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은 먹는 것까지’라는 헬스인 겸 방송인 김종국의 말을 들은 후 운동을 좋아하는 기자는 단백질 섭취에 진심인 사람이 됐다. 그런 기자를 충격에 빠뜨린 소식이 있었으니, 기후위기로 미래에는 육류 섭취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 충격과 공포에 질린 기자에게 이영혜 편집장이 육류를 대체할 대체 단백질 기사를 쓰라는 명령을 내렸다. 왜 하필 저죠? “그야 이름이 미래니까. 미래 식량은 미래 씨가 찾아야지!”
과연 김미래 기자는 육류와 맛과 식감이 비슷한 대체 단백질, 미래 식량을 찾아낼 수 있을까?
육류를 더 이상 먹지 못할 수 있다니 정말 당황스럽다. 할머니, 할아버지께 고기가 귀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지만 지금은 휴대폰을 몇 번 터치하면 집 앞까지 치킨이 배달되는 세상 아닌가. 그러나 농담이 아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2018년 발표한 ‘식품과 농업의 미래-2050년까지의 대체 경로’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 전 세계 인구는 91억 명에 달하고, 육류 소비량은 4억 5500만 t(톤)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2050년의 육류 소비량은 2021년(3억 3500만 t)과 비교해 36%가량 늘어나는 셈이다.
육류 소비는 기후위기도 가속한다. 2021년 한 해 사료를 재배하고 가축을 키워내는 과정에서 배출된 온실가스는 71억t.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4.5%를 차지했다. 더 늘어날 육류 소비량을 고려하면 육류 소비는 지구를 더 뜨겁게 만드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2019년 특별보고서 ‘기후변화와 땅(Climate Change and Land)’을 발표하며 인류가 식량 시스템의 방향을 빠르게 바꾸지 않는다면 기후위기를 예방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서라도 대체육 또는 대체 단백질 개발이 시급하다는 내용이다.
이미 전 세계가 대체육과 대체 단백질을 찾기 위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미국 국립과학재단은 1200만 달러 규모로 대체육 연구개발 투자를 시작했고, 한국 해양수산부는 최근 2024년부터 5년 동안 대체해조육 개발을 위해 286억 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가끔은 예상 못한 동물이 식단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2024년 3월 호주 연구팀은 성장 속도가 빠르고 사료 효율도 높은 비단뱀이 지속 가능한 단백질 공급원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doi: 10.1038/s41598-024-54874-4
식품 1kg이 내뿜는 이산화탄소의 양 (단위: kgCO2eq)
제 취향은 꽃벵이입니다, 식용 곤충
기자가 첫 번째로 관심을 가진 대체 단백질은 식용 곤충이었다. 곤충을 보는 것도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애석하게도 곤충은 대체 단백질 후보로 아주 예전부터 언급됐다. 그 이유로 부피 대비 풍부한 단백질과 다양한 영양소, 적은 비용으로 가능한 양식, 지속 가능한 양식을 꼽을 수 있다. 식용 곤충은 건조 무게의 약 60% 이상이 단백질이며 필수 아미노산을 모두 함유하고 있다. 또한 좁은 사육 공간에서 적은 양의 사료를 제공해도 뛰어난 번식력으로 양식이 잘 된다. 마지막으로 곤충을 재배하는 데 발생하는 온실가스의 양이 매우 적다. 그러니까 맞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곤충은 앞으로도 인류가 계속 주목해야 할 훌륭한 미래 먹거리다. 물론 기자도 선뜻 입에 넣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역시 생김새와 맛 때문이다. 그러나 맛을 본 자만이 식용 곤충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법. 원효대사의 해골물 에피소드처럼 눈 딱 감고 ‘바삭한 과자’라는 마음으로 먹어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맛을 확인한 건 시중에서도 구하기 쉬운 고소애(갈색거저리)와 꽃벵이(흰점박이꽃무지)였다(식용 곤충은 심지어 인터넷 주문 배송도 가능하다). 봉지를 개봉하자 맡아본 적 없는 진한 비린내가 새어 나왔다. 묵혀둔 건새우 향과 비슷하달까. 먹기 위해 식용 곤충을 살짝 쥐자 너무 쉽게 으스러졌다. 자, 호흡을 가다듬고 한입 털어 넣는다. 쿰쿰한 향과 함께 견과류와 비슷한 비린 맛이 느껴졌다(기자는 견과류를 좋아하지 않는다). 맛과 향은 크게 나쁘지 않았지만, 입 안에 남는 곤충의 껍질이 조금 불쾌했다.
갈색거저리가 안쪽이 텅 빈 오감자 과자같은 식감이었다면 흰점박이꽃무지는 바삭한 크런치로 가득 찬 웨하스 과자 식감이 났다. 흰점박이꽃무지는 쿰쿰한 향이 갈색거저리보다 적었고 고소한 맛이 좀 더 강했다. 기자의 취향은 갈색거저리보다는 흰점박이꽃무지였다.
