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6일 스웨덴의 카롤린스카연구소 노벨상 선정위원회는 자기공명영상촬영장치(MRI, Magnetic Resonance Imaging)를 개발하는데 기여한 공로로 미국의 폴 로터버와 영국의 피터 맨스필드 박사를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노벨상 선정위원회는 “이들이 핵자기 공명이라는 물리적 현상을 이용해 신체 장기와 같은 구조물들을 영상화하는데 필요한 아주 독창적인 방법을 제안했다”며 “인체에 무해하고 정확한 방식으로 인체 장기의 영상을 얻는 이 발견은 의학 진단과 연구에 획기적인 일로 평가된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인체에 무해한 투시법
의학에 이용되는 영상진단법은 MRI가 등장하면서 획기적인 변화를 겪었다. MRI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외부에서 X선이나 초음파 등을 인체에 쏴서 영상을 얻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러나 방사능 물질을 사용하거나 해상도가 낮다는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 MRI는 강한 자기장 내에 인체를 넣어서 우리 몸속에 들어있는 물(H2O)의 수소 원자핵에서 방출되는 고주파 신호의 분포를 컴퓨터로 분류해 영상화시킨다.
MRI를 통해 영상을 얻을 수 있는 근본적인 원리는 자기화된 원자핵이 공명하는 현상, 즉 ‘핵자기 공명’(NMR, Nuclear Magnetic Resonance)이다. 물리학자들이 연구한 핵자기 공명은 분자단위에서 물질의 성분, 구조, 움직임과 상태에 관한 정보를 밝혀내는 탁월한 방법이다. 이 방법이 의학 영상에는 어떻게 접목된 것일까.
원자들은 지구처럼 자전운동을 한다. 자기장 내에서 원자는 고주파 신호를 받으면 오뚝이처럼 쓰러졌다 일어서는 반응을 보인다. 이때 원자에 따라 각기 다른 파장의 고주파 신호를 발생시킨다. 이와 같은 방법을 인체의 수소원자에 적용하면 체내의 분포 상태를 정확히 알 수 있다. 이런 정보를 공간적 영상으로 재조합한 것이 바로 MRI다.
MRI의 장점은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 인체에 해롭지 않다는 점이다. X선을 이용하는 단층영상(CT)이나 인체에 흡수된 방사능 동위원소가 붕괴되 나오는 감마선을 측정하는 핵의학 영상의 경우 위험성 때문에 사용에 제한을 받고 있다. 또한 MRI는 우리 몸의 70%나 차지하는 물분자 내의 수소원자를 이용하기 때문에 영상이 치밀하고 정확도가 높다.
MRI는 의학적 용도로 빠르게 보급됐다. 의료분야에서 첫번째 MRI 장치가 1980년대 초반에 사용된 이후, 2002년 약 2만2천개의 장치들이 전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MRI를 사용하는 실험도 매년 6천만건 이상 진행되고 있다고 추산된다.
오늘날 MRI는 인체의 거의 모든 기관들을 검사하는데 유용하게 사용된다. 특히 뇌와 척추를 상세히 영상화하는 일에서 큰 위력을 발휘한다. 거의 모든 뇌질환이 발생하면 물분자의 분포가 변화하기 때문에 MRI 사진에서 이상 부위가 쉽게 발견된다. 뇌기능 연구 역시 MRI 덕분에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더욱이 MRI 방법이 개선되면서 응용분야가 날로 증대되고 있다. 원자핵의 운동 상태를 영상화할 수 있는 영상법이 개발돼, 심장과 같이 심하게 움직이는 부위의 촬영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심장박동 조절장치처럼 자기 금속을 가진 환자나 밀실 공포증을 가진 환자는 MRI 검사를 받을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뇌와 척추 촬영에 위력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로버터 박사는 자기공명 현상의 의학적 이용 토대를 마련한 인물이다. 그는 물분자에 가하는 자기장의 세기를 달리 하면 물분자에서 방출되는 전파가 신체 어느 곳에서 방출된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 방출되는 신호를 선으로 표시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다른 방법으로는 볼 수 없던 몸속 장기를 2차원 영상으로 표현하는 토대를 마련한 셈이다.
로터버 박사는 1962년 펜실베니아 피츠버그대에서 화학 박사를 받았다. 그는 1969년부터 1985년까지 뉴욕대 화학·방사선학과 교수로 재직한 뒤, 일리노이대로 옮겨 현재까지 교수로 재직중이다.
공동수상자인 맨스필드 박사는 수학을 동원해 자기장에 공명하는 물분자의 신호를 더욱 빠른 속도로 분석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수많은 물분자들이 보내는 신호를 분석해서 선으로 나타내는 로터버 박사의 방법으로는 장기 등의 국소적인 모습을 희미한 선으로 표현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좀더 빠른 속도로 신호를 분석하고, 그것을 종합해서 2차원적 단면으로 나타내는 방법을 맨드필드 박사가 개발함으로써 비로소 몸속 장기의 2차원 영상이 가능해졌다.
