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몸은 개일시계와 개년시계를 지니고 있다. 이 생체시계를 관장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이 슬슬 「몸」을 풀기 시작하면….
새벽 1시면 닭은 홰를 치며 운다. 깊은 잠에 든 농부들에게 첫 새벽을 알리는 동물시계다. 분꽃은 곁두리(샛밥) 때면 꼭 활짝 피어 시간을 알려주는 농촌아낙네들의 꽃(식물)시계다. 그렇다면 생물인 우리의 몸 속에도 시간을 알려주는 생체시계가 있는 것일까. 우리는 밤에 일하면 아주 피로하고 외국여행을 하면 시차를 느낀다. 이것은 분명 우리 몸 속에 시계가 있다는 증거다.
많은 생물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이러한 의문을 갖고 이 문제를 풀기 위해 탐구해 왔다. 이제 우리도 생물학자들이 알아낸 인간의 생체시계가 얼마나 바르게 시간을 알려주고 있는지 간단한 실험을 해 가면서 탐구해 보기로 하자.
우리가 매일 밤 10시면 꼭 잠을 자고 아침 5시가 되면 꼭 일어나는 실험을 한다고 해보자. 자야 하는 밤 10시는 매일 조금씩 느려지고 일어나는 아침 5시는 정말 누가 깨워주어야만 제 시간에 일어날 수가 있게 된다. 아무도 깨워주지 않으면 대부분 늦잠을 자게 마련이다. 늦잠을 자면 잘수록 잠은 늘어난다는 말이 있듯이 말이다.
나의 경험으로 보면 중고등학교 시절, 잘 때는 뒤척거리다가 어느 샌가 잠이 들었고, 일어날 때는 꼭 어머니가 제 시간에 맞추어 매일 깨워주셨다. 그렇다면 내게는 생체시계가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있다면 어머니와 같은 분이 항상 시간을 맞추어 주어야 하는 부정확한 시계를 갖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문제는 생물학자들의 실험과 생각을 통해 알아보기로 하자.
태양은 생체개일시계의 계시원
생물학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완전히 시간과 무관한 환경을 조성했다. 즉 참호을 만들고 유럽과 미국에서 지원자를 모집하여 실험을 실시하였다. 이곳에서 지원자들이 한달 또는 그 이상의 시간 동안 편안하게 지내게 했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신문 등 사회와의 접촉이 모두 배제되고, 시계도 물론 없다. 이처럼 아무런 시간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피실험자들은 언제 자고 언제 깨어날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하게 된다. 이 실험결과, 피실험자들은 그냥 불규칙한 생활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규칙적인 일상행동을 유지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것은 인간의 생체시계가 존재한다는 확실한 증거의 하나다. 피실험자들은 그들이 하고 있는 일에 관심이 있건 없건 간에, 규칙적인 시간에 눈을 뜨고 깨어나는 경향을 나타내었다. 이 실험의 가장 중요한 성과는 생체시계가 약 25시간의 주기를 가지고 반복된다는 것을 발견한 점이다. 이것을 개일(槪日)리듬이라고 한다.
우리가 잠을 잘수록 잠이 는다는 것은 바로 이 개일리듬 때문이며, 이 개일리듬이 나타난다는 것은 우리 몸속에 생체시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이다. 즉 우리의 몸 속에도 개일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이 개일시계는 대개 하루에 한시간씩 늦어지므로 하루 24시간의 물리적 시간에 맞추려면 어머니와 같이 제 시간에 깨워서 시간을 정확하게 맞추어 주는 계시원(計時員)이 필요한 것이다.
자, 그렇다면 생체개일시계의 계시원은 누구일까. 이 수수께끼는 아주 흥미진진하다. 생물학자들도 최근에 와서야 겨우 알아내기 시작했다. 우리가 자다가도 눈을 떠 날이 밝은 것을 알고 해를 쳐다보면 어느 때인지 짐작하는 것과 같이 바로 햇빛이 계시원인 것이다. 햇빛은 우리를 깨워 우리의 몸속에 있는 신체 개일시계를 정확하게 맞추어 준다. 즉 25시간 주기로 1시간씩 늦게 가는 생체시계를 24시간의 물리적인 시간으로 매일매일 교정해 주는 것이다.
