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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랜타 '94 봄 컴덱스 쇼

CD-롬·PCMCIA 카드 등 1만여점 출품-컴퓨터 환경 급변 예고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대의 컴퓨터 박람회 94 봄 컴덱스 쇼가 지난 5월23일부터 나흘간 미국 애틀랜타의 조지아 월드 콩그레스 센터에서 열렸다. 제3회 윈도즈 월드와 함께 열린 이 대회의 이모저모를 살펴본다.

전세계인의 축제 월드컵 대회가 열리는 미국. 하지만 축구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은 그들이 가장 즐기며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야구나 농구, 미식축구에 비하면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축구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팬을 가진 스포츠란 사실을 아는 미국인도 별로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축구는 미국이 세계 최고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제(美製)'란 꼬리표 하나만으로도 장사가 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작년 한해 동안만도 1천1백57억8천만달러의 엄청난 무역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미국에게 자존심을 살려주는 산업은 이제 몇 남아 있지 않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아직도 '1등국민'이란 자부심을 안겨주는 마지막 보루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컴퓨터를 기반으로 하는 정보산업이다. 첨단을 자랑하는 이 나라의 방위산업이나 영상산업이 세계에서 지금과 같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뒷 배경에는 어김 없이 컴퓨터가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사정을 알만한 이들에게 미국을 먹여 살리는 '효자 산업' 중 '큰 아들'을 꼽으라면 열이면 아홉은 정보 통신 분야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컴덱스쇼를 비롯한 정보 통신 관련 행사가 열릴 때 마다 미국 국민들이 그 행사를 스포츠 결승전보다 더 진지하게 지켜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텔 불참으로 맥빠진 '칩전쟁'
 

행사장을 장악한 마이크로소프트의 현수막. 일부 관람자들은 '윈도즈 월드 속의 컴덱스쇼'란 표현으로 이번 행사를 규정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컴퓨터 박람회인 '94 춘계 컴덱스쇼'가 미국 남부 애틀랜타시 조지아 월드 콩그레스 센터(GWCC)에서 세계 각국에서 나온 1천여 업체가 참가한 가운데 지난 5월23일부터 나흘간 열렸다.

컴덱스쇼는 매년 봄과 가을 두차례에 걸쳐 각각 애틀랜타와 라스베이거스에서 나뉘어 열린다. 이 두번의 전시회중 무게 중심은 아무래도 신기술을 채용한 제품이 쏟아져 나오는 가을 컴덱스쇼에 있다. 참가 업체를 비롯한 행사 규모만 보더라도 봄 전시회는 가을의 4분의 1밖 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봄 행사의 규모가 작다고 해서 컴퓨터 업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컴덱스쇼의 명성을 깎는 일은 없다. 지난 해 가을에 발표된 신개념의 상품들은 한층 기능이 강화된 모습으로 등장하고 가을에 본격 발표될 상품들도 맛보기로 선보이기 때문. 더구나 2년 전 부터는 봄 컴덱스쇼와 함께 윈도즈용 솔루션이 총출동하는 '윈도즈 월드'가 같은 장소에서 열려 자연스럽게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올해도 역시 윈도즈에 기반을 둔 각종 소프트웨어와 멀티미디어 네트워크 전자우편 화상회의 고속통신 펜인식 음성인식 등 30여 부문에서 1만여점이 선보여, 4일 동안 6만원이나 하는 입장료를 내고 20여 만명의 인원이 다녀간 것으로 주최자인 인터페이스 그룹은 집계했다.

현지 언론을 비롯한 전문가들은 각종 매체를 통해 행사가 열리기 전부터 마이크로프로세서들의 군웅할거를 '마이크로프로세서 대전(大戰)'이란 제목으로 이슈화 하면서 분위기를 잡았다.

물론 마이크로프로세서 전쟁은 이미 작년부터 예견된 것으로, 전혀 새로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칩들의 전쟁을 봄 컴덱스의 최대 이슈로 삼은 이유는 인텔의 펜티엄 아성을 깨려는 차세대 마이크로프로세서들이 이번 기회를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한 분기점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PC를 개발하면서 인텔사에게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맡겼다가 도리어 시장 주도권을 하청업체에게 빼앗긴 IBM은 자신의 옛 영화를 되찾기 위해 인텔의 X86 계열 칩과 전혀 다른 아키텍처의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만들기로 했다. 이런 사정 속에 등장한 것이 IBM과 모토로라, 애플사가 컨소시엄을 형성해 만들어낸 64비트 RISC 칩 '파워 PC'다.

