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학은 실험실습시간이 서울대 2백88시간, 연세대 4백16시간, 충남대 6백72시간보다 6~10배에 달하는 2천4백84시간이다. 여기에 교직과목 20학점을 더 따야 하기 때문에 대학의 낭만을 잊고 지낸다.
육해공군 삼군사관학교처럼 스파르타식으로 강도 높은 기능교육을 하는 대학이 있다. 한국기술교육대학(충남 천안군 병천면 가전리 산 37)이 바로 그 대학인데, 이 학교가 세간에서는 '기술사관학교'로 불리고 있다. 학생들은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하며 평일 8시간, 토요일 4시간씩 빈틈없이 짜여진 수업시간표를 따라 공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대학의 학생들이 사관생도와 다른 점은 제복을 입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한국기술교육대학은 기존의 교육대학이 교원양성을 목적으로 하듯이 직업훈련교사를 양성하기 위한 대학이다. 사업현장에서 실제 기계를 다루는 전문기능인 또는 이를 양성할 기능교육인력을 배출하는 데 교육목표를 두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실기보다 이론에 치중하는 일반 공과대학과는 좀 다르다. 또 첨단 과학기술인력 양성을 목표로 하는 포항공과대학, 한국과학기술대학 등의 특수대학과도 성격이 다르다.
직업훈련교사 양성하는 대학
이 대학에 설치돼 있는 학과는 모두 8개이며 한 학과당 정원은 30명씩이다. 직업훈련분야 중 현재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기계분야 학과가 4개(산업기계공학과 생산기계공학과 제어기계공학과 동력기계공학과)이고, 전기·전자분야에 3개(전기공학과 전자공학과 정보통신공학과), 그리고 조형분야로서 조형공학과가 있다.
이 가운데 제어기계공학과 정보통신공학과 및 조형공학과가 기존의 직업훈련 과정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음에도 설치돼 있는 것은 이 대학을 졸업한 훈련교사들이 본격적으로 활약하게 될 2000년대의 성장직종 분야를 대비한 장기적인 포석으로 보인다.
이 대학은 일반 공과대학보다 실험실습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다. 서울대 2백88시간 연세대 4백16시간 충남대(공업교육학과) 6백72시간인 데 비해 한국기술교육대학은 이보다 6~10배에 달하는 2천4백84시간이나 이수토록 하고 있다. 여기에 교직과목 20학점을 더 따내야 하기 때문에 이 대학 학생들의 생활은 매우 타이트하다. 따라서 학생들은 대학시절의 낭만을 만끽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다.
"실습 리포트를 작성하느라 밤샘하는 적이 많아요. 뿐만 아니라 공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늘 머리 속에 차 있어 학업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녜요."
정보통신학과 1학년 윤소영양은 "학업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에 신문이나 TV를 볼 시간조차 아깝다"며 "인기 주말 TV드라마 '아들과 딸'이 아직도 방영되고 있느냐"고 물었다.
이같은 상황은 이낙주 학장(68)도 확인해 주었다.
"개교할 때부터 학생들에게 주문했습니다. 우리 대학은 낭만을 즐길 시간적 여유가 없는 대학이니 그리 알라고요. 특히 재학생 모두에게 1급 기능사, 1급 기사자격을 획득하도록 지도하고 있기 때문에 공부하지 않고는 배겨낼 수 없습니다."
자유분방하게 캠퍼스를 오가며 학창생활을 즐기는 일반대학의 학생을 보다가 이 대학의 학생들을 보면 안쓰러운 생각이 들 정도다. 기숙사에서 식당 강의실 그리고 실기실을 오가다 보면 어느 새 하루해가 저문다. 외출이나 외박은 토요일 오후나 일요일에나 가능하다. 그러나 이 시간에는 세탁을 하고 밀린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에 짬을 내기가 그리 쉽지 않다.
고교내신성적 1~2등급 대부분
아직 졸업생을 배출하지 않았고 학생들이 1, 2학년 밖에 없는 가운데 이 학교를 평가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현재 학생들의 일생을 건 듯한 학업태도로 미루어 보면 이 학교의 장래는 일단 확신해도 무리가 아닐 듯 싶다. 학생들이 모두 순진무구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입학사정에서 내신성적을 60%로 높게 책정, 성실하고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이다. 92년도 신입생의 72%가 내신 1, 2등급이었다.
내신성적을 60%로 높인 것은 공업계 고등학교 학생이 인문계 출신에 비해 불리한 학력고사의 반영비율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또 고등학교에서의 학습태도 및 생활이 입학 후 대학교육 성취도와 관련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올해 입시에서 전체 수석합격은 물론 8개 학과 중 6개 학과를 공고졸업생이 과수석으로 합격했다. 나머지 2개 학과는 인문계 출신이 차지했다.
