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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벤처 내 손으로 만든다

서울대 학생벤처네트워크

스마트폰 보급대수가 1000만 대 가까이 되면서 제2의 벤처 바람이 불고 있다. 성공 사례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지만 벤처 환경은 여전히 척박하다. 하지만 명문대 프리미엄을 버리고 도전에 나선 이들이 있다. 바로 서울대 벤처동아리인 ‘학생벤처네트워크’. 이들은 최근 미국 MIT와 함께 ‘MIT-글로벌벤처창업워크숍(MIT-GSW)’을 서울에서 스스로 열며 글로벌 창업을 위한 도전을 시작했다.



 
MIT-GSW가 ‘청년 창업과 경제 활력을 위한 기업가 정신 발현’이라는 부제로 3월 23일에서 25일까지 서울에서 열렸다. 이 행사에는 전 세계 300여 명의 기업가와 벤처 투자자, 교수, 학생이 모여 글로벌 창업 정보를 공유했다.
 
미국 MIT 기업가정신센터가 세계 각지에서 매년 개최하는 이 행사는 1998년부터 13차례 열렸다. 기업가정신센터는 높은 기술력을 보유한 벤처 기업을 성공시키고자 희망하는 사람을 교육하는 기관으로 MIT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망한 청년 기업가를 자극·훈련·코치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올해 MIT-GSW에는 메모리반도체 집적도가 1년에 2배씩 늘어난다는 ‘황의 법칙’을 만든 황창규 국가연구개발전략기획단장을 비롯해 이수만 SM 엔터테인먼트 회장,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사장, 윌리엄 올렛 MIT 창업지원센터 소장이 연사로 참여했다.

이수만 회장은 ‘21세기는 문화 기술의 시대’임을 역설했고, 이재웅 사장은 “창업은 희소성이 있는 소재가 중요하지만 거창한 사업계획서보다 중요한 건 여러분들 가슴 속에 있는 꿈”이라고 강조했다. 놀라운 것은 이 행사를 모두 대학생들이 주최했다는 사실이었다.

MIT-GSW, 벤처창업의 씨앗
이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유명인사들의 강연과 토론이 아니었다. EPC라 불리는 1분 사업 계획서 발표 대회가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다. EPC(Elevate Speech Contest)는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만난 투자자에게 1분간의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의 사업계획에 관해 간략히 설명해 투자를 얻거나 다음에 더 자세하게 사업을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이끌어 내는 콘테스트다. 이번 워크숍에도 세계에 도전하는 젊은 창업가의 창의적 아이디어가 넘쳤다. EPC 결선에 오른 정인호(동의대 한의대 08학번) 씨는 한의학 정보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결합한 아이디어로 주목을 끌었다.

“EPC에서 좋은 평을 받으니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발표가 끝나고 나온 질문을 통해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한의학 정보를 쉽고 친근한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알리는 서비스를 개발할 계획입니다.”

이 행사는 참가자들이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도 많은 시간이 할애됐다. 행사와 행사 사이에 쉬는 시간을 길게 둬 틈틈이 교류할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됐다. 오후 일정이 끝나면 칵테일파티가 열려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었다.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사업 아이템을 소개했으며, 벤처 투자자들은 괜찮은 아이디어다 싶으면 바로 다음 회의 약속을 잡았다.

앞서 글로벌 벤처를 창업한 사람들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미국 보스톤에서 유비쿼터스 센서 네트워크회사를 창업해 10년간 운영하고 있는 이석우 밀레니얼넷 CTO(최고기술책임자)는 “한국의 벤처 창업 열기가 뜨거워 놀랐다”라고 말했다. 아쉬운 점을 지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구체적인 사업 실행 방안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고 스마트폰 앱 개발로 아이디어가 편중돼 있어 아쉬웠습니다.”
미국식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을 어색하게 여겨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우리나라처럼 학연, 지연 등 공동체를 중심으로 모이는 것과 달리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 사업을 제안하는 문화가 생소했기 때문이다. 영어가 자유롭지 못한 것도 소통을 가로막았다.

김유리 조직위원회 부대표는 “이번 워크숍을 통해 당장 투자와 같은 직접적 성과가 많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라며 “벤처 창업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들의 만남이 씨앗이 돼 훗날 큰 성과를 내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유수의 국내 연사와 300여 명의 참가자들이 모인 국제행사를 준비한 사람들은 누구일까.


[지난해 3월부터 MIT-GSW 개최를 준비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지난해 8월 개최권을 따냈다. 서울대를 주측으로 연세대, 인하대 배재대 등 대학생 8명으로 꾸려진 GSW조직위원회는 합숙을 하고 예상질문과 답변을 모두 외우는 등 많은 노력을 했다.]

