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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호킹 필적하는 로저 블랜포드

우주는 젊은이들이 도전할만한 대상

제2회 고등과학원 천체물리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의 로저 블랜포드(Roger Blandford, 52) 교수를 9월 7일 만났다. 블랜포드 교수는 학계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세계적인 석학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의 교수로 초빙받은 것. X선을 방출하는 백조자리 X-1에 블랙홀이 실재하는지를 두고 케임브리지대의 스티븐 호킹과 내기를 했던 캘리포니아공대의 킵 손(호킹이 쓴 ‘시간의 역사’를 보면, 나중에 내기에 이겨 펜트하우스 1년 정기구독권을 얻었다)을 이을만한 인물이다.

블랜포드 교수는 블랙홀, 우주론 등 이론천체물리학의 여러 주제에 대해 많은 연구업적을 남겼다. 현재 전세계 이론천체물리학계를 주도하고 있는 대가라 할 수 있다. 어쩌면 대중적 인지도가 떨어져서 그렇지 학문적인 업적으로만 따지자면 스티븐 호킹에 버금갈지 모른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생도 블랙홀처럼 일방통행

이번에 한국 방문이 처음이라는 블랜포드 교수는 “며칠간의 한국 생활에 만족한다”며 인사말을 건넸다. 어린 시절을 묻는 질문에 그는 “지방도서관에서 책을 많이 읽었다”고 말하며 처음에는 물리학에 관련된 책을 주로 읽다가 천문학 책에 더 재미를 느꼈다고 밝혔다. 책을 빨리 읽는 속독에 능하다는 얘기도 나중에 전해 듣게 됐다. 인터뷰에서 그는 영국의 흐린 날씨 때문에 어렸을 때 별을 보지 못했던 것이 안타까웠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번 학회의 주제인 블랙홀 분야에 대해 몇가지를 질문했다. 보이지 않는 블랙홀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질문에 블랜포드 교수는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블랙홀로 유입되는 물질이 형성하는 원반에서 나오는 고에너지 빛인 자외선과 X선을 관측해 블랙홀 여부를 알아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얼마 전까지는 일본의 아스카 위성이, 최근에는 유럽의 XMM-뉴턴 위성과 미국의 찬드라 위성이 이를 관측해 왔다고 덧붙였다.

블랙홀 분야에서 최근에 가장 큰 업적을 묻는 질문에 그는 세가지를 꼽았다. 하나는 대부분의 은하 중심에서 거대한 블랙홀을 발견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별의 마지막 단계로 탄생하는 블랙홀을 20-30개 정도 발견한 것이며, 나머지 하나는 실제로 사건의 지평선 바로 밖에서 광속에 가깝게 블랙홀로 빨려들어가는 가스를 관측한 것이다.

블랙홀로 빨려들어가는 물체(사람)가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에 대해 묻자, 그는 블랙홀 밖의 관측자에게만 보이는 현상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블랙홀로 떨어지는 사람은 그대로 블랙홀로 빨려들어가 다시 되돌아 나올 수 없다며, “인생도 이처럼 일방통행”이라고 자신의 인생론을 잠시 내비쳤다.

블랙홀은 우주진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는 퀘이사에 대해 언급했다. 퀘이사는 태양계 만한 크기로 은하 1천개에 해당하는 밝기를 갖는 천체이며, 블랙홀이 우주의 나이가 6억년일 때 만들어진 이 천체에 에너지를 제공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주변의 가스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은 사방으로 강력한 에너지를 방출하기도 하다. 블랜포드 박사는 1977년 블랙 홀에서 거대한 에너지를 만들 어내는 중요한 과정을 최초로 제시하기도 했다.


블랙홀에서 에너지 꺼내는 연구

블랜포드 교수에게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큰 업적이 무엇이냐고 질문하자, 그는 한바탕 크게 웃더니 “즈나이엑(Znajek) 등의 동료와 가장 재미있고 신나게 연구했다”는 약간은 동문서답을 했다. 1977년 즈나이엑과 함께 연구했던 업적을 말하는 것 같았다.

이것은 ‘블랜포드-즈나이엑 프로세스’라고 알려져 있는데, 블랙홀에서 거대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과정을 최초로 설명한 이론이다. 즉 자기장이 걸린 거대 블랙홀이 돌고 있을 때 마치 발전기와 같이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내는 과정을 밝힌 것이다. 이를 통해 퀘이사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감마선 폭발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요즘 어떤 연구를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최근 블랙홀 분야로 다시 컴백했고, 우주선(cosmic ray)기원과 중력렌즈에 대해 연구중이라고 대답했다. 천체물리분야의 다양한 주제를 연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미래에 재미있을 만한 주제에 세가지를 손꼽았다. 먼저 우주에서 어느 시기에 어떻게 은하가 생성됐는지를 밝히는 은하형성이론이 밝혀져야 하고, 찬드라 망원경이 관측하는 X선·감마선과 관련된 고에너지천문학 분야도 각광받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또 “생명체의 문제는 근본적인 것이기 때문에 외계행성에 관한 주제도 재미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끝으로 한국의 젊은이에게 한마디를 부탁하자 블랜포드 교수는 자신의 평소 지론을 펼쳐보였다. 현재 세계적으로 물리학과 천문학을 공부하려는 학생들이 줄고있다는 안타까움을 토로한뒤,“ 우주는 젊은이들이 도전할만한 대상”이라며,“ 더 많은 한국 학생들이 세계 천문학 발전에 기여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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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이충환 기자
  • 사진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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