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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색체 지도 완성, 생명의 신비 밝힌다

인체게놈 연구에서 석유자원 대체기술까지

생명공학은 어디까지 와 있을까. 생체분자의 인공적 합성에서부터 환경정화에 이르기까지 생명공학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지금 우리는 20세기를 마감하고 21세기로 진입하는 전환점에 서 있다. 20세기 과학은 서양적 접근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이는 개별적이고 분석적인 데 바탕을 둔 서양철학에 입각하여 각 과학분야가 독립적으로 발전해왔음을 뜻한다. 그러나 독자적인 학문분야는 성숙될수록 새로운 돌파구를 인접 과학분야에서 찾았다.

물리학과 화학이 만나 물리화학, 화학과 생물학이 만나 생화학이 탄생했고 화학과 생화학, 그리고 생물학이 연결돼 유전공학이 되었다. 이러한 과학분야들의 만남은 종합과학 현상의 모델을 요구하였고 과학자들은 그 해답을 '생명현상'에서 찾기 시작했다.

생명과학이 21세기를 바라보는 인류의 돌파구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생명과학의 발달은 정보처리, 신산업기술과 신물질, 신동력 등 혁신적인 과학기술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생명공학의 현주소를 조망해보고 앞으로의 전개방향을 살펴보자.

유전공학

1960년을 전후하여 생명과학자들은 생체내에 존재하는 DNA라는 화학물질이 유전정보를 수록하고 있음을 규명했다. 또 이 DNA에 수록된 정보가 표현되는 경로와, 유전정보가 표현된 결과가 세포 내에서 효소의 단백질을 만들어준다는 사실도 알았다.

이같은 성과는 '분자생물학'이란 학문분야를 탄생시켰다. 분자생물학의 발전은 새로운 유전정보를 확보하고 DNA를 체계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기술을 갖게 하였다. 이에 따라 다른 생물에 외부유전자를 도입하여 그 유전정보가 작용케 하는 생물형질 전환도 가능해졌고, 특정 효소나 단백질과 같은 거대 생체분자를 계획대로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일례로 유전자재조합실험을 통해 사람 인슐린 유전자를 대장균과 같은 다른 생물체에 도입할 수 있다. 외부유전자를 받은 대장균은 사람 유전자의 정보를 이해하고 그에 따라 사람 인슐린을 생산한다.

이러한 인공적인 단백질 제조는 '거대생체분자합성'이라는 새로운 과학기술의 장을 열었다. 이것이 당시 세계를 놀라게 한 '유전공학'이다. 유전공학은 생체의 구성성분과 생체기능을 체계적으로 측정하고 생체분자를 인공적으로 합성할 수 있게 함으로써 신약 신효소 신물질 창출의 계기를 마련했다. 또 유전공학기술은 미생물뿐 아니라 식물과 동물에도 적용되어 생산성 향상과 좋은 종자확보를 위한 형질전환의 획기적인 방법을 제시했다.
 

육안으로 볼 수 있는 DNA. DNA분석은 이미 유전병 예방이나 범죄수사 등에 활용되고 있다.
 

게놈연구

유전공학기술의 보편화와 함께 나타나는 또하나의 주제는 유전정보의 대량확보 작업이다. 유전정보는 생명정보이자 산업정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명현상을 보다 깊이 이해하는 데는 생명체의 설계도가 필요하다는 점이 드러났다. 다양하고 유용한 생체분자의 활용과 생산을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유전정보 확보가 선결조건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인체게놈연구(Human Genom Project)로 나타나고 있다. '인간이 인간을 주제로 하는' 이 연구는 여러 점에서 신기록을 세우고 있다. 최대연구비에 최다국가의 최다연구자가 최장의 연구기간을 두고 최다의 과학분야가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현재 미국 일본 프랑스 영국 등에서 본격적으로 이 작업에 착수, 일부 염색체 지도를 완성했다. 이들은 뇌와 간 등 인체기관의 유전자염기서열을 결정하고 이를 특허신청해놓은 상태다. 게놈 연구는 사람에 국한되지 않고 지구환경에 서식하는 식물 동물 미생물에 대해서도 진행 중이다.

