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1) '절대 시공간 존재하지 않는다' 고전 물리학 근본 뒤엎어

새 이론 태어나기까지

20세기 물리학의 근본을 뒤흔든 상대성이론. 이 이론은 어떤 배경하에서 태어났고 그 핵심은 무엇인가.

데카르트의 명구를 생각한다. '진실에 이르려면 일생에 한번쯤은 자기가 아는 지식이 몽땅 잘못된 것이 아닐까 의심해 봐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 한번이라도, 멀리 있는 산이 작아보이는 것은 원근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산은 관측자에서 멀어질수록 그의 실제 크기가 작아지는 것이 아닐까 의심해 봐도 좋다. 이는 이론과학을 전공하는 학생의 경우에 특히 그러하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탄생시키기 이전에는 우리는 막연하게 시간과 공간은 원래부터 우리 우주에 존재해 왔었고, 존재하고, 그리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을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마치 낙동강의 근원이 어느 마을 뒷산 옹달샘이었던 것처럼 시간과 공간의 근원이 바로 관측자 자신에게 있다는 상대성이론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리 쉽지 않은 개념이다.

가장 오묘한 점은 우리가 이러한 개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산만해 보이는 우주의 법칙들이 간단명료하게 정리되고 그리고 심지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다. 복잡해 보이 던 우주 전체의 현상에서 극미의 원자세계에 이르기까지 제법 일목요연하계 이해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물리적 근원도 알게 되었다. 그것이 형이상학적 개념인가, 아니면 물리적 개념인가라는 자연철학적인 질문도 답변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인슈타인은 이 이론을 통해 20세기 물리학의 근본을 뒤흔들었고 우리의 인식은 2000년 넘는 깊은 잠에서 깨어나게 된 것이다. 이 글에서 필자는 상대성이론의 참맛을 독자들이 되도록 쉽게 음미케 해 상대성이론이 어떻게 태어났는가에 대한 그의 탄생배경과 주내용을 간단히 요약해서 설명하겠다.

관성계와 가속계

상대성이론에는 두 가지가 있다. 아인슈타인이 1905년 독일의 물리학지에 발표한 특수상대성이론과 그로부터 10년 후 이를 확장발전 시킨 일반상대성이론이다. 두 이론이 갖는 가장 큰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특수상대성 이론은 관측자가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경우에(이를 관성계라 부른다) 적용되는 이론이다. 관성계란 관측자가 일정한 상대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물리적 상태를 말한다.

그러므로 일정한 속도로 달리는 기차나 비행기, 또는 고속도로를 일정한 속도로 달리는 차안에 있는 승객은 제각기의 관성계에 속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관성계에 대비되는 개념은 가속계이다. 차가 출발하거나 브레이크를 밟는 순간,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순간 우리는 속도의 변화를 느낀다. 몸이 앞으로 쏠리거나 몸이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반대 방향으로 끌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끌려가는 속도는 물체의 질량에 상관없이 항상 같다.

일반상대성이론은 바로 이러한 가속계에서 성립되는 이론이다. 그러므로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올 발견한 후 가속계의 이론인 일반상대론의 연구에 착수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 하겠다. 이 두개의 상대성이론이 현대 물리학에 미친 영향은 아무리 말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원자폭탄이 폭발할 때 나 오는 에너지의 근원은 특수상대론의 질량―에너지 법칙으로 계산되고 중력장에서 빛이 굽어지는 정도는 일반상대성이론을 이용하면 쉽게 계산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이론을 통해 우리는 우주를 이해하고 물질의 근원을 규명한다.

자연의 참모습을 기술해준 두가지 이론

상대성이론이 현대 물리학과 철학, 심지어 종교철학에 이르기까지 근대 사상사에 미친 영향은 쉽게 간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 상대성이론이 탄생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기로 하자. 상대성이론이 등장한 1905년 무렵, 당시 이론 물리학은 서로 양립될 수 없는 모순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당시 물리학의 양대 산맥은 고전역학과 전자기학이었다. 고전역학은 갈릴레이가 발견한 관성개념과 행성운행에 관한 케플러의 법칙을 뉴턴이 ‘관성운동법칙'과 '만유인력법칙'으로 발전시킨 학문이었고 전자기학은 패러데이와 암페어가 발견한 주요 실험법칙들을 맥스웰이 종합, 정립시킨 학문이었다.

