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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흙과 미생물

또 하나의 소우주 토양생태계

흙속에는 어떤 생물군이 살고 있으며 그 생태적 기능은 무엇인가.

흙은 흔히 생각하기에 콘크리트처럼 딱딱하거나 밀폐돼 있는 매질이 아니다. 흙은 근본적으로 네가지의 기본적 물질로 구성돼 있다. 2㎜ 이하의 암석입자 유기물질 물, 그리고 공기가 흙을 구성하는 기본물질이다.

조화있는 삶의 체계

암석입자 사이의 미소한 공간은 그에 알맞는 미소한 생물들의 서식지를 제공하고 있으며 유기물질은 영양분으로, 그리고 물과 공기는 먹고 배설하며 숨쉬는 충분한 생활공간의 구실을 한다.

1백만종이 넘는 수많은 지구상의 생물들이 흙 위에서 또는 물 속에서 주거지를 가지고 먹고 배설하며 숨쉬고 살아가는 것처럼, 흙속도 눈에 보이지 않는 미소한 생물들이 그와 똑같은 생활양식으로 살아가는 또 하나의 소우주인 셈이다. 흙의 물질세계와 흙속의 미생물들이 작용과 반작용을 주고 받으며 조화있는 삶의 체계를 이루고 있는 소우주를 토양생태계라고 부른다.

과학이 발달되기 전 먼 옛날부터 흙에 관한 막연한 개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식량을 전제로 한 생산성의 기능, 온갖 종류의 폐기물을 분해하는 정화 기능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또한 인간을 비롯한 동식물의 질병원인이 흙으로부터 기인된다는 생각을 해왔다. 사실 이러한 자연현상은 토양생태계의 기능과 무관하지 않고 전적으로 흙속에 살고 있는 미생물의 다양한 작용에 따른 것이다.

흙속에는 어떠한 생물군이 살고 있으며 그 생태적 기능은 무엇인가를 알아보기는 간단하지 않다. 척추동물 무척추동물 미생물에 이르기까지 몇십만종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신비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토양미생물 군과 그 기능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흙속의 미생물은 5가지로 구분된다. 세균(bacteria) 곰팡이(fungi) 조류(藻類) 원생생물(protozoa)및 바이러스인데 그 크기와 세포구조, 생활양식은 다양하다. 공통점은 미시적 생물이라는 것과 흙속에 살면서 흙의 물질과 미생물 상호간, 그리고 흙에 근거하고 있는 동식물과 생태적 연관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생태적 연관과 기능이 너무나 다양한 까닭에 아직도 그 전모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과학의 발달에 따라서 조금씩 밝혀지는 단계에 있다.

공동묘지의 흙

1952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이며 유명한 토양미생물학자인 왁스만(Waksman, S.A. 1988~1973)은 한때 그의 연구실에서 미생물학적으로 가장 오염되고 더럽고 무서운 환경이 무엇일까를 상상해 보았다. 그의 결론은 공동묘지의 흙이었다. 매일 흙에 묻히는 인간의 주검은 각종의 무서운 병원균을 포함하고 있어 묘지의 흙속에서는 각종 병원균이 우글거릴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러한 가정하에 왁스만은 공동묘지의 흙속에 어떤 종류의 병원균이 얼마나 존재하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공동묘지의 흙을 채집하는 한편, 비교실험용으로 인간의 흔적이 닿지않은 처녀지의 흙을 채집해서 분석하여 보았다.

놀랍게도 왁스만은 공동묘지의 흙이나 처녀지의 흙속에는 병원성 미생물은 거의 없고 흙속에서 흔히 발견되는 비병원성 미생물들이 거의 비슷한 숫자로 존재함을 발견했다. 이러한 실험결과로 그는 다음과 같은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논리적으로 생각할 때 병원성 미생물들이 인간의 주검과 함께 토양에 유입되지만 그 병원성 미생물들이 토양에 오래도록 존재하지 못하고 곧 죽어버린다는 것이다. 이는 아마도 흙속에만 존재하면서 텃세를 부리는 토착성 미생물들의 공격 때문이라는 확신,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한 공격성 물질이 무엇인가를 확신을 가지고 추적한 결과, 그는 토착성 미생물들에 의해 분비되는 '스트렙토마이신'이라는 항생물질이 흙속에 유입된 병원성 미생물들을 퇴치하는 것임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처녀지의 흙이나 공동묘지의 흙은 항상 비슷한 종류의 미생물들이 유사한 규모로 존재하면서 '항상성'(homeostasis)을 갖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단순하면서도 논리적인 착상으로 왁스만은 스트렙토마이신을 발견함으로써 인류의 복지에 크게 기여하게 됐다. 왁스만의 성공 이후 이러한 과학적 추리와 실험과정을 통해 흙속 미생물들의 몇가지 생태적 기능이 계속해서 확인됐다.