이번 전시회에 인텔이 자사의 부스를 설치하지 않은 것에 반해 이들 연합 전선은 대형 부스를 설치하고 파워 PC에서 윈도즈용 멀티미디어 어플리케이션을 작동시키는 등 64비트 CPU 시장의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의 시카코와 같은 32비트 운영체제인 OS/2 신버전 발표(올 가을 출시 예정)에 더 큰 역점을 두는 듯한 IBM이나 PDA제품인 '뉴턴'을 계속 밀어붙이고 있는 애플과 달리, 기존 시장에서 이렇다 할 배경을 갖고 있지 않은 모토로라는 파워 PC 601, 603, 604 프로세서를 갖춘 PC를 선보이면서 이 제품에 강한 집착을 보였다.

이런 거물급들의 등장 속에서 디지털 이큅먼트사가 내놓은 '알파칩'도 '칩 전쟁'에서 적지 않은 관심을 모은 병사다. 인텔의 불참으로 맥이 빠질 수도 있었던 이번 전시회가 그런대로 구색을 맞출 수 있었던 것은 우리에게 별반 알려지지 않은 카레라컴퓨터가 세계 최고 수준인 2백75㎒의 알파 AXP칩을 탑재한 컴퓨터를 내놓은 것이라는 시각도 있을 정도였다.

컴덱스가 열릴 때 마다 관심의 표적이 되던 '윈도즈의 본향'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이번도 예외 없이 개막 전부터 전시회의 분위기를 장악하며 대세몰이에 나섰다. GWCC 메인홀에서 열린 개막식에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 회장을 비롯해 크리스토퍼 갤빈 모토롤러 사장 등 세계 컴퓨터업계를 대표하는 인물 2백여명이 참석하는 성황을 이룬 가운데서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빌 게이츠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 것인가에 몰려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제품설명회 장면. 상품의 특성을 자세히 파악하고 있는 설명자가 첨단 프리젠테이션 기법이 총동원된 가운데 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최대 뉴스메이커 빌 게이츠

최근 에이즈 치료제 등 신약을 만드는 신생 생명공학 기업인 다윈 몰레큘러 테크놀러지스사에 1천만 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알려진 이 천재 사업가는 개막식에 앞서 열린 '윈도즈 월드' 기조연설장에서 예전보다 훨씬 원숙한 모습으로 정보산업에 대한 자신의 전망을 발표했다.

1시간 가량 진행된 그의 연설은 '시카코'란 프로젝트명으로 불리는 32비트 운영체제의 윈도즈 차기 버전과 전세계를 들끓게 하고 있는 정보통신의 신개념 '정보고속도로'로 압축된다. 그는 시카코가 윈도즈 3.1의 프로그램 관리자와 파일 관리자의 기능을 강화한 익스플로러(explorer)를 채용했다고 밝히면서 오는 11월 경 발표될 이 운영체제는 사용자 편리성에 힘입어 향후 데스크톱 PC의 표준환경으로 정착될 것이라고 강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또한 자신은 광적으로 정보고속도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밝힌 그는(지난 3월 21일 그는 맥코 셀룰러사의 맥코회장과 함께 8백여개의 위성을 띄워 우주공간에 정보고속도로를 구축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정보 고속도로에 관한 모종의 프로젝트(터치다운)를 진행중이라고 말했다.

그가 기조 연설을 통해 밝힌 마이크로소프트의 야심만만함은 윈도즈 월드 전시관에 설치된 마이크로소프트 부스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서는 작년 말 1차 베타테스트를 거친 시카코가 예정과 달리 완제품으로 발표하지 못하고 2차 베타버전 데모가 행해졌다. 그리고 '액세스 2.0'과 '오피스' 등의 통합 사무용 패키지와 '비주얼 베이식' 등의 개발 툴도 소개됐다.

이들 프로그램은 각 소프트웨어의 상위 메뉴를 모두 통일시켜 한 프로그램에서 생성한 매크로를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고스란히 쓸 수 있는 등 사용자 편리성을 증대시켰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또한 전문가용 개발 언어인 비주얼 베이식은 앞으로 개발 환경의 대변화를 불어와 '뷔페식 소프트웨어 제작시대'의 도래를 예견케 했다.

이번 전시회는 윈도즈가 업계와 사용자들의 표준으로 자리잡았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쟁사인 로터스는 윈도즈를 기반으로 한 각종 제품과 함께 도스버전의 스프레드시트인 로터스 1-2-3 릴리스 4를 발표해 이채를 띠었다.

기존 버전들과의 호환성을 유지하기 위해 버전관리자를 비롯, 전자우편과 철자검색기능이 추가되고 대화상자기능과 화면이동막대, 스마트아이콘 기능을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이 프로그램이 도스 운영체제의 그래픽사용자인터페이스를 채택한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윈도즈 낙오자들을 모두 끌어안겠다는 의지로 풀이하고 있다.