■생의학 연구

유전공학기술과 생체분자에 대한 유전정보 확보는 생명과학자들로 하여금 생체의 기본 구성물질인 생체분자의 조성과 역할을 일부 알 수 있게 하였다. 연구의 관심은 생체분자에서 세포로 그 범위를 넓혀가게 되었다. 이는 분자세포생물학의 전개를 의미한다. 암퇴치를 위한 암세포 연구, 인터페론, 생체방어 기능을 맡고 있는 면역세포들의 기능과 AIDS 바이러스와 같은 외부공격에 대한 방어수단 개발 등이 분자세포생물학의 연구 영역이다.

세포생물연구의 대상이 분자에서 세포 기구 수준으로 넓어지면서 생명현상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가 더해가고 있다. 세포공학이라는 연구분야가 등장하고 세포조절의약품(BRM, Biological Response Modifier)이 소개되고 있는 실정이다. 공학적인 측면에서 세포공장과 같은 생체모방기술도 자연스럽게 대두되고 있다.

더욱 획기적인 점은 유전자 치료가 등장한 것. 질병치료의 혁명이랄 수 있는 유전자 치료는 1990년대 들어 이루어진 새 유전자재조합 기술과 세포생의학연구의 뒷받침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유전자 치료는 유전병 환자의 유전자를 정상인의 유전자로 대체하여 유전병을 근원적으로 치료하는 방법이다.

가령 아데닌대사결핍증은 아데노신탈아민효소의 기능이 마비되어 사망에 이르는 유전성 소아질병이다. 미국 국립보건원에서는 정상인 유전자를 환자에게 주입하여 회생시키는 유전자치료법을 개발하여 임상실험에 성공하였다. 이러한 유전자 치료의 발전추세로 보아 인류가 유전성 암이나 다른 유전병에서 해방될 날도 멀지 않았다 하겠다.

■생명현상연구

유전공학과 인체유전자 정보, 유전자 치료 기술 등의 발달은 생명과학자로 하여금 생명현상의 근원에 대해 새로운 관심을 갖게 하고 있다. 과거에도 사람의 일생, 즉 부모의 세포가 결합하여 태아를 형성하는 시기부터 생을 마감하는 시기까지의 생명현상은 생명과학자에게 엄청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었지만,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그 연구방법을 찾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20세기 말에 와서 생명현상의 근원은 하니씩 풀려나가고 있다. 생명과학자는 생물의 화학구성물질 규명과 함께 생체기능에 대한 물리적인 작용을 연구하고 있다. 우선 시각 후각 미각 청각 촉각 등과 같은 두뇌 관련 감각장치가 있다. 생명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유전자 기능의 통제, 생합성반응의 통제 등이 필요하다. 이같은 장치와 기능은 일차로 생체분자와 관련하여 통제조절되고 있다.

생체기능의 복잡성과 동시성은 생명현상을 이해하는데 있어 화학적인 현상뿐 아니라 무형의 물리적인 개념을 필요로 하게 하였다. 특히 생물전기작용과 같은 무형개념의 도입이 요구되었다.

■석유산업 대체기술과 효소공학

20세기는 석유화학산업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결과 인류는 자동차문명, 생활용품의 혁신, 나일론 등의 의류혁명, 신약 창출 등과 같은 석유산업의 혜택을 누리며 20세기 문명의 이기를 실감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문제가 제기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석유자원이 고갈될 것이라는 점이다. 현재의 사용추세로는 21세기 중엽부터 석탄과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가 고갈될 듯하다.

생명공학은 이같은 위기를 뚫고나갈 유일한 길이다. 석유자원 대신 자연에 존재하는 천연생물자원이 그 자리를 채울 수 있는 것. 이미 선진국의 석유화학기업과 생물산업계에서는 석유산업대체기술 확보에 장기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석유를 가공하는 화학공학기술 대신에 천연생물자원을 처리할 생합성기술과 함께 효소공학기술이 체계적으로 정립되고 있다.

