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컴퓨터세계를 호령하는 인물에게 미래는 어떤 의미일까. 출간 전부터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빌 게이츠의 저작물이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정보고속도로 건설의 당위성과 건설 이후의 변화된 인간생활을 예리한 통찰력으로 살핀 이 책은 정보고속도로 건설의 지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내용을 미리 살펴본다.
21세기를 지척에 앞둔 이 시점에도 인류의 미래 사회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미래 사회를 거론할 때 자주 인용되던 앨빈 토플러의 '제 3의 물결'이나 '미래의 충격', 혹은 네이스비츠의 '메가트렌드'등의 권위도 이젠 시들하다. 아무리 둔감한 사람도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테크놀러지를 실감하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이들 책의 내용은 이미 구식으로 치부될 뿐이다.
그런데 조만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최신 완결편 '교과서'가 나타날 예정이다. 책의 이름은 '더 로드 어헤드'(The Road Ahead, 假題 미래로 가는 길). 애초 '미래를 맞으며'(Embracing the Future)란 제목으로 구상된 이 책의 집필자는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이다.
학력이라곤 하버드 대학 중퇴에 불과한 그이지만, 미래 사회에 대한 그의 견해는 어떤 학자의 고견보다도 더 위력적이다. 이미 그는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어떻게 우리 생활을 변화시킬 것인지를 예견하고 준비함으로써 오늘날 우리 생활에 혁명을 몰고 온 컴퓨터를 장악한 장본인이다. 그래서 요즘은 '지구가 마이크로소프트와 빌 게이츠 자신을 중심으로 돈다'는 말도 나왔다.
원래 올 12월 전세계에서 동시 출간되기로 했다가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느라 다소 출간이 늦어지고 있는 이 책은 내년 2월 말이나 3월 초쯤 영어판 외에도 한국을 비롯해 전세계 13개국에서 동시에 발매될 예정이다. 또한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직접 만든 영문 CD-ROM판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고속도로 건설의 교과서
사람이 한 평생 누릴 수 있는 모든 부와 명성을 가진 그가 책을 쓰는 고단함을 자청한 동기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수집된 자료를 분석해보면 그의 집필 이유는 단순한 공명심이나 인세 수입을 거둬들이겠다는 뜻이 아닌 것만큼은 분명하다. 추론하건대, 조만간 도래할 '신세계'에서도 자신의 회사가 지금과 마찬가지로 독보적인 위치를 흔들림 없이 차지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표하고 싶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위해 그는 그 동안 20세기가 저물기 전까지 남아있는 요 몇 년이 가진 의미와 그 중요성을 심각하게 숙고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마이크로소프트란 엄청난 두뇌를 소유한 그이기에, 이 같은 자신의 생각을 발표할 매우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애초 빌 게이츠가 책을 쓴다는 이야기가 전해졌을 때부터 많은 사람들은 과연 그가 어떤 성격의 책을 쓸 것인지 궁금해 했다. 일부에서는 돌발적인 사고(思考)로 자주 사람들을 놀라게 해온 그가 이번에는 소설가로 나섰다고도 했고, 또는 30대에 이미 미국 최고의 부자가 된 그가 자신의 전기를 집필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은 제목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듯, 소설도 전기도 아니다. 탁월한 통찰력과 예지력의 소유자가 가진 미래의 비전을 담은 논픽션일 뿐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딱딱하지만은 않다. 비록'마이크로소프트 이야기'나 '빌 게이츠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는 자신과 마이크로소프트를 모델로 삼아 이 회사가 소프트웨어 산업을 주도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고 여러 가지 일화를 소개함으로써 그의 개인사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독자들의 욕구에도 대답한다.
지금까지 마이크로소프트와 빌 게이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없진 않았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 본사가 위치한 미국 시애틀의 언론인 제임스 윌라스와 짐 에릭슨이 함께 쓴 '하드 드라이브;빌 게이츠와 마이크로소프트 제국 건설'은 첨단 기업의 사례 연구와 빌 게이츠의 전기를 담은 책으로, 작년 초 LA 타임스가 선정한 경제 필독서로 꼽히기도 했다.