향미 연구 진짜 시급하구먼!
기자는 비위가 꽤 강한 편이라 먹을 만했지만, 식용 곤충은 확실히 육류를 대체할 만큼 맛 좋은 대체 단백질은 아니었다. 식감은 둘째치고 곤충 특유의 향이 썩 기분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점 때문에 식용 곤충의 향미 연구는 최근 화학계의 핫한 연구 주제다. 2024년 3월 미국화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는 식용 곤충의 향미에 대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창키 류 샌디에이고주립대 식품과학과 교수팀은 가스 크로마토그래피-질량 분석법(GC-MASS)*을 활용해 식용 개미로 사용되는 치카타나개미, 검은개미, 가시개미, 베짜기개미의 맛과 향을 분석했다. 놀랍게도 개미마다 맛과 향이 달랐다. 치카타나개미는 나무향이 강했고 베짜기개미에선 고소하고 달콤한 캐러멜향이 났다. 검은개미와 가시개미는 시큼한 편이었다. 류 교수는 보도자료에서 “(개미의) 좋은 맛을 내는 화학물질을 찾아 그 맛을 키울 방법을 연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식용 곤충의 향미에 대한 연구는 국내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5월 9일 전북 완주에 위치한 한국식품연구원에서 만난 박민경 식품융합연구본부 가공공정연구단 연구원은 “식용 곤충이 소비자에게 더 잘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한국식품연구원에서도 식용 곤충에 대한 향미 프로파일링 분석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박 연구원의 분석 대상은 식용 곤충으로 허가받은 메뚜기, 장수풍뎅이, 갈색거저리, 귀뚜라미 등이다. 각 곤충을 GC-MASS로 분석하면 특별한 향을 내는 특정 화합물을 분석할 수 있다. 박 연구원은 이 과정을 “뭉쳐있던 향의 실타래를 푸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예를 들어 갈색거저리의 경우는 자른 풀향을 내는 화합물인 헥사날, 치즈향을 내는 화합물인 핵산산 등이 합쳐져 특유의 향을 낸다. 화합물이 어떤 농도로 배합되는지에 따라 고유의 독특한 향미를 내기 때문에 여러 실험 데이터를 축적해 경험적 자료를 많이 쌓는 것이 중요하다.
소고기 vs. 갈색거저리 향미 프로파일링
소고기 향이 나는 곤충, 핵심은 마이야르 반응?
향미 분석의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박 연구원은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의 향미, 가령 소고기의 향미와 비슷하게 유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정 향기 특성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단일 화합물보다 향의 조화가 더 중요하다. 예를 들어 박 연구원의 분석 결과를 보면 소고기는 크림이나 버터 같은 부드러운 향과 신선한 과일향, 알코올 음료에서 나는 향을 가진다. 그중에서도 크리미한 향이 가장 강하다.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특정 향을 연상시키는 화합물들의 농도와 종류를 조절해 향미소재를 개발한다.
갈색거저리의 향을 어떻게 소고기의 향과 비슷하게 만들까? 박 연구원은 “새로운 향을 첨가하는 방식, 활성탄을 활용해 불쾌한 향을 제거하는 방식 등이 있다”며 “뿐만 아니라 화학 반응을 이용해 향미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연구 기법도 있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예가 ‘마이야르 반응’이다. 마이야르 반응은 열이라는 물리적 반응을 가할 때 단백질이 환원당과 만나 특별한 향을 내는 화학 반응을 뜻한다. 박 연구원은 “갈색거저리에서 불쾌한 향을 유발하는 화합물은 없애고, 소고기를 연상시키는 향을 내는 화합물로 전환하는 방법으로 소고기 맛이 나는 곤충을 만들 수 있다”며 “특정 화합물을 생성, 전환하는 화학 및 생물학적 반응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대중에게 익숙한 향의 식용 곤충 이용 향미소재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재밌는 식감, 생선살 같은지는 글쎄~ 미세조류
드넓은 바다에서도 대체 단백질로 거론되는 슈퍼 푸드가 있다. 바로 미세조류다. 미세조류는 현미경으로 봐야 할 정도로 작은 조류로 광합성을 통해 에너지를 생성한다. 미세조류는 식용 곤충처럼 영양학적으로 훌륭한 식재료다. 단백질, 비타민, 미네랄 등 인체에 필수적인 다양한 영양소를 고밀도로 함유하고 있다. 특히 미세조류 중 하나인 스피룰리나는 건조 무게의 약 60~70%가 단백질이다. 콩이 약 36%, 소고기가 약 26%인 것과 비교하면 무게 대비 엄청난 양의 단백질을 가진 셈이다. 대부분의 미래 먹거리 후보가 그렇듯 경제적 효율성도 뛰어나다. 성장 속도가 매우 빠르며 언제 어디서나 물만 있다면 대량으로 생산이 가능하다. 이런 미세조류는 어떻게 우리의 식탁에 올릴 수 있을까.
