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성단에는 질량이 다른 수십만개의 별들이 존재한다. 이들의 진화단계를 정확히 관측함으로써 우주의 나이를 측정할 수 있다.
1920년대 말, 재미없는 법률가의 길을 포기하고 천문학자가 된 허블(Hubble)은 그 당시는 세계 최대인 미국 월슨산 천문대의 지름 2.5m 망원경으로 외부 은하들을 관측했다. 놀랍게도 그는 은하들이 서로 멀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관측함으로써 우리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입증했다.
이러한 관측사실을 바탕으로 마치 영화를 거꾸로 돌리듯 우주의 역사를 돌이켜본다면, 우주의 모든 물질들이 과거 언젠가는 무한대의 밀도를 가진 상태의 한 점에서부터 창조되었다는 대폭발(Big Bang)우주론에 도달하게 된다. 최근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발사한 천문학 인공위성 코비(COBE)는 이대폭발 직후에 우주에 충만해 있던 '태초의 빛'의 희미한 잔재를 가장 정밀하게 관측함으로써 대폭발 우주론의 정당성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바로 이 대폭발의 순간으로부터 현재까지의 시간측정, 즉 우주의 나이를 계산하는 것은 천문학자가 갖고 있는 특권이며 동시에 의무인 것이다.
구상성단을 주목
천문학자들이 우주의 나이를 계산하는 방법의 기본은 우주에서 가장 오래된 천체의 나이를 항성진화이론, 즉 별의 시간에 따른 구조변화 이론과 비교하여 결정하는 것이다. 이때까지 알려진 천체 중 가장 나이가 오래된 것으로는 구상성단이라고 불리는 천체에 속한 별들이다. 구상성단은 10만에서 1백만 개의 별들이 상호 중력장안에서 집합을 이루는 천체로서 대폭발 직후 제일 먼저 생성된 천체라고 믿어지고 있다. 우리은하 내에서만도 약1백40여개의 구상성단들이 알려져 있다.
항성진화론을 이용한 구상성단의 나이측정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별의 기본구조와 진화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별은 핵폭탄이 터질 때와 같이 중심에서 핵융합반응이 일어나고 있는 뜨거운 기체공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별의 내부구조는 수소 폭탄의 구조와 매우 흡사하다. 미국의 경우 항성진화이론을 전공한 많은 수의 천문학자들이 로스알라모스(Los Alamos)국립연구소 같은 곳에서 핵무기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생성 초기의 구상성단 내의 모든 별들과 현재의 태양은 이와 같은 수소 핵융합 반응에 의해 에너지를 생성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중심부의 수소는 핵융합반응의 결과로 모두 헬륨으로 전환된다. 이러한 화학조성의 변화는 별의 내부 구조를 변화시키며 결과적으로 별의 바깥부분은 급격히 팽창하게 된다. 따라서 별의 표면온도는 감소하게 되는데, 천문학자들은 이러한 상태를 적색거성 단계라고 부른다.
현재의 태양이 앞으로 약50억년후 적색거성으로 진화하면 그 반지름은 지구궤도를 넘어갈 것으로 예측돼, 그때까지 지구상에 생명체가 남아 있다손 치더라도 모두 타 버리고 말 것이다.
천문학자들의 자세한 계산에 따르면 별이 수소 핵융합 단계를 지나서 적색거성으로 진화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별의 전체 질량에 따라 다르게 결정된다. 즉 무거운 별일수록 핵융합반응이 빨리 일어나서 빨리 적색거성 단계로 진화하게 되며, 가벼운 별은 상대적으로 천천히 진화하게 된다.
예를들면 태양보다 질량이 10배 큰 별은 생성된지 1천만년이 지나면 적색거성단계로 진화히는 반면, 태양보다 질량이 3배 큰 별은 약 4억년 후, 그리고 태양과 같은 별은 약 1백억년이 지나서야 적색 거성 단계로 진화하게 되는 것이다.
우주나이 1백65억년?
형성 당시 구상 성단내에는 질량이 다른 별들이 고루 분포하고 있다. 형성 후 약1천 만년이 지나면 태양보다 질량이 10배 큰별들이 적색거성으로 진화를 시작한다. 반면에 질량이 더 작은 별들은 아직 중심에서 수소 핵 융합 반응이 계속되고 있다. 약 4억년이 지나면, 이제는 태양질량의 3배 되는 별들이 수소 연소를 끝내고 적색거성 단계로 진화한다.
이때 쯤이면 더 무거운 별들은 진화돼 모든 단계를 벌써 끝내고 중성자별이나 블랙홀(Black Hole)과 같은 불가사이한 천체로 일생을 마치고 있다. 시간이 계속 흘러 구상성단 형성 후 약 1백억년이 지나면 드디어 태양 정도의 질량을 가진 별들이 적색거성 단계로 진화를 시작한다.
그러므로 구상성단내에서 현재 어느 정도의 질량을 가진 별들이 적색거성으로 진화하고 있는가를 관측하면 구상성단의 나이를 계산할 수 있다. 1953년 미국 카네기 천문대의 알랜 샌디지(Allan Sandage)는 이러한 방법으로 구상성단의 나이를 처음 측정하며 항성 진화론을 이용한 우주의 나이 측정법의 기본 방법을 제시했다. 이러한 업적이 인정되어 1992년 스웨덴 왕립과학원으로부터 그는 천문학의 노벨상이라고 할 수 있는 크래프드(Crafoord)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CCD 등 관측기술의 발달과 이론적인 항성모델의 진보에 힘입어 비교적 정확하게 구상성단의 나이를 계산할 수 있다. 계산에 따르면 가장 나이가 많은 구상성단은 약 1백50억년 전에 생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즉 우리 우주의 나이는 최소한 그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필자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은하의 중심에 구상성단보다 약 15억년 정도 더 오래된 별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것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우리 우주의 나이는 그만큼 더 증가해야 한다.