학생 스스로 준비한 국제 워크숍
MIT-GSW는 서울대의 벤처 동아리인 ‘학생벤처네트워크’가 주축이 돼 연세대, 배제대, 인하대 학생들과 함께 준비했다. 조직위원회 대표이자 동아리의 전임 회장인 양영석(서울대 경영학과 09학번) 씨는 백지상태에서 의욕만 갖고 시작했는데 많은 것을 경험했다고 말한다.

“작년에 열린 2010년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MIT-GSW에 가서 영어로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한국 실사를 거쳐 개최권을 따냈습니다. 개최권을 딴 뒤 자금을 모으는 일부터 연사를 섭외하고 장소를 얻는 것까지 학생들 스스로 해냈습니다.”

이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을까. 아니나다를까 양영석 씨는 자금, 장소, 섭외, 홍보 등 쉬운 일이 하나도 없었다고 말한다.

“계약서를 받아 보니 온통 MIT는 모든 행사의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계약서에 사인한 뒤 모든 책임을 저와 동아리가 져야 했습니다.”

MIT의 경험과 네트워크를 얻으려는 입장이다 보니 이런 불리한 조건을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

“자금을 모으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처음 여러 단체에 제안서를 냈더니 못미더워하는 눈치더군요. 어쩔 수 없이 지도교수(홍국선 서울대 교수)를 통해 교과부의 펀드를 받았습니다. 중소기업청 등은 우리가 직접 제안서를 내 자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아직 학생이다 보니 사회 경험이 없어 실수도 많았다.

“연사를 섭외하는 절차를 잘 몰랐어요. 우리가 섭외한 연사들의 스케줄을 생각하면 적어도 한두 달 전에 섭외를 했어야 하는데 대회 2주 전에 연락했습니다. 고맙게도 시간을 내주었지요. 장소 섭외도 가까스로 했습니다.”

이들은 왜 워크숍을 개최했을까. 조영일(서울대 산업공학과 08학번) 씨는 2009년부터 MIT-GSW에 참가하며 경험한 해외 벤처창업자들의 열기가 부러웠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글로벌 창업을 위해 적극적으로 투자자에게 사업제의를 하며 네트워크를 만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런 열정을 한국에서 벤처를 준비하는 이들도 경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국내에서는 적극적으로 사업제의를 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MIT-GSW가 우리나라에 충격을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들은 왜 MIT-GSW가 충격을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을까. 이들은 벤처창업을 준비하는 데 가족과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으로 힘들었다고 토로한다. 현재 회장인 최영철(서울대 지구환경과학과 07학번) 씨는 “벤처를 창업한다고 하니 안정적인 직장을 바라는 가족들이 많이 반대했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의 미래, 벤처
창업은 곧 기회고 도전이라고 보는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회사 규모나 학벌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는 문화가 여전하다. 임정욱 미국 라이코스 대표도 “실리콘밸리에선 창업가라고 하면 대단한 사람으로 인정하는데 한국에선 명문대에 다녔으면서 대기업이나 가지 왜 중퇴했느냐고 이상하게 보더라”고 말했다.

양영석 씨도 같은 어려움을 토로했다. “MIT-GSW를 준비하기 전에는 가족들은 저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서울대 경영학과를 다니는 사람이 왜 굳이 안정적인 길을 포기 하냐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MIT-GSW를 유치하고 해내는 걸 보고 가족들이 제 도전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MIT-GSW 개최의 또 다른 목적은 기업가정신의 확산이었다. 학생벤처네트워크에서는 이번 워크숍을 통해 국내 대학생들이 전 세계 벤처창업자와 기업가 정신을 공유하길 기대했다. 최영철 씨는 안철수 KAIST 석좌교수의 말을 인용해 기업가정신을 설명했다.

“안 교수는 벤처 창업자가 기업가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기업가 정신이란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에 옮겨 세상에 없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내는 활동과, 그 결과를 책임지는 것이라고 정의했죠.”

학생벤처네트워크의 지도교수인 홍국선 서울대 산학협력단장은 기업가정신을 지닌 벤처가 한국 경제의 미래라고 말했다.

“대기업은 나라의 경제에 중요한 몫을 합니다. 그러나 대기업이 엄청난 혁신을 하기 힘듭니다. 몸집이 큰 만큼 새로운 시도를 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벤처는 기업가정신 하나만으로 자유롭게 창의적인 시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만큼 새로운 가치와 일자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MIT 기업가정신센터도 이런 면에서 기업가정신을 강조합니다.”

기업가정신의 확산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미국 카우프만재단 칼 슈람 이사장은 “미국은 건국 이래 기업가정신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경제성장을 이끌어 국민의 삶을 풍요롭게 했다”고 말했다. 실제 1980년대 이후 미국의 일자리 증가 대부분을 신생기업이 창출했다. 벤처야말로 나라에 새로운 일거리를 만들어 나라를 풍요롭게 만드는 도전이라는 것이다. 서울대 학생벤처네트워크를 비롯한 전국의 수많은 학생벤처동아리의 활약이 기대된다.

2011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김종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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