독일의 푸드테크 기업 코랄로는 미세조류와 버섯 뿌리를 이용해 식물성 생선 필렛을 만들었다. 코랄로의 식물성 생선 필렛은 강남의 ‘스타일비건 강남구청점’ 레스토랑에서 햄버거 패티로 맛볼 수 있었다. 비건 생선 살코기의 맛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 패티만 따로 맛봤다. 일반 생선살이 결대로 부서지며 촉촉한 것에 비해, 코랄로의 비건 생선살은 훨씬 탱글거리는 식감이 났다. 생선살과 완전히 유사하다고 말하긴 어려웠지만 향과 맛, 식감면에서 전반적으로 비슷했다. 어떻게 미세조류와 버섯 뿌리를 활용해 식물성 생선 필렛을 만들 수 있었는지 시나 알바네즈 코랄로 대표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코랄로의 기술은) 미세조류를 물고기가 먹고, 그 물고기를 우리가 먹던 기존의 먹이사슬과는 다소 다릅니다.”
알바네즈 대표는 맥주나 와인 등을 발효시킬 때 흔히 사용되는 대형 발효기에 미세조류와 버섯 뿌리를 넣고, 코랄로만의 ‘균합 발효 특허 기술’을 적용하면 미세조류의 영양소를 지키면서 버섯의 탱글한 식감은 살린 식물성 생선 필렛이 탄생한다고 설명했다. 미세조류와 버섯 뿌리를 서로 결합해 발효시킴으로써 새로운 생물학적 특성을 보이게 만드는 기술을 ‘균합 발효’ 기술이라고 한다.
알바네즈 대표는 “코랄로의 생선 필렛은 과잉 어획, 수질 오염 등의 파괴적인 양식업을 대체할 수 있다”며, “미세 플라스틱이나 중금속에 노출된 생선과도 차별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어떻게 먹을 수 있도록 만드냐가 관건! 균단백질
단백질 대체 물질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상상력은 일반인들의 그것을 초월한다. 대체 식량 후보로 곰팡이를 제시하는 걸 보면 말이다. 2021년 5월 영국 케임브리지대 소속의 실존적위험연구센터팀은 곰팡이에서 단백질만 따로 추출해 배양하는 방식으로 곰팡이를 대체 단백질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단백질을 배양하는 과정에서 얇은 실 모양의 균이 자라나 서로 얽히는데, 이 덩어리를 고기와 비슷한 형태로 가공한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푸드테크 스타트업 네이처스 핀드는 곰팡이로 패티를 만들어 2022년부터 판매했다. 안타깝게도 네이처스 핀드가 만든 패티는 한국에서 구입이 불가능했다. 그 이유는 나라마다 정한 식품 안전 및 위생 규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최근 대체 단백질로 활용할 균단백질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2024년 3월 5일 환경부 산하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은 대체 단백질 소재인 ‘마이코프로테인’을 만들 수 있는 균주, ‘아스퍼질러스 튜빙엔시스’를 발견했다. 아스퍼질러스 튜빙엔시스는 단백질을 30% 이상, 육류와 비슷한 풍미를 내는 시스테인을 12%가량 함유하고 있다. 이는 잘만 활용한다면 육류와 비슷한 맛을 내는 대체육 생산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황혜진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 생물자원연구실 균류연구부 전임연구원은 “식품으로 만들기 위해선 식품 가공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이 더 필요하다”면서 “상용화가 되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균단백질을 식품으로 개발하려면 유전자 분석, 안전성 및 독성 연구 등 복잡한 단계를 거쳐야 한다.
식약처 허가만 기다린다, 배양육
최근 인공 배양육이 상용화된 세상을 배경으로 한 SF 드라마 ‘지배종’이 인기를 끌었다. 덕분에 배양육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늘고 있다. 현실에서도 배양육은 개발이 대부분 완료됐다. 하지만 식탁에 오르기 위해선 몇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안전성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세포를 배양할 때 쓰는 배양액의 식품 안전성을 따져봐야 한다. 국내 배양육 개발 스타트업 ‘셀미트’는 식품 유래 성분으로만 만들어진 갑각류 전용 세포배양액을 개발해 갑각류 배양육을 만들었다. 세포배양액의 안전성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기자가 셀미트에 배양육 샘플 제공을 요청했을 때 아직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허가가 나지 않아 제공하기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과연 미래의 식탁에는 어떤 대체 단백질이 올라오게 될까? 하나 분명한 것은 ‘맛있는’ 대체육, ‘맛있는’ 대체 단백질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영양과 기후위기를 신경쓰지만, 그만큼 맛과 향에 진심이다. 우리가 선택하는 모든 음식이 지구와 지구인의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식량 혁신을 이끌고 있는 과학자들을 응원한다.
용어 설명
*가스 크로마토그래피-질량 분석법(GC-MASS) : 식품의 향미를 분석할 때 쓰는 방법으로 공기 중으로 퍼진 복합 화합물 속에서 향을 내는 개별 화합물을 식별하고 그 양을 측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