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살개는 다른 한국개 및 외국개 품종들과 주성분 분석에서 잘 분리됐다. 이는 외적 형태 크기 체형 비율에서 삽살개가 고유의 특징을 지니고 있음을 시사해주는 것이다.
싸움터에 삽살개를 데리고 다녔다는 김유신장군의 이야기나 중국 구화산에서 성불했다는 신라왕손 김교각스님의 일대기중에 등장하는 삽살개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한반도 남부지역에 삽살개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 개는 용맹스럽고 충직스런 개로 인정받고 있었음을 짐작케 해 준다.
고려때의 무장 유천매가 탐라정벌을 축하하며 읊은 시구중에는 다루기 어려운 북쪽말에 대응해 우렁차게 짖어대는 남쪽 삽살개 무리를 묘사한 대목이 있다. 조선시대로 들어오면 그림 시 민화 민담 등 여기저기에서 삽살개들이 등장하는데, 민중의 삶에 밀착된 토착동물로서의 삽살개를 실감케 해준다. 실로 삽살개는 우리 조상들의 삶의 애환에 깊이 연루된 우리 모두의 오랜 친구인 것이다. 그런데, 이 땅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끈질긴 삶을 영위해 온 우리의 삽살개들은 모두 어디로 가 버렸는가? 일제시대와 6·25 사변, 현대사회 형성의 격변기를 거치는 동안 우리는 삽살개마저 잃어버렸다.
과기처의 지원과 몇 사람의 노력이 없었더라면 삽살개는 한 마리도 남기지 못하고 완전히 잃어버릴 뻔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소수 집단이지만 유래와 보존과정이 확실한 2백여 마리의 삽살개가 살아남게 됐고 이들 집단이 지난 92년 3월 7일 천연기념물 제3백68호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천연기념물 2백마리로 최고의 개를
이들 2백마리 순수 토종개들을 재료로 해 현대 품종으로서의 삽살개를 새로이 만드는 작업이 현재 진행중이다. 과거의 삽살개들이란 이 땅에 서식하던 털이 긴 개들을 통칭하는 이름이었는데, 사실 크기나 모양 털색깔 등이 한 형제간이라도 서로 달랐다.
우리가 익히 아는 대부분의 서양 가축과 개들은 사람들에 의해 새로이 만들어진 창작품들이다. 셰퍼드 도벨만 포인터 홀스타인(젖소) 레그혼(닭) 등 어느 것 하나 계획적이고 노력없이 생겨난 동물아닌 게 없다. 품종을 만든다, 혈통을 고정한다, 개량한다고 하는 말들은 비슷한 의미를 지닌 다른 말들인데, 우리나라의 과거기술사에는 아직까지 이 땅의 토착동물을 세계인들이 알 만한 품종으로 개량해낸 예가 없다.
2백여 두의 원종 집단인 경북 경산 삽살개 중에는 좋은 소질을 가진 개체들이 많이 있다. 지능면에서 셰퍼드 못지 않게 영리한 삽살개, 크고 잘 생겼으며 달릴 때는 마치 큰 사자 같은 느낌이 드는 우람한 삽살개, 주인을 보면 그 깊은 정을 온몸과 눈빛에 넘치도록 표현해내는 정 많은 삽살개. 그러나 아직까지 좋은 소질을 모두 갖춘 삽살개는 흔치 않다.
육종의 제일 목표는 집단이 가지고 있는 가능한 모든 유전인자들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 서둘러 한두 면만 보고 도태시키지 않고 여러 상황에서 이들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잘 관찰해 보존하는 것이다. 두번째 목표는, 장점을 고루 갖춘 명견을 선택과 계획 교배를 통해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좋은 유전형질의 분리가 잘 일어나지 않는, 즉 혈통 고정이 잘 된 삽살개를 꾸준히 작출해 내는 것이 그 목표가 된다. 그러나 좋은 개를 만들어 내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집단내 잔존하는 좋지 못한 유전인자를 가능한 한 빠른 기간내 제거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같이 좋은 성질을 키우고 나쁜 성질을 없애가는 것이 개량하는 것이며 혈통을 고정하는 것이다. 이같은 일들을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먼저 삽살개품종의 표준설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견종표준이란 모양은 어떠해야 하며 성품은 어떤 것이 좋다고 규정짓는 육종의 목표를 말한다.
