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로부터 동력을 주입받지 않은 채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영구기관이 존재한다면 어떨까.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에너지 고갈 문제가 무난히 해결될 것이다. 물론 현대 물리 법칙에 따라 에너지는 창조되거나 소멸될 수 없고(열역학 제1법칙), 에너지가 다른 형태로 전환될 때마다 일부 에너지가 쓸모없는 존재로 변하기 때문에(열역학 제2법칙) 영구기관은 실현될 수 없다.
하지만 현대의 수많은 기술적 몽상가들은 이 ‘꿈의 기계’를 설계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그만큼 영구기관은 발명가라면 누구나 한번쯤 도전해봤을 매혹적인 존재다. 그리고 이런 시도는 이미 중세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중세의 기술자들은 적당한 재료와 윤활제만 있으면 영원히 움직일 수 있는 기계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제작도 했다. 13세기 프랑스 건축가이자 기술자 오네쿠르가 남긴 그림에는 최초의 영구기관 설계도가 발견된다(그림 1). 중세 건축사를 표현하는 유일한 기록물로 알려진 36매의 그림 중 하나다.
그림에는 홀수개의 나무망치가 달려 있는 바퀴가 등장한다. 망치의 자루 부분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바퀴 테두리에 걸려 있기 때문에 바퀴의 한쪽 절반에는 항상 다른쪽보다 망치 하나가 더 많다. 따라서 얼핏 보면 바퀴는 좌우 균형이 맞지 않은 탓에 한쪽으로 힘이 몰려 계속 멈추지 않고 돌 것만 같다.
그러나 바퀴는 몇바퀴 못돌고 멈춘다. 우선 망치가 움직일 때 공기와 마찰을 일으키기 때문에 망치의 젖혀지는 힘이 온전히 바퀴에 전달되지 못한다. 아래에 떨어진 후 뒤로 흔들거림으로써 구르는 반대 방향으로 힘이 전해지는 점도 문제다. 이 외에도 망치와 바퀴의 연결 부위에서 발생하는 마찰력을 비롯해 바퀴가 결코 영구적으로 돌 수 없게 만드는 이유가 곳곳에 존재한다.
중세 기술자들은 왜 영구기관을 만들려고 했을까. 두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우선 많은 영구기관들의 형태가 ‘원’이었다는 점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원운동은 ‘영원성’을 상징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달 바깥 우주인 천상계에서 벌어지는 움직임의 형태를 원운동으로 파악했다. 하늘의 모든 별들은 지구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영원히 도는 것으로 보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 개념은 중세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쳤다. 중세 기술자들은 ‘완전한 세상’인 하늘에만 간직된 원운동을 땅에서 실현시키려는 욕구를 느꼈다. 원모양의 영구기관을 만듦으로써 지상에서 영속적인 원운동의 창시자가 되고 싶었다는 의미다.
한편 사람들이 영구기관을 떠올린 또하나의 배경은 새로운 에너지원을 찾으려는 욕망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영구기관은 스스로 돌기만 하는 원운동 형태 외에도 물을 끌어올리거나 방아를 찧는 것처럼 사람의 일을 돕는 형태로 다양하게 설계됐다.
르네상스 시기의 위대한 발명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영구기관을 만들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곧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다음과 같은 탄식의 말을 남겼다. “아! 영구운동을 희롱하는 공상가들이여… 어찌하여 그렇게 덧없는 시도를 많이 했는가?”
하지만 영구기관에 대한 발명가들의 열정은 좀처럼 식을 줄 몰랐다. 18세기에 접어들어 전기력이나 자기력과 같은 자연의 힘이 새롭게 발견되자 이를 영구기관에 응용해보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았다. 증기력이 산업과 수송에 큰 역할을 담당한 19세기에는 이를 활용해 영구운동을 실현시키려는 관심이 절정에 달했다. 1855-1903년에 영국에서만 영구기관과 관련된 특허건수는 5백건 이상이었다. 이미 열역학 제1·2법칙에 따라 영구기관이 만들어질 수 없다는 점이 과학적으로 밝혀졌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런 열광적인 분위기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물밀 듯 밀려오는 특허 신청을 참다 못한 미국 특허국은 1911년 영구기관에 대한 특허출원을 할 때 반드시 실제 작동하는 모형을 함께 제출하라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