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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 돌턴의 원자가설, 그 허와 실

물질의 수학적 표현

물질의 기본단위인 원자나 분자는 질량을 숫자로 나타내는 것이 가능하다. 진정한 의미의 화학은 물질세계를 수치화하려는 노력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학이 어렵게 느껴지는 여러가지 이유 중의 하나는 자주 등장하는 수학적 표현 때문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화학이 학문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 화학을 수학적인 체계로 표현하가 시작한 시점과 일치한다. 이 때문에 화학에 사용되는 여러 개념을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학적 표현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사실 화학의 기초적인 개념을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수학적인 표현은 매우 간단하다.

고등학교 화학에서는 기본적으로 원자나 분자의 운동에 주목하여 평형이나 반응의 문제를 설명하는 것에 주안점을 둔다. 즉 2g의 수소와 16g의 산소가 반응하여 물 18g이 된다고 이해함과 동시에 수소원자 2개와 산소 원자 1개에서 물 분자 1개가 된다는 입장을 중시한다.

숫자로 표현되는 물질


(표1) 리히터의 당량 관계표
 

화학에서는 물질마다 고유한 양(量), 즉 질량을 숫자로 표시한다. 물질의 기본 단위인 원자와 분자는 질량을 숫자로 나타내는 것이 가능하다. 진정한 의미의 화학은 물질 세계를 수치화하려는 노력으로부터 출발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물질을 수치화하려는 노력은 주로 18세기 유럽에서 여러 과학자들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이 중에서 대표적인 과학자는 독일의 리히터(Jeremias Benjamin Richter, 1762~1807)이다.

그는 동일한 양의 산(1000 중량분)을 중화시키는 데 필요한 염기류의 상대적인 중량을 측정하였다. 이를 당량이라고 한다. 그래서 얻어진 값을 염기의 중화 계열이라고 하였다.

(표1)에 따르면 황산 1000중량을 중화하는 데에 필요한 갖가지 알칼리의 필요량을 계산하였다. 그러므로 이러한 알칼리의 필요량 사이의 일정한 비까지 얻을 수 있었다. 당시 소다와 포타슈는 원소로 생각했으므로 원소간의 상대적인 당량을 계산할 수도 있었다(현대적인 기호로 표시하면 소다는 NaOH, 포타슈는 KOH이다).

1000중량의 황산에 대하여
(포타슈) : (소다)=1606 : 1218=1.319 : 1
1000중량의 염산에 대하여;
(포타슈) : (소다)=2239 : 1699=1.318 : 1
1000중량의 질산에 대하여;
(포타슈) : (소다)=1143 : 867=1.318 : 1

이러한 간단한 계산으로부터 포타슈와 소다의 산과 반응하는 질량 사이에는 일정한 관계가 성립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리히터의 연구를 일반적인 화학법칙으로 발표한 사람은 프루스트(1755~1826)였다. 그는 "일정한 화합물을 구성하는 모든 단체의 질량 비는 일정하다'는 법칙을 발표했다(1799).

이러한 법칙성의 발견에 기초하여 돌턴은 원자의 상대적인 질량을 결정할 수 있었다. 돌턴은 원소 간의 반응이 일정한 질량비로 이루어지는 것은 물질이 고유한 질량을 갖는 원자로 이루어져있고 원자들이 일정한 개수의 비로 반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화합물을 구성하는 원자수(原子數)가 1 : 1로 반응한다고 가정하면 화합물을 구성하는 성분 원소의 질량비는 곧 원자량의 비가 된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 돌턴의 생각이다. 수소 산소 탄소의 원자량 결정과정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수소, 산소의 원자량 결정>;<;탄소의 원자량 결정>;
 

돌턴은 위와 같은 방법에 의해 20가지에 이르는 원자의 상대적인 질량을 결정하고 이것을 (표2)로 정리했다.