삽살개의 경우 오래된 문헌 탐색과 첨단 유전학적 연구방법의 접목을 통해 이루어내야 할 것이다. 삽살개의 옛 모습과 성품의 원형은 오래된 그림, 구전, 옛 기록 등에서 찾아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실질적 자료인 현존하는 2백 두의 원종집단을 잘 연구함으로써 이들의 외형적, 성품적 특징의 진수를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삽살개의 표준 설정과 합리적인 육종을 위해 행하고 있는 과학적 연구와 지금까지 얻어진 결과에 대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삽살개 연구 역사는 일천할 뿐만 아니라 계측된 개체수도 작아서 견종 표준으로서의 삽살개 외모를 특징 짓기에는 시기가 아직 이른 감이 든다. 그러나 그동안 삽살개, 진돗개, 잡종 토종개, 아키타 개, 잉글리시 십독, 그레이트 덴에 대한 형태적인 비교 연구가 있었는데 계량 형질의 10가지 특성을 조사, 품종별 요인분석, 체량 형질간의 상관계수 분석, 집괴분석 등을 시도했다.
결과적으로 삽살개는 다른 한국개 및 외국개 품종들과 주성분 분석에서 잘 분리됐다. 이같은 결론은 외적 형태,크기,체형 비율에서 삽살개가 고유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지금까지 계측된 성견 1백30두의 체형 측정 평균치는 다음과 같다. 수캐는 어깨높이 52.6㎝, 몸길이 56.5㎝, 가슴깊이 22㎝, 가슴폭 16.4㎝, 털길이 17.7㎝, 무게 19.2㎏이었고, 암캐는 어깨높이 49.2㎝, 몸길이 54.3㎝, 가슴깊이 21.3㎝, 가슴폭 15.5㎝, 털길이 15.2㎝, 무게 17.4㎏이었다.
중형 장모종(長毛種)인 삽살개의 전체적인 외관은 균형이 잘 잡혀 있으며 보기에 당당하면서 우아하다. 수캐는 두상이 커서 사자(수놈)를 연상시킨다. 얼굴에 난 긴털 때문에 주둥이가 비교적 뭉툭하게 보이며 아래로 처진 귀는 털이 길어서 커 보인다. 결손치아가 거의 없고 송곳니가 다른 개에 비해 특이하게 크고 강하나, 역교합(逆咬合) 또는 절단교합(絶斷咬合)이 상당한 빈도로 발견된다. 몸체는 튼튼하고 등은 수평이며 발은 털에 싸여 있으므로 굵고 강해 보인다. 꼬리는 보통 위로 올라가는데, 선 꼬리 혹은 말린 꼬리가 많다.
짖는 소리는 굵은 톤으로 우렁차며 잘 드러나지 않는 눈이지만 농갈색의 눈빛은 주인을 주시하면서 정이 묻어난다. 정적인 면이 있으나 경계심이 강하고 기민하며 사람은 좀처럼 물지 않는다. 주인에 대해서는 깊은 관심을 보이며 충성심이 강하다.
혈액 단백질 분석으로 특징 추적
고등 생물의 혈액 속에는 수십만 어쩌면 수백만 종류에 이르는 단백질들이 들어 있다. 이들 단백질들은 개체 또는 종족에 따라서 그 종류와 형태가 다양하다. 마치 얼굴 모양이 7천만 한국인 중에 꼭같은 사람이 없듯이 혈액 단백질도 내용이 모두 다르다. 그러나 같은 아시아인이지만 월남인과 인도인, 한국인을 일견에 구별해 낼 수 있듯이 혈액 단백질도 잘 비교해 보면 종족에 따라서 구분되고, 종족 특유의 특징을 추출해 낼 수도 있는 것이다.
