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인간복제 논쟁. 불임치료를 위해 연구됐다는 인간 배자복제의 과학적 원리는 무엇이고 앞으로 전망은 어떻게 되나.
지난 10월 24일 전해진 미국 연구진의 인간 배자(胚子) 복제 성공 소식은 생명공학이 드디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실험실에서 다루었다는 점에서 과학의 윤리성에 대한 전지구적 관심과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뉴욕타임스' 10월 24일자는 미국 조지 워싱턴대 메디컬센터 제리 홀박사와 로버트 스틸먼 박사팀이 인간의 수정란을 일란성 쌍둥이, 세쌍둥이, 네쌍둥이로 복제하는데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과학자들이 인간 수정란을 복제하는데 성공, 윤리적 도전'이라는 제하에 실린 이 기사에서는 이 실험의 결과 부부가 체외수정을 한 뒤 그 배자를 복제했다가 그중 하나를 자궁에 착상시켜 아기를 낳은 뒤 언제라도 냉동 보관 했던 나머지 배자로 똑같은 아기를 낳을 수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 소식은 삽시간에 세계적인 파문을 일으켰다. SF영화나 소설에서나 나옴직한 인간 복제가 실험실에서 성공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장기이식 등을 위한 '스페어 인간'의 생산가능성, 상업적으로 악용될 경우의 문제점 등 여러 우려가 쏟아져 나왔다. 교황청 기관지인 '로세르바토레 로마노'가 즉각 반박논평을 통해 "두 교수의 연구결과는 모든 인류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난할 정도였다.
'스페어 인간'이 태어날 수 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다시 뉴욕타임스는 10월 26일자에서 이 문제의 윤리성을 둘러싼 논쟁 현황을 보도하며, 이 실험을 진행한 제리홀박사와 스틸먼박사의 목소리를 싣는 등 심층적으로 다루었다. 홀박사와 스틸먼 박사는 기자회견을 자청, 자신들의 실험은 하나의 수정란으로 10%에 불과한 임신 성공률을 크게 높여 불임을 치료하자는 게 목적이었다고 밝히고, 당분간 기술개발을 미루겠다는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이들은 또 이 실험은 인간의 수정란을 14일 이상 실험하지 못하도록 돼 있는 미국수정학회(AFC)의 규정에 따라 6일만에 모두 폐기했으며, 윤리성 문제를 고려, 한개의 난자에 여러 개의 정자가 들어간 비정상 수정란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인간 배자는 정자와 난자가 수정된 뒤 태아로 발육하기 전까지의 생체를 말하는데, 임신 8주까지가 이에 해당된다. 수정된 배자는 상실배까지 분열을 거듭해나가는데, 이 배자의 바깥부분은 영양분을 공급하는 투명대라는 물질로 덮여 있다. 투명대의 안쪽 세포막에 '할구' 상태의 난자세포가 들어 있는데, 배자 복제는 이 할구를 하나씩 분리하거나 배자를 물리적으로 잘라 세포분열을 유도, 똑같은 형질의 배자를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이들이 사용한 방법은 2-8개의 세포로 구성된 인간배자에서 세포를 분리시킨 뒤 여기에 젤리와 같은 물질로 인공 투명대를 만들어 세포분열을 유도, 각각 3배씩 세포증식시켜 48개의 수정란으로 복제한 것.
할구는 영양분을 공급해주는 투명대만 잘 보존해주면 분열을 거듭해 본래 상태대로의 배자의 재생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조지 워싱턴대 연구진이 성공한 것은 이 투명대를 녹이는 물질로 해초 추출물인 알긴산나트륨이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밝힌 것이다.
이밖에도 동물의 경우 성공한 배자를 복제하는 방법은 두가지 정도가 더 있는데, 원시적인 방법으로 미세조작기를 이용, 수정란을 절반으로 나눈 뒤 이를 시험관에서 길러내는 방법과 우수한 형질을 가진 난세포핵을 보통 난자덩어리의 핵에 끼워넣는 핵치환법이 있다.
