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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13일 E-XFEL은 첫 가동을 축하하며 독일 함부르크의 천체투영관에서 ‘E-XFEL의 밤’ 행사를 진행했다.

 

 

2017년 9월 처음 가동을 시작한 유럽의 4세대 방사광가속기 ‘유러피안 엑스펠 (E-XFEL·European X-ray Free-Electron Laser)’을 국내 언론으로는 처음으로 과학동아가 찾았다. E-XFEL은 미국, 일본, 한국에 이어 세계 4번째로 가동된 4세대 방사광가속기다. 가속관을 직선으로 3.4km 연결해 세계 최대 규모다.

 

 

 

2017년 11월, 독일 최대 항구 도시 함부르크의 바람은 한국의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차가웠다. 차가운 바람을 뚫고,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한 시간의 여정 끝에 유럽의 ‘빛 공장’ E-XFEL에 도착했다. 넓은 캠퍼스 안에 드문드문 들어선 건물은 황량함마저 느끼게 했다. 베른트 에벨링 E-XFEL 홍보팀장은 “아직 모든 시설이 완공된 것은 아니다”라며 “실험을 위한 빔라인은 6개 중 2개만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하에 터널 뚫고 3.4km 가속관 연결
방사광가속기는 전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시키는 장치다. 가속기 한쪽 끝에서 발사된 전자는 가속관이 길게 연결된 선형가속기를 지나면서 빛의 속도로 빨라지고, 이 전자가 거대한 영구자석이 만든 자기장을 통과하면서 급하게 방향을 꺾으며 아주 강한 전자기파를 낸다. 이를 방사광이라고 한다.

 

이때 발생하는 방사광은 파장이 수 nm(나노미터·1nm는 10억 분의 1m) 수준으로 매우 짧다. E-XFEL의 경우 0.05nm 수준이다. 이 빛이 세포와 같은 아주 작은 물체를 통과하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단백질 구조와 특성 등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일종의 거대한 현미경인 셈이다.

 

E-XFEL은 덴마크, 프랑스, 독일, 헝가리, 이탈리아, 폴란드, 러시아, 슬로바키아, 스페인, 스웨덴, 스위스 등 유럽 11개국이 공동으로 2007년부터 설계를 시작했다. 2014년 영국이 12번째 국가로 참여하면서 12개국의 합작품이 됐다. 건설 비용만 12억2000만 유로(약 1조5700억 원), 완공까지 10년이 걸린 거대 프로젝트다.

 

E-XFEL의 진짜 볼거리는 지하에 있다. 전자를 빛의 속도로 가속하는 선형가속기를 지하 6~38m에 터널을 뚫고 설치했다. 포항에 있는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지상에 놓여 있다.

 

 

 

11월 4일 E-XFEL이 마련한 대중 과학 행사인 ‘과학의 밤’에서 방문객들이 레이저 쇼를 관람하고 있다. 독일은 매년 대중을 위한 과학행사를 열고, 대형 연구기관들이 모두 참여한다. 국민들 역시 과학에 대한 관심이 많아 참가율이 높은 편이다.

 

 

지하로 내려가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에벨링 팀장은 “지하로 내려가기 전 안전장비를 반드시 갖추고 들어가도록 돼 있다”며 벽장에서 안전모와 신발, 양말을 가져와 건넸다. 복장을 갖춘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눈 앞에 엄청난 두께의 쇠문이 나타났다.

 

에벨링 팀장은 쇠문 위에 달린 센서를 가리키며 “가속기를 가동할 때 방사선이 나오는 만큼 한번 가동하고 나면 2~3일간 아무도 들어가지 못한다”며 “위에 있는 저 빨간 버튼에 불이 들어오지 않을 때에만 들어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보안 역시 철저해 연구소 출입용 카드키와 장비 운영실용 카드키 두 개를 모두 지참해야 들어갈 수 있다.

 

 

세포 움직임 동영상처럼 실시간 관측
터널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에벨링 팀장은 “길이가 3.4km에 이른다”고 말했다. 750m인 일본의 4세대 방사광가속기(SACLA)보다 무려 3배 이상 길다. 포항의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1km 정도다.