이 대학 학생들이 누리는 혜택은 많다. 먼저 충분히 확보된 교수진을 들 수 있다. 기존 공과대학 기계계열에 대한 지난 90년도 조사결과에 의하면 교수대 학생의 비율이 평균 1:50, 과학기술대 1:15, 포항공대 1:7인데 비해 이 대학은 1:10으로 질 높은 기술교육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교수들은 독일의 훈련교사양성과 기능인 양성 모델을 직접 배워와 수준 높은 이론교육과 내실있는 실험·실습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91년도 공채교수 32명중 23명이 독일내 기술대학 공공훈련원 사업내훈련원에 다녀왔거나 현재 파견 연수중이다.
학생들은 모두 4년간 수업료 면제와 기숙사 실비제공의 혜택을 받고 있으며 학업성적이 우수하거나 가정형편이 곤란한 자에게는 각종 장학금이 지급된다. 재학중 1급 기능사 1급 기사 등 국가기술자격을 취득할 수 있고 졸업생에게는 공학사 학위와 직업훈련교사 면허를 부여한다.
졸업 후에 이들이 진출할 진로는 많다. 공공 및 인정 직업훈련원의 교사는 물론 산업체의 기능인력 양성교사 및 생산기술 지도감독부서의 책임자, 산업체현장의 설계 및 개발업무를 관장할 유능한 기술자, 각종 연구기관의 연구원 등으로 진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애초 한국기술교육대학이 설립인가를 받을 때는 교명이 한국산업기술대학이었으나 지난해 한국기술대학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그러나 설립 계획을 승인받을 때의 교명은 한국직업훈련대학이었다.
노동분야 총망라한 종합대학 계획
이 대학의 설립은 지난 83년 중앙직업훈련원내에 있던 기존의 직업훈련교사 양성과정을 폐지하고 직업훈련교사 양성을 위한 4년제 정규대학의 설립을 준비하면서 거론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84년 2월 대통령 지시에 의해 과학기술대학을 설치해 과학연재를 육성하는 것으로 변경되는 바람에 무위로 돌아갔다.
그 후 노동부가 다시 직업훈련 과정의 고급화와 직업훈련 대상의 고학력화 등 여건변화에 따른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독자적으로 우수 직업훈련교사를 양성할 수 있는 4년제 직업훈련대학의 별도 설립을 추진, 89년 학교법인 한국직업훈련학원의 설립인가를 받았다.
노동부가 이 대학 설립계획을 추진하면서 특별히 심혈을 기울인 것은 대학학장 등 교수진의 인선이었다. 우선 개교에 필요한 최소 교수인원 35명 가운데 서울대 과기대 육사 창원기능대학 등에서 다수의 중진급 교수를 초빙했다. 초대 학장은 서울대 공대학장을 역임한 이낙주 박사가 맡았고 교무처장은 '사관학교'식 운영을 고려해 육사교수를 지낸 신창균 박사를 초빙했다.
그밖의 교수는 공채했는데, 모집대상 25명에 2백50여 명이 몰려 10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이같은 경쟁률은 신입생 선발에서도 나타났다. 지난 해 개교하면서 신입생을 선발할 때에는 평균 24대 1로 전국 대학 가운데 최고의 경쟁률을 보였으며 올해 입시에서는 평균 9.65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1, 2학년 모두 4백80며인 재학생 가운데는 현재 2학년 5명, 1학년 17명 등 모두 22명의 여학생도 재학중이다. 전자공학과 2년 하효진양은 고교때 이과계열이어서 별 부담없이 진학했으나 남학생들을 따라가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남학생들한테 뒤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너무 힘들어요."
조형공학과 2년 조미라양도 "고교때 이과계열이어서 자연스럽게 이 대학에 진학했으나 처음 기숙사생활에 적응하기가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규칙적인 생활도 어렵지만 조직생활에 가깝다 보니 아무래도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는 것.
한국기술교육대학은 원래 일본의 동경직업훈련대학(2년제 단기대학도 있음)을 참고해서 설립했다고 말하는 이낙주 학장은 앞으로 "신기술 첨단기술의 현재화(顯在化)가 이 대학의 과제"라고 밝혔다. 그는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금속 건설 응용화학 컴퓨터공학 자동화기계 등에 관련된 5개 학과의 증설을 이미 신청해 놓았으며 더 나아가서는 대학원을 설치해 노동분야를 총망라한 종합대학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말했다.
"우리 대학은 적어도 15년 전에는 세워졌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는 각오로 뛰고 있습니다. 서울대나 과기대와는 달리 우리는 산업현장에서 최고로 통하는 기능인력을 배출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신창균 교학처장은 앞으로 이 대학이 중소기업은 물론 일반 대기업이 못해내는 기능기술교육을 도맡아 해낼 것이라며 자신있게 말했다.
군비경쟁의 시대가 가고 기술경쟁의 시대가 도래한 지금부터 한국기술교육대학은 더욱더 국민의 관심을 모을 수밖에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