명암주기로 우울증 치료하기도
그렇다면 우리의 생체시계가 고장나지 않고 잘 작동하고 있는지 조사해 보기로 하자. 하루를 꼬박 새우면서 자기의 생체시계가 알려주는 예언을 경험해 보는 것이다. 밤에는 생체시계의 지시에 따라 우리의 몸은 열 생산을 줄이게 된다. 이 때문에 우리는 다소 정신이 아찔한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이른 아침이면 이 시계는 체온을 증가시키기 시작하여 새로운 하루의 힘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우리는 더 민첩하고 경쾌한 기분을 느끼게 되어 희망찬 아침을 맞게 된다. 결과적으로 체온은 오후 중반에 절정에 이르고 밤동안 최저가 되는 분명한 리듬을 나타내게 된다.
생체개일시계는 물리적 시계보다 더 천천히 돌아가기 때문에 환경적인 계시원이 없으면 우리 몸이 최저체온을 기록하는 시각은 매일 아침 차츰 늦어지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그러나 이른 아침의 햇빛은 생체개일시계를 앞당겨 줌으로써 이 시계의 늦어짐을 바로 잡는다는 것이 인공조명을 이용한 실험에서 밝혀졌다.
1985년 독일의 과학자 웨버는 인공적인 명암주기가 체온리듬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피실험자들이 사는 외따로 떨어진 방에 21시간이나 28시간의 인공적인 명암주기를 준 후 그 실험자들에게 밝은 빛의 펄스(pulse)를 주자, 그들의 체온리듬이 곧 비정상적인 명암주기에 맞추어지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정상적인 세기의 빛은 효과를 나타내지 않았다. 이 원리를 이용, 계절을 타 우울증이 생긴 사람에게 밝은 빛을 비춰주는 치료를 하자 우울증세가 경감되고 개일리듬이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독자 가운데 봄을 타서 우울해지는 시차병에 걸린 사람들을 이러한 방법으로 치료해 보도록 하자. 이 방법은 체온이 가장 낮은 오전 5시경의 명암 펄스가 가장 효과가 있고, 체온이 가장 높은 오후 4,5시에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 세번의 펄스 대신 단 한번의 펄스로도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 실험결과는 햇빛이 계시원이라는 사실을 확인해주는 것이다. 만일 햇빛이 없다면 최저 체온시각인 오전 5시는 차츰 늦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른 아침의 햇빛 펄스가 생체시계를 앞당겨 줌으로써 물리적 시계와 생체시계를 일치시킨다는 사실은 퍽 흥미롭다.
그렇다면 빛이 우리 몸속의 생체개일시계에 과연 어떻게 작용하여 시간을 맞추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된다. 생물학자들에 따르면 첫째로 빛은 망막과 연결되는 신경을 자극함으로써 직접적으로 생체개일시계에 작용한다고 한다. 둘째로 빛은 이른 아침에 멜라토닌(melatonin)이라는 호르몬의 분비를 억제하여 간접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멜라토닌은 생체시계를 빛과 반대방향으로 전이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아침에 이 호르몬의 분비가 계속되면 생체시계가 앞당겨진다.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
그러나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들이 남아 있다. 야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시차 문제가 심각하다. 매일 낮에 잠자고 밤에 깨어있는 것은 계속하여 피로를 축적시킨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은 종종 궤양이나 심장질환과 같은 고질적인 질병을 앓게 된다.
한 실험에서 피실험자들은 나흘동안 낮에는 어두운 암실에서 8시간 잠자고 밤에는 밝은 빛에 노출되는 생활을 하였다. 그 결과 체온의 개일리듬이 8시간 정도나 전이되었고 혈관 내의 오줌(尿) 등의 흐름도 비슷한 현상을 나타내었다. 밤에 하는 정신노동의 질과 민첩성도 훨씬 향상되었다고 한다.
남극의 겨울은 암기가 길기 때문에 빛의 영향을 연구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최근 남극에서 이미 생체시계가 혼란된 상태의 사람들에게 밝은 빛의 펄스를 주는 실험을 하였다. 각각 아침과 늦은 오후에 준 1시간씩의 펄스는 멜라토닌 리듬을 여름의 형태로 바꾸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러면 이제까지 생물학자들이 밝힌 생체개일시계에 관한 정보를 정리해 보자. 분명히 우리의 몸속에는 생체개일시계가 있고 이것은 체온의 개일리듬으로 나타나는데, 이른 아침의 햇빛 펄스를 통해 매일매일 조절된다. 이 빛 펄스는 망막을 통해 생체개일시계에 들어가 멜라토닌의 분비를 조절, 항상 바른 시간을 맞추어주는 것을 알았다.
