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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파도키아 암반동굴

기암괴석의 지하도시

원추형의 암석군 수천개가 대지 위에 늘어선 모습은 지구상에서 오직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특히 일몰시 석양빛을 받은 암석들은 제각기 황금빛 붉은빛 회색빛 등 고유한 빛을 발산해 더욱 놀라게 한다.

아시아대륙 서쪽끝 소아시아 반도 전부와 유럽의 발칸반도 남동부에 위치한 터키 (Turkey). 지난 53년 한국전쟁 때 유엔 참전국으로 우리나라와 인연을 맺은 우방국이기도 하다.

나라면적 78만5백70㎢로 우리나라(남한)보다 7.5배나 크며 시차는 7시간이다. 터키 국민은 절대 다수가 이슬람교(수니파)를 믿는다. 낙천적인 성격을 지녔으며 외국인에 대해 친절하다.

터키는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의 세 대륙이 교차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러한 지정학적 특성 때문에 과거 수천년 동안 수많은 민족이 이 지역을 차지하려고 숱한 전쟁을 치렀다 .

터키의 역사는 유구하다. 기원 전 20세기 인도 유럽어족에 속하는 히타이족이 중앙 아시아로부터 남하해 히타이 제국을 세운 것이 효시다. 그 후 셀주크 제국에 이어 오스만 제국을 세운 때는 13세기였다.

오스만 제국 시절은 터키족의 최전성기였다. 그들은 1453년 비잔틴 제국(동로마제국)을 멸망시켰으며 주변의 많은 나라를 정복했다. 이렇게 해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발칸 반도에 이르는 엄청난 대제국을 건설했다.

그 후 수세 기 동안 크게 번영했던 오스만 제국은 산업혁명과 근대화를 제대로 이루지 못해 점차 국력이 약해졌다. 19세기 러시아와 싸운 크리미아 전쟁에서 국력을 많이 상실했고 세계 제1차 대전 결과 패전국이 됐다.

이로 인해 국가멸망의 길로 치달았으나 홀연히 나타난 영웅 케말 파샤에 의해 국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지금도 터키 국민 상당수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케말 파샤를 꼽는다.
 

카마이클라의 지하도시 내부. 지하 약 50m 지점에 있는 이곳은 수 세기 전 강당으로 쓰였던 곳이다.
 

마르코 폴로가 격찬한 곳

지난 해 성지순례차 터키를 방문해 안디옥 버거머 에베소 등 초기 기독교 7대 교회 등을 돌아보면서 크게 감명받았던 곳은 카파도키아 지방이었다. 터키 중부 아나톨리아 고원지대에 있는 이곳은 지금으로부터 약 3백만년전 화산폭발로 생긴 암석지대다. '요정의 굴뚝'이란별명이 붙은 수천 개의 버섯이나 촛불 모양의 기암괴석들이 대지 위에 늘어선 신비스런 모습은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 대단한 장관이었다.

특히 일몰시 붉은 석양빛을 받은 암석들은 제각기 고유의 빛을 발산해 더욱 놀라게 했다. 황금빛 붉은빛 회색빛 등 현란한 암석의 빛은 매우 신기했다. 마치'내가 딴 세상에 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조차 들었다. 원추형 모양의 암석군 수천 개가 대지 위에 늘어선 모습은 지구상에서 오직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라고 한다.

이곳에 이와 같이 기이한 자연이 형성된 이유는 격렬한 대규모 화산 폭발 후 오랜 세월에 걸쳐 일어난 풍화작용에 기인한다. 대형 암석이 거센 바람에 깎여 뾰족한 모습으로 남게 된 것이다.

한국의 3층에서 5층짜리 건물높이에 해당 되는 수천 개의 암석들을 이곳 주민들은 요긴하게 이용해 왔다. 필자가 그곳을 방문했을 때 레스토랑, 주거용 공간, 공공장소 등으로 사용되는 암석들도 많이 보였다. 이곳 암석들은 쉽게 파낼 수 있으나 파고 나면 단단하게 굳어지는 지질학적 특성이 있다. 이때문에 사람들은 암석에 굴을 파고 들어가 살기도 했고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로 내부를 이용하기도 했다.

로마시대 이래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가 심할 때 탄압을 피해 이곳에 피난온 초기 기독교인들은 대형 암석 내부에 교회나 주거용 공간, 기타 공공장소로 만들어 살았다. 그들은 오순절(五旬節)이 되면 정기적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했다. 또한 흩어진 그리스도 교인들끼리 서신왕래도 하는 등 핍박받던 초기 그리스도 교인들의 중요한 구심점 역할을 했다.