그 결과 인간을 비롯한 지상의 동식물은 병원균에 의해 알맞는 규모의 개체군(個體群)을 유지한다는 점, 생태적 사망을 맞이한 동식물체는 흙속에서 재생산을 위한 분해작용으로 청결하게 되는 점 등이 밝혀졌다. 그리고 비록 미생물 상호간에도 기능을 달리하는 미생물군끼리 상호 견제하는 작용을 수행함으로써 미생물의 다양성과 기능 다양성이 생태계를 유지하는데 얼마나 필요한가를 밝혀주었다. 그것은 흙의 기능에 관한 막연한 개념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된 몇가지 사실에 불과하다.
 

병원균이 흙속에 들어오면 토착미생물에 의해 공격을 받아 죽어 버린다고 왁스만은 확신했다. 사진은 콜레라 병원균


다섯가지 미생물군

흙속에 존재하는 다섯가지의 미생물군은 토양생태계 내에서 어떠한 기능을 수행하는가에 대해 알아 보기로 하자. 흙속에 살고 있는 미생물들은 대체로 (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토양 깊이 1.5m 이내에 분포하면서 생태적 기능을 수행한다. 흙의 표층에 가까울수록 분포 규모가 크고 생물학적 작용이 활발하다. 흙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공기와 물의 유통이 어려워지는 까닭에 흙의 깊이는 흙속의 미생물 분포에 제한 요인이 된다.

흙속에 살고 있는 미생물들은 토양생태계내에서 여러가지 분업적 일을 수행한다. 크게 보아 네가지 유형의 일이 있는데 그 첫째는 생물지화학적(生物地化學的)요인으로서의 작용이다. 세분하자면 토양의 형성, 유기물 분해, 무기성분의 변화, 흙의 1차생산을 의미한다.

토양의 형성이란 토양입자의 풍화작용을 촉진함을 뜻하며, 유기물 분해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체의 주검을 말끔히 분해해 청소하는 일이다. 무기물의 성분변화란 여러가지 화학물질의 변화를 통해 동물과 식물체가 재생산에 도움이 되도록 쉽게 흡수될수 있게 해주는 일을 말한다. 1차생산이란 조류와 광합성세균, 질소고정 세균에 의해 탄수화물과 질소성분을 흙속에 첨가함으로써 흙 생태계의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의 기본 조건을 만드는 일이다. 흙속의 미생물들의 생태적 기능을 단순히 '분해작용'으로만 인식하는 것은 큰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크다.
두번째의 유형은 병원균으로서의 작용이다. 대체로 세균은 동물체에게, 곰팡이는 식물군에게 병원체로 작용해 질병을 초래한다. 이러한 의미는 육상이나 수중생태계에서 어느 특정한 생물체만이 극도의 번식을 초래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종의 다양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수많은 종이 서로 알맞는 규모로 어우러져 조화있는 삶을 영위하게 해주는 항상성(恒常性)의 조건을 마련해주는데 있다.

생태적으로 죽음을 생리적사망과 생태적사망으로 구분하는데 전자는 세포 조직 기관의 노화에 의한 사망을 의미하며, 후자는 질병 사고 먹힘 등에 의한 사망을 뜻한다. 흙속의 미생물은 다른 생물의 생태적사망의 요인으로서 작용해 특정 생물만의 번식을 억제할 수 있다.
 

(표) 흙의 깊이에 따른 미생물의 평균 분포


종(種) 다양성의 의미

생태계에 많은 종류의 생물들이 알맞은 규모로 살아가는 것이 소위 말하는 항상성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작년 6월에 세계의 각국 원수들이 리우데자네이루 환경회의에서 생물종의 다양성을 논의하고 그 중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토양생태계 육상생태계 수중생태계를 포함한 각종 유형의 생태계는 환경의 압력을 끊임없이 받고 있다.

예컨대 홍수 한발 화재 폭설 천재지변 환경오염 등의 압력이 그것인데, 그 압력의 정도에 따라서 생태계는 저항성을 갖거나 파괴된다. 생태계가 환경의 압력에 어느 정도의 저항성을 갖는가와 일시적 파괴 후의 회복능력이 어느 정도 빠른가는 많은 생태학자들의 주요 관심사다. 오랜 연구결과에 따르면 그 생태계에 생물종의 수(數)가 어느 정도 존재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A생태계는 한종의 생물이, B생태계는 각종의 생물들이 존재한다면, 일시적으로 생태계가 파괴되었다 하더라도 B생태계가 원상태로 회복하는 능력이 빠르다는 것이 정설이다.

환경보호 캠페인에서 풀 한포기, 거미 한마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이는 생물종의 다양성이 생태계의 항상성 유지에 필수적이라는 의미와 상통한다.