이 두개의 이론은 각각 지난 2천년 전부터 금세기초까지 누적된 천체의 운행현상이나,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제반 전자기현상들을 예외규정없이 잘 설명해주는 만능이론이었다. 행성들은 만류인력법칙에 따르는 궤도를 따라 정확히 운행하고 있었고 전기현상 역시 맥스웰의 전자기 방정식에 따라 잘 운용되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들 두 이론이 자연의 참모습을 기술해 주는 이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고전역학의 가장 중요한 개념중의 하나는 관성계간의 속도합산법칙이다. 관성계란 상대성 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관측자가 일정한 상대속도로 움직이는 상태를 말한다. 관성계의 가장 특이한 점은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관측자의 경우 자신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실험적으로 확인해 볼 어떠한 실험방법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일정한 관성계내에서의 물리법칙은 항상 같다. 그래서 달리는 기차안의 승객은 마치 기차가 정지해 있는 것처럼 편안히 쉬면서 책을 읽올 수 있는 것이다.

고전역학에 따르면 관성계간에는 간단한 속도의 합산법칙이 성립되고 있다. 달리는 기차에서 던진 공의 지면에 대한 속도란 지면에 대한 기차의 속도와 공의 기차에 대한 속도를 합한 값이 된다. 전투기에서 발사된 미사일의 속도는 전투기의 공기에 대한 속도와 미사일의 전투기를 합한 속도가 되어야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 미사일이 지상에 도달할 무렵에는 웬만한 빌딩의 방어물도 종잇장처럼 투과하는 초고속의 속도를 갖는다.

맥스웰 전자기 이론의 가장 중요한 결론은 빛의 속성에 관한 것이다. 빛은 전자기파 현상이고 관성계에서 측정된 빛의 전파속도는 항상 같다. 그러므로 초속 8㎞로 달리는 로켓에서 방사된 빛의 전파속도나 천천히 움직이는 등불에서 나온 빛의 전파속도는 항상 같게 나타난다는 말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것은 우리의 일상경험과 매우 상반된 결론이었다. 이에 사람들은 큰 혼란에 빠졌다.

아니! 기차에서 방출된 빛의 속도는 지면에 서 있는 사림에게는 기차의 지면에 대한 속도와 빛의 기차에 대한 속도를 합한 속도로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달리는 자동차에서 던진 공의 속도란 자동차의 속도와 자동차에 대한 공의 속도를 합한 속도가 됨을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빛이 노골적으로 고전역학적 속도합산법칙을 따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혼란을 주었다.


(그림) 관성계의 속도합산법칙을 위반하는 빛^자동차 헤드라이트에서 나오는 빛의 속도는 자동차가 어느 방향으로 달리든 항상 C로 일정하다.
 

자연법칙을 위반한 전과자 빛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모순점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우리가 말하는 자동차의 속도란 항상 '정지해 있는' 지면에 대해 자동차의 움직이는 속도를 말한다. 또한 로켓의 속도란 로켓이 항상 '정지해 있다고' 믿어지는 주변 우주공간의 임의의 점에 대해 로켓이 움직이는 속도를 말한다. 그러므로 속도합산이란 엄밀히 말해서 항상 '정지해 있는' 어느 점의 존재를 가정하고 이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움직이는 속도를 말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가정은 일상생활에서 아무런 무리없이 통용된다. 고속도로의 경찰은 지면이라는 '절대정지점'에 대한 속도가 과속이라고 주장하면서 과속차량에게 벌금티켓을 발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빛은 이러한 속도합산법칙을 어기고 있는 것이다. 물리학에서는 이러한 절대정지점(the absolute rest)을 흔히 절대공간(absolute space), 절대좌표계 (the absolute reference frame) 또는 정지에테르(ether)라고 부른다.

절대정지점을 정지에테르라고 부르는 데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맥스웰방정식에 따르면 빛은 전자기적 파동현상이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생활 경험에 따르면 파동엔 항상 이를 매개하는 매개물이 존재한다 우리가 눈앞의 상대방과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음성이 공기라는 매개물을 통해 상대방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바닷가에 밀려오는 파도는 바닷물이라는 매개물이 있기에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전파된다. 파동현상은 이러한 매개물이 없으면 절대로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전파되지 않는다. 공기가 없는 달표면에서는 당신이 앞사람에게 아무리 크게 소리를 쳐도 바로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은 당신의 입이 오물거리는 모습만 보게 되는 것이다.