혈액 단백질중에 비교적 많은 양이 들어 있는 수십 종류의 단백질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분리해 비교함으로써 개 품종간의 특징을 추정해 보고자 많은 사람들이 노력해왔다.
시몬센이라는 학자는 개 이리 재칼의 혈액 단백질 및 효소를 전기영동법(電氣泳動法)을 써서 분리해 개에서는 21종류의 단백질중 6종류에서만 유전적 다형(多形)을 확인하고 나머지 15종류의 단백질은 모든 개에게서 거의 같음을 확인했다. 이리의 경우 개와 같은 양상임이 밝혀졌는데, 재칼의 경우는 1가지 종류, 코요테의 경우 3종류에서 개와 다름을 확인했다. 이런 결과로부터 시몬센은 이리가 개와 가장 근연(近緣)하며 재칼 코요테의 순으로 촌수가 점점 멀어진다고 결론지었다.
레온이라는 과학자는 개 이리 코요테의 혈청을 토끼에 주사해 항혈청을 만들어 항원 항체 반응의 정도를 서로 비교한 결과 개는 이리와 코요테의 중간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여기에서 두 학자가 각각 사용한 방법, 즉 전기영동법과 항혈청법 등은 모두가 혈액단백질을 구분해 보려는 같은 목적의 다른 방법일 뿐이다. 삽살개의 경우 혈액 단백질의 특성을 알아내기 위해서 알려진 거의 모든 방법을 적용, 연구했다. 혈청 단백 전기영동법, 2차원 면역 전기영동법, 효소 활성도 및 혈액 단백질 측정, 면역 글로불린(immuno globulin) 측정, 혈액 세포 분석 등을 했는데, 구체적인 연구 내용과 결과는 전문성을 띠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다만 삽살개 진돗개 도벨만에 관한 2차원 면역 전기영동 결과가 3품종간에 많은 차이를 나타냄에 따라 이를 (사진1)에 담았으며, 많은 혈액 단백질중 하나인 적혈구 에스테라제(esterase)의 종류에 따라 구분되는 아시아권의 개 품종에 대한 자료를 (그림1)에 담았다. (그림1)에 의하면 S형과 F형이 혼합돼 있는 일본개들과 우리나라의 제주개나 진돗개와는 달리 삽살개는 S형만으로 돼있음을 알 수 있다.
이같은 결과는 삽살개가 이들 주위의 개들과는 다른 유입경로를 통해 한반도에 정착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정을 낳게 한다.
염색체의 검은 모양 분포 차이 확인
생물 종류마다 세포핵 속에 들어 있는 염색체 개수가 서로 다르다. 사람의 경우 세포핵 하나 속에 있는 염색체 개수는 총 46개이나 침팬지와 고릴라는 48개, 개는 78개, 초파리는 4개, 대장균은 1개다. 개와 친척 관계에 있는 이리 재칼 코요테 모두 개와 동일한 78개 염색체를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염색체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염색한 뒤 현미경으로 잘 관찰해 보면 염색체 위의 검은 그림자 양상이 품종에 따라 다름이 확인된다. 종에 따라 차이가 나는 특이한 양상을 서로 비교해 보면 종간의 분화 정도, 유연 관계 등을 추정할 수 있는데, 이같은 분석을 핵형(핵의 염색체 형태)분석이라 한다.
먼저 개의 혈관으로부터 약 5㏄ 정도의 피를 뽑은 후 림프구를 따로 분리해 3일간 배양한다. 배양된 림프구의 염색체를 김사(Gimsa)라는 염료로 처리,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일반 염색법, 변형된 방법인 C-분염법, G-분염법, NOR-분염법 등을 모두 활용해 핵형을 분석한다.
연구 대상은 삽살개 진돗개 셰퍼드 말티스 닥스훈트 골든레트리버 등인데, 일반 염색법에 의하면 쌍을 이루는 38쌍의 상염색체, 짝이 맞지 않는 X와 Y염색체가 각각 1개씩 모두 78개가 있었다.