결국 흙속 미생물의 일부는 병원균으로서 작용해 특정 생물의 번식을 조절하며, 또한 미생물 상호간에도 번식과 세력의 균형을 조절해 토양 미생물의 다양성을 유지한다. 인간 사회도 직종이 다양할수록 발달된 문명을 가지는 동시에 안정과 발전을 기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흙속 미생물군의 생태적 기능의 세번째 유형은 생리활성물질 생산자로서의 중요성이다. 흙속의 미생물의 일부는 흙속에서 식물의 생장호르몬 항생물질 비타민 등을 생산해 미생물과 식물, 미생물과 동물, 미생물과 미생물 상호간의 생태적 연관성을 가지고 조화있는 삶의 체계를 유지하도록 기능한다.

예컨대 흙에 근거를 두고 있는 식물은 흙에서 근권(根圈)이라는 특수한 환경요건을 가진다. 식물의 뿌리가 있는 부분을 근권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에는 많은 종류의 영양소(아미노산 당류 등)와 알맞는 수분이 존재한다. 때문에 수많은 종류의 미생물들이 근권으로 이주해 와서 공존한다. 그대신 이주해 온 미생물군은 식물의 생장에 도움을 주는 생장호르몬을 제공하면서 신세를 갚는 서로 도움이 되는 생활을 한다.
비(非)근권 토양의 경우 영양이 척박하므로 미생물과 식물간의 생리적 공생이 토양생태계의 안정성유지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항생제를 추출

한편 다른 생물의 생장을 억제하거나 사멸시키는 항생물질의 생산은, 토양생태계의 종다양성과 항상성을 조절하는 무기로서 역할을 한다. 생태적으로는 다른 생물의 세력을 견제하는 조절물질이지만 왁스만 이후의 많은 토양미생물 학자들은 흙속 고유의 미생물(방선균류)로부터 몇천 종류의 항생물질을 탐색하고 분리함으로써 인간과 가축류 어류 식물에 이르기까지 미생물이 일으키는 질병을 구제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항생물질의 구조와 그 작용방식이 다양한 까닭에 인류의 복지에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항생제의 개발을 위해 아직도 많은 학자들은 흙속의 미생물을 계속 주목하고 있다. 또한 흙속의 미생물군 일부는 독소나 비타민 등을 합성해 상호 견제하거나 도움을 주고받는 생활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도 널리 알려져 있다.

흙속 미생물의 네번째 생활양식은 동식물 체내에서의 공생을 통해 생태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소 양 염소와 같은 반추동물이 섬유소와 같은 소화하기 어려운 먹이를 먹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풀과 함께 소화기관에 유입된 섬유소분해미생물은 반추동물의 위 속에서 안정된 생활을 보장받는 대신에 분해되기 어려운 주식인 섬유소의 소화를 도와줌으로써 은혜를 갚는다.

공생형 뿌리혹박테리아는 흙속에 존재하다가 수많은 종류의 콩과와 비콩과 식물의 뿌리에 혹 형태로 들어앉아 공생한다. 공기중의 질소를 흡수해 식물의 생장과 결실에 도움을 주는 질소성분의 영양을 제공하는 대신 식물로부터 영양과 환경의 안정성을 보장받는다.

토양미생물의 어떤 것은 토양내의 작은 동물의 소화기관에 공생함으로써 생존의 안정성을 보장받는 대신, 비타민과 필수 아미노산을 제공한다. 흙속의 미생물중에서 근래에 주목하고 있는 또하나의 미생물군은 미시적 조류(藻類)다. 조류는 본래 물에 적응하여 살아가는 물속 식물이지만 흙속에서도 1.5m 깊이에까지 존재한다. 흙속에서는 다른 미생물처럼 타가(他家)영양적으로 살아가지만 흙위로 노출되는 경우 광합성을 통해 토양의 1차 생산(탄수화물과 질소고정)에 기여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한편 흙속의 원생생물군은 세균 곰팡이 조류를 섭식하면서 이들의 일방적 번식을 억제하면서 균형있는 규모의 생존에 기여하고 있다. 흙의 입자에 흡착형태로 존재하는 바이러스 또한 균형과 조화있는 토양생태계의 항상성에 기여한다.

이와같은 흙속 미생물에 관한 고찰을 통하여 흙의 미생물이 단순히 '분해기능'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육상과 수중의 여러 형태의 생태계처럼 먹고 먹히고, 도움을 주고 받으며, 상호견제 하기도 하며, 분업적 기능을 통한 재생산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토양생태계를 소우주라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흙속에도 조류와 곰팡이가 살고 있다. 조류는 원래는 물속에서 살아가지만 흙속 1.5km까지 존재하는 것이 밝혀졌다. 곰팡이는 식물군에게 병원체로 작용해 질병을 초래한다. 사진은 관모양의 곰팡이와 구형의 조류세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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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최영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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