동물의 수정란 복제는 이미 실용화 단계
사실 난할 단계의 수정란 복제는 기술적으로는 간단한 일이라는게 국내 학자들을 포함한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여기에는 유전 공학이란 차원까지도 필요하지 않으며 생물학적 조작만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가축 등의 경우 우량형질을 지닌 소 돼지 닭 등을 대량복제하는 기술이 이미 실용화되어 있다. 국내에서도 건국대 동물자원연구센터에서 80년대초 생쥐를 이용해 동물배자복제를 처음 시도한 이래 지난 89년에는 젖소의 배자 1개를 2개로 쪼개 배양시킨 뒤 다른 젖소에 이식하는 방법으로 두마리의 젖소를 한꺼번에 탄생시킨 바 있다. 이 젖소는 1년 우유 생산량이 일반 소보다 3천㎏이나 많은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인간의 배자 복제도 냉동정자 등 동결보존 기술에 의한 시험관아기 시술의 보편화와 함께 이미 오래 전에 예견돼 온 일이지만 사회적 법적으로 이러한 의술이 용납될 수 없기 때문에 연구를 주저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어디에선가 비밀리에 이러한 실험이 진행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로 간주되는 상황이다.
정자와 난자를 남녀에게서 각각 채취, 시험관에서 수정시킨 뒤 수정란을 여성의 자궁에 넣어주는 체외수정법은 태어나는 아기의 유전적 형질이 다르고 수정란 사용도 1회에 그친다.
그래서 이미 15년 전에 최초의 시험관 아기가 태어난 이래 계속된 인공수정 연구에 대해서는 그 윤리성에 대한 문제제기나 논쟁이 그리 많지 않았으나 이번 경우는 다른 반응을 낳고 있는 것이다.
'인간복제'와 '배자복제'는 구분돼야
인간복제. 나와 같은 또다른 나를 만들어내고 똑같은 아이를 열이건 스물이건 만들어낸다는 개념의 인간복제는 그 상상만으로도 사람들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한 것이다. 첫째 아이가 아프면 똑같은 아이를 하나 더 낳아 장기를 떼어내 사용한달지, 요즘 사람들이 기피하는 힘든 노동을 대량생산된 복제인간들에게 시킨달지, 소설과 같은 이야기는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흥분의 목소리를 높이기에 앞서 과연 이같은 논의가 과학적으로 얼마나 실현가능한 단계에 와 있는가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 또 예민한 반응 중에는 유전공학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기인한 오해도 있는 듯하다. '인간복제'와 '배자복제'를 혼동하는 것이다. 이런 오해에는 선정적으로 보도한 언론의 탓도 컸다. 특히 '뉴스위크' 최근호는 '뉴욕타임스'의 기사가 과장됐다는 지적과 함께 인간 복제라는 것이 '불가능은 아니지만 아직은 초보단계'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요즘 떠들썩하게 논해지는 배자복제란 유전자가 같은 수정란을 양산한다는 뜻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물론 배자가 자라서 인간이 될 수 있으므로 "그게 그거 아니냐"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흔히 오해되는 내용대로 머리카락 하나로 그 사람의 전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쥐라기 공원에 등장한 식의, 없는 생물을 DNA라는 단서로 만들어 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성장한 조직에서 세포를 떼어내어 수정란을 만들거나 복제를 하는데 사용하는 것은 배자복제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미네소타대 유전학과 세포생물학과의 로버트 맥키넬 박사는 말했다. 성장한 조직의 세포는 특수한 기능을 띠게 되고 다른 발현을 할 잠재력을 버렸기 때문이다. 생물학자들은 이 스위치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아직 모른다. 실험실에서는 성장한 식물의 세포를 복제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성장한 포유동물의 경우는 아직 요원한 상황이다.
참고로 소개하자면 세계 유전공학자들은 인간 염색체의 염기배열 모두를 알아낸다는 야심어린 목표를 세우고 인간게놈계획(HUGO)을 추진하고 있다. 인간의 염색체 속 30억개의 DNA 염기서열을 모두 알아냄으로써 인체의 신비를 벗기겠다는 계획이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일수록 여기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으며 연구를 독려하고 그 결과물은 특허를 내겠다는 계획까지 세워놓고 있다. 이같은 연구는 컴퓨터와 생화학 등 인접학문의 눈부신 발전에 힘입어 날로 그 목표일이 당겨지고는 있지만, 아직도 그 완성에는 30년 정도의 세월을 잡고 있다.