또 전문 칼럼니스트인 스티븐 메이즈와 시애틀 타임스의 기자 폴 앤드류가 쓴 '게이츠;그는 어떻게 마이크로소프트 제국을 건설하고 미국 최대의 부자가 됐는가'란 책은 PC 업계를 지배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성과와 게이츠의 인간 드라마를 그려 적지 않은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이들 책과 '미래로 가는 길'이 가진 무게는 '빌 게이츠 저(著)'란 이름만으로도 비교를 거부한다. 전체 14장으로 나뉘어 총 3백-3백50쪽 분량(영문판)으로 구성된 것으로 알려진 이 책은 기술적 전문용어의 사용을 배제하면서 간결하고 편안한 문체로 쉽게 서술된 것이 특징. '집집마다 책상 위에 PC를 올려 놓겠다'던 그의 계획이 구현된 것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이 '쓰기 쉽다'는 이유 때문인 것처럼, 그는 읽기 쉬운 책을 통해 남녀 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이들이 자신의 비전을 마치 성서처럼 읽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 듯하다.
변화는 항상 유익한 것
"우리는 지금 물건을 사고 일하고 배우고 친구를 사귀며 사회화되는 모든 방법들이 영구히 변화될 테크놀러지의 시발점에 직면해 있다. 이 전대미문의 변화는 사람들이 인식하는 것보다 더 근본적으로 우리 모두와 모든 형태의 산업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가 책 전체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핵심이라 할 위의 선언에서 인류의 생활방식, 더 나아가 인간 존재의 정의마저 뒤바꿔 놓을 것이라 말하는 '테크놀러지의 정체'는 바로 '정보고속도로'다.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정보를 전하고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기본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현 시점 초미의 관심사가 된 이 계획은 엘 고어 미국 부통령의 제안 이후 전세계를 일대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정보고속도로의 '광적인 신봉자'로 알려져 있는 그에게 있어 정보고속도로란 '혁명적 변화'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오늘날 인간의 모든 경험이 테크놀러지에 의해 변하고 있음을 갈파한 그는 모든 형태의 변화에 대해 긍정적인 분석을 내린다. '변화=기회'이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상 변화는 항상 흥미진진했을 뿐만 아니라 개인에게 힘을 주었으며, 또 일부 개인과 회사에게 엄청난 부(富)를 안겨주었다"
여기서 산업혁명과 인쇄술의 발견이 인류에게 제공한 공적을 언급한 그의 말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최근의 정보고속도로 광(狂)들조차 '디지털 도구'의 출현이 가져올 충격과 인류에게 전해줄 풍요로움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그는 이 대역사(大役事)가 지닌 의미를 '미래로 가는 길'로 단정하면서 컴퓨터와 통신에 바탕을 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의 시나리오를 제안한다. 그리고 이들 변화에 따라 현재의 시장 경제 메커니즘은 더욱 극적으로 효율성을 얻게 되고 상품이나 정보를 얻는 방법, 인간관계나 공동체의 이익을 취하는 방법도 변화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지구에 출현한 이래 사용된 도구 중에서 컴퓨터류의 디지털 도구가 차지하는 역사적 위치는 독특하다. '손가락 끝에 있는 정보(information at your fingertips)'를 가능케 한 컴퓨터 산업이 정보고속도로의 건설 이후 모든 산업의 중심에 설 것이라고 믿는 그는 사람의 주거 공간이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변할지 설명하기 위해 '디지털 지갑'이라 불리는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이미 선보인 바 있는 휴대형 이동정보기기 PDA(Personal Digital Assistant)를 연상케 하는 이 기기는 주머니 만한 크기에도 지갑과 호주머니에 담길 모든 내용물을 대신한다. 시장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면서 돈이나 수표는 물론 신분증, 크레디트카드, 신문 잡지, 휴대폰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기능이 하나로 통합된 이 지갑이 모든 일을 대신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보다 더 큰 부피를 차지하는 거실의 텔레비전이나 사무실의 컴퓨터도 새로운 모습과 기능을 취할 것이라는 게 그의 전망이다.
사무실 공간을 벗어나 레저를 즐기는 것에도 새로운 도구의 등장은 필연적이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만의 채널을 가지고 텔레비전이나 영화를 무한정 선택해 볼 수 있다. 텔레비전과 라디오, 영화, 비디오, 그리고 가상현실 등 모든 오락 미디어의 새로운 역사가 정보고속도로와 함께 시작되는 것이다.
새로운 테크놀러지가 적용되는 모든 사회영역 가운데서도 게이츠는 교육의 변화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하이퍼텍스트로 무장된 디지털 교과서를 통해 각 개인의 관심분야를 탐험(explore)하는 이 교육 혁명은 학령기의 학생뿐 아니라 평생교육에도 적용된다. 그래서 미래의 학생들은 무한정한 참을성과 능력을 가진 선생님을 '즐기며' 자신의 지적욕구를 충족할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다.
