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중순 전북 고창군 오리농장에서 시작된 조류인플루엔자(AI)로 지금까지 1000만 마리가 넘는 닭과 오리가 살처분 됐다. ‘AI 바이러스에 감염된 동물은 살처분한다’는 ‘공식’은 언제 정립된 것일까. 인간을 괴롭히는 계절성 독감이 국적을 가리지 않고 세계적으로 대유행하게 된 건 최근 일일까. 200여 년 전 그림에서 그 답을 찾아 봤다.
침대 위에는 독감(인플루엔자)에 걸린 환자가 누워 있고, 그 주변에는 가족들이 치료를 위해 피를 뽑을 준비를 하고 있다. 침대 앞에 앉아 있던 외과의사(까만 코트 안에 자주색 조끼)는 왼쪽에 서있는 내과의사(파란색 코트)에게 피를 얼마나 뽑아야 하냐고 묻고 있고, 벽에 서 있는 갈색 코트를 입은 남자의 입에선 “나는 죽었다(Son morto)”는 절망 섞인 탄식이 터져 나온다. 1800년대 프랑스에서 독감이 두려운 질병이었음을 보여주는 그림이다(위 사진).
콜레라, 공중위생법을 만들다
1800년대 들어 급격한 산업화가 이뤄지고 국가간 무역이 확대되면서 목초지와 산림이 대부분이었던 토지에는 불과 몇 십 년 안에 벽돌로 만들어진 공장과 도시가 세워졌다. 산업화와 도시화는 인구의 급속한 증가로 이어졌고, 이들이 배출하는 쓰레기의 양도 급속도로 늘었다. 도시의 위생상태가 엉망이 되고 상수도원이 오염되면서 도시는 질병이 퍼지기 좋은 이상적인 환경이 됐다.
1816년 인도 갠지스 강 인근 지역과 방글라데시에서 시작된 콜레라가 유럽에 도달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다. 하지만 1831년 인구밀도가 높은 유럽의 도시에서 시작된 콜레라는 무서운 속도로 퍼져나갔다. 영국 전역에서는 이듬해까지 6만 명 이상이 죽어나갔다.
결국 흑사병 창궐 이후 유럽인들에게 가장 큰 공포를 심어준 이 유행병의 원인을 찾기 위한 노력이 시작됐고 이는 1848년 ‘공중위생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해 질병을 공중위생의 ‘적’으로 규정하고 박멸해야할 대상으로 만드는 본격적인 시도가 바로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 이뤄진 것이다.
이 시기를 전후해 질병에 대한 과학적인 분류도 생겨났다. 그간 ‘마녀의 특징’으로 간주되던 광기도 과학적 질병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1810년 영국의사 존 하슬럼은 정신분열증에 대한 연구 결과를 처음 발표했고, 1838년 프랑스 의사 장 에티엔 에스퀴롤은 처음으로 현대적인 의미의 정신병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병원도 변했다. 광기를 질병으로 분류하고 환자들을 체계적으로 사회에서 격리해 병원에 수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질병은 분리하고 격리하고 박멸해서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확실히 자리 잡은 셈이다.
『AI가 창궐하면 가축을 살처분하는 정책 이면에는 질병을 외부 침입자로 보는 적대적인 인식이 깔려 있다.』
전쟁이 빚어낸 스페인 독감
인간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활동이 극단화되면서 질병을 제거의 대상으로 보는 개념은 더욱 강화됐다. 1918년 전세계적으로 유행한 독감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언론 통제가 있었던 대다수의 국가와 달리 자유롭게 기사를 게재할 수 있었던 스페인의 신문들이 주로 다루기 시작하면서 이 독감은 ‘스페인 독감’이라는 명칭을 얻었다.
스페인 독감은 전 세계적으로 1억 명 이상의 사망자를 배출했다. 독감은 ‘적대자’이기도 하지만 오랜 세월 인류와 함께해온 ‘동반자’이기도 했다. 그만큼 인간도 독감에 단련돼 있었다. 그런데 왜 스페인 독감만 유독 대유행으로 이어졌을까? 바이러스가 그렇게 독했던 걸까?
원인은 전쟁이었다. 유럽을 넘어서 전 세계적으로 벌어진 최초의 전쟁인 제1차 세계대전은 유례없는 전염병 대유행을 만들어냈다(과학동아 2014년 2월호 특집 ‘인류는 전쟁을 멈출 수 있을까?’ 참조). 유럽 참전국을 위해 인도의 곡물이 징발되면서 인도에는 식량 부족 현상이 이어졌고, 건강이 약해진 인도인 1250만 명이 독감으로 사망했다. 또 영국군의 물자보급로였던 이란은 가뭄과 기근, 영국의 식량 징발 뒤에 이어진 독감 확산으로 전체 인구의 22%가 사망했다. 결국 질병은 단순히 그 병원체가 갖고 있는 감염력이나 독성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됐다.