일반 염색법에 의해서는 개 품종간에 구별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G-분염법을 시도, 비교했다. 비교 연구의 엄밀도를 높이기 위해 파리 국제 회의 약정에 따라 각각의 핵형도를 작성, 비교한 삽살개의 결과를 (사진2)으로 나타냈다. 4 6 8 11 13 17번 염색체에서 6품종간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났다. 품종에 따라 염색체상의 검은 모양의 분포 방식이 크게 다름을 확인하게 됐는데, 이같은 차이는 앞으로 품종을 확인하는 하나의 지표로 쓰일 수 있을 것이다.
염색체 78개 속에는 셰퍼드의 경우 셰퍼드가 되는 데 필요한 모든 유전 정보가 보관돼 있다. 너무 많은 저보라서 78개 저장고 안에 분산 수용시켜 놓은 셈인데, 품종에 따라 저장 순서나 방식에 조금씩 차이가 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차이가 검은 띠 모양과 퍼진 정도의 다름으로 나타나며 많이 다를수록 친척 관계가 멀어지는 것이라고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겉모습으로 드러난 모든 생물체들의 감추어진 본질은 염색체 속에 숨겨진 유전자들 속에 각안돼 있다. 유전공학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마침내 설계도인 유전자를 염색체 속에서 끄집어내 책을 읽듯이 읽어낼 수 있게 됐다.
유전공학적인 방법을 통해 각 개체의 전체 유전자를 조사해 보면 개체마다 특이한 막대 모양의 신호 체계(bar code)가 드러난다. 개체마다 특이하나, 친족 관계가 가까울수록 서로 닮은 바 코드를 비교해봄으로써 친자확인 개체확인 가계분석 등이 가능한 DNA 지문법은 삽살개의 집단내 혈통 관계를 파악하는 데 사용됐다.
DNA 지문법에 의한 혈통 분석
DNA 지문법의 실시 방법과 삽살개에 대한 결과를 개략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삽살개로부터 유전자를 분리해 내는 데 필요한 재료는 무엇이라도 상관없다. 예를 들면 모발 끝에 붙어 있는 모근세포, 입 천장의 상피세포, 조직 일부 또는 혈액, 즉 개의 살점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되는데, 대부분의 경우 정맥으로부터 소량의 혈액을 채취해 사용한다.
혈액을 실험실에 가져와 몇 단계의 추출 과정을 거쳐 순수한 형태의 DNA(유전자에 대한 화학적 이름)를 정제해낸다. 정제된 DNA를 제한 효소라는 유전자 가위를 사용해서 자른 후 전기영동 장치를 활용해 아가로스 겔(agarose gel) 위에 분자량에 따라 전개시킨다. 전개된 DNA를 니트로 셀룰로오스(nitro cellulose) 라는 막으로 옮겨 굳힌 후 이미 준비해 놓은 방사성 동위원소가 접합된 DNA탐침과 결합시킨다.
일정 조건에서 일정 시간이 경과한 후 DNA 탐침과 결합된 막을 여러번 잘 씻은 후 엑스레이 필름과 결합해 상이 맺히도록 장시간 냉온에 둔다. 여러 품종 개들의 DNA 지문 결과를 (사진 3)에 나타냈으며 삽살개들에 대한 결과를 통계적으로 분석, 혈통 체계의 가닥을 파악하게 됐다.
이 결론에 의하면 청삽살개 집단은 유연 관계는 있으나 계통이 다른 두 가계(B와 B′그룹)로 이루어져 있으며 황삽살개 집단도 Y와 Y′그룹으로 구분된다. 황삽살개의 Y와 Y′그룹은 청삽살개 그룹간의 유연 관계보다 더 밀접한 혈연 관계를 서로간에 유지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뿐만 아니라 친자 관계가 불분명했던 몇 가지 경우에 대한 확인이 이루어져 삽살개 초기 혈통관계의 체계가 정립됐다.
*삽살개에 관한 모든 연구는 과학기술처의 목적기초연구비와 교육부 유전공학 연구지원금의 보조에 의해 행해진 것이며 천연기념물 제3백68호 삽살개 2백 두의 보존은 문화재관리국의 사육 지원금에 의해 이루어져 오고 있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