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존재하는 화학의 학문체계를 떠받치는 기둥은 원소 주기율표다. 화학적 성질이 비슷한 원소들을 일정한 간격을 두고 주기적으로 나타낸 주기율표는 원소의 규칙성을 규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화학자들은 두 가지 측면에서 물질을 연구해왔다. 한 부류의 화학자들은 물질의 맛 색깔 냄새 반응 등을 연구해 물질의 기본적인 종류, 즉 원소를 찾기 위해 노력했고, 다른 사람들은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 즉 원자와 분자의 크기 질량 모양을 알아내고자 했다. 그 결과 1869년까지 63개의 원소들이 발견 됐으며 원자의 질량 밀도 등도 결정됐다.
그러나 화학자들은 63가지나 되는 물질들을 어떻게 분류해야 하는지 난감해 했다. 한 부류의 화학자들은 원자의 종류에 따라 원자의 질량이 다르다는 것에 착안해 원자 질량 간의 수학적인 규칙성을 발견하려고 했다. 그리고 또 다른 부류의 화학자들은 원소를 화학적 성질에 따라 유사한 성질을 지니는 몇 개의 그룹으로 묶어 보고자 시도했다.
원소의 분류는 동물학이나 식물학에서의 분류와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보이지 않고 경험할 수 없는 원자설에 기초해 접근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모형과 가설이 사용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원자량을 결정하는 정밀한 방법
원자량 사이에 수적인 규칙성을 끊질기게 추적했던 사람들의 자취를 더듬어 보자. 대표적인 사람은 프라우트(William Prout, 1785-1850)다. 그는 여러가지 원소를 원자량의 순서로 배열해 보았다. 그러자 몇몇 원소를 제외하고는 원자량이 거의 수소 원자량의 정수배였다. 그는 이러한 결과로부터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다.
"모든 원소의 원자는 수소 원자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원자량을 결정하는 보다 정밀한 방법이 발견되면서 대부분의 원자량은 정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소수점 이하의 값이 붙어 있었다. 이 때문에 원자들이 수소원자를 기초로 해서 만들어진다는 그의 생각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각 원자가 수소원자로 돼 있지는 않지만 수소를 1로 해서 원자량을 결정해 보면 대부분 수소 원자량의 정수배에 가까운 값을 가진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충분히 각 원자간의 상호 관련성을 추측할 수 있다.
만일 당시에 '모든 원자는 양성자 중성자 전자 등의 기본 입자로 구성된다'는 사실이 발견됐다면 왜 각 원자량이 수소 원자의 정수배가 되는지를 설명할 수 있었을 것 이다.
한편 어떤 사람들은 규칙적인 수의 배열로 표현이 가능한 몇개의 집단으로 나누고자 했다. 이들은 리륨 나트륨 칼륨을 한 집단으로 묶었다. 이 원소들의 원자량은 각각 7, 23, 39다. 이 숫자는 어떠한 관계를 갖는가? 이 숫자를 다시 쓰면 다음과 같이 쓸 수 있다.
7=7+0X16
23=7+1X16
39=7+2X16
이는 7+(n-1)16, n=1,2,3,...와 같은 계열로 표시가 가능하다. 이와같은 수적인 규칙성은 플루오르 염소브롬의 원자량 19, 35.5, 80에서도 찾을 수 있다.
19=19+0X16.5
35.5=19+1X16.5+0X28
80=19+2X16.5+1X28
이 경우는 앞의 예와 같이 단순한 수식으로 표시되지는 않지만 수적인 규칙성이 나타난다고 보여진다. 숫자 놀이를 통해 원소를 분류하려고 했던 사람들은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은 방식으로 원소들을 수학적인 규칙성에 토대해 여러 부류로 나누어 갔다.
이러한 숫적인 규칙성을 발견하려는 시도는 원소가 아닌 유사한 성질의 화합물에 대해서도 이루어졌다. 대표적인 예로 포화탄화수소를 들 수 있다.
포화탄화수소는 탄소와 수소로만 이루어진 화합물로, 탄소수의 증가에 따라 메탄 에탄 프로판 부탄 등으로 나뉘는데 이들의 분자량은 각각 16, 30, 44, 58 이다.
