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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연말 과학기술처에서 발표한 2000년대를 향한 과학기술발전 장기계획은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고 하겠다.

21세기까지 이제 겨우 15년을 남겨놓은 이 시점에서 20세기를 마무리하고 다음세기의 준비를 한다는 의미로나, 그간 기술도입과 합작투자 등의 기술이전 만으로 꽤 성공적인 산업경제의 발전을 이룩하여 온 우리가 이제 선진국에 의한 기술이전 기피, 무역제한 조치 뿐만 아니라 나아가 지적 소유권 제기 등의 환경변화에 직면하여 행동과 사고의 양식에 일대변혁이 요청되고 있다는 의미로 볼 때 이 계획은 시의 적절하게 보인다.
 

그리고 그 내용에 있어서도 과거 우리사회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유사계획이 계획이라기 보다는 남들이 좋다고 말하는 것을 총망라하여 우선순위나 중요도도 분명치 않은채 평면적으로 기술하는 소위 희망나열(Wish List)식이었던것과는 대조적이다.
 

즉 기본목표, 분야별 도달목표, 추진정책등이 체계화되고 투자 우선순위의 설정, 목표의 계량적 제시 등 구체화 되어 있으며 특히 목표달성을 위한 추진정책 기본방향 제시에 있어서도 목표지향의 일관성유지와 시장수요 창출이 강조된 것을 볼 때 이 장기계획의 실현 가능성에 많은 기대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번의 장기계획에 있어서도 설정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정책방안이 가시적인 것에 치중되고 있어서 이것만으로 소기의 목표대로 과학기술 발전이 이룩될 수 있을지 염려된다.
 

우리가 근대사회에서 현대사회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강조·계몽하여 온 것은 잘한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과학기술에 의학 밝은 미래상의 제시와 이에 도달하여야 할 당위성만이 지나치게 강조된 나머지 이를 성취하기 위하여 필요한 전제조건과 지불하여야 할 대가에 관하여는 거의 언급이 없어서 마치 과학기술이 마술과 같은 인상을 주어왔다.
 

최근에 와서 고급 두뇌 확보, 막대한 연구개발 투자 등 목표달성 방안이 자주 논의되기 시작하였으나 이러한 설명으로 일반이 갖게되는 인식이란 쉽게 말해서 해외에서 고학력 인사를 초빙하여 자동판매기 앞에 세워놓고 엄청난 돈을 집어넣으면 신제품, 신기술이 청량음료병이 떨어져 나오듯 쏟아져 나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럴리가 있느냐고 하시는 분들과도 조금만 깊게 이야기하다 보면 앞서의 인식과 대동소이함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 고급인력의 확보와 연구개발비의 투자가 과학기술 발전의 절대 필요조건임은 틀림없으나 투자의 결과가 흘러버리지 않고 경험이 축적되는 사회제도를 만들지도 않으면서 투자를 계속하는 것은 사막에 물붓기 경쟁을 하는 일과 같다고 보겠다.
 

다시말해서 과학기술의 발전은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 노력하여 이룩하는 우리의 문화적 사회적 기분위에 우수한 두뇌와 연구비를 들여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몇몇 과학기술자가 돈만 쓰면 사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렇게 사올 수 있는 것이라면, 예컨데 몇년 전의 석유수출국들이 이미 이를 성공시켜 놓았을 것이다.
 

이번 장기계획에도 풍토조성이라는 면이 다소 언급은 되어 있으나 자칫하면 과학기술자의 우대, 과학기술의 밝은 미래에 관한 홍보 등 누수대책 없는 물붓기로 될 우려가 크다.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간 우리의 도공이 14대를 내려오면서 도자기를 만들고 발전시켜 올 수 있었는데 우리사회에서는 이러한 축적이 이루어질 수 없었던 이유를 규명하고 이를 시정하는 방안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몇만명의 박사를 양성하고 수천억의 연구비를 투입하여도 21세기의 꿈은 실현불가능 할것이다.
 

과학기술 발전의 결과로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 중의 하나가 산업의 발전임은 말할 것도 없다. 좋은 공업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기 위한 방법으로 품질관리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그 기법도 여러가지로 교육, 보급되고 있으나 이 역시 형식과 기법에 치우쳐 그 기본을 소홀히 하고있는 느낌이다.
 

우리의 품질관리가 이웃나라 경쟁자의 수준까지 향상 정착되려면 우선 제일 간단한 예로 실제 생산, 서비스의 일선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여자 근로자들이 직장에서는 물론 일상생활에서 음식그릇을 집어 올릴 때 엄지손가락이 그릇의 안쪽에 들어가지 않게 두손으로 받쳐 들도록 교육하는 일부터 시작하여야겠다.
 

자세히 관찰하여 보면 이는 근로자들만의 경우가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으니 이는 가정교육, 사회교육을 통한 대규모 교육사업이며, 앞서는 간단한 예라고 하였으나 이의실현은 아마도 20세기 말에나 가능할 대사업인 것이다. 그런것이 과학기술이나 품질관리와 무슨관계과 있느냐고 묻는 분이 있다면 그 분은 과학기술, 품질관리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장기계획이 일부의 수정, 보완은 반드시 필요할 것이나 담당자나 상위 책임자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계획이 나오는 일없이, 가능하면 20세기 말까지 그대로 밀고 나가야만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임을 강조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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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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