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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인들은 빛을 어떻게 인식했는가. 이들의 빛에 대한 인식을 기반으로 갈릴레이와 뉴턴의 연구가 덧붙여졌고 20세기 초반 상대성이론과 양자 역학이 성립함으로써 빛의 본질이 드러났다.

B.C. 6세기에서 4세기에 이르는 기간은 인류 역사상 사상적 변화가 가장 컸던 시기라고 말해진다. 불행하게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웃간의 끊임없는 잡음이 계속되던 시기였으나 우리의 자연인식 태도나 세계관에 있어서는 전무후무한 진보의 시기였다. 그 위력은 20세기 초반 상대론과 양자론으로 물리학을 뒤흔든 1900년대에 버금갈 만큼 대단했다.

사람들은 처음으로 원시의 미혹상태에서 벗어나 천지만물의 복잡한 자연현상, 사연 많은 인간사를 몇 개의 기본 공리와 논리를 바탕으로 제법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려 시도한 시기였다. 전란의 와중에서도 중국은 제자백가사상을 꽃피웠고 지식인들은 천하를 순유하며 보다 나은 인간 삶을 위한 새로운 제도, 철학을 발견하려 고민하고 있었다. 인도의 석가모니는 원시종교에서 벗어난 근대적 의미로의 종교개혁을 시도하던 시기였고 그리스인들은 기하학적 완벽성을 추구하며 우주의 궁극적인 진리를 찾으려 했다.

물론 새로운 변화는 항상 그에 따른 저항이 뒤따른다. 석가는 돌팔매질을 당했고 제자백가는 대다수가 객사했다. 수치적 완벽성을 깨뜨렸다고 믿어진 '말도 안되는'(irrational) 숫자, 즉 무리수(irrational number)를 발견한 사람은 피살당했고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한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타르쿠스(Aristarchus)는 신변상의 위협에 시달려야만 했다.

사상적 면죄부

그래도 우리의 고대사상사에서 빛에 관한 탐구는 비록 자유로왔다는 점이 제법 특이하다. 고집 센 그리스인들은 세계는 흙 불 공기물 등 네 가지 기본 원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었다. 이상스럽게도,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빛은 그들의 세계관을 이루는 기본원소에서 빠져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세계관에 아무런 손상을 입히지 않는 빛에 대한 어떠한 가설이라도 '사상적 면죄부'가 부여돼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당시 그리스 이오니아의 철학자였던 엠페도클레스(Empedocles)라는 사람은 깊은 사색 끝에 '빛의 전파속도는 매우 빠르지만 유한(有限)하다'는 결론에까지 이른다.

그렇다면 과연 빛이란 무엇일까? 고대인에게는 아주 어려운 질문이었다. 즉 빛은 나름대로 존재의미를 갖는 물질인가, 아니면 단지 우리의 망막이 '찰나적 사건을 인식하는 지각현상(知覺現狀)에 불과한 것인가'. '삶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버금가는 아주 어려운 질문인 것이다. 다행인 것은 이 질문이 '안 풀리는 문제에 이해안가는 대답을 주는 그러한 궤변론적 질문'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최초의 해답이 만유인력으로 유명한 뉴턴에게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는 '빛이란 에너지의 알갱이(粒子)형태로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전파하는 물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러한 빛의 숨은 속성을 좀 더 벗겨보려던 탐구자들은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갈릴레이는 망원경을 통해 태양을 바라보려다 시신경에 큰 상처를 입었다. 과연 빛이란 에너지의 알갱이로 '진짜로' 시신경을 해치는 작용까지 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태양속에는 '시신경을 해치는 현상'이 있어서 그로 인해 갈릴레이의 망막이 손상을 입은 것은 아니었다. 뉴턴은 좀 더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그는 태양빛을 거울에 비추어 보았다. 그러나 그 역시 너무 오래 거울속 태양을 응시하는 바람에 시력장애에 시달려야 했다.

엠페도클레스의 결론을 증명하려면 빛의 전파속도가 얼마인지를 알아내야 한다. 이런 시각에서 최초로 빛의 전파속도를 재려고 했던 사람은 갈릴레이다. 그는 조수에게 시계를 주고 약속된 시간에 멀리 떨어진 지점에서 불빛을 반짝거리게 했다. 이렇게 해서 불빛이 그에게 전해진 시간으로 조수까지의 거리를 재어 빛의 속도를 알아내려고 한 것이다. 소리의 전파속도 역시 비슷한 방법으로 잴 수 있다. 그러나 빛은 소리와 판이하게 달랐다. 빛의 전파속도는 그가 상상할 수 없을 만치 빨랐던 것이다.