이 분자량은 다음과 같은 식으로 표시될 수 있다.
16=2+1X14
30=2+2X14
44=2+3X14
58=2+4X14
일반식;2+n X 14, n=1,2,3,4,...
이와같은 수적인 규칙성은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수학적인 일반화가 화학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라는 점이었다. 게다가 실제로는 수학적인 일반화가 잘 되지 않는 물질이 더 많았고 수학적인 일반식에 원자량을 꿰어 맞추는 것에도 많은 한계를 드러낼 수 밖에 없었다.
'세식구 한가족' 세쌍원소
원자량 사이의 수학적인 규칙성을 찾았던 사람들과는 달리 유사한 성질을 나타내는 물질을 한 묶음으로 보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사람이 독일 사람인 요한 볼프강 되베라이너였다. 그는 유사한 성질을 나타내는 원소들이 각각 세가지씩 한쌍을 이룬다고 해 '세쌍원소' 라고 이름붙였다.
이들 세식구 한가족의 첫번째 가족은 염소 브롬 요오드다. 상온에서 염소는 황녹색의 기체이고, 브롬은 적갈색의 액체이며 요오드는 보라색 고체다. 세 원소의 상태는 모두 다르지만 공통된 반응성을 나타낸다. 이 원소쌍은 금속을 매우 잘 부식시킨다. 이 원소 가족들은 금속과 반응해 염(salt)을 잘 만든다고 하여 할로겐이라 부른다. 할로겐은 수소와도 잘 반응해 할로겐화수소 화합물을 만들며, 이 할로겐화수소는 물에 녹아서 산성을 띤다.
이 중 염소는 수도물의 소독에 많이 쓰이며 락스와 같은 염소계 표백제에도 들어 있다. 브롬은 사진 필름의 감광제로 널리 쓰이며 요오드는 우리 신체의 전립선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는 필수 원소로, 미역 등의 해초류에 다량 함유돼 있다. 산모들이 미역국을 많이 먹는 것은 미역 속에 포함된 요오드가 산모의 신체 내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되베라이너의 두번째 가족은 리튬 나트륨 칼륨이다. 이 가족의 이름은 알칼리다. 보통 불을 끄기 위해서는 물을 뿌리지만 알칼리 가족은 물을 만나면 불이 붙는다. 이 중에 칼륨과 같은 금속은 얼음 위에서도 불꽃을 내며 반응한다. 이 물질들은 연하여 칼로도 잘라지는데, 칼로 자른 단면은 모두 은빛의 광택을 낸다. 그렇지만 공기와 접촉하면 이내 색이 변하고 만다. 공기 중의 산소에 의해 빠른 산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또한 이 물질들은 모두 전기가 매우 잘 통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
멘델레예프는 원자량을 중시하는 태도와 화학적 성질을 기본으로 하는 분류 방식 모두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전의 분류 방식은 어느 경우나 리튬 나트륨 칼륨의 알칼리 원소와 염소 브롬 요오드를 각각 같은 집단으로 묶어 놓고 있었기 때문에 나머지 원소들을 분류하는 것이 문제였다. 당시는 이 분류 방식이 매우 혼란스러워서 화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난처하게 했다. 그래서 멘델레예프는 원소분류의 목표를 화학을 보다 쉽게 하는데 두었다.
알칼리 원소는 금속의 성질을 대표하고 할로겐 원소는 비금속을 대표한다. 따라서 금속과 비금속을 대표하는 두 집단 사이에 다른 집단을 끼워 넣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는 원소를 원자량 순서로 배열한 원소표를 만들었다. 그리고 각 원소에 대해 알려진 성질을 적어 넣기도 하고 자신이 직접 한 실험결과를 적어 넣기도 하였다.