빛의 속성이 전자기적 파동현상이라는 것이 밝혀진 이상, 빛 역시 그의 매개물로 사람들은 우주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정지' 에테르가 물리학에 등장한 것이다.

그러면 그러한 에테르가 자연에 존재하는 것인가? 이를 확인해보려는 마이켈슨과 몰리의 실험결과(Michelson and Morley experiment)는 매우 실망스러웠다. 여전히 빛의 전파속도란 관측자의 운동상태에 전혀 상관없이 같다는 맥스웰 방정식의 원래 결론을 확인했을 따름이었다. 그렇다면 고전역학이 틀린 것일까? 아니면 맥스웰방정식이 틀린 것일까? 바로 이러한 문제가 금세기초 석학들을 밤잠 못자게 괴롭혔던 딜레마였다.
 

정지된 관성계에서는 건물이 평상시와 같이 보이지만 빛의 속도에 가깝게 움직이는 관성계는 건물이 일그러져 보인다.


문제는 시간과 공간

바로 이러한 시점에서 아인슈타인이 등장했다. "그렇다면 그렇게 절대 정지해 있는 기준점이란 아예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는 양이라는 말일까?"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관점에서 문제를 보기 시작했다. 그는 이러한 모순의 근원이 고전역학적이나 맥스웰방정식에 있는 것이 아니고 문제는 그보다 더 근원적인, 즉 우리가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데서 온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 것이다.

여기에서 아인슈타인의 천재성이 빛을 발한다. 그의 직관은 맞았다. 이들 상호모순은 우리가 시간과 공간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면 모두 사라지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발견 된 것이 바로 금세기 최대의 이론으로 부상한 상대성이론이다. 상대론에 따르면 이들 상호모순은 이들을 수학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도입된 시간과 공간이라는 좌표계상의 문제였다. 정말로 엉뚱한 방향에서 나온 해결점이었다.

상대성이론의 결론은 우리 우주에는 누구에게도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러한 절대정지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데서 출발 한다. 맥스웰이 도입한 에테르는 허상에 불과한 개념이다. 우리 우주에는 어디에도 '절대로 정지해 있는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우리 우주에는 누가 보아도 항상 같은 율로 째깍거리는 '절대시간'이 존재 하지 않는다. 실상 지난 2000여년간 우리는 막연히 우주 전반에 걸쳐 째깍거리는 어떠한 우주적 시간과 절대 정지점의 존재를 믿어왔던 것이다.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우리 우주에는 관측자에 상관없이 제홀로 째깍거리는 절대시간이라는 개념도 존재하지 않고, 그리고 모든 관측자에게 항상 정지해 보이는 그러한 절대공간이라는 개념도 존재하고 있지 않다. 시간과 공간은 관측자에 따라 각각 정의되는 양이고, 그래서 우리 우주에는 관측자(또는 관성계)의 수만큼 많은 시간과 공간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아인슈타인은 "나는 우주공간에 관측자의 수만큼 많은 시계를 놓았다. 비록 내 집에는 시계 하나 없지만 ···"이라는 농담을 즐겼다.

고무같은 시공간

모든 관측자마다 고유의 시간과 공간들이 존재할 경우 이들은 어떻게 상호연관돼 있을까? 이러한 관성계간의 상대속도에 따른 시공간의 유기적 관계를 수학적으로 보여주는 식이 바로 로렌츠 변환식(Lorentz transformation)이다. 학계에 유명한 이 변환식은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제창하기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물론 그에 대한 정확한 물리적인 해석을 처음 내린 사람은 아인슈타인이었다.

이 변환식에서 나타나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시간과 공간이 시공간이라는 한개의 개념으로 뭉뚱그려진 채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시간과 공간은 마치 고무풍선 거죽처럼 행동하고 있어서 만약에 풍선의 한쪽을 누르면 다른 한쪽이 튀어나오는 것처럼 각개 관측자의 운동상태에 따라 한쪽의 시간이 '지연'되면 다른 쪽의 공간이 '확장'되는 기묘한 현상도 발생한다. 이러한 현상은 학계에서 시간지연(time dilation), 길이단축(length contraction)현상이라 불리고 있는데 이미 실험적으로 충분히 증명된 사실들이다.

