하는 부위가 끊어진 DNA조각을 얻게 된다. 이렇게 하여 얻은 반응물들은 전기영동을 할 때 크기별로 분리되고 4개의 반응물을 한 세트로 하여 나란히 전개시키면 염기의 순서를 읽어내려갈수 있다. 요즘은 후자의 효소적인 방법이 자주 이용되고 있다.
하지만 위에서 설명한 방법대로라면 한번에 수백개를 읽을 수 있는 게 고작이다. 그래서 거대 DNA 염기서열 결정을 위해서는 이를 작은 DNA조각으로 나눈 후 각각의 서열을 결정해야 한다. 이에는 몇가지 전략이 있다.
첫째 프라이머 걷기법이 있다. 효소적 염기서열 결정법을 사용할 때 중합효소를 이용한 DNA합성을 위해서는 프라이머라고 하는 DNA조각이 필요하다. 이는 서열을 결정하고자 하는 부위의 앞부분과 서로 상보적인 염기열을 가지고 있는 DNA조각이다. 이미 알고 있는 염기열을 가진 프라이머를 가지고 일단 염기서열을 결정한다.
다음에는 결정된 염기서열의 맨 마지막에 해당하는 염기서열에 상보적인 프라이머를 합성한 후 다시 위 과정을 반복한다. 그러면 매우 긴 DNA분자의 염기서열을 결정할 수 있다. 이를 프라이머가 DNA상에서 일정간격을 두고 계속적으로 필요하다고 해서 프라이머 걷기법이라한다.
둘째 무작위법이 있다. 큰 DNA를 여러가지 작은 조각으로 자른 후 이들 중 무작위로 선별하여 염기서열을 결정한다. 이들 작은 조각들의 염기서열이 일부 중복되는 것을 이용하여 큰 DNA의 염기서열을 결정한다.
셋째 다중법이다. 큰 DNA를 작은 조각으로 만들어 여러 군집으로 나눈 후에 각 군집별로 특정염기열을 갖는 DNA조각을 단말에 붙인다. 다음에는 각 군집에서 하나씩 골라 이들을 섞는다. 염기서열 결정을 위한 화학적 또는 효소적인 방법으로 반응시켜 전기영동을 통해 크기별로 분리한다.
이를 특수한 막에 옮긴 후 한가지 공통염기열을 갖는 조각들만 방사능으로 볼 수 있게 하면 한 부위의 염기서열을 결정할 수 있다. 이를 씻어내고 다시 다른 염기열을 공통으로 갖는 조각들을 방사능으로 표지하면 그 공통염기열 부위의 염기서열을 결정할수 있다. 이런 식으로 한 표본으로부터 여러 부위의 염기서열을 알아낼 수 있다.
넷째 DNA증폭기법이다. DNA를 증폭할 때 사용하는 프라이머를 이용하여 프라이머 걷기법을 실행하면 직접 긴 DNA로부터 염기서열을 읽는 것이 가능하다.
다섯째 자동화방법이다. 클론군으로부터 콜로니나 클론을 따내는 것을 로봇이 하게 하는 방법이 개발됐고, 염기서열 결정에서 사용하는 효소적인 반응도 자동으로 시킬 수 있다. 그리고 염기서열을 현상된 X선 필름으로부터 읽는 것, 또는 전기영동으로부터 나오는 데이터를 직접 패턴을 읽어 DNA염기서열로 나타내는 것도 자동화되었다.
더 나아가 염기서열 결정기기가 개발되었는데 전기영동, 데이터 수집, 염기서열 읽기를 모두 자동화한 것이다. 이 기기는 방사성 동위원소 대신 형광물질을 부착한 염기를 이용하여 반응한 뒤 레이저로 형광을 읽어 염기서열을 읽는다.
미래의 염기서열 결정법
여기서 앞으로 개발이 예측되는 미래의 염기서열 결정법을 몇가지 알아보자. 우선 기존 전기영동을 개선하는 방법이 있다. 대량의 염기서열 결정을 위해 전기영동을 기존의 겔보다 훨씬 더 얇은 겔이나 재사용이 가능한 겔을 사용하여 수행하는 방법이다.
얇은 겔을 이용하면 열전도율이 높기 때문에 전보다 더 높은 전압에서 전기영동이 가능하여 분리속도가 더 빠르다. 한편 기존의 전기영동용 겔은 화학적 안정성이 낮아 재사용이 불가능하다. 이를 재사용이 가능한 액체 상태의 고분자로 대체하여 자동화가 간편하게 함으로써 속도를 증가시키는 기술이다.