카파도키아 지방은 과거 3천년 동안 수많은 민족이 거쳐간 곳이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교를 전도할 때 카파도키아 암석교회들은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 지방에선 4세기 이후 동굴교회들이 발달하기 시작해 11세기에 최고 전성기를 맞이했다고 한다. 한때 1백 50개 이상의 동굴교회가 있었다는 카파도키아 지역. 이곳에 사람이 거주했던 흔적은 무려 기원 전 4천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271년 동방여행을 떠났던 마르코 폴로가 쓴 '동방견문록'에는 카파도키아주민들의 생활상이 잘 묘사돼 있다. 마르코 폴로는 이곳의 특이한 자연을 극찬하며 당시로서는 드물게 많은 기독교인들이 몰려 살고 있는 이곳의 생활모습을 소개했다. 지난 날 이곳은 실크로드 의 중간거점이었다. 동서문명의 융합을 도모했던 실크로드는 대상(隊商)들의 교역로였다.

카파도키아의 넓은 지역 가운데 흥미로운 곳을 몇곳 소개해 본다. 많은 사람들이 한 개 의 대형 암석 속에 거주했던 우치사르, 프레스코 성화(聖晝)가 벽에 그려져 있는 괴레메, 붉은 원추형 바위내 수도원 등이 있는 젤브, 땅굴을 수십㎞ 파고 들어가 사람들이 집단 거주했던 데린쿠유와 카마이클리가 가장 유명한 곳들이다.
 

30m 높이의 대형 암석이 즐비한 카파도키아 지방. 사람들은 이 암석을 개미굴처럼 파고 들어가 살았다.
 

침식·풍화작용이 빚어낸 걸작품

높이 30m도 넘는 기암괴석이 있는 우치사르는 일명 '은둔자의 마을'이라고 불렸던 곳이다. 바위산 중턱에 있는 이곳 암석 주변에는 마을이 있다. 지금은 주민 3천5백명 정도가 사는 작은 마을이지만 과거에는 수만 명이 살던 유서 깊은 곳이다. 드문드문 보이는 옛 유적들은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괴레메(Göreme)는 비잔틴 시대의 예배당과 수도원이 있는 곳이다. 예수의 생애를 묘사한 벽화가 있는 '사과의 성당', 콘스탄티노플의 사원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벽화가 있는 '어둠의 성당',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성 헬레나의 초상화가 있는 '뱀의 성당' 등은 대표적인 관광명소다. 동굴교회로 이름 높은 토칼성당내 프레스코 성화 역시 유명하다.

젤브(Zelve)는 카파도키아 골짜기에 있는 큰 암석지대다. 이곳 암석들은 석회암이 균열 돼 생긴 큰 돌들이 대부분이다. 마치 뾰족한 갓버섯 모습이다. 데린쿠유 지하동굴은 1963년 발견돼 세계인을 놀라게 한 대규모 옛 지하도시다. 깊은 땅굴 속을 종횡으로 수십 ㎞씩 굴을 판 후 그 안에 학교 강당 식당 교회 주거지 등을 만들었다. 심지어 로마에 있는 카타콤과 비슷한 납골당까지 있다.

마치 개미굴같은 동굴 속을 다니다 보면 초기 기독교인들이 신앙의 자유를 위해 얼마나 처절하게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 내부는 조명 시설이 미비해 매우 어두우며 길잃기엔 십상이다. 미로 때문에 많은 동굴 속에서 출구를 잃는 것이 두려워 관광객들은 안쪽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

카마이클리 동굴도 데린쿠유같은 큰 지하도시다. 지금 지하동굴 속에는 사람들이 거주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옛날에는 종교 탄압을 피해 신앙인들이 몰려 살았던 일종의 혈거주택이었다.

카마이클리는 지하 8층으로 돼 있다. 중앙의 공기 정화용 굴을 따라 각 층을 잇는 계단이 나선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층마다 회랑이 있고 곧게 뻗은 복도를 따라가다 보면 작은 방들이 잇따라 나타난다. 이 지하동굴 속에는 한 가족이 생활했던 방 창고 예배소(禮拜所) 등이 수없이 많다. 외부 출입자들을 막기 위한 큰 돌들도 문 옆에 놓여 있다.

화산층 지질이 오랜 세월동안 침식작용과 풍화작용 결과로 단단했던 암반들만 남아 기이한 자연풍경을 이룬 카파도키아. 수만 명이 집단으로 거주했던 지하도시와 그리스도 교인들이 숨어서 예배활동을 했던 암굴교회의 매혹은 세계에서 오직 이곳만이 지니고 있을 것이다.
 

괴뢰메에 있는 동굴교회. 카파도키아 지방에는 한때 최소한 1백50개 이상의 이와 같은 교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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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허용선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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