그러나 1676년, 드디어 뢰머(Roemer)는 진공중에서 빛의 전파속도를 재는데 성공했다. 목성의 광행차를 이용하는 아주 멋진 방법이었다. 광행차란 빛의 전파방향이 수신자의 운동상태에 따라 엇비스듬하게 꺾여보이는 현상이다. 쉽게 말하면 비오는 날 달리는 자동차의 속도에 따라 앞창에 떨어지는 빗줄기의 각도가 커지는 현상을 말한다. 조용한 부슬비라도 과속차량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앞창을 거의 평행방향으로 때리는 장대비로 보이는 현상이다. 따라서 이러한 빗줄기를 목성 빛으로 바꾸고 지구의 공전속도를 자동차의 속도라 가정하면 지구상에서 목성빛을 받는 망원경의 각도란 지구의 공전방향에 따라 조금씩 기울어져야 할 것이다. 참으로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뢰머는 빛의 전파속도를 엄청난 정밀도로 측정해내는데 성공했다.

결과는 초속 30만㎞에 가까운 값으로 이는 현대적 장비를 통해 정밀 측정한 값과 그리 큰 차이가 없다. 갈릴레이 뉴턴 뢰머의 시기에 이르러 우리는 빛이란 진공속에서 이곳 저곳으로 전파되는 에너지의 일종으로 전파속도는 유한한 값이라는 사실까지 알게 된 것이다. 빛에 대한 본격적인 자연과학적 탐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최초로 빛의 전파속도를 재려했던 갈릴레이
 

논쟁의 시작

빛에 대한 다분히 현상론적인 논쟁이 끝난 이상 이제는 빛의 본질을 밝혀야 할 시기가 왔다. 그런데 빛의 본질을 밝히려는 노력은 곧바로 현대과학의 탄생에 산파역할을 한다. 빛의 본질에 대한 탐구는 궁극적으로 물리학의 혁명의 시기인 1900년대를 잉태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탐구의 첫 주자는 바로 뉴턴이다. 어두운 방에서 프리즘을 통해 나온 일곱가지 색깔의 태양빛에 매혹되었던 그는 빛이란 색깔이 다른 미세한 알갱이(粒子)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색깔들을 느끼는 이유는 빛의 알갱이들이 날아와 우리의 망막을 자극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오래된 자동차의 시트색이 바래는 이유는 바로 태양빛 알갱이들이 시트의 색소를 파괴하기 때문에 생긴다는, 무리가 없어 보이는 설명이었다. 그는 "신은 여러 입자를 만들었고, 그렇게 하여 자연법칙은 운행된다. 이 논리에서 아무런 모순점을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네덜란드에 있던 호이겐스는 이러한 뉴턴의 설명을 반박했다. 빛을 좁은 두개의 격자를 통과하게 하고 격자 뒤 일정한 거리에 위치한 스크린에 간섭무늬를 만드는 현상을 보라. 두개의 격자를 통과한 빛은 마치 고요한 수면에 던져진 두개의 돌멩이가 일으킨 파문이 겹친 것처럼 서로 높고 낮게 출령거리는 파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빛은 에너지의 알갱이라는 설명보다는 물결파와 같은 파동현상이라는 것이 더 자연스런 설명이라는 주장이다. 그나마 외교적으로 편치않던 두나라의 상황덕에 빛의 속성에 관한 이 논쟁은 정치적 의미까지 띤 격론으로 비화될 지경이었다.

이러한 논쟁에 보다 정확한 대답을 준 사람은 최초의 전자기 통일장 이론, 즉 맥스웰 전자기 방정식을 제창한 제임스 맥스웰(J.C. Maxwell)이다. 그는 처음으로, 비빈 유리가 종이를 끌어당기는 정전기 현상과 자석이 모래 속에서 쇳가루를 끌어당기는 자기현상이 하나의 동일한 현상임을 밝혔다. 아주 놀라운 사실이었다. 자기현상이란 전기 현상을 움직이는 관측자가 본 현상이고 또는 정지한 관측자가 움직이는 전하(charge)를 관측할 때 생기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전자기 통일장이론이 내리는 가장 중요한 결론은 관측자의 운동상태에 상관없이 존재할 수 있는 전자기에너지 파동현상이 우리 우주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빛이었다. 맥스웰 방정식을 통해 빛의 본질이 거의 2천5백년만에 밝혀진 셈이다.