둘째 헥사머군(hexamer library, 염기 6개짜리의 모든 프라이머를 합성하여 섞어놓은 것)을 이용한 방법이다. 앞서 설명한 프라이머 걷기법은 기존에 알고 있는 염기서열을 이용하여 프라이머를 합성한 후 이로부터 그 다음의 알려지지 않은 염기서열을 결정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매번 새로운 프라이머를 합성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대신 헥사머군으로부터 효율적인 염기 18개짜리 프라이머를 형성하는 기법이 개발됐다. 작고 특이성이 덜한 조각들의 연속적인 조합으로 더 길고 특이성이 강한 프라이머를 형성하게 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셋째 이종혼합을 이용한 방법이다. 이는 모든 종류의 서열을 갖는 작은 DNA조각들 중에서 서열을 알고자 하는 DNA부위에 상보적으로 이종혼합하는 것들을 골라 그로부터 염기서열을 연산하는 방법이다. 먼저 알려지지 않은 염기서열을 갖는 DNA를 고상에 붙인 후에 표지된 DNA조각으로 연속적으로 이종혼합하는 것과 염기서열을 알고자 하는 DNA를 표시한 뒤에 고상에 붙은 DNA조각의 배열에 순차적으로 이종혼합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면 어떤 종류의 합성된 DNA조각이 DNA에 붙는지 알 수 있고 이 염기서열을 알고 있는 조각들을 서로 나열하면 전체 DNA의 염기서열을 결정할 수 있다. 첫번째 방법을 이용할 때 8개 길이의 조각을 이용한다면 6만5천번의 연속적인 이종혼합을 수행해야하지만 두번째 방법은 6만5천 종류의 올리고머(구조 단위의 반복이 2-20 정도의 중합체)를 가진 대열에 한번의 이종혼합으로 할 수 있다. 대개의 게놈은 반복적인 염기열을 가지는 경우가 많아 이 방법은 복잡한 게놈을 위한 염기결정법으로는 부적합하지만 다른 분야에는 응용성이 매우 높다.
넷째 질량분석기를 이용한 방법이 있다. 기존 질량분석기로는 작은 크기 뉴클레오티드만 검출이 가능했으나 최근 기술의 발달로 분석가능한 크기가 증가, 이를 염기서열 결정에 이용할 수 있다. 우선 기존의 겔 전기영동을 이 방법으로 대체할 수 있다.
겔 전기영동에서 사용하는 4가지 형광물질 대신 서로 다른 질량을 가지는 4가지 화합물을 각각 4가지 종류의 반응에 따로 놓은 후에 이를 먼저 분리하고 질량분석기로 분석하는 것이다. 또 반응물을 분리하지 않고 통째로 질량분석기로 검출하는 방법도 있다. 이 방법은 자동화가 쉽고 빠른 시간내에 염기서열을 결정할 수 있다.
다섯째 개별분자로부터 나오는 형광을 감지하여 DNA염기서열 결정을 빠른 속도로 하는 단일분자 염기서열 결정법이 개발되고 있다. DNA 염기에만 형광물질을 부착한 후 두개의 레이저빔에서 나오는 압력을 이용하는 레이저 핀셋기술로 DNA를 개별분자별로 분리하여 한쪽 끝을 고체 표면에 고정화시킬 수 있다. 이를 유체 시스템 내에 분산시킨 후 효소처리하면 고정화되지 않은 단말에서부터 순차적으로 뉴클레오티드가 방출된다. 이를 단일분자 형광감지기에 통과시켜 염기의 종류를 형광 차이로 알아내면 DNA염기서열을 결정할 수 있다.
여섯째 원자검출현미경을 사용하는 방법이다. 최근에 발달한 주사전자현미경(STM)이나 원자력 현미경(AFM)과 같은 원자 검출 현미경은 DNA분자로부터 고해상도의 이미지를 빠르게 얻게 해준다. STM의 경우, 거의 원자 크기에 가까운 가느다란 팁으로 샘플의 표면을 스캔하면서 팁과 물체 표면간에 발생하는 터널 전류를 연속적으로 측정하여 3차구조의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한가닥 DNA시료를 가지고 이 기기를 이용하여 4가지 염기를 구별할 수 있다. 이중나선 DNA 경우는 전형적인 이중나선 구조와 염기쌍을 볼 수 있고, X선 결정으로부터 얻은 결과와 일치했다. AFM의 경우는 물체표면과 팁간에 상호작용하는 힘을 측정하는 것인데, 몇가지 기술이 개선되면 실용화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