➊ 정신질환자들을 격리 수용한 런던의 베들렘 병원. 19세기 초를 전후해 정신병도 질병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➋ 1918년 ‘스페인 독감’ 대유행을 풍자한 그림. 독감 바이러스를 무서운 유령에 비유해 유령이 사람의 머리를 내리치며 바이러스를 전염시키는 상황을 표현했다.
➌ 파스퇴르가 탄저병을 예방하기 위해 양의 다리에 백신을 놓는 장면. 하지만 최근 가축 전염병에는 백신 접종보다는 살처분 정책이 우선 적용된다.
AI 살처분 정책, 그 기원은
이런 경험은 가축에서 발생하는 질병, 예를 들어 구제역이나 AI 같은 질병에 대한 살처분 정책에 영향을 미쳤다. 이미 구제역이나 AI에 대한 백신 개발은 상당히 발달했고 효과적인 백신이 개발되고 있다. 소나 돼지에서 발생하는 감염력 높은 구제역 백신은 1930년대에 개발됐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구제역과 AI가 발생하면 백신보다는 반경 2~3km 안의 가축과 조류에 대한 살처분이 우선이다. 살처분 방식이 백신 접종보다 더 효과적이기 때문일까.
사실 이런 논쟁이 벌어진 건 최근의 일이 아니다. 1950년대부터 영국을 필두로 살처분 정책을 지지하는 국가와 프랑스를 앞세운 백신 접종 지지국 사이에 엄청난 과학적·정치적 논쟁이 있었다. 세계 가축 보건을 담당하는 세계동물보건기구(OIE)는 영국의 손을 들어줘 1970년대부터 백신접종 우선정책을 포기하고 살처분 정책을 표준으로 사용하고 있다.
왜 세계동물보건기구는 백신 정책을 포기했을까. 영국 정부는 백신 접종에는 매우 많은 비용이 들어가며 백신 접종 이후 항체가 형성될 때까지 또 감염될 수 있다는 과학적이면서도 경제적인 이유를 댔다. 세계동물보건기구도 이 논리를 인정한 셈이다. 그런데 영국 정부의 논리 이면에는 빅토리아시대부터 이어진 가축 전염병에 대한 인식이 담겨 있었다. 가축 전염병은 외부에서 침입해오는 칩입자이고 반드시 박멸해야 하는 대상이었던 것이다. 영국의 의학사학자인 아비게일 우즈는 “영국인들에게 가축전염병은 대영제국의 일사불란한 질서체계를 위협하는 외부의 위협이며 침입자였다”고 해석했다. 백신 접종을 통해 질병을 진정시키고 함께 공존한다는 것은 대륙의 무질서하고 자유분방한 개인주의적인 행동일 뿐이었다. 지금 우리나라가 AI에 감염된 가축을 무차별적으로 살처분하는 정책도 이런 사회문화적인 사고방식에 근거한 것이다.
질병=악’ 관계 변화 중
최근 많은 과학자들은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체에 대한 완전한 박멸과 제거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 그 대안으로 공존의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한 예가 인간의 몸, 정확하게는 인간의 장내에 존재하고 있는 미생물체(이를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이라 부른다)에 대한 관심이다.
인간의 장내에 서식하는 수백만 마리의 미생물체들의 적정한 균형 유지는 인간의 신체에서 나타날 수 있는 질병 발생을 막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인간과 미생물(또는 병원체)과의 공존을 모색하는 이런 노력은 1958년 노벨 생리의학 수상자인 조슈아 레더버그의 주장으로 정리될 수 있다. 그는 “인간은 선이고, 미생물은 악이라는 편견을 끝내자”고 주장했다. 질병이 인간에게서 분리되고 적대시되며 박멸해야 할 대상이라는 지극히 근대적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아마도 우리는 질병과 관련된 많은 과학적 접근에서 새롭고 획기적인 결과를 얻을 것이다.
김기흥_edinkim@postech.ac.kr
서강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영국 에든버러대에서 과학기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영국 웰컴트러스트의학사연구소와 임피리얼 칼리지에서 재직했다. 현재는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로 있다. 광우병과 치매 등 중추신경질환 및 인수공통 전염병을 중심으로 한 질병과 사회의 관계를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