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훈데르트바서展] 곡선과 나선으로 건축을 치료하다

똑똑한 팝(Pop)

전시개요- 훈데르트바서(1928~2000)는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쉴레와 함께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건축가다. 그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라는 확고한 주제의식을 갖고 작품 활동을 펼쳤다. 그의 회화작품은 다채로운 색채와 유기적 형태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60점이 넘는 회화와 건축모형 8점, 태피스트리 5점 등 총 120여점을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어 훈데르트바서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다.



오스트리아 빈에 가면 꼭 들러봐야 할 곳이 있다. 바로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다. 이곳은 주택단지에 불과하지만 빈의 관광 명소로 명성이 자자하다. 화려한 원색과 자유 분방한 외관으로 권위적이고 건조한 도시 빈에 활력을 불어 넣었기 때문이다. 빈을 새롭게 디자인한 훈데르트바서의 전 시회가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훈데르트바서의 본명은 프리드리히 스토바사다. 그는 20세가 되던 해 자신의 이름을 ‘평화롭고 풍요로운 곳에 흐르는 백 개의 강’이란 뜻인 훈데르트바서로 바꿨다. 훈데르트바서는 현대미술에서 특정양식이나 사조로 분류하기 어렵다. 굳이 분류하자면 클림트, 쉴레로 대표되는 20세기 오스트리아 토털 아트의 계승자로 볼 수 있다. 그는 예술이 ‘행복한 삶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화두 로 미술, 건축, 환경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그는 평생 뚜렷한 거주지 없이 떠돌았다. 작업실을 따로 두지 않고 집, 길가, 레스토랑, 기차 안 등 머무른 모든 곳에서 그림을 그렸다. 그는 다양한 삶의 형태와 직업을 가지며 항상 점진적으로 끊임없이 발전하는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겼다.




 


 
 


 



나선과 지층으로 이뤄진 독특한 그림

자유롭게 살았던 훈데르트바서의 그림과 건축물을 보면 뚜렷한 형태가 정해져 있지 않다. 대신 따뜻한 원색과 어우러진 구불구불한 곡선, 소용돌이치는 나선이 가득하다.



훈데르트바서에게 나선은 생명과 죽음의 상징이었다.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지 않고 끝없이 돌고 있는 나선이야말로 우리의 삶과 가장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거대한 우주와 행성의 움직임부터 유전자까지 모두 나선형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도 나선형을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기하학적 관점에서 생물을 바라본 생물학자 다르시 톰슨도 그의 대표저작 ‘성장과 형태에 관하여’에서 생물 성장의 한 형태로 나선을 주목했다. 톰슨은 소라고둥이 마지막으로 성장했던 칸의 곁에 새로운 칸이 같은 각도로 덧붙어서 나선형으로 성장한다고 말했다. 훈데르트바서는 소라고둥의 성장처럼 모든 사물이 나선형으로 자라난다고 생각했다.



그의 그림 ‘작은 안경의 얼굴’(161쪽), ‘이웃들1- 나선형 태양과 달과-집’, ‘그리운 보랏빛 지붕’ 등을 보면 나선은 안경, 태양, 지붕 등으로 다양하게 변한다.
 






 

‘쉴레를 애도하며’, ‘노란집들 - 함께하지 않는 사랑을 기다리는 것은 아프다’, ‘세 번째 피부’(163쪽) 등의 작품을 보면 수많은 수평선이 가로놓여 있다. 천천히 누적된 지층 혹은 해마다 덧씌워진 나무의 나이테를 연상시킨다. 그의 판화 ‘목초지 아래 달려 있는 집’을 보면 켜켜이 쌓인 지층 아래 매달린 집이 그려져있다. 보통 보는 건물과 위아래가 뒤집힌 형태다. 집의 바닥이 아니라 옥상이 숲과 흙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나선과 지층에 관한 그의 생각은 건축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훈데르트바서는 1997년 ‘블루마우’ 온천마을의 호텔과 온천 시설의 설계(163쪽)에 참여했다. 이곳의 건물은 나선의 일부인 것처럼 땅과 옥상이 연결돼 있는데, 그곳 위로 흙과 식물들이 덮여 있다.







