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직후 서울 청량리에 있던 경성대학(현 서울대) 도서관 서고에서의 일이다. 지금은 북녘의 대학에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는, 옛 중학교 선배 유충호씨가 불쑥 말을 건네온 적이 있다.
"뭣을 전공하겠소?"
"글쎄요, 상대성 이론을 공부하고 싶지만…."
"그러면 미분기하학을 먼저 공부하시오. 순서가 있지 않소."
50년 전의 일이다.
나는 그 뒤 미분기하학의 방법에 눈을 뜨고 지금까지 긴 외길을 걸어왔다. 다만 이 외길은 어릴 때 멋모르고 동경했던 상대론에서는 벗어나 다양체이론으로 바뀐 것뿐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리이만기하학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종류의 다양체론이다.
가지가지 가능한 공간의 상을 다양체의 구조와 이에 대응하는 표현과 형식으로 맛보는 즐거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런 말들은 모두 매우 추상적인 것이기에 즐긴다는 말은 좀 어색할지 모르나 달리 어떻게 말할 길이 없다.
공부하는 사람의 길이란 모두 외길일 것이다. 그러기에 각기 외롭기도 하다.
그러나 제각기 즐거운 마음으로 자신의 외길을 가는 것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