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을 생물학 분류상 어디에 포함시킬까 하는 문제는 그동안 많은 학자들에게 논쟁거리를 제공해왔다. 공룡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파충류의 하나인지, 아니면 조류나 포유류처럼 파충류와는 전혀 성격이 다른 동물인지를 밝히는 일은 공룡이 냉혈동물인지 온혈동물인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구분이 된다. 즉 공룡이 파충류라면 당연히 현재의 파충류와 같은 냉혈동물일 것이고 온혈동물이라면 파충류에서 제외, 새로운 동물 분류 위치를 설정해야 한다.
최근 발표된 미국의 과학지 '사이언스'에 따르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의 고생물학자인 리즈 배릭과 지질학자인 윌리엄 샤워는 장장 2백22쪽에 달하는 연구 보고서를 통해 대표적인 육식공룡인 티라노사우루스 렉스가 지금까지 알려진 바와 달리 냉혈 파충류가 아닌 온혈 동물이라는 주장을 제기해 또다시 논쟁을 가열시키고 있다.
두 사람은 보존상태가 양호한 6천7백만년된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뼈 화석의 산소 동위원소를 분석한 결과 신체 각 부위의 온도차가 매우 적은 온혈동물의 뼈와 일치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뼈 조직에는 산소16과 산소18이란 동위원소가 있는데, 차가운 온도에서 산소18이 상대적으로 많아지는 등 이들의 구성비는 온도에 따라 달라진다. 이들의 연구는 이같은 점에 착안한 것이다.
배릭 교수는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는 몸 중심부에서 사지(四肢) 끝까지 섭씨 4도 이내의 범위 내에서 변화하는 체온을 유지한 정온 동물임에 틀림 없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정온이란 온혈 동물의 한 특징이므로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는 당연히 파충류가 아니라는 것이다(파충류는 몸통 각 부위마다 체온이 다르다).
결국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거대한 티라노사우르스 렉스는 체열을 발생시키기 위해서 거의 끊임 없이 먹어야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행동이 느린 현재의 냉혈 파충류의 습성을 고려해볼 때 티라노사우루스는 오히려 쉴 새 없이 사냥을 다니며 왕성한 활동력을 가진 '동물'로 파악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 하지만 이들의 연구 결과에 대해 많은 과학자들은 두 연구자의 주장이 이들에 의해서 처음 제기된 것도 아니고 '주장 자체가 명확하지 않다'며 '공룡=파충류'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심지어 이들보다 앞서 이미 25년 전 공룡 해부를 통해 공룡이 온혈 동물에 가깝다고 주장했던 예일대의 고생물학자인 존 오스트롬조차 두 사람이 연구를 위해 적용한 방법이 명확함과는 동떨어진 것이라고 혹평했다. 오스트롬은 "두사람의 연구가 어쨌든 합당한 결론을 내리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간접적인 증거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하지만 배릭과 샤워는 누가 뭐라건 전혀 개의치 않고 있다. 오히려 그들은 같은 방법으로 연구를 심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들 외에도 많은 학자들이 논문과 에세이를 통해 공룡 분류 방법을 둘러싼 논쟁에 참여하고 있지만 어느 한쪽이 자신의 주장을 뒷바침할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한 쉽게 결론 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