 

3km가 넘는 긴 터널은 많은 의미를 가진다. E-XFEL의 시작은 독일 전자싱크로트론연구소(DESY)다. 여기서 쏜 전자가 E-XFEL에 도착한다. DESY는 1세대 방사광가속기가 있는 독일의 유서 깊은 연구소로, E-XFEL보다 북쪽에 위치해 있다.

 

길게 이어진 가속관은 4세대 방사광가속기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다. 3세대 방사광가속기에도 선형가속기가 있지만, 핵심 장치는 거대한 원형의 저장링이다. 3세대 방사광가속기는 전자총에서 발사된 전자가 100~200m 길이의 선형가속기에서 빠른 속도로 가속되고, 이를 지나 저장링에 들어올 때 원 운동을 하면서 접선 모양으로 방사광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반면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전자총에서 나온 전자가 긴 선형가속기를 지나 거대한 영구자석을 만나 좌우로 진동하면서
방사광을 만들어낸다.

 

 

이때 나타나는 가장 큰 장점은 빛이 덜 퍼진다는 점이다. 3세대 방사광가속기에서 나오는 빛이 백열구의 빛이라면, 4세대 방사광가속기에서 나오는 빛은 레이저에 비유할 수 있다. E-XFEL 단입자·클러스터·생체분자(SPB) 연구소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있는 김윤희 박사는 “이를 결맞음성이라고 한다”며 “4세대 방사광가속기에서는 전자들이 만드는 빛의 위상이 같아 서로 중첩되면서 강한 빛을 만들어낸다”고 설명했다. 전자가 크게 원을 그리며 움직이는 3세대 방사광가속기에서는 방사광이 동일한 위상을 갖기 어렵다.

 

초전도 가속 시스템(위)은 전자를 빠르게 가속시켜 초당 펄스 수를 2만7000번 까지 높인다.

 

 

가속기 터널을 설명 중인 베른트에벨링 팀장.

 

 

초전도 선형가속기도 E-XFEL의 또 다른 특징이다. 선형가속기를 이루는 전체 가속관 가운데 60%가 절대온도 0도(영하 273.15도)에서 저항이 0이 되는 초전도체로 만들어졌다. 덕분에 열손실이 적어 일반 상전도 가속기에 비해 같은 시간 동안 더 많은 전자를 가속시킬 수 있고, 그만큼 빠르게 방사광이 만들어진다. 초당 생성되는 방사광의 수(펄스·pulse)가 대폭 늘어나는 것이다. 초당 펄스 수가 클수록 물질 변화를 빠르게 관찰할 수 있다.

 

김 박사는 “사진과 동영상의 차이로 비유할 수 있다”며 “E-XFEL에서는 초당 펄스 수가 2만7000번으로 세포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 과정을 마치 동영상처럼 실시간으로 관찰하는 동역학 연구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일본과 포항의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초당 펄스 수가 60번,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운용하는 4세대 방사광가속기(LCLS)는 120번 수준이다. 에벨링 팀장은 “E-XFEL을 포함해 전 세계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fs(펨토초·1fs는 1000조분의 1초) 단위로 화학반응을 관찰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FEL은 최초에 방출되는 한 줄기의 방사광을 여러 갈래로 나눠 서로 다른 목적의 실험을 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그 갈래 하나 하나를 빔 라인이라고 한다. 현재 E-XFEL에는 6개 빔 라인이 구축돼 있으며, 이 가운데 2개는 현재 운영을 시작했고 나머지 4개는 2018년 중 운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FEL은 전 세계 연구자들에게 별도 사용료 없이 실험용으로 개방된다. 에벨링 팀장은 “향후 5~10년은 연구 데이터를 공개한다는 조건 하에 무료로 장비를 사용할 수 있게 할 방침”이라며 “그 이후에는 기업이나 민간 연구소 등에게 유상으로 대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17년에는 단백질과 생체물질을 관찰하는 실험을 하는 연구팀이 주로 장비를 이용했다. 또 2018년 5월까지 61개 연구팀이 E-XFEL 사용 신청을 마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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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독일 함부르크=최지원 기자
  • 사진

    E-XF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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