맨스필드 박사는 또 아주 빠른 이미지 영상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해 의학에서 기술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그는 1962년 영국 런던대에서 물리학 박사를 취득했고, 이후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연구교수를 지냈다. 1964년부터 줄곧 영국 노팅엄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장자의 발견은 MRI를 개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내과의사 레이몬드 다마디언 박사가 자신이 먼저 MRI를 고안했으며, 특허까지 갖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수상자에 자신도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인체 투시법은 노벨상의 단골손님
지금까지 노벨상 수상자를 살펴보면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로터버와 맨스필드처럼 인체 장기의 영상을 얻는데 도움을 준 사람들이 여러명 있다. 물론 그들의 연구가 원래에는 인체 장기의 영상을 얻는데 있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인류에 기여한 부분은 인체 내부를 알고 싶어하는 인간의 오랜 욕구를 해소시켜준 것이다.
20세기 과학의 시작은 대부분 1895년을 그 기점으로 잡는다. 1895년은 독일의 과학자 뢴트겐이 음극선관 실험을 하다가 X선이라는 새로운 종류의 광선을 발견한 해였다. X선의 발견으로 방사선 과학이 시작됐으며, 뢴트겐은 이 탁월한 업적으로 1901년 제1회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뢴트겐의 X선 발견은 이듬해 프랑스의 베크렐이 우라늄에서 방사선을 발견하는 연구로 이어진다. 1897년에는 영국의 톰슨이 음극선에서 전하량과 질량의 비를 측정하는데 성공해 음극선의 입자성이 강력하게 부각됐다. 음극선의 입자성 발견은 20세기에 들어와서 상대성이론이 출현되는 계기를 마련해 줬다.
X선의 본성에 대한 논쟁을 통해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이라는 빛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나타났다. 빛에 대한 이중성 개념은 양자역학이 성립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또한 방사선 연구는 핵변환의 발견으로 이어졌고, 급기야 핵분열이 발견돼 핵에너지 시대에 진입하게 됐다. 결국 20세기 과학은 X선의 발견을 계기로 해서 새로운 모습을 갖춘 셈이다.
X선이 진단방사선학에 이용되는 이유는 투과하는 성질을 갖기 때문이다. 인체를 투과해 그 속의 구조를 관찰할 수 있다는 사실은 X선 발견 이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획기적인 일이었다. 사람 몸 속 뼈의 이상, 골절, 종양 등의 질환은 물론 머리, 가슴, 배 등 인체 내부 장기를 꿰뚫어 볼 수 있게 됐다. 더욱이 X선은 필름을 감광시키기 때문에 사진으로 찍어서 기록할 수도 있게 됐다.
앨런 코맥과 고드프리 하운스필드도 진단방사선 영역에서 노벨상을 획득한 사람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태생 미국의 물리학자 코맥은 X선을 이용하는 ‘컴퓨터단층촬영기’(CT)라는 강력한 진단기술을 개발해 하운스필드와 함께 197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코맥은 처음으로 밀도가 서로 다른 조직층이나 부드러운 조직의 X선 영상에 대한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1970년대 초기에 그는 CT의 수학적 물리학적 기초를 세웠다. 영국의 전기공학자 하운스필드는 컴퓨터를 사용하는 CT 스캐너를 완성해 인체의 단층 촬영이 가능하게 됐다.
의료영상진단에서 CT와 쌍벽을 이루는 자기공명영상촬영장치(MRI)가 개발되기까지 여러 사람의 개척자들이 있었다. 가장 대표적으로 1946년 미국의 물리학자 펠릭스 블로흐와 에드워드 퍼셀에 의해 핵자기공명(NMR) 현상이 발견됐다. 그들은 이 공로로 1952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했다.
블록의 발견 이후 물분자의 자기공명현상은 주로 물체의 화학적 구조를 밝히는데 사용됐다. NMR 분광학은 화학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측정기술로 발달됐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민감도와 분해라는 두가지 측면이 급격히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런 연구에 집중을 한 인물이 바로 스위스의 화학자 리하르트 에른스트다. 그는 고선명 핵자기공명 분광학의 방법을 개발한 공로로 1991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NMR 분광학은 오늘날 실험실은 물론이고 대학에서 화학의 거의 전분야에 사용되고 있다. 또한 화학자들은 다양한 분자간의 상호작용을 연구할 때, 분자운동을 조사할 때, 화학적 반응비율에 대한 정보를 얻을 때, 그리고다른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때에 NMR을 사용한다. 오늘날 NMR 기술은 물리학, 생물학, 의학 등 학문분야에서없어서는 안될 방법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