결국 21세기 화학산업의 승패는 얼마나 많은 산업효소를 확보하고 천연생물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유전공학기술과 게놈연구를 통한 다양한 효소의 유전정보를 확보함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탄수화물공학

탄수화물의 효소반응과 생체기능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지면서 탄수화물이 생체인식과 의약품개발의 주요소재로 새로운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탄수화물공학기술은 석유산업 대체기술로도 주목받고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천연생물자원은 대부분 식물에서 유래하는데, 대개 탄수화물이 주요 성분이고 나머지는 방향족화합물인 리그닌 등이다. 천연 탄수화물은 주로 셀룰로스 녹말 목재 키틴(chitin) 등의 형태로 존재하며 그 대부분은 섬유 옷 종이 목재 등으로 인류 역사와 함께 이용돼왔다.

생명공학기술은 탄수화물 등을 이용하여 석유산업의 최종산물에 해당하는 소재와 용품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탄수화물의 확보 전환 합성 활용 등의 문제로 귀결된다. 여기서 구상될 수 있는 것은 생체합성기구와 효소를 이용한 '인공생합성공장'의 구축이다. 생체세포는 생합성재료로 포도당과 몇가지 무기염만으로 모든 생체분자를 유기적으로 신속히 제조할 수 있는 체계를 갖고 있다. 생합성체계의 활용은 석유산업대체기술의 이상적인 목표라 할 수 있다.

생체합성공장은 생화학과 효소화학의 발달로 머지않아 현실로 부상할 것이다. 최근 선진기술국에서 탄수화물공학연구가 정책사업으로 채택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해양생물공학

첨단과학기술은 해양생물자원을 활용할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해주고 있다. 바다에서 주어진 생물자원만을 채취하거나 일차적 양식을 통해 확보하던 지금까지와 달리, 앞으로는 보다 다양한 신해양생물소재와 자원을 해양 생물에서 개발해야 할 것이다.

가령 게나 새우의 표면은 키틴이라는 탄수화물고분자로 둘러싸여 있다. 이 키틴은 셀룰로스 다음으로 지구상에 많은 천연생물자원이다. 최근 키틴의 선택적 접착능력을 이용한 환경정화물질이 개발됐다. 또 희귀금속채취에 이용되는 광업소재로 활용되기도 한다.

■신기능 생물소재와 생체모방기술
 

호박에서 추출해낸 3천만년전 흰개미의 DNA를 해독하는 미국 자연사박물관의 과학자들.
 

생명공학산업은 생물의 고유기능을 이해하고 활용함으로써 보다 다양하고 정교한 신기능 생물소재를 창출하게 된다. 생물은 그 자체를 유지하기 위하여 먹이확보 및 에너지 생산, 생체분자합성, 방어 및 면역기능과 적응능력이 잘 발달되어 있다. 생체는 스스로 필요한 기관 효소 항생제나 항체, 특수기능물질들을 만들게 된다.

생물생존에 필수적인 이러한 생체장치나 생물소재는 그 메커니즘을 이용할 경우 신물질 신약 신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준다.

생체기관의 이해와 응용은 생체모방기술을 창출한다. 사람의 두뇌작용, 동물의 동력장치인 근육작용과 생물활동, 소화기관 및 내장 등과 같이 수많은 정교한 생체장치가 있다. 생체모방기술의 사례를 들어보자.

첫째는 두뇌연구다. 두뇌작용은 생명현상 중에서 가장 정교하고 복잡한 기능이다. 두뇌의 기억과 사고 및 통제기능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재미있게도 두뇌작용은 생명과학보다는 전기전산연구에서 그 유사한 해답을 찾아나가고 있다. 컴퓨터가 두뇌기능을 모방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두뇌작용의 복잡성과 처리속도를 유추하여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바이오칩과 같은 고집적회로와 빠른 처리속도를 가진 인공바이오칩 개발에 착수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례로 눈 공막에 존재하는 로돕신(rhodopsin)은 광에너지를 전기화학에너지로 전환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때 레티날(retinal) 분자구조의 이성화(isomerization)로 분자 스위치의 기능을 하게 되는데, 현재 선진기술국의 전자산업계에서는 이 분자 스위치를 이용하여 바이오칩을 개발하고 있다.

둘째 새로운 생물유래동력원의 개발이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자동차엔진은 석유가 고갈되었을 때는 사용할 수 없는 연소기관이다. 동물은 탄수화물 대사과정에서 많은 생물전기를 만들어 근육에 전달한다. 이때 근육은 운동에너지를 생산하여 동물을 활동하게 한다. 사실 이는 대사동력기관인 것이다. 탄수화물 등과 같은 화합물은 무한히 많고 재생가능한 천연생물자원이다. 이를 이용한 동력기관이 머지않아 그 모습을 드러내리라 생각한다.