그는 일정한 순번마다 유사한 성질의 물질이 발견되는 것에 주목했다. 멘델레예프가 주기율에 관심을 갖기 5년 전 영국의 과학자 뉴랜즈는 '화학회'에서 8음계에서 같은 음이 여덟번째 반복되는 것처럼 원소들도 원자량순서로 배열하면 8번째에 유사한 성질을 갖는다는 옥타브 규칙을 발표했으나 논란이 많아서 이 설이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발상은 멘델레예프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는 반복되는 주기가 반드시 8이 되어야 한다고는 보지 않았다. 그는 원자를 왼쪽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면서 원자량의 순서대로 늘어 놓다가 성질이 비슷한 원소를 옆줄에 오도록 배열했다. 그리고 그는 무리하게 꿰어 맞추지 않고 유사한 성질을 나타내는 원소가 없는 경우는 그 자리를 빈 칸으로 내버려두었다. 이렇게 해서 드디어 그의 주기율표가 완성됐다.
그렇다면 과연 그가 만든 주기율표는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
첫째 , 예측할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이 몇월 며칠인지 알면 계절을 예측할 수 있는 것처럼 달력은 계절의 흐름을 예측할 수 있게 해주므로 편리하다. 주기율표는 표의 위치로부터 그 원소의 성질을 예측할 수 있다. (표1)은 원자량의 순서대로 밀도를 나타낸 것이다. 밀도는 주기성을 가지고 변화한다. 주기율표에서 나트륨의 위치는 리튬과 칼륨의 중간이므로 나트륨의 밀도는 리튬과 칼륨의 중간 정도의 값을 갖는다는 것을 쉽게 예측할수 있다.
멘델레예프는 물음표로 해놓은 미지의 원소를 예측했다. 그의 예측은 물질의 성질이 주기성을 갖는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이루어졌다. 그가 예측한 원소중 하나는 현대 전자 산업의 혁명을 가져온 물질인 게르마늄이다. 그의 예언은 놀랄 만큼 정확했다.
그가 주기율표를 만들고 몇가지 원소의 성질을 예언했을 당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사람들은 의심했다. 예측은 점쟁이도 할 수 있다. 과학이 점성술사와 다른 것은 객관적인 근거를 가지고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이다. 멘델레예프 자신도 자신이 만든 주기율표를 설명하지는 못했다. 단지 그는 원소의 세계에 주기율이 존재하며 주기율에 근거해 만든 주기율표를 이용하면 화학을 공부하기 쉽다는 점에 대해서만 자신의 의견을 주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예측한 원소들이 발견되면서 그의 주기율표는 널리 이용되게 됐다.
예측 가능성과 함께 주기율표가 갖는 큰 가치는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이다. 멘델레예프는 이 가치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 점이 오히려 멘델레예프의 독창성이 돋보이게 하는 대목이다. 설명 가능한 이론적인 무기도 없이 예측가능한 표를 만들었으니 말이다.
멘델레예프의 이러한 독창성은 그의 자유주의적인 삶 속에서 형성된 듯하다. 그는 수염을 깍지 않았으며 언제나 3등 열차를 타고 평민들과 자유로운 대화를 즐겼다. 그와 같은 대화학자가 러시아의 과학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지도 못한 것은 그의 이런 자유주의적인 삶 덕분이었다. 그의 열정은 시베리아에서 모진 고생을 하면서도 모스크바로 그의 아들을 데리고 온 그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듯하다.
주기율표 통해 원소 설명 가능
주기율표로부터 물질의 화학반응을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은 원자 내의 전자 배치가 밝혀진 20세기에 와서나 가능하게 되었다. 밝혀진 바에 의하면 원소의 주기성은 전적으로 원자내의 전자배치에 기인한다. 주기율표에서의 위치로부터 그 원자의 전자배치를 쉽게 알수 있다. 마그네슘을 예로 들어 살펴보자. (표2)의 주기율표는 3주기까지의 원소만을 나타낸 단주기율표다. 주기율표에서 세로줄을 족(族), 가로줄을 주기라고 하는데 , 마그네슘은 3주기 2족 원소이다. 따라서 이 경우 3개의 껍질에 전자가 있으며 마지막 껍질의 전자는 2개다.
이렇듯이 주기로부터는 전자가 들어 있는 전자껍질수를 알 수 있으며 족으로부터는 마지막 껍질의 전자수를 알 수 있다. 마그네슘이 금속성을 나타내는 것은 마지막 껍질의 전자 2개를 잃어 +2가의 양이온으로 되려는 경향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모든 원소의 전자배치를 주기율표의 위치로부터 알 수 있고 전자배치로부터 그 원소의 성질을 설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