현란함의 극치 멀리미디어 신제품

멀티미디어 열풍은 이번 전시회에서도 여전했다. 전시 내용을 주제별로 나누어 볼 때 가장 많은 업체들이 참여한 분야도 바로 멀티미디어였다. 따라서 전시회 자체가 동영상과 그래픽, 사운드 등이 어우러진 멀티미디어 경연장이었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미국에서 행해진 한 조사에 따르면 작년 한해 동안 가정용으로 구입된 PC중 37%가 CD-ROM을 장착하고 있다고 한다. 이같은 경향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대세로 굳어져 자신들의 데모버전이나 보도자료를 CD-ROM 타이틀로 제작해 배포하는 곳도 상당수였다.

멀티미디어 전시 분야 중 최고의 관심을 이끈 것도 단연 CD-ROM이었다. 또한 질과 양에 있어서 교육용과 함께 오락용, 특히 도색 타이틀의 팽창은 눈에 띌 만큼 현저했다. 도색잡지의 대명사로 불리는 펜트하우스에서는 말끔한 동영상으로 제공되는 누드 모델들의 움직임을 사용자가 원하는 위치에서 카메라로 찍어 슬라이드 형태로 담아낼 수 있는 대화형 타이틀을 선보여 많은 이들의 발길을 묶었다.

이외에도 종이에 적힌 악보를 스캐너로 읽어들여 다중 미디 파일로 변환시키는 '미디스캔'은 작년보다 인식률을 높여 버전 업된 제품을 소개했고 PC를 통한 화상회의시스템이나 GPS 시스템, 가상현실을 이용한 게임 등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에게는 별반 흥미로울 것도 못되는 컴퓨터 노래방 부스에서 노래를 따라부르는 시연자를 신기한 듯 쳐다보는 현지인들이 이색적이었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나타난 두드러진 특징중 하나는 PCMCIA 카드가 대거 등장했다는 것이다. 가로 54㎜, 세로 85.6㎜의 자그마한 명함크기 밖에 안되는 이 카드는 노트북이나 PDA 같은 이동 컴퓨팅을 가능케 하는 열쇠로 주목받아 왔다. 그동안 등장했던 PCMCIA 카드는 메모리카드인 타입 Ⅰ, 통신용으로 사용되는 타입 Ⅱ, 하드디스크인 타입 Ⅲ 등으로 나뉘는데, 이번에 나온 제품들중에는 노트북의 표준사양으로 자리잡은 PCMCIA 슬롯을 위해 호스트와 카드의 전송 속도를 배가시킨 제품이 쏟아져나왔다.

한편 동화상 압축기술의 표준으로 자리잡고 있는 MPEG의 자료 압축률을 최대 1백80 대 1까지 높인 제품도 등장했다. 퓨처텔이란 회사에서 선보인 이 기술은 VHS급의 동화상 화면을 캡처해서 압축하는데까지 단한번의 과정으로 해치운다.

우리에겐 부럽고 아쉬운 전시회

이번 전시회에 참가한 우리나라 업체는 모니터 전문 업체인 코리아 데이터시스템(KDS)과 비디오CD를 선보인 옥소리, 금성사 등 10개 업체도 안돼 아쉬움을 남겼다. 우리와 처지가 유사한 대만에서 멀티미디어 관련 제품만으로도 우리보다 더 많은 업체가 참가한 것과 비교하면 우리 업체들의 관심 부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국내 참가 업체중 소프트웨어를 출품한 곳은 한 군데도 없어 우리 소프트웨어산업의 앞날이 대단히 어렵다는 것을 절감케 했다.

이번 전시회를 참관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결같이 외국의 앞선 기술과 함께 탁월한 이벤트 기법에 찬사를 보냈다. 특히 우리 전시회에 등장하는 진행요원들이 제품 앞에 서서 고운 얼굴에 미소나 짓는 '인형'이나 '앵무새'에 머무는 것과 달리, 제품소개 시연에 등장한 인물들은 자신이 담당한 제품의 성격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전문가들인 것에 크게 놀랐다고 입을 모았다.

현지에서 만난 큰틀 실장 이한순씨는 "윈도즈 월드에 참여한 1천여 업체들은 비록 자그마한 부스에서 별반 눈길을 끌지 못한 곳도 있겠지만 그들 조차 우리 업체와 수평비교를 한다면 상대적 우위에 있는 것 같다"며 "이 차이를 극복하는 일은 역시 사람 문제"라며 전문인력의 부족을 아쉬워 했다.

한편 컴덱스쇼의 주관업체인 인터페이스그룹은 연평균 15% 이상의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아시아권의 정보산업에 전세계 업체의 참여 기회를 넓히기 위해 싱가포르 인터내셔널 컨벤션 센터에서 매년 '컴덱스 아시아'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다양한 네트워크 솔루션의 등장도 이번 전시회의 한 특징으로 나타났다.
 

1994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이강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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