셋째 효소공학과 관련한 생물공정기술의 창출이다. 생물전환과 효소합성을 통하여 새 생체분자를 생산할 때마다 새로운 생물반응기와 분리정제기술이 필요하다. 현재 이 생물공정기술은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동물의 위와 내장은 이상적이고 완벽한 생물공정체계라 할 수 있다. 완벽한 효소화학 반응과 분리 농축 분별 분배 등 일괄연속처리체계를 가지고 완벽한 생물공정체계를 이루고 있다. 이 생체공장의 모방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또다른 형태의 생산공장 개념은 '정보의존공장'(information-dependant production)인 세포공장에서 찾을 수 있다. 세포내에서는 수천수만개의 효소나 단백질이 합성된다. 이 때 각 단백질마다 별도의 합성기구가 있다면 세포내 좁은 공간은 넘쳐 흐를 것이다. 그러나 세포는 그 많은 효소나 단백질 합성을 위해 리보좀(ribosome)이라는 합성기구만을 가지고 있다.

리보좀은 정보의존합성체계를 갖고 mRNA의 합성정보에 따라 단백질을 효율적으로 합성하고 있다. 다른 합성정보가 오면 그에 따라 효소나 단백질을 합성한다. 이러한 정보의존합성방법은 생화학실험실과 생물산업 현장에서 생체분자나 유용물질의 효율적인 합성방법으로 채택되고 있다.

넷째 생물은 어떠한 생체 내외의 변화도 감지하고 그에 따른 조치를 취하는데, 바로 생물감지장치 덕이다. 우선 생체내의 수많은 효소들은 정확히 특정화합물을 인식하고 있다. 그 뒤 효소는 특정화합물에 대한 효소반응을 통하여 전기화학신호를 발생시켜 생체변화를 감지한다.
이렇게 정교한 생물감지장치가 인공적으로 만들어져 사용되고 있다. 가령 당뇨병 환자의 혈당측정기, 환경오염물질 감지기, 산업 생산물 감지장치 등 많은 생물감지장치가 개발되고 있고, 앞으로 그 활용범위는 더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생물학자들은 갓 태어난 생쥐의 유전적 결함을 치유하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환경생물활용과 환경적응기술

인구증가와 산업발전은 지구환경의 현저한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이때 생명공학기술은 환경정화 내지 환경적응 노력에 일차적인 해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생물 중에는 오염물질을 먹이로 활용하는 생물이 있다. 이 생물의 생태계 고리를 연결시켜주는 방법과 이 생물에서 특정오염물질을 제거하는 효소를 대량생산, 오염물 제거에 이용할 수 있다.

가령 서울 쓰레기매립지의 하나인 난지도에 존재하는 환경미생물의 활용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수십년간 집하된 난지도 쓰레기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부패해가고 있다. 산업폐기물이나 화학수지 같은 것들은 부패가 어렵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들을 부패시키는 환경미생물이 서식하게 된다. 이 미생물이 환경정화기술의 해답을 주고 있다.

환경미생물의 효소들이 산업폐기물을 환경적으로 안전한 화합물로 전환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환경미생물이나 효소는 사실상 환경정화의 유일한 방법일 뿐 아니라 새로운 산업 효소를 창출해주는 자연의 보고라 할 수 있다.

또다른 환경생물로 화산지구의 고열온천이나 한냉지역에서 서식하는 극한생물들을 들 수 있다. 이들은 극한환경에서 적응하는 방법들을 가지고 있다.

최근 유전병진단과 범죄수사의 유전자 감식에 사용되는 내열성 DNA중합효소는 극한 환경생물을 사용한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이 효소는 화산지대의 온천에서 서식하는 내열성 미생물이 갖고 있는 유전자 복제효소다. 유전공학기술로 다량 생산된 DNA중합효소는 높은 온도주기(95-75-55℃)에서 특정 유전자를 수십억배 증폭하게 해준다. 이러한 유전자 증폭을 통해 아주 극소량의 사람의 피나 타액, 배설물 등에서 유전병 진단, 범죄수사에서의 유전자 감식 등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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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이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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