(표2) 돌턴의 원자기호와 원자량표
 

돌턴의 원자량은 중요한 결함이 있었다. 돌턴은 실험으로부터 얻은 측정치를 매우 중시했고 겸손하고 성실한 인간성을 소유하고 있었지만, 자신의 원자량의 결점에 대한 지적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같은 시대의 과학자인 프랑스의 게이루삭은 모험심과 실험정신과 합리적인 사고를 갖고 있던 과학자였다. 그는 젊은 시절 동료과학자와 기구를 타고 알프스 산보다도 높이 올라가 대기의 조성을 측정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기체의 성분조사에 남다른 관심을 갖게 되었고 여러 과학자들의 도움으로 기체의 성분비(부피비)를 측정할 수 있는 실험기술을 터득할 수 있었다. 그는 기체의 반응에서 부피비가 정수비가 되는 법칙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 법칙으로부터 돌턴의 원자량에 결함이 있음을 지적하였다. 예를 들어 수소와 산소가 반응하여 수증기가 되는 반응에서 수소 : 산소의 부피비는 2 : 1이다. 이는 물을 구성하는 수소원자수 : 산소원자수의 비가 1 : 1이 아닌 2 : 1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 실험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스웨덴의 베르셀리우스는 실험적 법칙을 수용하여 원자량 표를 새롭게 만들었는데 그의 질량 측정에 스스로 고안한 저울을 사용하여 매우 정밀하게 측정했기 때문에 그의 원자량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원자량과 거의 비슷하다.


(표3) 베르셀리우스의 원자량표(1826)
 

돌턴의 한계


(표4) 2주기 원소의 가능한 원자가와 수소화합물
 

앞에서 살펴보았지만 돌턴은 원자량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화학식을 사용했다. 돌턴의 화학식은 원자량의 계산과 함께 그의 원자가설의 중요한 부분이다. 돌턴은 원자의 결합이 가장 단순한 비율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원칙을 세웠다. 즉 그는 물을 HO, 암모니아를 NH, 황화수소를 HS 등과 같이 나타내었다. 그는 두개의 원자가 한 종류의 화합물을 만들 때에는 두 개의 원자가 1 : 1 의 비율로 결합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두 개의 원소가 두 종류의 화합물을 만드는 탄소화합물은 CO와 ${CO}_{2}$로, 황의 산화물은 SO와 ${SO}_{2}$ 등으로 나타냈다.

돌턴이 화학식을 만든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여러분도 연습삼아 돌턴과 같은 방법으로 화학식을 만들어 보기 바란다. 가령 어떤 화합물을 분석하여 그 조성이 A와 B로 이루어져 있다면 간단히 화학식을 AB로 나타낼 수 있다. 그리고 만일에 A와 B로 이루어진 화합물이 두가지일 경우에는 질량비에 따라 AB와 ${A}_{2}$B 로 나타내거나 혹은 AB와 ${AB}_{2}$로 나타낼 수 있다.

돌턴의 이와같은 단순성의 원칙은 화합물의 화학식을 표현하기에 상당히 편리하다. 그의 이러한 단순원리는 실험에 근거한 것이 아닌 가정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자연의 법칙은 돌턴의 가정과는 달랐다. 돌턴이 물의 화학식을 HO로 사용했기 때문에 산소의 원자량이 7, 혹은 8이었다. 만일 돌턴이 물을 ${H}_{2}$O로 올바로 알 수 있었다면 물의 화학식은 8이 아닌 16(=8×2)이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암모니아를 NH가 아닌 ${NH}_{3}$로 올바로 알았다면 질소의 원자량은 5가 아닌 15(=5×3)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산소나 질소의 원자량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원자량과 거의 일치하는 값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화학식을 정확히 쓰려면 원자가를 알아야 한다. 원자가는 주기율표의 위치로부터 쉽게 알아낼 수 있다. 모든 원자에 대해서 설명하기에는 너무 복잡하므로 3주기까지의 원소에 대해서만 알아보자. 주기율표에서 1~3족의 원소는 보통 금속성을 나타낸다. 금속성을 나타내는 원자들은 양의 원자가를 갖는다. 4~7족 원소들은 보통 비금속성을 나타낸다. 비금속성을 갖는 원자들은 음의 원자가를 갖는다. 일반적으로 금속의 원자가는 족수와 일치하고 비금속의 원자가는 족수에서 8을 뺀 값이 된다. 그러나 원자가 하나의 원자가만을 갖는 것은 아니다.

