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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ledge] 인골의 비밀 사연

조곤조곤 풀어보는 문화재의 수수께끼 ➊


안녕하세요. 문화재가 좋아 고3 때 고고미술사학과에 진학하고 싶다고 떼를 쓰다, 전과 허락이 안 나 결국 공대에 간 슬픈 과거가 있는 과학기자 Y입니다. 제게 드디어 아쉬움을 풀어 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3월호부터 문화재에 대해, 그리고 문화재를 보존하고 되살리는 복원 과학에 대해 기사를 연재하게 됐거든요. 제가 궁금했던 내용을 이모저모 친절하게 풀어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로 꼽은 주제는 옛사람의 뼈, 인골입니다. 문화재 과학을 한다더니 왜 갑자기 과학수사로 빠지느냐고 묻는 표정이 눈에 선합니다. 맞습니다. 흔히 문화재라고 하면 사람이 만든 도구나 건물, 의복이나 장신구 같은 것들을 떠올리지요. 하지만 문화재의 범위는 그렇게 좁지 않습니다. 선조의 손길이 닿은 모든 것은 물론, 그 손길 자체도 문화재에 포함되거든요.


인골도 중요한 출토자료

신지영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 학예연구관은 오히려 “출토된 유물에는 관심을 가지면서, 왜 같이 출토된 사람의 뼈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가”라고 반문합니다. 생활과 문화에 대해서라면, 유물의 주인인 사람보다 더 정확히, 직접적으로 말해줄 수 있는 게 세상에 또 있을까요.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신 연구관은 작년,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이준정 교수와 함께 ‘호남고고학보’에 흥미로운 논문을 썼습니다. 연구팀은 전북 완주 은하리와 당진 우두리에 위치한 6세기 석실묘 1기 등 5개의 백제 석실묘, 석축다장묘에서 출토된 인골 15개체에 대해 탄소 및 질소 안정동위원소 분석을 했습니다. 그 결과 묘에 묻힌 사람들이 벼와 보리, 콩 같은 잡곡을 먹었으며, 고기나 어패류는 사회적 지위나 지역에 따라 섭취량이 크게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어떻게 밝혔을까요. 뼈와 치아 등에 기록된 안정동위원소 비율은 섭취한 음식의 종류에 따라 달라집니다. 인골에 남아 있는 콜라겐 단백질 성분을 화학적인방법으로 추출한 뒤 국립문화재연구소 동위원소분석실에 있는 탄소 질소 원소분석기로 분석하면, 인골의 주인공이 생전에 어떤 식물을 먹었는지(잡곡인지 초본이나 과실, 견과류인지)와 동물성단백질을 어떤 비중으로 먹었는지 등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또 오래된 뼈에서는 파편이 된 DNA를 분리해 해독할 수 있습니다. 이런 DNA를 고(古)DNA라고 하는데, 분석을 하면 인물의 가족관계를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그밖에 뼈의 손상 부위와 정도 등을 조사하면 신체적 장애나 병, 부상, 육체노동 여부 등에 대해 힌트를 얻을 수 있고, 당시의 주변 식생과 기후 등 환경에 대한 단서도 얻을 수 있습니다. 당시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려주는 데 이만한 정보가 또 있을까요.


➊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에서 인골을 조사하고 있다.
➋ 출토된 인골에서 고(古)DNA를 추출해 분석을 하려면 전처리가 필요하다. 사진은 보존실에 있는 모습.
➌연웅 보존과학연구실장 (왼쪽 세 번째)과 신지영 연구관(왼쪽 네 번째), 인골연구팀이 함께.



백제시대 상류층, 육식은 금지였을까

이렇게 알아낸 정보는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다른 역사적, 고고학적 연구 결과와 결합하면 한층 위력을 발휘합니다. 예를 들어 보통 고위층은 육류나 어패류 등의 섭취가 높게 나오는데, 이 연구에서 일부 상류층의 인골에서는 육류의 흔적이 거의 나오지 않았습니다. 연구팀은 혹시 상류층에게 육식을 금하는 규범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조심스레 제기하고 있습니다. 인골을 연구하지 않았다면 전혀 상상할 수 없었을 의문입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이렇게 인골이 중요한 출토자료라는 사실을 깨닫고, 2006년부터 국내에서 처음으로 고인골(古人骨) 관련 문화유산 국가연구개발사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또 2009년부터 안정동위원소분석의 전문가인 신 연구관이 가세해 더욱 폭넓은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연구실에서 지난 2월 5일까지 국립문화재연구소가 확보한 인골은 723개체에 이르며,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모든 게 순조로워 보이지만 고인골 연구자들에게도 고민이 있습니다. 인골과 미라에 대한 법 제도가 마련되지 않아 그냥 파묻히는 인골이 너무 많다는 사실입니다. 이 부분은 저도 인류학자들을 만날 때 종종 듣던 하소연입니다. 현재는 출토되는 인골과 미라가 따로 신고나 집계도 되지 않고,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현재 인골과 미라에게 법적 지위를 부여하려는 법률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습니다만, 아직 통과는 요원한 실정입니다. 최근 문화재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인골 역시도 학술적으로 소중한, 중요 출토자료입니다. 이런 인식이 늘어나고 관련된 법률도 정비돼, 우리 자신의 과거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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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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