미래사회의 최대 적은 '빅 브라더'
지금까지의 이야기로만 보자면 빌 게이츠가 바라보는 미래 사회는 온통 테크놀러지가 전해주는 풍요와 안정의 장밋빛뿐인 것처림 보인다. 하지만 테크놀러지의 진보가 밝은 미래를 약속하는 보증수표가 아님은 그 자신도 인식하고 있다. 특히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등장하는 '빅 브라더'처럼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존재의 출현은 그가 가장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는 대목이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공중의 안전'을 담보로 개인의 사생활권이 위협받는 일은 없어야 된다고 강조한다.
테크놀러지로 인해 더 많은 기회가 제공된다고 해서 모든 개인과 기업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변화의 시기에 누구는 성공하고 또 누구는 실패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마이크로소프트를 예로 들고 있다. 자신의 회사가 개인용 컴퓨터 환경의 지도적 역할을 차지하고 있음을 강조한 그는 디지털 주파수폭 압축광섬유 칩 하이퍼텍스트 에이전트 등 현란한 정보기술 용어들에 대한 간결하고도 실제적인 설명과 함께 커뮤니케이션과 컴퓨터의 역사를 분석한다. 그리고 그가 내린 결론은 다시 낙관적이며 자신감에 차 있다. 과거의 성공은 미래에서도 여전히 위세를 떨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정보고속도로를 구축하는 데 소용되는 엄청난 비용 문제로 계획의 이행이 평탄하지 않음을 지적하면서, 비용보다 더 큰 이득이 결국 사회를 지탱하는 하부구조로서의 정보고속도로건설을 강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게이츠는 이같은 자신의 의견이 논쟁을 촉발시키거나 퉁명스러운 반응을 얻을 수도 있음을 알고 있음에도 희망에 충만한 미래에 대해 자신의 실제적 비전은 매우 확고하다고 말한다. 만약 자신의 전망이 어리석었다고 판명된다면 "마이크로소프트는 떼돈을 낭비한 꼴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미래에 동승하기 보다는 미래를 이끌고 가려는 의지, 빌 게이츠와 마이크로소프트가 짧은 연륜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움직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 이 책은 현실을 바탕으로 인류가 준비해야 할 바를 알려주는 충실한 지침서로서 최고의 기대를 모으고 있는 것이다.
책 뒤의 이야기 - 출간 전 부터 화제만발 저작권료 경이적 기록
출간을 앞둔 빌 게이츠의 책은 출간 전부터 내용만큼이나 화제도 풍성하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서 '빌 북'(Bill Book)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이 책은 이름대로 회사와 빌 게이츠에 엄청난 돈(bill)을 안겨줄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을 출간하기 위해 세계 각국의 유수한 출판사들은 한편으론 '최고의 대우'를 요구하는 마이크로소프트측과 또 한편으로는 출판사들끼리 힘겨운 경쟁을 벌여야 했다. 그 결과 출판대국이라 할 미국에서 2백50만달러(20억원), 일본에서 1백만 달러(8억원)라는 경이적인 판권료를 받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런 고액 판권료 지불은 책이 출간되는 나라마다 비슷해 우리나라에서는 '도서출판 삼성'(대표 조석현)이 국내 저작권료 사상 최대 액수인 21만달러(1억6천8백만원)에 이 책의 판권을 사들였다. 도서출판 삼성 측은 "심한 경쟁이 붙어 애초 예상했던 것보다 비싼 돈을 지불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책이 가린 무게를 보나 우리나라의 출판시장 규모를 본다면 일부에서 비난하는 '턱 없이 높은 인세'만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 책의 판촉을 위해 미국 본사가 책정한 홍보계획도 어마어마하다. 책이 나오기 전 '빌 게이츠에게 물어보세요(假題)'란 이름의 캠페인을 라디오와 온라인 서비스에 제공하고 곳곳에 실물 크기의 빌 게이츠 사진을 게시하기로 했다. 또한 책이 출간되면 책의 '무게'를 알리기 위해 미 의회와 행정부는 물론 미국의 유력 경제지인 '포춘'선정 1백대 기업의 회장들에게 무료로 증정할 계획.
마이크로소프트는 50만 달러를 책정해 각종 매체에 대대적인 광고를 퍼부을 예정이고, 첨단 회사답게 '빌 게이츠와 함께 하는 인터렉티브 포럼'을 온라인으로 운영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하지만 여기서 나오는 수익금이 고스란히 회사와 그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판권료와 인세 수입을 전액 사회로 환원할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방법은 자선단체나 정보통신 교육기관에의 기부, 혹은 그가 열광하는 '정보고속도로'의 건설에 사용되는 것 중 하나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