5족 원소인 질소를 예로 들어보자. 질소 원자는 5족이므로 마지막 전자껍질의 전자가 5개이다. 따라서 -5, -4, -3, -2, -1, +1, +2, +3등 8개의 원자가가 가능하다. 질소에 비하여 비금속성이 약한수소와 결합할 때 질소는 음의 원자가를 갖는 비금속성을 띠게 된다. 따라서 5-8=-3에 의해 질소는 주로 -3가인 화합물 즉 ${NH}_{3}$를 만든다.


(그림1) 단주기율표와 원자가
 

저울에서 질량분석기로

물질을 수학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보다 정밀한 측정이 필요했다.

물질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서 최초로 저울을 사용한 사람은 중세의 연금술사 헬몬트다. 헬몬트는 2백파운드의 흙을 잘 말린 다음 화분에 넣고, 5파운드의 버드나무를 거기에 심고 물만으로 길러 보았더니, 5년 후에 버드나무의 무게가 1백64파운드 무거워졌고 흙의 무게에는 변함이 없었다. 헬몬트는 이 사실로부터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는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의 생각을 실험적으로 증명했다. 헬몬트의 실험에서와 같이 변화 전후의 질량 측정으로 물질의 변화를 설명하는 방법을 일컬어 정량분석법이라고 한다.

헬몬트로부터 시작된 정량분석법은 라브아지에에 의해 제대로 확립되었다. 라브아지에는 화학에서 원소의 개념에 대한 당시의 혼돈스러운 사상을 깨뜨리고 근대적인 원소관을 정립할 필요를 느꼈다. 당시까지 사람들은 물질이 물 불 공기 흙의 4원소로 되어 있으며 원소들은 상호 변환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물이 담긴 유리를 오래 가열할 때 생기는 앙금을 물이 변해서 생긴 흙이라고 믿고 있었다. 라브아지에는 이를 반증하기 위한 한가지 방법으로 가열하기 이전의 플라스크의 질량보다 가열 후의 질량이 감소하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이어서 그는 감소한 질량이 물에서 생긴 앙금의 질량과 똑같다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침전물은 물에서 전환된 것이 아니고 유리기구의 한 성분임을 1백1일간(1768. 10. 24~1769. 2. 1)의 실험 끝에 밝혀냈다.

돌턴이 저울로 측정한 반응물질과 생성물질의 질량을 토대로 원자량을 결정한 이후로 많은 사람에 의하여 원자량 결정에 이용할수 있는 질량의 측정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서는 질량분석기라는 기기를 이용하여 원자의 질량을 매우 정확하게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 질량분석기는 측정하고자 하는 물질을 이온상태로 만든 후에 그 이온을 수천V로 가속시킨다. 가속된 이온은 먼저 전기장에서 휘고 다음은 자기장에서 휘게하여 같은 질량을 지닌 입자를 사진건판의 일정한 한 점에 나타나게 하는 방법으로 원자의 질량을 결정한다.

이런 방법으로 측정한 ${O}_{16}$의 질량은 15.9949150±0.000002이다. 이 방법에 따르면 같은 산소 원자라 하더라도 질량수가 다른 동위원소에 대하여 다른 질량을 얻을 수 있다. 또한 원자의 질량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식 E=${mc}^{2}$을 증명할 수 있게 되었다. 원자는 전자 양성자 중성자 등의 소립자로 구성된다. 원자의 질량은 원자를 구성하는 소립자의 총질량이 될 것 같은데 실제는 더 작은 값이 된다. 왜 그럴까? 아인슈타인의 식에 따르면 에너지는 질량이다. 소립자들이 결합하여 핵을 만들 때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방출된다. 그 에너지에 해당되는(등가의) 질량이 감소하였기 때문에 원자의 질량은 소립자 질량의 산술적인 합보다 작다. 이렇듯 물질세계를 표현하는 수치가 보다 정밀해질수록 물질세계의 신비가 한꺼풀씩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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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서인호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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