그래서 상대성이론의 가장 큰 결론 중의 하나는 시간과 공간이 서로 분리된 객체가 아니라 시공간이라는 개념으로 통합되는데 있다. 이러한 시공간의 탄력성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중력현상이다. 특수상대성이론을 진일보 확장시킨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시공간속에 물질이 존재할 경우 이에 대한 반향으로 시공간은 크게 휘어진다. 마치 물렁물렁한 고무판위에 무거운 물질을 놓았을 때 고무판이 밑으로 늘어지는 것처럼 시공간속에 질량이 큰 물질이 놓여 있을 경우 주변의 시공간은 굽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공간이란 탄력있는 고무판처럼 행동한다. 실상 일반상대성이론을 통해 밝혀진 중력의 본질이란 바로 이것이다. 중력이란 그의 본질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중력이란 물체가 시공간의 곡률을 따라 굴러다니는 현상에 불과한 것이다. 물체의 관성 현상을 마치 어떠한 중력이라는 끄는 힘이 자연에 존재하여 생기는 현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중력현상을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할 경우 일반상대성이론의 가장 기묘한 결론중의 하나인 검은구멍(blackhole)의 존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아주 무거운 물체를 고무판에 놓았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물체가 놓인 부위는 아주 깊게 밑으로 처질 것이다. 이때 물체가 무거우면 빠진 동그란 입구 부분이 아주 작게 수축되어 서로 조여지게 된다.

이러한 물체의 함몰구멍 지역은 실제의 시공간에서도 생길 수 있다. 공간속에 아주 밀도가 큰 물질이 존재하는 경우 주변의 시공간은 깊게 구부러진다. 이렇게 함몰된 시공간의 입구, 즉 구멍 주변 부위가 서로 닿게 될 정도로 수축하는 경우 우리는 이를 검은구멍(Blackhole)이라고 부른다.

바로 앞에서 우리는 중력의 본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언급이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러한 결과가 나올 수 있었을까? 원인은 시공간이란 물리적 존재가 정의되지 않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아니! 시간과 공간의 본질이란 아무것도 아닌 개념이라고? 독자들은 펄쩍 뛸 것이다. 상대성이론은 이러한 시간과 공간의 엉뚱한 본질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제시한다.

이를 쉽게 설명해주는 다음 예를 들자. 어떤 미인 선발대회에서 가장 뛰어난 미인이 선발되었다고 하자. 그런데 이렇게 선발된 미인이 관객에게는 전혀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사람마다 보는 눈이 다르기 때문이다. 즉 모든 사람이 100% 동의하는 진정한 '절대적 미'라는 개념이란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상대성이론에서도 이와 매우 흡사한 결론이 나타난다. 우리는 관측자의 운동 상태에 따라 각각의 시공간이 정의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므로 어떤 절대적 의미를 갖는 시간과 공간은 우리 우주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시간과 공간의 근원(根源)이 설명된다. 상대론이 탄생하기 전부터 수많은 철학자들, 특히 라이프니츠나 데카르트 같은 사람들을 괴롭혔던 문제가 드디어 풀린 것이다. 상대성이론의 결론에 따르면 시간과 공간이란 물리적 존재(physical observable)가 아니고 사람마다 느끼는 형이상학적(methaphysical)개념에 불과하다. 시간과 공간이란 단지 우리가 인식 속에 그어놓은 눈금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지 않아도 우주는 존재하는 것이다. 어느날 갑자기 우주 전체에서 시계가 사라진다해도 지구는 여전히 태양 주위를 돈다.

물질이 없는 공간은 존재하지 않고 단지 물질이 존재하는 영역만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우주의 물질이 모조리 사라지는 순간 우주는 그의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아인슈타인은 "시공간은 아무것도 아니다"(Space-time is nothing)라고 했다. 존재하는 것은 물질 그 자체뿐이요 그리고 그들의 상호작용뿐이다. 바로 그 속에 우주가 있고, 별과 은하가 있고 그리고 당신과 내가 있는 것이다.
 

블랙홀이 형성되는 모습^공간속에 아주 밀도가 큰 물질이 존재하는 경우 주변의 시공간은 깊게 구부러지며 구멍 주변은 점점 좁아지게 된다. 이를 블랙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1993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라대일 연구원

🎓️ 진로 추천

  • 물리학
  • 천문학
  • 철학·윤리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