맥스웰 방정식에 따르면 빛은 에너지의 파동현상이므로, 뉴턴의 입자성을 반박하고 호이겐스의 파동설을 증명해준다. 뿐만 아니라 빛의 전파속도가 이미 뢰머가 광행자의 방법으로 측정한 값과 거의 동일한 초속 30만㎞라는 사실을 밝혀준다. 이 방정식은 갈릴레이나 뢰머처럼 실험장비가 없어도 단지 방정식 내 존재하는 전자기적 변수의 적절한 조합만으로 빛의 속도가 유도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1967년 뉴턴이 행한 분광실험도. 뉴턴은 광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빛의 성질을 밝히는데 많은 시간을 쏟았다.
 

물리학을 뒤흔든 30년

B.C.6-4세기에 버금가는 우리의 자연인식에 대한 격동적 변화는 1900년 초에 찾아왔다. 좀더 자세히 말하면 1905년에 특수상대성이론이 제창되었고 1915년에 일반상대론이 제창되었다. 그리고 1925년은 양자역학이 본모습을 드러낸 해다. 사람들은 이 기간을 통틀어 '물리학을 뒤흔든 30년' 이라고 한다. 이들 이론들이 현대 물리학에 끼친 여파는 누구도 반론치 않으리라. 실상 아직도 이들 세개의 이론에 버금가는 다른 이론들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1930년대 이후 지금까지 이들 이론간에는 많은 발전이 있었다. 예를 들어 여러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특수상대성이론과 양자론은 자연스런 모습으로 융합되었고 이런 이론을 기초로 지금 이시간 우리는 (빛과) 물질간의 상호작용 등을 탐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주 기묘하게도 세개의 혁명적 이론의 탄생에는 모두 빛이 관여하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1905년에 제창된 특수상대론은 빛의 진공속 전파속성을 연구하다가, 즉 빛의 전파매개체로 알려진 에테르(ether)라는 물질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탄생한 이론이다(일반 상대성이론은 특수상대론을 일반화시킨 이론). 이 이론을 통해 우리는 시간과 공간이 별개의 독립된 개념이 아닌 '시공간'이라는 통합개념으로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은 분리될 수 없게 연계되어 있고 우리 우주 어디에도 '동시'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빛의 전파속도가 유한한 이상 눈앞에 있는 당신 애인의 얼굴도 '현재'의 모습이 아닌 약 1억분의 1초전 '과거'의 모습인 것이다. 시간과 공간이 하나의 개념인 이상 우리의 존재란 이러한 사고안의 우주적 진화를 보여주는 우주방정식에 영향을 받는다. 이것이 바로 현대 표준 우주론인 대폭발이론의 기본구조가 되어 있다.

극미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잘 설명해주는 양자역학은 뜨거운 물체가 방출하는 열복사선(빛)이 갖는 에너지 분포상태를 연구하는 도중에 발견되었다. 이론적으로 뜨거운 물체가 갖는 에너지를 계산해보려 할 때 빛은 노출됐다. 즉 뜨거운 물체를 이루는 원자들이 가질 수 있는 에너지를 합산하면 항상 무한대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모순점에 시달리던 독일의 물리학자 플랑크(Planck)는 모든 문제가 에너지의 합산과정에서 온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즉 총에너지를 구하려는 과정에서 적분을 하는 과정이 있는데 그 적분값이 무한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적분을 하나하나 분해해서 보는 수열로 변환시킨 후 이를 모두 쪼개어 합해 보았다. 놀랍게도 수열로 정의된 원래 적분치는 유한한 값으로 나왔고 그 값은 실험적으로 밝혀진 열복사선의 총합과 일치했다. 여기서 플랑크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빛과 물질간 에너지 교환은 에너지가 덩어리로 방출되고, 그리고 흡수되면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플랑크는 이렇게 불연속적으로 나타나는 각개 에너지 덩어리를 양자(Quanta)라고 불렀다. 양자역학이 탄생된 순간이다. 이러한 플랑크의 업적을 기려 우리는 양자역학의 기본상수인 h를 플랑크 상수라 부른다.