자, 만일 우리의 개일시계가 혼란에 빠져 시차병에 걸렸다면 어떻게 치료를 하면 될까. 위의 실험결과를 이용하여 치료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 우선 명암펄스로 치료한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더욱 간단한 방법이 있다. 빛 펄스 대신에 멜라토닌 캡슐을 먹으면 될 것이다. 이것이 생물학 연구의 묘미인 것이다.
시차병에 걸렸다고 하자. 그러면 그 지역 시간으로 저녁시간에 멜라토닌 캡슐을 먹으면 시차병의 주증상인 피로를 해소시킬 수 있고 야근하는 동안 멜라토닌 캡슐을 복용하면 낮 시간의 수면을 촉진시킨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사람에게 빛 이외의 육체적 운동이나 식사와 같은 행동이 생체시계의 조절자로 이용될 수는 없을까. 멜라토닌 이외의 다른 시차병 치료제는 없을까. 많은 연구할 문제가 쏟아져 나온다. 이것이 탐구의 동기요, 이것을 해결하였을 때의 성취감이 탐구의 기쁨인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몸에는 생체개일시계가 어디엔가 있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서 알았다. 과연 어디에 있을까. 참으로 궁금한 일이다. 계시원이 햇빛이기 때문에 빛을 감각하는 눈과 관계가 있음에 틀림없다. 생물학자들은 5년전 빛 자극이 망막을 통해 생체시계에 이른다는 것을 연구, 사람의 생체개일시계를 대뇌의 시상하부에 있는 작은 두 지역으로까지 추적해갈 수 있었다. 이 부분은 시교차상핵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뇌의 기저부에 파묻혀 있으며 모래알갱이보다 작은 크기다.
시교차상핵 주변에 종양이 생긴 사람들은 개일리듬을 상실하게 된다. 동물을 실험재료로 하여 시교차상핵을 외과적으로 수술해 잘라낸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개일리듬을 잃는 결과가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시교차상핵에 상해를 입은 쥐에게 태아 쥐의 시교차상핵을 이식한 결과 개일리듬이 회복되었다.
이들 실험은 모두 포유류의 생체개일시계는 시교차상핵임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생체시계는 없는가 하는 또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또다른 생체시계가 있다는 결정적인 단서는 잡지 못했다. 그러나 시교차상핵의 소실 또는 손상시 개일리듬의 일부만이 파괴되는 현상이 관찰된다는 것은 또다른 생체시계의 존재를 암시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멜라토닌캡슐을 복용하면…
이제까지는 개일시계만을 생각하였는데, 계절시계 개년시계(槪年時計)는 없을까. 개일시계와 마찬가지로 멜라토닌이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 송과선에서 분비되는 멜라토닌이 화학적 계시원으로 작용, 하루나 1년단위 호르몬리듬을 맞추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개년시계를 연구하는 궁극적이니 목적은 양과 같은 가축의 생식주기를 조절하는 방법을 찾는데 있다. 자연상태의 생식주기 하에서는 계절별로 고기맛이 달라지므로 사육사들에게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멜라토닌 캡슐을 복용시켜 생식시기를 몇달 당길 수 있다. 그러나 계속하여 장기간 투여해야 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우리의 몸에 있는 생체개일시계는 몸의 일부로 유전하는 것이 아닐까. 참으로 중요한 문제다. 실제로 생체시계의 마지막 연구는 생체개일리듬의 유전자를 발견하는 것이다. 바다달팽이나 초파리를 재료로 하여 생물학자들은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 초파리의 돌연변이종으로 그 개일리듬의 주기가 19시간으로 정상에 비해 더 짧거나 28시간으로 더 긴 개일리듬을 갖는 표현형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그 유전자가 만드는 단백질의 기능은 아직도 수수께끼다.
이와 같이 생체개일시계에 관한 유전자 수준의 연구는 아직 사람을 대상으로 해서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