삭막한 건물을 살리는 건축치료사

훈데르트바서는 화가였지만 1950년대부터 건축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의 예술이 ‘행복한 삶의 추구’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는 건축물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는 현대 건축물이 자연과 멀어지고 획일적이며 삭막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철학을 담은 건축물을 디자인했다. 그의 첫 건축 프로젝트는 비엔나의 시영아파트 재건축이었다. 이후 성 바바라 성당, 고속도로 휴게소, 쓰레기 소각장 등 많은 건축프로젝트를 맡았다.



‘건축치료사’는 그가 건축에 접근하는 근본적 가치관에서 비롯된 별명이다. 대다수의 건축가들은 리모델링을 선호하지 않는다. 건축의 형태를 바꿀 수 없어 건축가의 창의성을 살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훈데르트바서는 도시의 삭막한 건물을 변화시키고자 건축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기존 건물의 리모델링에 관심을 가졌다. 이 때문에 훈데르트바서는 아픈 건물을 치유하는 건축치료사라는 명성을 얻었다.



훈데바르트 바서가 참여한 건물의 창문을 보면 그의 건축관을 알 수 있다. 훈데르트바서는 1967년에 발표한 ‘세 번째 피부의 권리’에서 창문을 입주하는 사람의 뜻에 따라 새롭게 디자인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람에게 세 개의 피부가 있는데, 첫 번째 피부가 신체의 피부라면 두 번째는 옷이고 세 번째는 건물이라고 생각했다. 피부를 관리하고 옷을 입어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듯이 건물을 꾸며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때 창문은 건물의 개성을 드러내는 주된 요소였다. 이 때문에 훈데르트바서가 참여한 건물은 독특하고 개성 있는 창문으로 가득하다.
 
 



우표, 새로운 기술시대의 예술

훈데르트바서는 우표를 아꼈다. 그의 많은 작품이 우표로 만들어졌으며, 다양한 기념우표를 직접 디자인하기도 했다. 그는 우표가 특권을 지닌 사람만이 감상할 수 있는 신성한 작품이 아니라, 누구나 보고 사용할 수 있는 대중 예술이라는 점 을 좋아했다.



우표는 영화와 사진처럼 복제할 수 있다. 따라서 작품의 고유성이 사라진다. 회화는 한 점만이 원본이지만, 사진은 똑같은 사진을 무한히 복제할 수 있기 때문에 원본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따로 없다.



독일의 문예비평가 발터 벤야민은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예술작품의 의미 자체가 기술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한다. 무한한 복제가 이뤄지기 전에 예술을 볼 때는 작품이 하나뿐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특별하게 봤다. 하지만 무한한 복제가 이뤄지면 감상자는 작품을 더 이상 특별하게 보지 않는다. 만일 고유성으로 인한 특별함이 사라지면 예술도 사라지는 걸까.



벤야민은 생활 속에서 이뤄지는 ‘산만한 감상’이 현대 대중예술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건축은 이런 산만한 예술의 대표격이다. 실용적으로 쓰이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건물은 눈으로 볼 때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이 실용적으로 사용하지 못한다면 가장 중요한 목표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건물을 볼 때 그림을 보듯 몰입해서 감상하기보다는 그 안에서 살며 산만하게 감상한다.
 

훈데르트바서의 우표도 산만하게 감상하는 예술이라고 볼 수 있다. 우표는 전시를 위한 예술이 아니라 쓰이기 위한 예술이며, 생활 속에 자리 잡은 예술이다. 이런 예술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벤야민의 말처럼 기술이다. 기술은 예술을 무한히 복제해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예술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런 점에서 훈데르트바서의 건축과 우표는 예술이자 기술이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11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황희선, 이미지출처│NAMIDA AG, GLARUS, SWITZERLAND, 위키미디어 기자

🎓️ 진로 추천

  • 미술·디자인
  • 미술사학
  • 건축학·건축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