우주의 운명, 팽창? 수축?
우주의 역사가 약 1백65억년 전에 시작되었다면 앞으로 우주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천문학자가 갖고 있는 또 하나의 특권이다. 대폭발 우주론이 예측하는 우주의 운명은 크게 세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우주는 현재와 같이 팽창을 계속하면서 차차 식어져 갈 것이라는 이론이다. 둘째 현재는 팽창하지만 곧 다시 수축하여 뜨거워지면서 대폭발의 상태로 돌아갈 것이라는 이론이다. 그리고 셋째는 이 둘의 중간으로서 팽창도 수축도 하지 않고 그 상태를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는 이론이다.
이러한 우주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은 현재 우주의 밀도이다. 만약 우주내에 충분히 많은 물질들이 있어서 현재 우주의 밀도가 소위 '한계밀도'보다 크다면 물질들 사이의 상호중력은 현재의 팽창을 멈출 수 있고 우주는 다시 수축하게 된다.
반면에 우주의 밀도가 한계밀도에 미치지 못하면 우주는 계속 팽창하며, 우주의 밀도가 정확하게 한계밀도와 같으면 우주는 더이상의 팽창도 수축도 하지 않는 상태로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이 중에서 어떤 것이 맞는지를 검증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으나 현재 가장 가능성이 높은 방법은 '우주론적 시간척도 검증법'이다. 이 방법은 앞에서 설명한 항성진화이론에 의해 계산된 우주의 나이를 허블상수라 불리는 우주의 현재 팽창계수와 비교하는 방법.
허블의 관측과 같이 은하들의 후퇴속도와 거리를 결정하면 허블상수를 결정할 수 있다. 이것은 다름아닌 두 은하들이 두주의 팽창으로 서로 멀어져가고 있는 속도를 두 은하들 사이의 거리로 나눈 값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시속 1백km로 달리는 자동차는 1시간후에 출발점에서부터 1백km의 거리에 있을 것이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는 것과 같이, 허블상수의 역수로부터 모든 우주의 물질들이 한점에 있었던 때로부터 현재까지의 시간을 계산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구한 우주의 나이는 우주내 물질의 상호중력에 의한 팽창의 감속 때문에 현재 우주의 밀도에 따라 변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원리를 이용하면, 항성진화 이론을 이용하여 구한 우주의 나이와 허블상수로부터 구한 우주의 나이는 동일해야 한다. 이 조건을 만족하는 우주의 밀도를 계산할 수 있고, 그에 따른 우주의 운명을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현재의 여러가지 관측적 제약과 은하들간의 거리결정의 문제점 등으로 우리는 아직 어느 것이 맞는 것인지 말할 수 없다. 지난 1990년 NASA에서 쏘아올린 허블우주망원경(Hubble Space Telescope)이 계획한대로 금년말경 수리가 된다면 우리는 조만간 좀더 확실하게 우주의 운명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2백억년에 가까운 긴 역사를 지니고 있는 우주의 역사에 비하면 1백년도 채 못사는 인간이 보잘것 없다고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주의 긴 역사는 인간을 지구상에 출현시키기 위한 준비작업이었다고 한다면 우리는 인류의 존재가치에 대하여 다시 평가를 내릴 수 밖에 없다.
대폭발 우주론에 따르면 탄생 직후 우주속의 물질은 75%가 수소이며 나머지 25%는 헬륨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 몸의 세포를 이루고 있는 단백질이나 핵산과 같은 분자를 구성하는 탄소나 산소원자 등과 같은 중(重)원소는 어디서 온 것일까.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대폭발 직후에 수소와 헬륨으로 이루어진 가스 구름에서 생성된 별들은 내부에서 핵융합 반응에 의해 빛을 발하게 된다. 그 결과로 별의 중심에서는 점차 중원소가 형성되면서 진화하다가 초신성으로 일생을 마친다. 별의 내부에서 생성된 중원소들도 초신성 폭발 때 성간물질로 방출되고, 중원소 함량이 증가한 성간물질에서는 그후 신세대의 별들이 탄생한다. 새로 탄생한 별들도 같은 과정을 거쳐 다시 일생을 마친다.
따라서 시간이 흐를수록 은하내의 중원소 함량비율은 점차 증가할 수밖에 없고, 이러한 은하의 화학적 진화는 우주의 긴 역사 동안 지속되다가 지금으로부터 45억년 전에 우리의 태양과 지구를 포함한 태양계의 행성들을 형성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지구는 중원소 함량이 높은 성간물질에서부터 형성되었고, 그 지구 위에서 우리들 인간이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의 몸을 이루는 원소들의 고향은 뜨거웠던 별들의 중심이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천문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초기 우주의 구조가 조금만 달랐어도 별과 은하는 생성되지 않았고 따라서 인간도 출현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폭발로 우주가 탄생된 시점부터 우리 인간의 출현은 계획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