이러한 플랑크의 해석은 후에 아인슈타인의 광량자설로 증명된다. 금속 표면에 빛을 쬐면 전자가 방출되는데 그 전자의 에너지는 양자화된 모습을 갖는 것이다(이 광량자설로 아인슈타인은 노벨상을 수상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빛은 에너지의 알갱이라는, 즉 뉴턴의 관점으로 되돌아온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근대 양자론의 성공은 빛이 입자성을 갖는다는 뉴턴의 관점을 또다시 부활시켜 준 셈이다.
 

(그림) 빛의 속도에 관한 여러가지 실험들
 

입자설의 부활

그렇다면 빛이 격자를 통과한 후에 간섭무늬를 만드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었다. 결국 빛은 입자성과 파동성이라는 양면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여 많은 사람들을 당황케 했다. 이러한 혼란속에서 프랑스의 드 브로이(de broglis)는 물질이 빛처럼 파동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미 파동이라고 믿어왔던 빛이 입자성을 갖는 이상, 입자로 기술되는 일반 물질이 파동의 현상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입자성과 파동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셈이다. 결국 이러한 드 브로이의 파격적인 주장은 전자의 회절실험을 통해 드라마틱하게 입증되었다. 애초에 호이겐스가 한 빛의 간섭실험을 전자로 반복해 보면 전자 역시 간섭현상을 보인다. 에너지의 알갱이인 전자라는 입자가 파동현상을 보이는 것이다.

빛의 간섭 실험방법은 간단하다. 우리는 빛 대신 전자를 한개 한개 격자를 향해 쏘면 된다. 각개 입자는 하나하나 격자를 통해 격자 뒤의 화면에 도달한다. 그런데 이렇게 쏘는 전자의 숫자가 많아지면 점점 격자 뒤 화면에 전자의 회절무늬가 나타난다. 즉 격자를 통과한 전자의 개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전자는 마치 빛과 같이 파동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2천5백년에 걸친 자연관은 순식간에 뒤바뀌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수식적으로 정량화된 양자역학적 파동함수(슈뢰딩거 방정식)로 정확히 기술된다. 파동함수에서는 전자의 위치와 운동상태가 항상 확률치로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주목할 점은 확률적으로 나타나는 사건에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도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개의 사건과 사건의 횟수만을 따진다. 각각 사건 사이의 시간간격은 확률치를 계산하는데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양자역학을 소개하는 책자에서 항상 나오는 질문, 즉 '한개의 전자가 과연 두 개의 다른 격자로 동시에 통과하느냐'는 질문은 전자의 물리상태가 확률함수로 기술되는 한 무의미한 질문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빛과 물질의 양자역학적기술법, 특히 상대론적 양자현상은 극미의 세계에서, 극대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온갖 자연현상들을 훌륭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원자내 전자의 운동에서 고에너지 입자의 충돌현상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우주탄생 ${10}^{-35}$초 후에 우주의 힘(상호작용)간에 있었던 상전이(phase transition)현상에서 원자폭탄의 폭발에 이르기까지 모두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빛에 대한 인류의 오랜 탐구는 현대과학의 궁극적 발전방향을 알게모르게 향도해온 셈이다. 빛의 연구를 통해 시간과 공간간의 유기적 연관관계도 알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물질과 우리들 자신의 존재가 어떠한 우주적연관관계를 맺고 있는가도 알게 되었다. 또한 빛과 물질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다가 우리는 물질의 입자성과 파동성을 밝히게 되었고, 이러한 지식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산업화된 혜택'으로서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예를 들면 양자현상을 응용한 레이저나 원자시계가 우리 사회 도처에서 훌륭하게 제몫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2천5백년전 고대인들의 이상, 즉 가장 복잡해 보이는 자연현상을 가장 간단한 기본원칙으로 모두 설명하려 했던 열정은 그들이 가장 등한시했던 빛이라는 존재의 연구과정에서 밝혀진 셈이다. 아이러니컬한 과학사 흐름 중의 하나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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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라대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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