일단 염기배열을 모두 안 뒤에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이 염기들이 각각의 때와 장소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 메커니즘을 알아내는 일은 따로 남아 있기 때문. 자동차의 부속들을 완벽하게 갖추더라도 그 설계도가 없으면 자동차 조립은 불가능한 것과 같은 이치다.
유전자가 같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가에 대해서도 의견이 구구하다. 일반적으로 유전자에 대한 연구에는 일란성쌍둥이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들은 유전자가 한치 틀림없이 똑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지능이 유전에 의한 것인가 환경에 의한 것인가를 따지는 연구나 우생학적 연구에도 일란성쌍둥이를 통한 각종 연구결과가 활용된다. 그러나 그 연구결과는 제각각인 형편이다.
"혹 1백명의 히틀러 쌍둥이를 만들어낸다 해도 그 1백명은 모두 다른 사람일 것"이라는게 유전자 못지않게 환경의 영향을 중시하는 위스콘신대 노먼 포스트박사의 말이다.
이번 조지 워싱턴대의 인간 배자복제 성공 보고의 경우 그래서 과학적인 이슈라기보다는 도덕과 법, 윤리적인 문제로 도마에 오르내리고 있다. 과학자들이 인간의 생명을 좌지우지 한다면 인간의 존엄성은 부정되는 것이며 자연의 섭리에도 위배된다는 점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효율적 관리 위한 법과 제도 마련 절실
미국생물공학감시재단 제레미 리프킨회장은 '인간배자의 복제는 위험한 형태의 우생학'이라고 지적하며 이러한 실험을 통제하는 규정을 제정하도록 미정부에 촉구했다. 미네 소타대 생물윤리학센터 소장인 아도 캐플란 박사의 "시차를 두고 쌍둥이가 여럿 태어나게 되면 인류가 소중히 여기는 개인성(individuality)이 보장될 수 없다"는 주장도 귀담아 들을 만하다.
그러나 이 실험에 대해 부정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사회에서의 반응은 윤리사회적 문제를 제기하는 경계론과 '부모 등 개인이 선택할 문제'라는 시각으로 엇갈리고 있다. 시험관 아기 시술을 해온 의사들 사이에서도 '시도도 하지 않겠다'는 거부반응과 '기술만 완성되면 바로 원하는 환자들에게 시술하겠다'는 긍정론이 엇갈리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한다.
어찌됐건 과학계에서는 한번 물꼬를 튼 배자복제가 없던 일로 되지는 않을 거라는게 관련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과학자들은 어떤 형태로든 인간복제에 대한 실험을 진행시켜 나갈것이며, 오히려 지금까지 너무 주저했다는 지적조차 나오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논의의 초점은 과학과 윤리를 접합시키는 법과 제도를 수립하는 문제로 모아지고 있다. 만일 시술을 허용할 경우 관련법규제정 문제를 놓고도 일대 논란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기술적으로는 배자복제가 가능한 수준이고 이를 위한 장비도 서울차병원 제일병원 등 불임시술기관에 구비돼 있다. 서울대 의대 서유헌 박사(약리학)는 "현재 수정란 분할보다 앞선 유전자 이식도 시도되는 수준이지만 이를 방지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는 전무한 실정"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신체발부수지부모'라 하여 머리카락 한 올도 소중히 여겼던 우리나라의 정서로는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이를 몇명이라도 복제해낸다는 이야기는 거부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할 것이다.
생명공학은 인류를 '조물주'로 만들어줄 것인가. 혹은 엄청난 재앙의 길로 인도할 것인가.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실험실에서 만들어지는 날이 우려에서 현실로 성큼 다가왔다는 점에서, 새로운 생명윤리를 마련하는 일이 인류의 앞에 숙제로 주어졌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